아레나, 이계사냥기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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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8화
데포르트 항구는 첫인상부터가 개판이었다.
왜냐고?
저 봐라.
여기 저기 불타오르고 비명 지르고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해적들이다!”
“도망쳐!”
“꺄아악!”
이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항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전쟁이라도 난 듯한 혼란이었다.
“해적이 쳐들어온 것 같소.”
“예, 딱 보기에도 그러네요.”
“그럼 저 중에 타락한 시험자들도 끼어 있을 수 있겠지?”
“예, 아무래도요.”
내가 타락한 시험자라면,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고 마정을 빼내갈 기회다. 이런 이벤트에 그들이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타락한 시험자들은 기본적으로 베테랑이라 강하니 간부급일 겁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일단은 해적들과 싸우지 말고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다가 타락한 시험자로 의심되는 요주 인물을 발견하면 단숨에 타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데포르트 항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지형을 발견했다.
“전 저곳에 있을게요.”
“그게 좋겠군. 우리는 도시 안으로 침투하겠소.”
“예.”
나는 일행들과 헤어져서 언덕으로 향했다.
“바람의 가호!”
나는 훌쩍 점프했다.
인공근육슈트로 증폭된 근력으로 한 번에 수십 미터를 도약했다.
몇 번을 이어서 도약하여 간단하게 언덕에 올라섰다.
푸드덕거리며 언덕 위 나무에 있던 새들이 놀라 달아났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라 항구 전경이 빠짐없이 내려다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발사각이 나올 것 같았다.
‘어차피 조준이나 발사는 실프가 하면 되니까.’
“무장.”
AW50F가 내 손에 나타났다.
나는 바위 몇 개와 수풀을 가져와 쌓아놓고 은폐물을 만들었다.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총구를 틈바구니에 내밀었다.
AW50F에 달린 스코프로 항구 내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해적들이 약탈을 벌이고 있었다.
무기를 든 사내들이 문을 부수고 가정집에 들어가더니 나이 든 여자 하나를 머리채 휘어잡고 끌어낸다.
뭐라고 지들끼리 떠들며 낄낄거리더니, 거침없이 도를 휘둘러 목을 쳤다. 가여운 여인은 겁에 질린 표정 그대로 목이 잘려 버렸다.
놈들은 여인의 배를 갈라 마정을 꺼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저 개새끼들이!’
당장 전부 쏴서 머리통을 터뜨려 버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분노를 참으며 계속 항구 내부를 살폈다.
‘타락한 시험자를 먼저 찾아내야 하니까.’
지금 내가 저놈들한테 방아쇠를 당기면 일을 그르친다.
실프로 총성을 차단시킨다 해도 총알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요란하게 들린다.
해적들이 무언가 알 수 없는 원거리 공격에 쓰러지면, 타락한 시험자들은 그게 저격이란 걸 알아차린다.
다른 시험자가 자신들을 노린다는 걸 눈치채고 경계할 터였다.
‘타락한 시험자를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돼. 내가 먼저 놈들을 찾아내야 해.’
나머지 잔챙이들은 나중에 처치해도 늦지 않았다.
문제는 저 해적들 중 누가 타락한 시험자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쩌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교신기에 진동이 오자 통화를 받았다. 차지혜의 교신기 번호가 쓰여 있었다.
-김현호 씨.
“예, 말씀하세요.”
-제게 작전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반가웠다.
마침 이대로는 안 되고, 뭔가 더 특별한 작전이 필요하겠다 싶었던 차였다.
-해적들 중에 타락한 시험자들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유리한 강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이 교신기입니다.
“아!”
-교신기가 아니더라도 김현호 씨가 실프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죠. 서로 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은 전술적으로 매우 유리한 요소입니다.
“이 점을 이용해서 조직적으로 싸우자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차지혜가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중 가장 강한 오딘 씨가 전면에 나서서 해적들을 처치합니다. 타락한 시험자들이 오딘 씨를 처치하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그렇겠죠. 어쩌면 오딘 씨의 얼굴을 알아볼지도 모르죠.”
