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48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48화
제5장 내전(內戰) (1)
똑! 똑!
“들어와.”
문을 열고 청년이 들어왔다. 그는 방 안에 있는 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기도가 갈무리되어 있고 절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그래.”
아버지라고 불린 자는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겉모습만 보면 청년과 비슷한 연령 대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은 세월의 무게를 나타내고 있었다. 패기와 위엄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젊은 청년이 가질 수 없는 기질이었다.
“소니아왕국으로 가라.”
“예.”
“무슨 이유인지는 알고 있겠지.”
“예.”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명령을 했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따르면 그만이다.
청년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였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년은 새로운 시대의 강자였다. 그 힘을 이제 보여줄 때가 왔다.
방을 나서는 청년의 등을 바라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라면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 * *
에이프런이 카이겔 백작가의 가주가 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카이겔 백작가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주 중심의 체계로 바뀌면서 모든 일의 최우선이 가주의 명령이 되었다.
영지 내의 일도 변화를 했다. 기존의 세금체계대로 유지를 하려고 했지만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점진적으로 세금을 올려야 했다.
영지민들의 불만과 귀족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당장은 불만을 들어줄 수 없기에 힘으로 눌렀다.
행정조직과 군사적인 측면도 보완과 보강을 했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한 대비였다.
물론 그 사실에 대해서는 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에이프런과 무진, 측근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달라지고 있는 카이겔 백작가의 위상은 감춘다고 해서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에이프런은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마르치니 후작의 병력이 수도 타오란 주변으로 집결되고 있다고요?”
“그래.”
“그런데 지금 태평하게 차를 마시는 거예요!”
“그래.”
“반란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평해요!”
에이프런은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무진의 찻잔을 들어 올리고 싶었다. 내전이 일어나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나 태평한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예상하고 있었잖아.”
“예상한 것과 일어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그런가.”
에이프런은 내전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왕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왕궁에 사실을 알려야겠어요.”
“국왕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하긴.”
그녀가 본 테오도르 국왕은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아마 지금쯤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를 할 수 있다 장담할 수는 없다. 테오도르 국왕과 마르치니 후작 모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마르치니 후작도 결코 허술한 인물이 아니다. 승리의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국왕이 소식을 전해 올 거다.”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을 치라는 뜻이겠죠.”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군.”
수도 타오란으로 들어가는 요충지인 발더스성을 공략할 때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을 교란하여 힘을 빼 놓으라는 지시일 것이다.
에이프런이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동안 내전이 발발했을 상황을 가상으로 테스트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몇 가지를 구상하여 실제 전장에 투입했을 때의 상황을 계산해 내었다.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전쟁에서 확신할 수는 없어도 확률이 높은 쪽은 택하는 것이 현명했다. 테오도르 국왕이라면 반드시 후방을 치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마르치니 후작도 그 사실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서로 치열한 전략대결이 벌써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늙은 너구리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숨겨진 역량의 차이는 모르겠지.”
전략을 알아도 상대의 역량을 모른다면 패하는 것이 전쟁이다. 1년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카이겔 백작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올리는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무진이 시작을 한 이상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카이겔 백작가의 주력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었다. 그렇기에 달라질 수 있었다.
‘하긴, 주인의 존재 자체가 늙은 너구리에게는 재앙이지.’
에이프런은 걱정은 되지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무진이 함께하는 한 카이겔 백작가가 패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전쟁이 끝나면 세상이 놀라서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을 교란해야겠네요.”
“아니.”
무진의 대답은 에이프런에게 의외였다.
“왜요?”
“생각을 해보면 알 텐데.”
카이겔 백작가가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을 교란하지 못하면 전쟁은 길어진다. 잘못하면 왕국이 점령당할 수도 있었다.
마르치니 후작이 소니아왕국을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카이겔 백작가가 지닌 독자적인 힘만으로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 뻔하다.
“국왕은 숨겨진 전력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
“사실이다.”
“정말 독하네요!”
“이기면 된다.”
