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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135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5화

제3장 이전투구(泥田鬪狗) (1)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손 안에 움켜쥔 모래처럼 권력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르만 자작의 세력은 약해졌고, 이 이상 세력이 빠져나가면 그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된다.

대의명분에서 세르비안에게 뒤지고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한 가지뿐이다.

페르만 자작은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들을 은밀한 장소로 불러들였다.

페르만 자작을 중심으로 타미플루 남작, 브리핀 남작, 가니엘 남작, 윈체스트 남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이겔 백작가를 지탱하는 12개의 귀족가문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원래는 8곳이 페르만 자작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는데, 2곳이 빠져나가고 2곳이 중립을 지키는 바람에 세르비안과 팽팽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 있는 자들이야말로 페르만 자작의 가장 큰 힘이다.

이들은 페르만 자작을 배반할 수 없었다. 세르비안과는 가장 적대시했고, 그간 페르만 자작의 뜻에 따라 실행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지금 그들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3일 후에 카이겔 백작가는 사라지고 나의 이름이 올라서게 될 거다.”

“결정을 내린 것입니까!”

“그렇다. 여기서 물러서 봤자 우리는 가문의 배반자가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우리가 먼저 손을 쓰는 게 낫겠지.”

세르비안은 분란의 싹을 가만히 내버려둘 여인이 아니다. 아마 카이겔 백작가를 지배하고 난 후부터는 본격적인 숙청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페가수스기사단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카이겔 백작가를 지배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이 페가수스기사단이다. 가문 내에 보유하고 있는 기사들의 수가 제법 되기는 해도 페가수스기사단과의 실력차이가 너무 컸다.

페가수스기사단은 정통 후계자 외에는 명령을 받지 않지만 반란이라면 다르다. 이유를 불문하고 반란자를 제압하고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다.”

페르만 자작의 설명을 들은 그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동조를 했다. 세르비안과 에이프런이 백작가의 주인이 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 지니고 있는 것을 모두 내놓을 바에는 모험을 하는 것이 나았다.

* * *

 

에이프런이 정통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백작가를 관리하는 이는 세르비안이었다. 그녀는 에이프런을 내세워 세력을 다시 구축하고, 페르만 자작의 도발을 견제했다.

세르비안은 페르만 자작의 주변에 감시자를 두었다. 에이프런이 백작가로 돌아오면서부터 페르만 자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했다.

“페르만 자작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은밀하게 회동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어디서?”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같은 시각에 귀족들이 집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감시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였단 말이지.”

그만큼 페르만 자작이 다급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생각보다 일이 급박하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 페르만 자작이 노릴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살쾡이 같은 놈이 이대로 물러설 리는 없겠지.’

페르만 자작은 대의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물러설 위인이 아니다. 아마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에이프런은 어떻게 하고 있지?”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페르만 자작의 동향에도 관심 없어 하는 것 같습니다.”

“검술만 익혀서 그런지 정치를 아직 모르네.”

“백작부인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계집입니다.”

“그렇겠지.”

만약 세르비안이 에이프런의 입장이었다면 유일하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페가수스기사단을 포섭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했을 것이다.

“아마 후계자가 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놔둬, 꿈이라도 꾸게 해줘야지.”

세상일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가만히 있다가는 가지고 있는 전부를 빼앗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는 세르비안은 에이프런이 아직 성장하지 못한 계집이라고 단정했다.

“무진이라는 자는 어떻게 됐지?”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지만 손을 잡을 의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한 쪽에 손을 대겠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됐군.”

현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쪽은 세르비안이다. 세르비안은 12개의 귀족가문 중 중립에 해당하는 2곳을 제외하고 6곳을 포섭했다. 세력의 차이가 벌어진 만큼 기습만 당하지 않으면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에이프런이 페가수스기사단을 휘하로 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르비안의 입장에서 내부에 칼을 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소지가 있었다.

페르만 자작을 정리하고, 라이더스를 후계자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서는 페가수스기사단과 에이프런의 접촉을 막아야만 했다.

“포섭한 귀족가문에 대비를 하라고 연락을 보내.”

“알겠습니다.”