-그렇습니다. 김현호 씨는 계속 실프로 감시하다가 ‘시험자’나 ‘오딘’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해적을 찾아내 저격하십시오.
‘아!’
명쾌한 방책이었다.
-타락한 시험자들은 안전을 우선시 여기므로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한 명이 저격당하면 다른 한 명은 즉각 저격을 피해 숨을 겁니다.
“예.”
-그때 김현호 씨는 교신기나 실프를 통해 적이 숨은 위치를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기습하여 마무리 짓거나 저격 가능한 장소로 나오게 만들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마리는요?”
-그녀는 위험에 노출된 오딘을 은밀히 보호할 겁니다.
아귀가 딱딱 맞는군.
과연 군인 출신인 차지혜다운 작전 지시였다.
“알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지요. 먼저 오딘 씨가 항구 중앙 광장에 나타나 해적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겁니다.
“네!”
통화를 종료하고서 나는 실프에게 지시를 내렸다.
“실프, 지금부터 항구에서 ‘시험자’와 ‘오딘’을 언급하는 해적을 찾아내서 조준해 줘.”
-냥!
실프는 즉각 항구를 향해 날아갔다. 높은 하늘을 날고 있으므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오딘이 싸움을 시작했다.
데포르트 항구 중앙 광장에 나타난 오딘은 장검을 뽑았다.
해적들이 주위에서 덤벼들었지만 빠르게 좌우로 휘둘러 두 명의 목을 잘랐다.
낫으로 잡초 베듯 간단히 두 명을 사살한 오딘은 금세 주위 해적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방에서 해적들이 달려들었다.
검과 도뿐만 아니라 창이나 도끼 등 다양한 무기로 덤볐지만, 오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촤촤촤악―
푸른 오러가 아지랑이처럼 장검에서 피어오르며, 푸른 원이 그려졌다.
해적 5인이 몸뚱이가 양분되었다. 절단된 몸뚱이에서 유혈이 콸콸 쏟아졌다.
해적들이 겁을 먹고 주저하자, 오딘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양떼 속에 뛰어든 사자처럼 거침없이 날뛰는 오딘.
장검이 춤을 출 때마다 해적들이 토막 나버린다.
잔인하지만 해적 놈들의 만행을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오딘은 의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소량의 오러를 발출하며 싸울 뿐이었다.
그 때문에 해적들은 다수의 힘으로 어떻게든 가능하리라 믿고 꾸역꾸역 덤볐다.
해적들이 개미 떼처럼 모여들자 오딘은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
터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
경악으로 몸이 굳어진 해적들.
오딘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겁 없이 모여든 개미 떼에게 본때를 보여주었다.
추풍낙엽, 유혈낭자!
마치 인면수심의 해적들이 지옥에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인간의 몸이 어떻게 흐물흐물한 두부처럼 썩둑썩둑 썰릴 수가 있을까.
오딘이 장검을 휘두르면, 오러 블레이드에 닿는 모든 해적이 조각나 버렸다.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오러 마스터의 출현!
자신들이 수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오딘은 한 명도 놓칠 수 없다는 듯, 활발하게 광장을 누비며 해적들을 살육했다.
왼편에 있었던 오딘이 삽시간에 오른편에 나타난다.
단숨에 광장이 정리되었다.
해적들은 광장에서 죽거나 달아났다.
마치 피난을 떠난 사람들처럼 해적들도 정신없이 오딘을 피해 도망쳤다.
오딘은 해적들을 쫓아 움직였다.
그야말로 오딘은 그 자체로 검 한 자루를 든 대량살상병기였다.
‘정말 대단하다.’
절벽에서 이미 좀비 떼를 한 방에 떼죽음시킨 무위를 봤었지만, 다시 봐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압도적인 강함.
진정한 강자가 무엇인지 그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냐앙!
