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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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6화
제3장 이전투구(泥田鬪狗) (2)
대응하려고 검을 뻗으려던 암습자의 어깨를 무진이 잡았다. 그러자 검의 궤도가 정지했다. 검을 뻗지 못한 암습자의 다리를 빗자루로 바닥을 쓸 듯이 후려 찼다.
타아앗!
암습자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짧은 순간에 무진의 권격이 암습자의 명치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퍼어억!
가슴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가 엿가락처럼 휘어지더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단 한 방으로 절명한 암습자는 그대로 다른 암습자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되었다.
무진은 빠르게 따라붙어 시선을 가린 암습자의 턱을 무릎으로 걷어차 버렸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부서지며 얼굴의 반쪽이 사라졌다.
남은 2명은 무진이 설마 이 정도의 실력자인 줄 몰랐는지 무척이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갈등하는 사이에 무진은 솟구쳐 올라 권격을 벼락처럼 뻗어내었다.
퍼퍽!
권격을 허용한 암습자는 안면이 함몰되어 죽었다. 무진의 권격은 일격필사(一擊必死)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 큰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적의 권로(拳路)를 그린 권격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5명 중 4명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시간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감정이라고는 일절 실리지 않는 빠르고 잔인한 수법에 홀로 살아남은 암습자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무진의 시선이 암습자를 향했다.
주춤!
암습자는 암담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발바닥이 지면에 달라붙었는지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모래지옥에 빠져 허우적댈수록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무진은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이 암습자의 공포를 더욱더 자극했다.
“페르만 자작인가.”
“그…렇소!”
“날 시험했다는 뜻이군.”
무진의 정확한 판단에 암습자는 소름이 돋았다.
냉철한데다 판단력조차 뛰어났다. 무력만 강하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 이런 자는 절대로 평범한 자가 아니다. 건드리면 반드시 제거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페르만 자작은 에이프런과 함께 온 무진을 파악하기 위해서 일부러 습격을 지시했다. 만약 그가 막아낸다면 적당한 조건을 내세워 포섭하려고 했다.
이미 무진에 대해서는 사전에 조사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확인해야 할 것은 무진의 무력이었다. 또한 이후의 일에 지장을 주거나 방해가 된다면 그 전에 제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암습자들은 무진의 무력을 테스트하려고 했던 이들이다. 적당히 실력만 확인하려고 했건만 무진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몰살시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발트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페르만 자작의 뜻을 무진에게 전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목적을 수행해야 했다.
“페르만 자작께서 당신을 원하고 있소.”
“대가는?”
“당신의 몰락한 가문을 부활시켜주겠다고 하셨소.”
“별로야.”
“원하는 것이 더 있는 것이오?”
“세르비안도 같은 조건을 말하더군.”
발트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같은 조건이라면 유리한 곳에 줄을 대겠다는 뜻을 읽었다.
현재의 상황은 세르비안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당장은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는 중립적의 의사까지 보였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만을 하겠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이기적이며, 냉철한 판단이다.
“지켜보겠다는 것이오!”
“그렇지.”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소!”
“그래도 지는 쪽에 거는 것보다는 낫겠지.”
발트너는 더 이상 설득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신은 그저 페르만 자작의 뜻을 전하는 전달자에 불과했다. 결정은 페르만 자작이 할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서 무진의 뜻을 전하는 것이 먼저다.
무진이 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발트너는 돌아섰다. 멀어지는 발트너를 보고 무진이 입을 열었다.
“나와 손을 잡고 싶으면 현 상황을 이겨내야 할 거야.”
“페르만 자작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시오!”
“그런가.”
‘이길 수 있다면 말이지.’
세르비안과 페르만 자작에게 무진은 의외의 변수로 다가올 수 있는 존재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물론 무진을 암습한 것은 섣부른 짓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페르만 자작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세르비안의 눈을 피해서 무진과 접촉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무진이 오늘처럼 외출하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도 실행을 한 이상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무진이 손을 과하게 쓴 것도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페르만 자작에게 힘을 선보이고,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무진은 카이겔 백작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대로 발길을 돌려 카이겔 백작가와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 * *
거사(巨事)를 진행시키기 전까지 귀족들을 단속하고, 기사와 병력을 재정비한 페르만 자작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잠을 취할 수가 있었다. 복장을 벗고 침상에 누워 잠을 취하려고 할 때 발트너 들어왔다.
“어떻게 됐지?”
“실패했습니다.”
“놈의 실력은?”
“최소한 최상급입니다.”
“크음!”
발트너의 보고에 페르만 자작은 신음성을 냈다.
페르만 자작이 보낸 수하들은 비밀리에 키운 녀석들이다. 실제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익스퍼트급의 기사와 맞먹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암습과 기습에 능해 정면대결이 아니라면 중급 이상의 기사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번 임무로 인해 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뜻하지 않은 피해였다. 또한 무진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망설임 없는 손속과 정확한 통찰력을 가진 녀석이다. 섣부른 수를 또다시 썼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놈이 내 의도를 알면서도 손을 과하게 썼군.”
“보통 놈이 아닙니다.”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뜻이겠지.”
“처리할까요?”
“됐다.”
거사 전에 전력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다. 많은 수의 인원을 동원하게 되면 세르비안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무진의 성향을 보니 건들지만 않으면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일단은 백작가를 수중에 넣은 다음에 생각해 보지.”
그렇다고 해서 무진의 행위를 봐줄 생각은 없다. 감히 몰락한 일개 귀족 주제에 자신에게 주제넘은 짓은 한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악연은 악연일 뿐 선연이 될 수 없지.’
한번 악연의 굴레로 맞이한 자는 절대 자신의 수족에 넣지 않는 페르만 자작이다. 언젠가는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해줄 것이다.