치가 떨리는 작전이다.
무진은 전쟁을 감성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승자의 원칙에서 전쟁을 수행할 뿐이다. 같잖은 동정심에 흔들리는 자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무진의 뜻이다.
테오도르 국왕이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을 교란하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카이겔 백작가의 힘이 커지는 것을 테오도르 국왕은 간과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왕족과 귀족은 태생이 다르며,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테오도르 국왕은 소니아왕국의 실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귀족들의 힘을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소모되는 국력보다도 정권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이제 정보를 흘려.”
“알겠어요.”
전쟁은 곧 시작된다. 내부에서 활동하는 자들을 색출해 내야만 한다. 대부분의 윤곽이 잡혀 있으니 실행만 하면 낚싯줄에 걸린 먹이처럼 줄줄이 딸려 나올 것이다.
무진은 블러드용병대에 연락을 넣어 비선의 움직임을 따라 색출해 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 * *
무진의 예상대로 10일 후에 왕성에서 연락이 왔다. 마르치니 후작이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식이었다.
테오도르 국왕은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은 상황이었다. 왕성으로 오는 길목은 외부의 공격에 방어할 수 있는 성이 여러 겹으로 둘러쳐져 있다. 겹겹이 둘러싼 성을 점령해야 하기에 쉽사리 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테오도르 국왕은 마르치니 후작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서로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다. 숨겨 놓은 전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르치니 후작의 세력이 좀 더 강하겠지만 테오도르 국왕이 비장의 전력을 숨겨놓고 있다면 백중세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쟁의 최대 변수는 카이겔 백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카이겔 백작가의 움직임에 따라서 전쟁이 향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에이프런은 전쟁선포 즉시 귀족들을 모으고, 군사동원령을 내렸다. 영지의 체계를 완벽하게 전시체제로 바꾸었다. 행정조직과 군사체제를 정비해 놓은 결과 신속하게 체제를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귀족들과 영지민들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에이프런 백작이 무리한 정책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그동안 에이프런이 벌인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귀족들은 이제 에이프런의 결정에 토를 달지 못하게 되었다. 진정한 카이겔 백작가의 주인으로 인정을 한 것이다.
“영주님의 혜안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이 아니었다면 감히 생각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귀족들이 에이프런을 치켜세웠다.
에이프런은 귀족들의 사탕발림에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귀족들은 에이프런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말실수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이 되었다. 그따위 아부는 전쟁이 끝난 후에나 해라.”
에이프런의 서슬 퍼런 기세가 회의장 안을 싸늘하게 식혔다.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에이프런은 차분하게 테오도르 국왕이 전해온 작전을 귀족들에게 설명하면서 구상한 전략전술을 알려주었다.
“기사단만으로 마르치니 후작의 후방의 교란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너무 위험합니다!”
“대군이 움직이면 마르치니 후작이 알아챌 거다.”
에이프런의 작전은 기사단과 특수전투병만을 데리고 출전을 하는 것이다.
이번 비밀작전을 설명하면서 보완에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주의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있었던 회의 내용이 외부로 발설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
귀족들도 영지의 사활이 걸린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비밀을 엄수하기로 다짐했다.
회의가 끝난 후 곧바로 병력과 병기, 군사물자를 수송할 준비를 했다. 2일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움직여야 하기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날이 어두워지는 밤.
베르디안 남작은 은밀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마법통신을 사용해도 되지만 도처에 감청마법장치가 설치가 되어 있었다.
전쟁시에는 내부의 배신자를 막기 위해서 감청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모든 통신은 정해진 마법파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파장을 벗어나게 되면 들킬 수 있었다.
베르디안 남작은 수족 중에 한 명을 따로 비선으로 두어 연락을 전했다.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또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마르치니 후작께 보고해라.”
“남작님의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일 마르치니 후작님께서 남작님의 노고를 치하하실 겁니다.”
“알겠다.”
