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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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3화
제2장 암투(暗鬪) (4)
타아아앙!
밤의 정적을 깨우는 금속음이 퍼져 나갔다.
한 번의 울림과 동시에 에이프런의 폭풍 같은 검격이 쏟아져 나왔다. 일수에 십여 개의 검영(劍影)이 사무엘의 전신요혈에 해당하는 부분을 찔러 들어왔다. 보통의 수준은 넘어서는 굉장한 수준의 쾌검이 아닐 수 없었다.
사무엘의 경험에도 이 정도의 쾌검을 지닌 존재는 많지 않았다.
‘허어!’
사무엘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설마 스무 살의 나이에 이만한 경지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사무엘은 경시하지 않고 대결에 집중했다. 눈앞을 현혹하는 에이프런의 검속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영 하나하나에 실린 힘을 파악한 것이다. 방심하는 순간에 검극이 찌르고 들어와 사무엘의 신경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대검을 들고 있는 사무엘은 적절하게 전신요혈을 보호하면서 힘을 실을 기회를 엿보았다. 시기적절한 보법과 대검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검술을 펼쳤다.
사무엘의 독문검법은 자이언트소드로써 검의 힘과 압력에 중점을 두었다. 강력한 힘은 현란함을 제압하는 최강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타타타탕!
사무엘의 검은 무겁다. 환검에 휘둘리지 않고 쾌검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한 후 단숨에 검을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자이언트소드의 프레스임팩트였다.
좌우의 대기를 빨아들인 대검이 에이프런의 정면을 일도양단했다. 일순간 대기가 숨을 죽이다가 좌우로 벌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크음!’
에이프런은 정면을 조여 오는 굉장한 압력에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빠져나갈 수 있는 방위를 차단하는 사무엘의 노련함과 오러마스터로서의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에이프런은 무진의 지옥수련을 견뎌내었다. 이 정도로 평정심을 잃지는 않았다. 무진의 수련에 비하면 사무엘은 난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무엘의 검이 에이프런의 검과 부딪쳤다.
타아아아앙!
휘리리리릭!
일도양단을 예상했던 사무엘의 표정이 굳었다. 검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이 예상보다 적었다. 검을 수련한 자는 자신만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검끝에서 타고 오는 미세한 흔들림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충격을 흡수했단 말인가!’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소드디펜스다.
소드디펜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검의 정확한 타격점을 파악해야만 가능하다. 또한 검로를 꿰뚫어 보는 안법과 검력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실력 있고 노련한 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에이프런은 사무엘의 프레스임팩트를 정면으로 받지 않고 탄력을 이용해서 물러서며 막아내었다. 물론 완전하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대놓고 물러서는 것을 보이면 백전노장 사무엘이 눈치챌 수 있었다.
‘호오!’
사무엘은 에이프런의 작전을 간파했다. 에이프런이 사무엘을 끌어들인 것이다.
대검은 파괴력이 강한 만큼 회수동작이 큰 것이 불가피하다. 에이프런은 그 점을 노려 사무엘의 절초를 윌로우스텝(버드나무보법)을 사용하여 흘려보냈다.
사무엘의 대검을 타고 에이프런은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에이프런은 엘리언소드의 가장 빠른 초식인 썬더스톰(뇌전풍)을 뿌렸다. 섬광을 방불케 하는 폭풍 같은 검격이었다.
파아아아앙!
파공성과 함께 에이프런이 뒤로 밀려나갔다. 그녀는 상당히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심의 일격이 무용지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역시 쉽지 않네요!”
“아가씨도 만만치 않소이다!”
대검을 사용한 근접전은 경험이 필수적이다. 에이프런의 날카로운 검력이 파고들어 올 때 사무엘은 대검을 수직에서 수평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검날을 검면으로 바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오러를 퍼뜨려 검면의 강도를 증가시켰다. 순간적인 대처능력이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다.
절초를 막아낸 사무엘은 에이프런의 검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도 쉽사리 펼칠 수 없는 반격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더군다나 가장 무서운 점은 회심의 일격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평범한 자질을 넘어섰다.
‘지닌 바 재능이 무서울 정도다!’
사무엘조차 저 나이 대에서는 감히 도달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는 에이프런을 얕보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싸워야 했다.
에이프런도 나름 놀라고 있었다. 검력의 출수와 회수가 몰라보게 자연스러웠고, 흔들림이 없었다. 무진의 수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래도 싫어!’
강해지고는 싶지만 무진의 지옥수련은 두 번 다시 겪기 싫었다.
또다시 사무엘과 에이프런이 전력을 다해 부딪쳤다.
파파파팡!
타타타탕!
오러의 파편이 뿌려질 때마다 땅거죽이 파이고, 바위가 속절없이 부서져 나갔다. 한쪽은 힘있게 전진하고, 다른 한쪽은 현란하게 회피하면서 역습을 가해왔다. 누구도 쉽사리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에이프런의 기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위기의 순간 발휘하는 재능은 눈이 부셨다.
“이제 승부를 봅시다!”
“그러죠!”
사무엘의 검에서 유형의 기운이 형성되어 또 다른 검을 만들어 내었다. 강렬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는 푸른색의 검이었다. 오러마스터의 전유물이자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다는 오러블레이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무엘은 오러블레이드까지 선보이게 만든 에이프런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페가수스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질 수는 없다. 마지막 일합으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때 사무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우우우웅!