* * *
태양이 떠오르고, 아침이 밝아 왔다. 아침의 선선한 기운이 점차적으로 달구어지고 있었다. 창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에이프런의 눈가를 간지럽게 했다.
눈부신 기운에 눈을 뜬 에이프런은 곧바로 일어나서 무진의 방을 살폈다.
“안 들어왔잖아!”
어제 무진이 술 마시러 나가고 난 후 밤늦게까지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왜 자신이 무진을 기다리는지는 몰랐다. 다만 무진이 외박했다는 것이 화가 날 뿐이다. 무진보다 강했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만 빼놓고, 외박을 해! 어디 들어오기만 해봐라!”
바람난 남편이 외박을 하고 들어오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여편네와 같은 에이프런이었다. 에이프런의 손톱이 오늘따라 유난히 날카로웠다. 들어오면 바가지가 박살 날 때까지 긁어 줄 태세였다.
“잠깐, 이게 뭐야?”
무진이 늦게 들어오든 말든 그것이 자신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데 신경이 쓰이고, 보고 싶기까지 했다.
“설마 내가 무진을!”
이제까지 에이프런은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사내들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환상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사랑이 빵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다 진짜 프로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프로가 아마추어나 하는 사랑에 빠지다니 자존심에 상처가 생기는 일이었다.
“그…럴 리 없어! 이건 금제에 의해서 생겨나는 일종의 부작용일 거야!”
에이프런은 감정의 변화를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진은 자신을 죽이려고 위협했으며 마법까지 걸어서 이용하고 있었다. 괴롭히는 자를 좋아하다니 그건 새디스트들이나 하는 짓이다. 자신은 그런 변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바가지는 긁고 싶네!’
마음이 조절한다고 조절이 되면 사람이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본인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전혀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에이프런도 지금 당장은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지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를 것이다. 미래는 불규칙성의 연속이다. 규칙성을 찾아 규칙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뿐이다.
* * *
프로테스영지로 들어오기 전 넓게 펼쳐진 갈대숲이 있다. 사람 키만 한 갈대숲은 인적을 숨기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버클라이드 갈대숲에 무장을 한 인원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리하게 다져진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보통 수준을 넘어서는 예기와 기백이 느껴졌다. 용병들처럼 사나운 기세가 아니다. 차갑게 정련된 기세는 정예기사와 같았다.
“다 모였나.”
“그렇습니다.”
낮고 굵은 목소리에 장대한 체격을 지닌 중년인이 수를 확인하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프로테스영지로 이동하기 전까지 기사실전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분대 단위로 이동을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모였다.
이곳에 모인 이유는 인원을 파악하고, 계획대로 되어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만일 계획했던 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경우 곧바로 복귀해야 했다. 가장 우선적인 목적이 안전한 복귀다. 일이 잘못되어 수하들을 잃는 것은 손실이었다.
“이제부터 카이겔 백작가의 영역이다. 다시 분대 단위로 나누어서 이동을 해야 하니 놈들의 시선에 들키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하도록.”
“충!”
300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당연히 주위의 이목을 끈다. 도착하기도 전에 알아차리면 곤란했다. 이제부터 다시 소수로 나누어서 목적지까지 움직여야 한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신속하게 이동해야만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마르치니 후작이 보유하고 있는 3개의 기사단 중에 하나인 다크울프기사단이다. 페르만 자작의 급박한 요청에 따라서 마르치니 후작이 다크울프기사단을 원조해 준 것이었다.
“이동한다.”
“충!”
다크울프기사단의 단장 제라이온의 명령에 기사단은 분대로 조를 나누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멈칫!
목적지로 진군하려는 찰나 갑작스럽게 대기의 기운이 변화를 일으켰다. 가장 먼저 무형의 기운을 느낀 제라이온이 이동하려는 기사들을 멈춰 세웠다.
“멈춰!”
불길한 기운이 갈대숲을 장악하고 있었다. 무형의 기운은 기사단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전투태세를 갖춰라.”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감각을 자극했다. 이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라면 평범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다. 평상복이었던 기사들은 제라이온의 명령을 듣는 즉시 소드아머를 착용하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다크울프기사단이 전투태세를 완비했을 때 갈대숲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숲을 헤치고 나온 존재는 청년이었다. 긴장했던 다크울프기사단은 청년의 등장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상당한 실력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이곳을 포위한 줄 알았던 것이다.
제라이온은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되었다. 고작 1명에게 불길함을 느끼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방심하게 만든 후 수작을 부릴 수도 있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체를 밝혀라!”
“사신.”
“이런 미친!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마르치니 후작의 졸개들 아닌가.”
제라이온을 비롯한 기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청년이 다크울프기사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출정을 알고 있는 자는 마르치니 후작과 페르만 자작뿐이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알았지?”
“그걸 알려줄 거라 생각했나.”
제라이온은 말싸움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면 말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제라이온이 신호를 보내자 다크울프기사단의 기사 3명이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청년을 제압하기 위해서 곧장 주변을 에워쌌다.
차자작.
일시에 진형을 갖추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 3명이서 이 정도의 압박감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살을 엘 듯한 차가운 기운이 청년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그저 입가에 작은 호선이 그려질 뿐이다.
“팔다리 정도는 부러뜨려도 된다.”
“충!”
제라이온은 청년을 제압하고 배후를 밝힐 생각이었다.
정보는 한 사람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모여 배후를 형성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은밀하게 숨겨진 정보를 알아내려면 전문적인 정보수집능력이 필요하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놈들이라면 제압한 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나는 목을 부러뜨려주지.”
무진은 놈들에게 알고 싶은 게 없다. 놈들의 정체와 목적, 앞으로의 행보까지도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 알아낼 것은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