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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0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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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08화

 

우리는 룸서비스를 시켜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왠지 성격상 불필요한 잡담을 싫어할 것 같은 차지혜였지만, 의외로 나와 잘 어울려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인생은 굴곡이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고아원에서 지냈습니다. 고아원에 자주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시는 체육관 관장님이 계셨는데, 그분께 무에타이를 배웠습니다. 그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
“하지만 관장님이 체육관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저는 또 혼자가 되었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대학은 꿈도 못 꿨고, 군 입대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진로였습니다. 제 체질에도 맞았고요.”
맥주 몇 캔을 비우며 테라스 밖의 아경을 바라보는 차지혜.
그녀는 문득 나를 스윽 응시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김현호 씨뿐입니다.”
“뭐가요?”
“김현호 씨가 제게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밤이라서 그런가.
민정과 사실상의 이별 단계를 밟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술이 들어가서인가.
원채 미모가 뛰어났던 차지혜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도 예뻐 보였다.
“이젠 사망처리가 되었으니 김현호 씨가 제 존재를 아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네, 이상하네요.”
아무렇지 않은 어조였지만, 나는 그녀의 공허함과 고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내게도 내 모든 비밀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였다.
민정에게도 끝내 말할 수 없었던 비밀. 그것을 차지혜와는 공유할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나를 위해 죽은 그녀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여자였다.
“미안해요.”
“무엇이 말입니까?”
“저 때문에 죽은 거요.”
“괜찮습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저만 아니었으면 시험자가 될 필요도 없었고,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살아 있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네?”
“현실에서 29년을 살았는데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숨을 쉬니까 제게 주어진 시간을 무감각하게 보낼 뿐이었습니다.”
“…….”
“그래서 시험자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죽음과 싸우는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살아 있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느꼈습니다.”
차지혜는 맥주 한 캔을 더 뜯으며 말했다.
“산다는 건 다가오는 죽음과 싸우는 겁니다. 저는 그 체감을 동경했고, 그래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시험자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원하셨다고요?”
“예, 일부러 스릴을 찾아 즐기는 성격은 아닙니다만, 저는 시험이 좋습니다. 제게 없던 삶의 목표를 제시해 주고, 아레나에서 보낸 지난 15년간 죽음을 가까이 하면서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나는 어째서 그녀에게서 강인함이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
죽는 것이 두렵고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은 나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강인함이었다.
“그럼 시험을 모두 클리어하면 어쩌실 생각이에요?”
“모르겠습니다. 일단 현실에서는 김중태 소장을 응징한다는 목표가 있긴 합니다만, 시험을 클리어했을 즈음에는 그걸 이미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중태 소장을 사살하는 일이라면 사실 지금도 가능했다.
멀리서 저격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다만 그 후폭풍을 감당하지 어려울 뿐이다.
“평범한 삶은 꿈꾸지 않으시나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삶이요.”
“그런 미련은 없습니다. 아마 저는 이미 고독에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 쉬겠습니다.”
“예.”
차지혜가 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 나는 홀로 그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달라졌어.’
그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확실히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아레나에서 보낸 15년간 그녀는 고독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죽어서 시험자가 되기 이전에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고독이 표출된 것인지도 몰랐다.
‘나도 시험을 계속 치르고 나면 저렇게 되는 걸까?’
나 또한 갈색산맥에서 엘프들과 수년을 보냈지만, 그녀처럼 긴 세월을 아레나에서 지내지는 않았다.
긴 시간을 싸움으로 보내고 나면 나 또한 그녀처럼 외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살 수만 있다면…….
수많은 고난을 뚫고서 끝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난 내 목숨이 너무나 아깝다.

***

맥런 회장을 치료하면서 사흘을 보냈을 때, 이정식 비서실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말씀하신 무기를 구했습니다. 크기가 워낙 큰 물건이라 공개된 장소에서 인계해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충북 진천군의 그 산장이 괜찮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이곳 인천에서는 좀 먼 거리지만 하는 수 없지. 차를 타고 바람 같이 다녀와야겠다.
무기를 가지러 간다고 하니 차지혜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하기야, 혼자 호텔에 있어 봤자 달리 할 일도 없을 테니까.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나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밟았다.
그깟 과속딱지 얼마든지 끊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마음껏 속도를 냈다.
포르쉐는 역시 포르쉐랄까. 다른 차를 운전해 본 적은 없지만, 밟으면 밟는 대로 쭉쭉 나가는 느낌이 짜릿했다.
보조석에 앉은 차지혜 또한 내가 아무리 속력을 내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도리어 칭찬을 했다.
“운전을 잘하십니다.”
“운동신경 덕분에요.”
상급 1레벨의 운동신경은 나를 베스트 드라이버로 만들었다. 이젠 뭐, 차를 내 몸처럼 섬세하게 다루는 경지였다.
그렇게 질주를 한 끝에 예의 그 산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박진성 회장과 함께 사냥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셨습니까?”
이정식 실장을 비롯해 제3비서실의 몇몇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커다란 검은 밴에서 검정색 커다란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에서 꺼낸 무기는…….
“헉!”
나는 절로 침음을 삼켰다.
전장(全長)만 1.5m는 족히 될 법한 육중한 검정색 소총이 괴물 같은 자태를 드러냈다.
“AW50F라는 물건입니다. 경찰특공대에서 쓰던 물건을 얻어왔습니다.”
그러자 차지혜가 나보다도 먼저 다가가 AW50F를 건네받았다.
총을 건넨 사내는 차지혜가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 들자 깜짝 놀란 눈치였다.
“707특임대에서도 쓰는 물건입니다. 직접 만져보긴 처음입니다.”
차지혜는 흥미가 생겼는지 총으로 이리저리 조준해 보고 개머리판을 접었다 폈다 하며 만지작거렸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AW50F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로 나타난 AW50F의 재원은 다음과 같았다.

