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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1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4화

 

“타락한 시험자를?”
오딘은 깜짝 놀랐다.
“7회차치고는 난이도가 높은 거 아닌가요?”
내 물음에 오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당연하오! 7회차 시험자에게 적어도 15회차 이상을 겪었을 시험자들을 처치하라니? 정말 비상식적이군.”
“우리의 상식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겠죠. 시험은.”
“그건 그렇소만, 쯧. 하여간 위험한 시험을 치르게 되셨군.”
“혹시 중국 시험자 같은 타락한 시험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알 수 없소. 타락한 시험자들은 절대로 ‘광산’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소.”
“광산이라뇨?”
“은어요. 마정을 채집하는 장소를 그렇게 부르오.”
“마정을 가진 괴물이 많이 서식하는 장소를 찾아야겠죠?”
내 물음에 오딘이 말했다.
“그도 그렇지만 중국 시험단 같은 쓰레기들은 다른 방법으로 마정을 대량 획득하기도 하오.”
“아레나 사람을 죽여서 얻는 방법이죠?”
“그렇소. 아레나인은 크든 작든 체내에 마정이 있소. 인간 또한 다량의 마나를 품은 생명체니까.”
“그럼 대량학살이 벌어진 지역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무리요.”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고 치안도 불안정한 세계요. 대량학살 따윈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소.”
“…….”
“이곳에서는 시체를 화장하는 전통이 있소. 왜인지는 짐작하시겠지?”
“마정이군요.”
“그렇소. 시신은 화장하고 나온 마정은 팔거나 사용하지.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소. 전사자를 모두 화장하고 획득한 마정만으로도 전쟁에 든 자금 지출을 만회했소.”
오딘의 설명에 의하면 마정을 얻으려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일부러 포로를 죽이는 영주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정말 미친 세상이다.’
다른 세상이니 지구인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세상이니 어디서 마을 하나가 학살당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소. 세금을 못 내면 목숨을 대신 거두는 영주들도 있는 세상이오.”
“끄응. 역시 찾기 힘드네요.”
“타락한 시험자들은 자신들이 같은 시험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그래서 아레나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뜬금없이 이런 시험이 내려지다니, 정말 곤란하게 됐어.’
6회차까지의 지난 시험은 모두 연관성이 있었다.
1회차는 레드 에이프.
2회차는 분노한 레드 에이프 무리의 보복.
3회차는 숲을 탈출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라이칸스로프 실버 씨족.
4, 5회차는 실버 씨족이 노리던 엘프들.
6회차는 엘프들을 습격한 언데드 군단과의 사투.
모두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있었다.
‘가만, 갑자기 아무 맥락 없는 시험이 내려졌을 리는 없어.’
모든 것은 힌트가 된다!
뜬금없는 것 같아도 분명 지난 6회차 시험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그 연결 고리를 따라 7회차 시험을 수행하도록 안배되어 있을 터였다.
‘뭘까? 그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오딘이 말했다.
“고민이 많이 되나 본데, 기분 전환도 할 겸 저택을 둘러보겠소?”
“아, 그러죠. 전파송수신기를 설치할 장소도 찾아야 하니까요.”
“봐둔 장소가 있소. 따라 오시오.”
우리는 저택 꼭대기의 첨탑에 올라가 전파송수신기를 설치했다.
이제 울펜부르크 백작가를 중심으로 반경 1,850㎞ 이내에서는 통신이 가능해졌다.
또한 오딘의 집무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드넓은 집무실에는 오딘의 개인 금고도 있었다.
“열려라.”
오딘의 말에 드르륵 하고 한쪽 벽이 열렸다. 고시원 방 정도의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와아.”
“마법도 과학만큼이나 편리하지.”
오딘의 개인 금고에는 금괴와 무기 등이 있었다.
나는 가공간에 보관하고 있던 교신기들과 인공근육슈트들을 전부 꺼냈다.
오딘은 그것을 전부 금고에 넣고, 인공근육슈트 한 벌은 자신이 입었다.
“이제 리창위와 붙어도 해볼 만하게 됐소.”
인공근육슈트로 빈틈없이 감싸인 몸을 움직여 보며 오딘이 말했다.
안 그래도 강한 오딘이 20배 증폭된 근력까지 손에 넣었으니 확실히 자신할 만했다.
잠시 후, 오딘의 부름을 받은 재단사가 도착했다.
나이든 재단사는 내 몸의 치수를 이리저리 재더니 말했다.
“딱 맞으실 듯한 옷이 있는데 가져다드릴까요? 아니면 새로 지어드릴까요?”
“그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재단사는 내게 공손히 인사하고는 떠났다.
오딘이 말했다.
“곧 귀족이 될 테니 사람을 하대하는 데 익숙해지셔야 할 거요.”
“하하, 네.”
“그럼 먼 길 오느라 피곤하실 텐데 씻고 쉬시오. 목욕을 준비시키겠소.”
“예, 감사합니다.”
나는 내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하인 둘과 시녀 둘이 줄줄이 내 방에 들어왔다.
하인 둘은 물이 담긴 커다란 나무 욕조를 낑낑대며 들고 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시녀 둘이 내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목욕 시중을 들어드리라는 주인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예?”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와 주십시오.”
옷을 벗으라니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곧 싱글거리며 짓궂게 웃고 있을 오딘이 떠오른다.
시녀 둘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저마다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다.
‘뭐, 상관없나.’
곧 귀족이 되니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알겠다.”
그리 말하며 나는 옷을 벗었다. 인공근육슈트까지 벗어버리고 따듯한 물이 담긴 나무 욕조에 들어갔다.
그제야 고개를 든 시녀들이 나에게 다가와 시중을 들어주었다.
기분 탓일까.
내 몸을 보고 시녀들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차, 착각일 거야.’
그래.
내 착각일 거다.
씻겨주는 그녀들의 손길이 점점 은밀한 곳으로 향하는 것도 내 착각이 분명하다.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고 기를 써야 했다.
어쩐지 그녀들은 즐거워 보였다. 살짝 웃는 것 같은데 이것도 내 착각이겠지. 그럴 거야.
목욕을 마치고 욕조에서 나오자 시녀들은 준비한 실크 가운을 걸쳐 주었다.
하인들이 다시 들어와 다 씻은 욕조와 목욕용품을 들고 갔다.
그런데 두 시녀는 떠나지 않고 나를 침대로 인도했다.
“영주님께 다른 명령도 받았습니다.”
“저희가 모셔도 되겠습니까?”
두 시녀가 나를 보며 공손히 물었다.
갈등은 짧았다.
“그, 그렇게 하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녀들은 활짝 웃으며 침대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갈색 산맥에서 시작된 강행군의 여독을 풀며 하루를 보냈다.

