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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140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40화

제3장 이전투구(泥田鬪狗) (6)

 

씨크릿 룸은 차를 끊일 수 있는 장소가 내부에 있어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메카닉왕국이 버너라는 신제품을 개발해 내면서 차를 끊이거나 조리를 하는 데 상당한 편의를 불러왔다.

에이프런은 버너에 주전자를 올리고 불을 켰다. 5분 후 물이 끊자 찻잔에 차를 넣고 물을 부었다.

간절히 해명(?)을 한다는 무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에이프런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에 화가 풀릴 정도로 에이프런은 가벼운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나름 줏대가 있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다녔다. 아름답고 가슴 큰 여인이 자존심이 없으면 속 없어 보인다는 대륙의 속설을 그녀는 부정했다. 그녀는 대범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새벽부터 소리 질렀더니 목이 다 칼칼하네!”

카아아악!

퉤엣!

풍덩!

그녀의 가래침이 무진의 찻잔에 풍덩하는 소리를 내며 빠져 들어갔다. 에이프런은 ‘앗! 실수(?)’라는 말을 연발하며 차 스푼으로 고루 섞이도록 휘저어주었다. 정말로 실수를 한 얼굴인지 의심은 갔다. 희미하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봐서는 절대로 실수 같지는 않았다.

“내 로얄제리가 들어갔으니 맛이 아주 기가 막힐 거다!”

예전 황제가 마셨다는 불로장생의 묘약이 바로 로얄제리였다. 거기다가 에이프런이 무지막지하게 욕을 토로했으니 아마 무진은 불사신이 될 것이다.

에이프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범한 표정으로 차를 내왔다. 그리고 무진의 앞에 찻잔을 놓고, 자신의 탁자 앞에도 찻잔을 올려놓았다. 이제 무진이 차를 마시기만 하면 에이프런은 3일 동안 걱정하며 기다렸던 보답을 받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다 그렇듯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무진은 보란 듯이 에이프런이 실수를 만회하도록 해주었다.

“바꿔.”

“예?”

“못 알아들었나.”

“그게 무슨?”

“귀가 먹었나.”

“그게 아니라…….”

‘알아들었다! 이놈아!’

에이프런도 그렇게 눈치가 없지는 않다. 무진이 알고 그러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찻잔을 바꾸자는 소리였다. 에이프런은 잘 못 들었다는 반응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무진이 직접 찻잔을 바꾸었다.

“마셔.”

“예?”

“왜 그러지.”

“그…게!”

“차 마시다 제사 지내나.”

‘마신다! 이 독한 놈아!’

무진이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었다.

에이프런은 차 속에 영양덩어리(?)가 무지하게 많이 섞여 있어 마실 수 없다는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어찌 될지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에이프런은 차를 마시고 말았다. 괜한 수작은 무진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으웩!’

에이프런은 구토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무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크울프기사단과 있었던 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주었다. 피가 튀고, 뇌수가 터져 나오고, 뼈가 으그러지는 지옥의 아수라장이 에이프런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에이프런의 입맛(?)을 돋우는 말이 연발되고 있었다. 아마 맛있어서 죽으려고 할 것이다.

‘토 나온다! 우웁!’

에이프런은 토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죽을 정도로 황홀한 맛일지도 모른다.

‘꿀꺽!’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른 소화된 이물질을 다시 삼키는 우아한 짓(?)을 거듭해야 했다. 에이프런은 왜 자신이 무진의 행적을 알려고 했는지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듣고 있을수록 에이프런은 무진의 괴물 같은 능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진의 설명대로라면 기사단 전체를 혼자서 전멸시켜 버렸다는 뜻이 되지 않은가!

그것도 보통 기사단은 절대 아니다. 오러마스터와 소드아머를 착용한 기사단을 전멸시키는 무력이라니! 그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소름끼치는 무력이었다.