세르비안은 페르만 자작이 움직이기 전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는 베르디안 남작과 레오폴드 남작을 포섭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 * *

 

세르비안과 페르만 자작이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반면에 무진과 에이프런은 씨크릿 룸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진은 조용히 상념에 잠겨 있었고, 에이프런은 심상수련을 통해 오러마스터에 오른 실력을 점검했다.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하루 종일 방에 있으려니 무료해 보이기까지 하다.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무진이 방을 나서려고 하자 에이프런이 유령같이 눈치를 챘다.

“어디 가요?”

“술 마시러.”

“저도 같이 가요!”

“너는 수련이나 해.”

“만날 갇혀 지내는 게 얼마나 답답한 줄 알아요?”

“내 알 바 아니지.”

‘저…저 말을 해도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하네!’

그 말을 남기고 무진은 나가 버렸다. 명색이 여자가 사정을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거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에이프런은 무진이 나가기가 무섭게 있는 욕, 없는 욕,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을 퍼부었다.

“이 XXX같은 놈! 세상에서 제일XXX놈! 나가서 뒈XX 버려라!”

입에 걸레를 물고 욕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나갔던 무진이 다시 들어왔다.

깜짝 놀란 에이프런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척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왜 다시 들어왔어요?”

“놓고 온 게 있어서.”

‘휴! 들은 줄 알았네!’

에이프런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만약 무진이 들었다면 아마 있는 지옥수련, 없는 지옥수련, 세상에서 제일 심한 지옥수련을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무진은 방 안에서 놓고 온 물건을 찾고서 다시 방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면서 무진은 에이프런에게 한마디 던졌다.

“좋은가.”

“예?”

앞뒤 말을 잘라 놓은 다음 말을 한 무진은 그대로 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에이프런은 조심스럽게 머리를 굴렀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았다.

“말을 할 때 표정이 더 차가웠는데… 그럼 들…었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무진의 기감이라면 방문을 나섰다고 해도 거리의 제한 없이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에이프런은 후환이 두려웠다. 이대로 방에서 도주해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죽이…지는 않겠지!’

에이프런은 설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설마가 사람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진은 카이겔 백작가에서 나와 인근 도시로 향했다. 백작가로 이어지는 큰 대로변 옆으로 정리정돈이 잘된 도시가 있었다. 도시는 대로변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오는 작은 도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설계되어 운송이 편하고, 보기에도 깨끗했다.

초대 카이겔 백작은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 도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중심에 카이겔 백작가를 지었다. 이후 카이겔 백작가를 중심으로 집이 순차적으로 지어지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카이겔 백작가야말로 프로테스영지의 핵이었다. 모든 물류가 카이겔 백작가를 통해야만 소니아왕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무진은 대로변을 지나 도시의 인근에 있는 술집 중에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정오가 갓 넘어가는 시간이라 술집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무진은 술집 골목에 다다라 〈매혹이 숨 쉬는 집〉라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하며 달콤한 주향(酒香)이 풍겼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가게의 내부는 제법 화려했다. 어둠 속에 밝게 빛나는 울긋불긋한 불빛이 사람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욕망을 끌어내려는 것 같았다.

무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칸으로 막혀 있는 구석으로 향했다. 테이블 의자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여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여 종업원은 어깨가 훤히 드러난 상의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풍만한 가슴과 매끈한 다리가 사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뭘 드릴까요?”

“취하고 싶은데.”

“그럼 마린로우를 하시는 게 어떤가요?”

“그럴까.”

“안주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간단하게 가져와.”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린로우는 섬 마을에서 유래된 술로 독특한 향과 진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대륙의 5대 독주에 속하는 술이며 일단 한 병만 마셔도 웬만한 사람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다.

여 종업원이 간단한 안주와 마린로우를 가지고 왔다. 여인은 좀 전의 여인과는 다르게 눈매가 약간 치켜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여인은 무진의 앞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이곳은 손님 개개인의 술 상대를 해주도록 되어 있는 술집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술집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선 안주 먼저 드세요. 술이 상당히 독하거든요.”

“그러지.”

