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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0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07화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오랜만에 민정과 데이트를 했는데, 그녀가 말했다.
“오빠, 요즘 뭐 해요?”
“뭐하긴, 그냥 일하지.”
“외국에 나간 것도 아닌데 집에는 안 계시고…….”
“사정이 좀 있어서. 곧 집으로 돌아갈 거야.”
“무슨 사정인데요?”
“…….”
나는 마침내 우리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쳤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너무 많았다.
그 비밀 때문에 민정과의 동거도 도중에 깨져 버렸고, 최근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민정으로서는 화를 내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참은 것만으로도 민정이 상당히 날 위해 양보한 거라고 생각된다.
“오빠, 대체 하시는 일이 뭐예요? 진성그룹과 무엇을 하시기에 가족에게도 제게도 비밀로 하세요? 저 이제 너무 답답해요.”
“미안해. 그 마음 아니까 나도 너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이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요. 혹시 절 떼어놓으려고 거짓말을 한 건가, 집에 불쑥 찾아가보면 다른 여자가 있는 게 아닐까, 이제 끝난 걸까…….”
“그런 거 아니야!”
“그걸 제가 어떻게 믿어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제가 그 집에서 나와야 했는지, 이렇게까지 비밀로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에요!”
“…….”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범죄라도 관여되신 거예요? 오빠가 무슨 일을 하든 저 이해할 수 있다고요!”
“…….”
“뭐라고 말 좀 해보시라고요…….”
민정이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순간 나는 충동이 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비밀로 해야 하지? 그냥 다 말해 버릴까?’
난 시험자다.
이미 한 번 죽었고, 앞으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
휴식 기간이 지나면 죽을지도 모르는 싸움을 하러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한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끝내 침묵했다.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내가 얻어다 주었던 원룸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가기까지, 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끝났구나.’
유혹에 끌려 가볍게 사랑을 시작한 것이 잘못이었다.
시험자 주제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주제에 이런 관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진지하게 될 줄을…… 그땐 몰랐었다.
‘미안해.’
나는 먹먹한 마음으로 투숙 중이던 호텔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함께 탄 미모의 백인 여성이 나와 같은 14층을 눌렀다.
‘이 호텔 14층에 방은 4개뿐인데.’
눈이 마주치자 여성은 싱긋 웃어 보였다. 나 역시 웃음으로 고개를 까닥거려 보였다.
함께 14층에서 내린 뒤, 그녀는 스미스 맥런 회장의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나 참.’
나는 피식 웃었다.
맥런 회장이 드디어 치료의 효과를 확인해 볼 참인 듯했다.
하긴, 오늘이 시범 치료를 하기로 했던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니까.
“오셨습니까.”
다음 날, 나는 차지혜와 함께 스미스 맥런 회장을 찾아왔다.
“일주일간 치료를 받아본 소감이 어떠십니까?”
내가 물었다.
데이나가 답했다.
“회장님께서는 매우 만족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치료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어제 본 그 여성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사실상 맥런 회장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은 단순히 시범 치료였을 뿐이니, 최소한 일주일은 더 생명의 불꽃을 1개씩 주는 게 좋을 듯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뒤에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더 치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데이나 리트린은 맥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내게 말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네?”
“회장님께서는 완쾌되었다는 확실한 의사 소견이 있기 전까지는 치료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경우를 생각 못했구나.’
치료는 완쾌될 때까지.
하지만 생명의 불꽃이 건강에 좋으니 완쾌된 이후에도 그걸 숨기고 계속 치료를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예 치료 기간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겠구나.’
저 요구를 들어주면 맥런 회장은 계속 탐욕스럽게 불꽃을 요구할 터였다. 의사 소견 따위야 조작을 했는지 알게 뭔가.
내가 말했다.
“치료 기간은 총 2주입니다.”
“전에는 분명히 완쾌될 때까지라고 했었지요?”
“죄송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치료 기간은 무조건 2주입니다.”
“2주 이내에 치료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책임지시겠습니까?”
“책임은 지지 않을 겁니다. 치료 기간은 완쾌와 상관없이 무조건 2주. 그게 마음에 안 드신다면 우리의 거래는 여기까지로 하죠.”
데이나 리트린은 다시 맥런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가 말했다.
“계약했던 것과 얘기가 다르다고 하십니다. 분명 완쾌될 때까지라고 계약했고, 그중 1억 불을 선지급했습니다.”
“그건 일주일간 시범 치료를 한 대가였고, 분명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로 거래는 끝난다고 했었죠. 그리고 맥런 회장님께서는 어젯밤에 충분히 효과를 확인하셨을 텐데요. 사실상 이미 완치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건 의사만이 알겠지요. 우리 측에서 의사의 소견서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거래는 끝났습니다. 가죠.”
나는 돌아서서 차지혜와 함께 맥런 회장의 스위트룸을 떠나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데이나의 말이 다시 들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데이나는 특유의 싱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협상을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시는군요.”
“전 그런 협상이 재미없으니까요.”
“하지만 아레나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
“보름.”
“일주일입니다.”
“타협점을 조금은 맞춰보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있을수록 여러분도 리창위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습니까.”
“나머지 대가인 1만 카르마 상당의 아이템을 먼저 받고 치료에 착수해서 열흘. 더는 양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무조건 치료 기간을 2주로 못 박을 생각입니다.”
데이나는 맥런 회장과 상의를 했다.
“좋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가는 지금 드리겠습니다.”
데이나는 손을 위로 뻗었다.
파파팟!