무진의 무력을 알게 될수록 에이프런은 점점 더 작아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큰 가슴이 새가슴이 되어갔다.

‘나도 오러마스터인데, 명함도 못 내밀겠네!’

무진이 작정하면 어찌 될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에이프런은 애써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것만도 못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조금 더 기다릴까.”

“그랬다가는 백작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쓰레기는 어차피 쓰레기지. 치워버리면 그만 아닌가.”

“다 죽으면 다시 채우기 힘들잖아요.”

“그렇겠군.”

“사무엘 단장을 부를까요?”

“맘대로 해.”

무진은 에이프런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어차피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는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적당히 끝을 내야 할 시간이 됐다.

방을 나서는 에이프런에게 무진이 말했다.

“결정을 할 때는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

“알았어요.”

정에 얽매여서 망설이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것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다.

* * *

 

세르비안과 페르만 자작의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무진의 예상대로 대결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백중세의 대결이 지속되면서 서로 망설임도 증가했다. 이대로 계속 전투를 벌이느냐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돌아서는 것이 나은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페르만 자작과 세르비안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전투를 지켜보았다. 이대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쌓여가고 있었다.

지지부진한 소강상태가 지속될 때쯤에 이변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검사가 튀어나와 청백색의 오러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사아아악!

“커어억!”

막아선 기사의 검이 잘리면서 가슴이 깊게 베어졌다. 살과 뼈가 동시에 갈라졌다. 삽시간에 5명의 목숨을 빼앗은 기사는 무서운 속도로 페르만 자작 진영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전신에 소드아머를 착용한 자는 오러마스터였다. 오러마스터는 전투에서 단연 돋보였다. 한순간에 전세를 뒤집어 버리는 가공할 무력을 뿜어내었다.

푸아아아앙!

폭발음과 동시에 페르만 자작의 기사들이 줄을 지어 저세상으로 향했다. 반항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오러마스터는 무자비했으며, 냉철했다. 검극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런 오러마스터의 등장에 세르비안 진영과 페르만 자작 진영이 술렁거렸다.

“뭐…야?”

“아…아군인가?”

세르비안은 이유가 어찌 되었건 자신을 도와주는 의문의 존재를 반겼다. 이 기세를 타서 페르만 자작을 밀어붙이면 되었다. 때마침 페가수스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물결이 거센 파도가 되어 페르만 자작 진영을 휩쓸었다. 삽시간에 전투는 평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페가수스기사단의 등장으로 인해 페르만 자작 진영은 사기가 급속히 저하되었다. 저항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세르비안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반면에 페르만 자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빌어먹을!”

페르만 자작은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마르치니 후작을 믿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나를 이용했을 뿐이었던가!’

카이겔 백작가를 분열시키는 것만으로 마르치니 후작은 만족했을 수도 있었다. 일부러 기사단을 보내준다는 약조를 하고, 반란을 부추긴 것으로밖에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마르치니 후작의 간계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페가수스기사단의 개개인의 실력은 굉장했다. 무진의 충고를 받아들인 사무엘 단장은 단 며칠 동안 페가수스기사단의 잠들어 있는 전투본능을 일깨우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푸른 날개를 휘날리며 전장을 지배했던 페가수스기사단의 재현을 보는 것 같았다.

“막…아!”

페르만 자작은 뼈아프지만 후퇴를 결정했다.

이대로 여기서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기다린 세월은 길었고, 그가 희생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허망한 죽음은 당할 수 없다.

페르만 자작의 후퇴명령에 귀족가문을 비롯한 기사들이 후퇴를 서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못했다. 전장의 분위기를 역전시켰던 오러마스터가 페르만 자작의 퇴로를 막아선 것이다. 소드아머를 착용한 오러마스터가 전장의 중심을 가로질러 페르만 자작을 물러서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어서 놈을 처리해!”

기사들은 오러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에 속절없이 갈라졌다. 오러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오러마스터뿐이다.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기사들은 오러마스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사아아악!