-종류: 볼트액션
-구경: 12.7㎜
-탄약: 50BMG
-급탄: 10발 들이 탈착식 탄창
-전장: 1,350㎜
-중량: 13.5㎏
-유효사거리: 1,500m

‘허, 이것 참.’
보통 K2 같은 소총에 널리 쓰이는 보편적인 총알이 5.56㎜다. 그런데 이 총은 그 두 배가 넘는 12.7㎜!
‘이런 걸로 사람을 쐈다가는 아주 산산조각이 나겠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되도록 사람을 쏠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한번 쏴보십시오.”
“헉!”
타이밍이 공교로운 차지혜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아, 아뇨. 이리 주세요.”
차지혜가 AW50F를 던져주었다. 13.5㎏이나 나가는 물건이지만 나는 한 손으로 너끈히 받아냈다. 과연 모신나강보다 훨씬 육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탄은 여기 있습니다.”
이정식의 말에 사내들이 탄 박스 여러 개를 가져왔다.
나는 차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탄창에 50BMG탄 10발을 넣고 총에 장착했다.
볼트를 잡아당겨 장전하고서 들어 올려 조준했다.
‘어딜 쏠까?’
나는 고민 끝에 근처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조준했다. 모신나강에는 없었던 조준경이 달려 있어서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실프, 카사.”
-냥.
-멍!
두 정령이 나타났다.
정령들을 알아서 내 어깨 위에 올라타 내가 들고 있는 AW50F에 집중했다.
“실프, 총성을 없애줘.”
-냐앙.
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물 저격소총에 탄약보정, 실프, 카사.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위력이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실프의 소음차단에 의해 총성은 없었다. 하지만 묵직한 반동과 함께 총알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무섭게 울려 퍼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콰아앙!
커다란 바위가 박살 났다.
말 그대로 박살이었다.
바위는 십여 개의 작은 바위가 되어 사방팔방에 굴러다녔다.
그 커다란 바위를 거침없이 박살 낸 위력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정식 실장과 비서실 사내들도 경악에 찬 표정들이었다.
그나마 무표정인 차지혜가 덤덤히 말했다.
“적어도 이걸 맞고 무사할 사람은 없겠습니다.”
“그, 그러게요.”
나는 이 AW50F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명중률 100%로 저격할 수 있는 실프도 있으니, 이것만 있으면 천하무적이 될 것 같았다.
“석판 소환.”
석판이 나타났다.
“이걸 아이템화하고 싶다.”
그러자 석판의 글씨가 꿈틀거리며 변했다.

-AW50F: 볼트액션 방식의 대물 저격소총. 대구경탄을 사용하여 위력이 매우 높고, 내구력 또한 우수합니다. (-3,300)
*유효사거리: 1,500m
-3,300카르마로 AW50F를 아이템화하겠습니까?

-잔여 카르마: +4,000

‘역시 비싸다!’
3,300카르마라니! 시험 하나를 뛰어난 성적으로 클리어해야 얻을 수 있는 카르마 아닌가.
그걸 무기 하나에 꼬라박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어!’
나는 기꺼이 아이템화에 승낙했다.

-AW50F가 아이템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무장’과 ‘무장해제’ 명령으로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습니다.
-3,300카르마가 차감되었습니다.

-잔여 카르마: +700

AW50F라는 엄청난 대물 저격소총이 내 새로운 무기가 되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생각난 김에 정리를 해야겠다.’
가공간에서 모신나강에 쓰이는 7.62㎜ 총알을 전부 꺼내 이정식 실장에게 처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모신나강은 카르마로 환불받았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없애 버려 200카르마에 아이템화하였던 모신나강은 100카르마로 환불되었다.
이제 잔여 카르마는 800.
‘이걸로 어떤 스킬을 올릴까?’
당장 레벨을 올린다 해도 전투에서 크게 효과를 볼 만한 스킬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총알이 모신나강의 것보다 더 커졌지?’
AW50F에 사용되는 탄 50BMG는 굉장히 컸다.
스킬합성으로 만들어낸 가공간은 가로, 세로, 높이가 110㎝씩인 넉넉한 수납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닐슨 H2의 357매그넘탄도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공간이 여유롭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 공간을 충분히 넓혀서 식량과 식수도 넉넉하게 확보하자.’
나는 초급 4레벨이었던 가공간 스킬에 카르마를 전부 썼다.
초급 5레벨, 중급 1레벨로 두 단계 올리는데 700카르마가 소모되었다.
그런데 가공간이 중급 1레벨이 되자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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