안주를 먹고, 여인이 따라준 술잔을 비웠다. 목 끝을 타고 넘어가는 술맛이 제법 일품이다. 독한 것 같으면서도 진한 향이 혀끝을 자극했다. 중원의 술과는 다른 맛으로 강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을 풍긴다.

‘상황은?’

‘페르만 자작이 3일 후에 반란을 일으킬 거예요.’

‘어떻게 알았지?’

‘마르치니 후작의 기사단이 3일 후에 이곳으로 올 예정이에요. 그들이 올 때를 맞추어서 일을 획책하고 있을 거예요.’

무진과 여인은 전음으로 답하고 있었다. 여인은 블러드용병대에서 천득구를 보좌하는 5명의 용병 중에 1명으로, 다크포트의 수장이다. 이름 대신 피어로즈(날카로운 장미)라고 불린다.

“술맛이 좋군.”

“마린로우는 저희 집에서도 가장 향이 좋은 술이에요. 일단 한번 입맛을 들이면 단골이 되어 버리죠.”

“후후. 그런가.”

무진은 짧게 말하고, 피어로즈는 장황하게 가게의 자랑을 하면서 무진을 단골로 만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었다. 전형적인 손님과 가게 주인의 대화였다.

‘기사단의 수는?’

‘총 300명이며 그 중 오러마스터가 5명이나 포함되어 있어요.’

‘소드아머도 가지고 있겠지.’

‘문제가 된다면 저희가 처리할까요?’

‘됐다.’

‘알겠어요.’

블러드용병대가 움직이면 마르치니 후작이 의심을 할 수 있다. 일을 진행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블러드용병대는 대륙용병들의 힘을 집결할 때 사용해야 하는 패였다. 당장은 지금처럼 정보를 가져다주는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다.

무진은 대낮부터 시작한 술을 늦은 저녁시간까지 이어갔다. 그동안 마린로우는 탁자 위를 가득 채워갔다. 술잔을 따르던 피어로즈조차 기가 질린 듯했다.

‘말이 안 나온다!’

오러를 운용하여 술기운을 배출하지도 않고 마린로우를 감당한다는 것은 그녀조차가 불가능했다. 그녀가 놀라든 말든 무진은 취하지 않았다. 몸 자체적으로 술기운을 흡수하여 중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무진은 묵묵히 술잔을 비우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의 어둠이 조금씩 대지를 덮는 시각이 되자 무진은 일어섰다.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하는 술집 골목길을 지나 인적이 드문 장소로 걸어갔다. 마치 시끄러운 소란에서 벗어나 조용히 산책을 즐기고 싶어 하는 과객처럼 보였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산한 장소에 들어서자 무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어둠밖에는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무진은 작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오지.”

‘들켰다!’

검은 그림자가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5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손에 잡혀 있는 날카롭고 예리한 검이 스산한 빛을 발했다. 그들은 일언반구도 없이 일제히 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진은 찌르고 들어오는 검을 보폭을 조절하여 피해내고, 암습자들의 검로 안으로 접근했다. 무진의 빠른 움직임에 암습자들도 재빠르게 진형을 다시 갖추었다. 기습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훈련도 제대로 돼 있는 편이었다.

2명과 3명으로 조를 나누어 무진의 주변을 에워쌌다. 공수의 조화가 제법 잘 정련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진의 신형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반 박자 더 빨랐다.

보폭을 좀더 조율하자 공간과 공간의 틈이 좁아졌다. 암습자들은 순간적으로 더 빨라진 무진의 신형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무진은 암습자들을 하나씩 정해 파고들어 갔다. 그러자 당황한 암습자가 무의식적으로 검을 뻗었다.

슈우우웅!

어둠을 뚫어버리는 검이 허공을 찔렀다.

무진이 암습자의 우수검(右手劍) 좌측 안쪽으로 이동하자 얼굴과 가슴이 무방비가 되었다. 전광석화처럼 접근한 무진이 빠른 돌진력을 팔꿈치에 실어 암습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어억! 뿌가가각!

수박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단 한 방에 암습자의 얼굴이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핏물이 ‘팟!’하고 튈 때 무진의 신형은 다음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암습자들은 미처 분개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무진의 돌진력이 처음보다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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