“크아아아악!”

오러마스터가 페르만 자작의 지척까지 접근해 왔다.

앞을 막아선 오러마스터를 향해 분노한 페르만 자작이 소리쳤다.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카이겔 백작가의 정통 후계자.”

투구 사이로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소드아머가 해체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오러마스터의 아름다운 얼굴이 공개되었다. 눈을 떼지 못할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사내의 심장을 터뜨려 버리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정체였다.

“에…이프런!”

“제 얼굴은 처음 보죠.”

에이프런의 등장에 카이겔 백작가의 모든 이들이 놀랐다.

사람들은 에이프런을 세르비안의 꼭두각시로만 여겼을 뿐이다. 세르비안이 카이겔 백작가를 지배하면 에이프런은 곧 내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그녀의 진실 된 정체는 오러마스터였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카이겔 백작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가 분명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감동과 전율을 동시에 느꼈다.

“페르만 자작,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허!

페르만 자작은 허탈함과 자괴감을 느꼈다. 어린 계집이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어떤가?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여 카이겔 백작가를 삼키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에이프런이 가지고 있었다. 그 차이는 너무 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현실을 맞이하고 말았다.

당당하게 정면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에이프런을 보자 카이겔 백작이 재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던 카이겔 백작 그대로였다.

페르만 자작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 하나로 끝내 주겠는가.”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잔인하군.”

“현실이죠.”

에이프런은 페르만 자작과 가담한 중심세력을 모두 숙청해야 했다. 그래야 반발할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다. 어중간하게 넘어가 버리면 후일 비수가 되어 에이프런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페르만 자작의 시선이 놀라고 있는 세르비안을 바라보았다. 야심을 가진 여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카이겔 백작가를 좌지우지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애를 쓰며 노력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그녀조차 에이프런의 진실 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프런은 페르만 자작과 세르비안의 세력다툼을 이용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냈다. 모든 것이 에이프런의 계획대로 되었다.

“마음대로 하게.”

결국 페르만 자작과 세르비안은 허망한 꿈을 꾼 것이다.

전투는 이제 끝났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에이프런의 카리스마가 전체를 지배했다. 에이프런은 페가수스기사단에게 명령했다.

“페르만 자작과 그를 도운 귀족들을 잡아들여라.”

“충!”

타미플루 남작, 브리핀 남작, 가니엘 남작, 윈체스트 남작은 반항하지 못했다. 그들이 반항하면 에이프런은 가족들까지 남김없이 숙청해 버릴 것이다.

어차피 끝난 전투였다. 이제는 에이프런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카이겔 백작가의 이전투구를 끝낸 에이프런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청백색의 오러블레이드가 넘어설 수 없는 위엄을 드러냈다.

“카이겔 백작가의 정통 후계자로서 명한다! 이제 더 이상의 분란은 용납하지 않겠다! 카이겔 백작가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와아아아아아!

전쟁을 멈춘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에이프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좌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에이프런이 걸어가자 좌우로 길이 만들어졌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눈에는 열망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예전의 카이겔 백작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에이프런은 그들의 기대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와 병사들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앞에 파리한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서 있는 세르비안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전투의 주역은 누가 뭐라도 에이프런이었다. 세르비안은 그저 에이프런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그녀에게는 명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말을 할수록 궁지에 몰리는 것은 세르비안이었다.

“수고했어요.”

에이프런은 간단하게 수 인사를 하고 스쳐지나갔다. 세르비안이 정신을 차렸을 때 에이프런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네…년이 발톱을 숨기고 있었구나! 빠드득!’

세르비안이 원하는 승리가 아니다. 그녀의 승리가 아니라 에이프런의 승리다. 이제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카이겔 백작가 내에서의 위상은 작아질 뿐이다. 이대로 에이프런에게 모든 것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라이더스를 위한 일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렸다. 그녀의 내면에 독화(毒花)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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