베르디안 남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배신을 선택했다. 카이겔 백작가에 소속되어서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마르치니 후작은 베르디안 남작에게 백작 위를 보장했다.
직위 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릴 귀족은 많지 않다. 결국 베르디안 남작은 마르치니 후작의 유혹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베르디안 남작은 배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 전쟁만 승리하면 나는 백작이다!”
베르디안 남작의 눈동자는 욕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감히 올라설 수 없을 것 같았던 고위귀족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베르디안 남작의 등 뒤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음부의 지옥에서 올라서 마왕의 음성 같았다.
“그건 네 희망사항이지.”
“허억!”
베르디안 남작은 놀라서 기겁했다. 등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곳은 사방이 막힌 밀실이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 계속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바로 지척에 있는 대도 몰랐다는 것에 베르디안 남작은 소름이 끼쳤다.
베르디안 남작은 떨리는 심정으로 돌아섰다.
“당…신은?”
베르디안 남작이 알고 있는 얼굴이다. 에이프런이 왕궁에 가 있는 동안 직무대행을 했던 인물이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밀실에 나타났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만약 지금 본 사실을 무진이 알고 있다면 베르디안 남작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내…가 다 설명해… 주겠소!”
“설명해 봐.”
무진은 팔짱을 끼고 베르디안 남작의 말을 들어주었다. 얼마든지 해보라는 뜻이다. 베르디안 남작은 말이 통하는 상대라 생각했다.
“비밀을 숨겨주면 당신의 자리도 마련해 주겠소!”
“자리라.”
“그렇소!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오!”
“흥미롭군.”
베르디안 남작은 무진이 제안을 물었다고 확신했다.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라면 당연히 가문의 부활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베르디안 남작은 비밀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무진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였을 뿐이다.
슬금슬금 무진에게 접근한 베르디안 남작은 소매 속에 숨겨놓은 암기를 뿌렸다.
“죽어랏!”
슈슈슈슈슈슈슝!
소매에 숨겨놓은 암기는 새끼손가락 아래에 설치된 장치를 누르면 발사되는 투명함 침이었다.
중원의 암기와 비슷하지만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암기의 추진력에 해당하는 부분에 증폭마법을 가해 위력을 배가시켰다.
더군다나 암기에는 치명적인 극독이 묻어 있었다. 베르디안 남작의 숨겨둔 마지막 비장의 수법이었다.
수백 개의 투명 침이 무진을 향해 날아왔다. 바로 코앞이라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파파파파파파팟!
독침이 단단한 벽면에 박혔다.
“아…니?”
“같잖은 수작이 통할 것 같은가.”
베르디안 남작의 반대편에 무진이 서 있었다.
무진은 애초부터 베르디안 남작의 등 뒤에 있지 않았다. 몰아일체의 경지를 초월한 무진은 기척을 죽이고, 투명화마법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환영을 통해 또 하나의 무진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베르디안 남작은 무진의 환영을 공격한 것이었다.
우우웅!
“커억!”
베르디안 남작의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중에 뜨더니 무진의 손아귀로 날아왔다. 무진의 오른손이 베르디안 남작의 목을 움켜쥐었다.
베르디안 남작은 쥐덫에 갇힌 쥐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시퍼렇게 질린 베르디안 남작은 비굴하게 빌었다.
“살…려!”
“우선은 고맙다고 해야겠지.”
“무…슨?”
“너로 인해 첩자를 색출할 수 있었다.”
“그…런!”
무진은 베르디안 남작이 수집한 정보가 흘러가는 동선을 역추적 해왔다. 그 결과 영지 내 있는 마르치니 후작의 첩자들을 전부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지금쯤 천득구가 알아서 영지 내에 숨어 있는 첩자들을 전부 색출해 내고 있을 것이다.
“대가로 편안히 죽여주지.”
“안…돼!”
우드드득!
손아귀에 힘을 주자 베르디안 남작의 목이 맥없이 으스러졌다. 무진은 베르디안 남작의 시신은 쓰레기 치우듯 던져버리고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