순식간에 내 옆에 나타난 실프가 소리쳤다.
‘나타났구나! 타락한 시험자들!’
나는 즉각 AW50F를 쏠 준비를 했다.
실프가 총구를 항구 서쪽 지구로 움직여 주었다.
“카사!”
-왈!
카사가 나타났다.
“준비해!”
실프와 카사는 내 양어깨에 올라탔다. 나는 스코프로 타깃이 된 상대를 응시했다.
‘중국인이군!’
검은 머리의 젊은 동양인 사내. 다른 사내들도 하나같이 동양인이었다.
존 오멘토와 더불어 리창위의 방향을 길잡이 스킬로 쫓아 이곳에 왔으니, 정황상 중국의 타락한 시험자들이 확실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총성은 실프가 차단했으나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도 우렁찼다.
스코프의 동그란 렌즈를 통해, 상대의 머리통이 폭발해 버리는 게 보였다.
“다른 놈도!”
나는 서둘러 재장전하고 한 방 더 쏘았다.
갑자기 동료의 머리통이 터져 버리자 다른 타락한 시험자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훈련은 받지 않은 까닭에 저격이라는 사실을 늦게 인지했다.
나는 한 방 더 갈겼다.
슈우욱―!!
또 한 사람의 목에 총알이 적중했다.
놀랍게도 목에서 피가 폭발했다.
목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머리가 몸뚱이에서 분리되어 허공에 붕 떴다.
‘좋았어!’
다른 두 사람은 그제야 건물 뒤로 숨어버렸다.
나는 교신기를 꺼내 차지혜에게 통화를 걸었다.
-예.
“서쪽지구에 두 명이 숨어 있어요. 둘 다 남자들인데 머리나 피부색이나 척 봐도 중국인이에요.”
-정확히 서쪽 지구 어딥니까?
“광장에서 큰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쭉 가면 바로 보여요.”
-알겠습니다.
나는 실프에게 지시를 내렸다.
“차지혜에게 정확한 방향과 거리를 가르쳐 주고 와.”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항구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잠시 후에 실프는 다시 돌아왔다.
“알려줬어?”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고 타락한 시험자 둘이 숨어 있는 건물을 주시했다.
차지혜가 그 건물로 접근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나는 방아쇠를 실프에게 맡겼다.
“놈들이 보이면 무조건 쏴버려. 손이든 발이든 신체 일부가 노출되면 무조건 맞춰 버려.”
-냐앙.
실프는 나를 대신해 총 손잡이를 잡았다.
난 계속 스코프를 응시했다.
차지혜가 건물 뒤로 돌아가며 쌍곡도를 휘둘렀다.
영악하게도 그녀는 위협공격만 한 뒤에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 반격을 가하려던 타락한 시험자의 오른팔이 건물 밖으로 노출되었다.
푸슉!
즉각 방아쇠를 당긴 실프.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간 50BMG 탄환이 검을 휘두르던 오른팔을 아작 내버렸다.
오른팔이 팔꿈치부터 떨어져 나갔다.
검을 쥔 오른손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안 봐도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지를 모습이 상상된다.
건물 뒤에 숨어 있어서 마무리를 짓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차지혜도 쉽사리 건물 뒤에 숨은 사내들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비록 기습은 성공했고 한 명은 무기를 쓰는 오른팔을 잃었지만, 그녀는 이제 겨우 7회차였다. 타락한 시험자 둘을 상대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응? 가만…….’
AW50F는 대물 저격소총.
전차나 엄폐물을 뚫고 적을 사살하기 위한 용도의 무기다.
게다가 마스터 레벨에 달한 탄약보정 스킬과 정령술까지 더해지면…….
‘건물을 뚫고 적중시킬 수 있잖아?’
나는 실프에게 말했다.
“놈들을 쏴버려. 엄폐물이 있어도 상관없어.”
-냐앙.
실프는 긴 꼬리로 총구 방향을 조정하거니 앙증맞은 앞발로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