아이템 백팩 20개가 소환되어 쏟아졌다. 500카르마짜리 대형 아이템 백팩들. 도합 1만 카르마 상당이었다.
또다시 엄청난 카르마를 얻게 되었다.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아이템 백팩들을 챙겼다.
하나씩 소유권을 내 것으로 가져오고 소환해제하여 사라지게 했다.
“그럼 오늘부터 열흘, 치료에 착수하겠습니다. 생명의 불꽃!”
화르륵!
내 손에 불덩어리가 생성되었다.
나는 그것을 데이나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받아 든 데이나는 맥런 회장에게 전달했다.
맥런 회장은 즉시 그걸 자기 가슴에 밀어 넣었다.
활력이 솟는 기분을 만끽하는지 눈을 감고 여운을 느낀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난 차지혜와 함께 우리의 스위트룸으로 돌아왔다.
“소환, 아이템 백팩 네 개.”
가방 네 개가 쏟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차지혜에게 건네주었다.
“가지세요.”
“주시는 겁니까?”
“지혜 씨 덕에 전에 키 작은 중국 놈을 처치할 수 있었잖아요. 그간 많이 신세진 것도 있고,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차지혜는 별달리 사양하지 않고 척척 가방을 주워 들었다.
이 여자는 정말인지 겸양이 없고 시원시원해서 좋다.
“마침 아이템백이 필요했는데 하나는 그냥 써야겠군요.”
“전부 카르마로 안 바꾸시고요?”
“야생에서 식량과 식수를 구하는 일도 큰일입니다. 그걸 생략할 수 있다면 행동이 더 빨라지죠.”
그건 그렇겠구나. 나야 실프 덕분에 사냥이 어렵지 않았지만 그녀는 나름 고생이었겠다.
차지혜는 나머지 세 개만 카르마로 환불하여 750카르마를 획득했다.
나도 가방 열여섯 개를 4,000카르마로 바꿨다.
‘협상이 잘되어서 다행이다.’
사실 스미스 맥런이 폭력과 협박으로 나를 겁박할까 봐 두려웠다.
데이나 리트린.
무려 공식 랭킹 1위라는 엄청난 시험자를 수행원으로 거느리고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 스미스 맥런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이었고, 정당한 거래를 한 관계로 남을 수 있었다.
나는 남은 4,000카르마를 어떻게 써야 하지 차지혜와 상의했다.
차지혜가 말했다.
“김현호 씨의 주요 공격 수단인 총기의 위력은 이미 스킬적인 부분에서 더 강화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죠?”
내 생각도 그렇다.
탄약보정 스킬을 마스터해서 강철도 뚫을 정도의 위력을 내게 되었고, 거기다가 정령술까지 사격에 응용한다.
어떤 시험자든 내 총에 무방비로 맞으면 골로 간다고 봐야 했다.
카르마를 스킬에 투자해 봐야 총기의 위력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정령술에 투자할까요?”
“현재 중급 2레벨이시니 딱 4,000카르마로 중급 4레벨까지 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다지 극적인 효과는 나지 않겠지요.”
“흐음, 그야 그렇죠.”
“게다가 생명의 불꽃으로 정령술을 키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카르마는 다른 곳에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어떤 스킬을 올려야 할까요? 새로운 스킬을 습득해야 할지…….”
“권총 두 정 외에 가지신 무기가 여전히 모신나강이시죠?”
“예.”
“그럼 소총을 다른 걸로 바꿔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모신나강을요?”
“예, 대물 저격소총을 쓰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물 저격소총이 뭐죠?”
“원거리에서 전차나 수송차량 등을 저격하는 데 쓰이는 소총입니다. 장갑도 뚫어버리는 총기인데 김현호 씨가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사람이 아니라 전차·수송차량을 상대하려고 만들어진 소총. 차지혜의 설명에 따르면 벽 뒤에 숨은 적까지 사살해 버리는 엄청난 화기라고 했다.
탄약보정 마스터에 실프와 카사로 위력을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는 내가 사용한다면……!
“상대가 공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가정하에서는 리창위도 한 방에 끝날 것 같습니다만.”
“진짜 그렇겠네요! 그럼 대물 저격소총을 알아봐야겠어요.”
나는 일성그룹의 이정식 비서실장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3비서실의 이정식 실장이 늘 그렇듯 사무적인 어조로 전화를 받았다.
“대물 저격소총을 구할 수 있을까요?”
-문제없습니다. 국방부의 협조도 얻을 수 있으니 한국군이 보유한 무기라면 며칠 안에 구할 수도 있습니다.
“좋네요.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기대되는군.
웬만한 대형 괴물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엄청난 무기가 곧 내 손에 들어온다.
물론 위력만큼이나 아이템화에 많은 카르마가 소모될 테지만 말이다.
‘4,000카르마 이내에서 아이템화할 수 있기를 바라야지.’
카르마를 어디다 써야 할지 대충 정해놓자, 나는 문득 차지혜의 앞으로의 거취 문제가 신경 쓰였다.
“지혜 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물론 시험을 클리어할 겁니다만.”
“아뇨, 아레나 말고 현실에서요.”
“아직 제 생존 사실을 들킬 수는 없습니다. 김중태 소장은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저를 어떻게든 사살하려 들 겁니다.”
“지혜 씨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가족이라든가 애인이라든가…….”
“가족도 애인도 없습니다.”
차지혜는 잘라 말했다.
“혹시 제가 함께 있는 게 불편합니까?”
“예?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그럼 앞으로도 신세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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