***

“잘 쉬셨소?”
“예,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신 덕분에요.”
“하핫, 말씀대로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
짓궂은 오딘의 말에 나는 쑥스러움을 느꼈다.
“옷은 어떻소?”
“괜찮네요. 생각보다 움직이기 편하고요.”
나는 인공근육슈트 겉에 재단사가 가져다준 새 옷을 입고 있었다.
턱시도와 비슷하게 생긴 붉은색 상하의를 입고 하얀 스카프를 두른 채, 겉은 짙은 갈색 케이프를 두른 차림이었다.
신발은 경량화 마법이 걸린 가죽 부츠. 발이 가볍고 편했다.
붉은색이 너무 눈에 띄어서 부담됐지만, 귀족들은 이보다 더 화려하게 다닌다고 하니 참았다.
“시험을 어떻게 진행할지 답은 찾으셨소?”
“예, 한 가지 집히는 구석이 있습니다.”
간밤에 잠깐 잠에서 깨어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는 주어진 힌트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호오, 들어보고 싶구려.”
“지금껏 그랬듯 이번 시험 또한 지난번 시험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그렇지.”
오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타락한 시험자들은 괴물들을 사냥해서 마정을 벌지만, 또한 사람을 죽여서 얻기도 하죠.”
“사람이 괴물보다 더 죽이기 쉬우니까.”
“그래서 저는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딘 씨도 보셨을 겁니다.”
“나도 봤다고? 흐음, 잘 모르겠군.”
오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말했다.
“절벽을 기어 올라오던 좀비들 말이죠.”
“그 우글거리던 좀비들 말이오? 그게 타락한 시험자들과 무슨…….”
거기까지 말하다가, 오딘은 뭔가를 떠올렸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내가 말했다.
“아레나에서는 보통 시신을 화장한다고 하셨지요? 그럼 그 시체들은 대체 어디서 난 걸까요?”
“살해당한 사람들이군!”
“예, 누가 죽였을까요?”
“맥락상 타락한 시험자들의 소행이겠구려!”
“바로 그겁니다.”
오딘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지난번 시험과 이번 시험의 연관성이 생기는군!”
“그리고 제 생각에, 이건 오딘 씨의 시험에 대한 힌트도 됩니다.”
“내 시험의?”
“좀비들이 타락한 시험자들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이라면, 타락한 시험자들이 흑마법사들에게 시체를 제공했다고 봐야죠.”
“……!”
“오딘 씨도 말씀하셨죠? 의도적으로 시험을 방해하는 타락한 시험자들이 있다고요.”
“그, 그렇다면…….”
“그 흑마법사들은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타락한 시험자들은 시험이 전부 클리어되는 걸 저지하기 위해 흑마법사들과 협력하고 있는 거죠.”
내가 이어서 설명했다.
“갈색산맥으로 돌아가 좀비들의 잔해를 살펴봐야 합니다. 생김새와 옷 등을 보고서 그 사람들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알아내야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오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추리요. 김현호 씨는 역시 대단하시구려.”
“별말씀을요.”
“같이 움직입시다. 이번 시험은 함께할 수 있겠구려.”
“오딘 씨와 함께 다니면 저야 든든하죠.”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오딘과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된 날이었고, 내가 귀족이 된 날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제작한 신분증이 도착한 것이다.
직사각형의 작은 철판으로 된 신분증.
오딘은 엄지를 물어뜯어 피 한 방울을 신분증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은 히노 킴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수여한다.”
“히, 히노?”
히노는 그의 딸 벨라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오딘은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자, 현호 씨도 피를 떨어뜨리시오.”
“……예.”
나는 오딘이 그랬듯 손가락을 물어 피를 냈다.
내 피가 떨어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오딘과 내 피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한데 섞여서 글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분증에 붉은색으로 글자가 새겨졌다.
난생 처음 보는 글자였지만, 나는 그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레나에서 쓰이는 글자이리라.
피로 새겨진 글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킴 준남작 히노]

“어떻소? 간단하지 않소?”
“그러네요. 근데 이 신분증에 걸린 마법은 두 사람의 피에 반응하나 보죠?”
“내 피가 없으면 반응하지 않소.”
“어째서요?”
“우리 가문의 전담 마법사가 내 피에 반응하도록 마법을 걸었소. 철저한 신분제 사회이니만큼, 귀족을 사칭하지 못하도록 통제가 철저하지.”
나는 완성된 내 신분증을 보며 신기함을 느꼈다.
마법이 내 신분을 증명한다.
절대로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신분증이 손에 들어오자, 정말로 신분이 상승한 듯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마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슈퍼카를 타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레나에서 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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