넘실거리는 기운이 완연한 형태의 검으로 형성이 되었다. 에이프런의 검에서 오러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사무엘보다 오러의 질적인 수준은 떨어졌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 못해 기절할 지경이었다.
저 나이 대에 오러마스터가 된 존재는 대륙을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대륙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드래곤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들이 되었다.
“정말 놀라서 기절하겠습니다!”
“뭘요!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사무엘의 말투가 변했다. 에이프런을 완전하게 인정한 것이다. 아니 인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에이프런이 만약 순리대로 성장한다면 카이겔 백작가, 아니 소니아왕국 전체가 변화할 것이다.
‘흠, 겨우 마스터에 도달하기는 했는데.’
무진의 지옥수련이 끝나고 쉬는 동안 에이프런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조급해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봤을 뿐인데 그 순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던 것들이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깼을 때 그녀는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익스퍼트와 마스터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단순히 증가한 오러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몸의 구조와 흐름 자체가 바뀌어, 과거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너무 기뻐서 벌거벗은 상태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방 안에 있었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누군가 지켜보는 것을 깨달았다.
무진이었다. 한쪽에서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진이 한마디했다.
-별짓을 다하는군.
그 말을 남기고 무진은 방을 나갔다. 에이프런은 한동안 냉동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경험해서 마인드가 정지된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었다.
‘지금은 대결에 집중할 때다!’
사무엘과 에이프런은 신중하게 움직였다.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상황이라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순간의 실수가 서로의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쿠우우우웅!
푸아아아앙!
오러블레이드의 폭발적인 힘이 터져 나갔다. 강력한 기파가 구름에 휩싸인 짙은 어둠을 흔들어 놓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청백색의 오러블레이드는 그림과 같았다.
수십 초를 겨룬 사무엘과 에이프런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검을 거두었다. 더 이상 해봤자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사무엘은 진심으로 에이프런을 인정했고, 에이프런도 사무엘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카이겔 백작의 검으로서는 소공을 인정합니다! 페가수스기사단은 소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사무엘은 에이프런이 카이겔 백작가의 혼란을 해결하고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두말하지 않고 에이프런이 카이겔 백작가의 후계자임을 인정해 주었다. 부족한 부분은 페가수스기사단의 힘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 다시 예전의 카이겔 백작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에이프런은 사무엘에게 당부했다.
“오늘 일은 내가 말할 때까지 비밀로 했으면 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무엘도 에이프런의 말뜻을 이해했다.
페가수스기사단은 가주와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다. 에이프런이 페가수스기사단을 포섭했다는 것을 페르만 자작과 세르비안이 알게 된다면 그 둘은 위협을 느끼고 합작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드러내기보다는 페르만 자작과 세르비안의 세력싸움을 지켜보는 것이 현명했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서로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살을 엘 듯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 맘대로.”
사무엘과 에이프런은 동시에 경직됐다.
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지척까지 다가올 동안 에이프런과 사무엘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바로 무진이었다.
“여기는 왜 왔어요?”
“물러 터졌어.”
“무슨 소리예요?”
“인정을 받으려면 생사를 겨뤄야지.”
무진은 사무엘과 에이프런의 비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부딪쳐야 서로를 알 수 있는 법이다. 힘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뜻이 된다.
무진이 원하는 것은 명백한 주종관계다. 어수룩하게 이어진 관계 따위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 따위가 잘못되었다. 주종관계에서 주인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통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진의 건방진 말투에 사무엘이 나섰다.
“무엄하다! 네놈이 소공과 어떤 관계인지 몰라도 이제 소공은 카이겔 백작가를 이끌어 가실 분이다! 예의를 갖춰라!”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무슨 말이냐?”
“일말의 의구심도 없냐는 뜻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잖나?”
“억지 부리지 마라!”
“억지가 아니라 진실이지.”
“감히 기사의 신의를 우롱하지 마라!”
사무엘은 정말로 화가 났다. 그는 한 번도 신의에서 어긋난 적이 없는 전형적인 기사였다. 기사에게 신의는 죽음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 기사의 신의를 인정하지 않는 무진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못 믿겠는걸.”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네까짓 게 날 죽일 수 있다는 건가.”
에이프런은 무진과 사무엘의 사이에 껴서 애매한 처지가 되었다. 상황을 보니 무진이 일부러 도발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섣불리 편을 들었다가는 횡액을 면치 못할 수도 있었다.
‘끼어들어 말어! 왜 다 된 빵에 재를 뿌리는 거지!’
이해하기 힘들고 괜히 머리 쓰기도 귀찮아졌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은 간다. 시선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사무엘의 불타오르는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소공! 이자가 아무리 소공과 친밀한 사이라고 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결판을 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게!”
에이프런은 대답하기 난감했다. 상황이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강하기는 하지만 무진은 괴물이다. 에이프런의 입장에서는 사무엘이 죽고 싶다고 사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허락할 정도로 에이프런이 사악한 편은 아니다. 적당히 물러서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허락해라.’
무진의 전음이 에이프런에게 전달되었다. 에이프런이 공증인이 되어서 대결을 허락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왜 사무엘과 대결하려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