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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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9화
309화
“동천으로 가던 중에 풍마문 사람을 만났소. 아마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몰랐을 거요.”
밀소림 제자들 입장에서는 천행이었다.
혁무천 일행이 풍마문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풍마문 정보원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싸움이 벌어진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에서야, 마가 폭주한 저들은 마보다도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장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소.”
운정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일단 부상자가 대충 치료되면 인근 마을로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소.”
“알겠소이다.”
“우린 동천으로 갈 거요. 어떻게 하시겠소?”
“부상자들을 추스른 다음에 움직이겠소.”
***
두두두두두두.
말 수백 마리가 황토고원을 내달렸다.
수천 무사가 그 뒤를 따르며 질서정연하게 달렸다.
야율대원이 직접 나선 마황궁 삼천 무사대가 전진하는 광경은 장엄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기마대 중앙의 거대한 백마 위에 탄 야율대원은 몸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황토바람조차 비켜가게 만들었다.
“놈들의 목을 쳐서 대창에 매달아라! 몸뚱이는 독수리들의 먹이로 내던져서 본 궁에 대항한 죄를 물어라!”
그의 목소리가 황사바람을 뚫고 멀리까지 퍼졌다.
와아아아아!
마황궁 무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궁주가 직접 나선 만큼 사기는 최고조로 올라가 있었다.
“놈들이 온다!”
동천 북쪽 오십여 리 떨어진 야산에서 대기 중이던 대정맹 무사들은 멀리서 들리는 함성을 듣고 바짝 긴장했다.
양충화는 장창을 들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오절 중 하나로 불리면서도 강호 활동이 거의 없었던 그였다.
마도에 눌려 지내야 하는 세상이 싫어서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다.
그러다 마침내 정파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자 즉시 창을 꺼내들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제 달려오는 마황궁 놈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 직전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 속에서 의협의 피가 들끓었다.
쿵!
창으로 바닥을 내리친 그가 외쳤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지원대가 올 때까지 놈들을 막아라! 이 양충화가 제일 먼저 몸을 내던질 것이다!”
전면을 노려보던 대정맹 무사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결기에 찬 눈빛들이 적에 대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때 저 멀리, 먼지구름과 함께 마황궁 무사들이 나타났다.
***
마황궁이 대정맹과 대격돌을 시작할 무렵, 중원에서도 혈풍이 불었다.
악사광이 이끄는 귀천교 일천오백 무사가 사슬처럼 이어진 정은맹의 지부 중 하나인 방성지부를 공격한 것이다.
정은맹에서도 귀천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즉시 일천 명의 지원대를 파견했다.
지원대는 귀천교의 공격이 막 시작될 때쯤 방성지부에 도착했다.
구름이 짙게 낀 오후.
양측 삼천오백 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그때부터 피가 튀고 살기가 충천했다.
치열한 싸움이 한 시진 동안 이어지면서 양측에서 일천 명 넘는 무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시뻘겋게 물든 대지를 시신이 뒤덮었다.
사공척이 철혈마련의 일천무사와 함께 나타난 것은 그때쯤이었다.
철혈마련 무사들은 곧장 측면을 치고 들어갔다.
생각지 못한 그들의 등장에 정은맹 측 진영이 혼란에 빠졌다.
결국 정은맹은 더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귀천교와 철혈마련 무사들은 후퇴하는 정은맹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삼십 리쯤 떨어진 곳까지 후퇴했을 때는 정은맹의 이천 무사가 일천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귀천교와 철혈마련 역시 칠팔백 명의 사상자가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정은맹 무사들을 추살했다.
그 와중에 정은맹 무사들이 흐트러지면서 후퇴하자 귀천교와 철혈마련 역시 분산된 상태로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먼 곳에서 그들의 치열한 싸움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재미있군.”
허운은 뒷짐을 진 채 서서 조소를 지었다.
쫓고 쫓기며 싸우는 자들이 개미떼처럼 작게 보였다.
그의 옆에는 차가운 표정의 장한이 서 있었고, 뒤에는 이백 명의 정혈단원들이 서 있었다.
“언제 공격할 건가?”
허운의 옆에 서 있던 장한이 물었다.
강인한 인상에 큰 키, 등에 칼을 맨 장한은 허운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기세를 품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도망치는 자들에게 피할 곳은 이곳밖에 없으니까.”
허운이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개미떼처럼 움직이며 싸우는 자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측의 숫자는 칠팔백 명. 세 갈래로 갈라진 무리 중 하나였다. 도주하던 정은맹 무사들은 산봉우리 사이로 난 계곡이 보이자 속도를 더 높이고 있었다.
“모두 준비해라. 저들을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을 하얀 복면으로 가린 정혈단 이백 무사가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정은맹과 귀천교, 철혈마련 무사들이 쫓고 쫓기며 계곡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마황궁은 척박한 땅에서 대세력을 일군 자들답게 거칠고 강했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오백 기의 기마대가 먼저 활을 쏘았다.
그들이 쏘는 활은 일반 활과 질적으로 달랐다.
마상에서 엉덩이를 들고 일어선 채 내공을 담아서 쏘아대는 화살은 일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며 대정맹 무사들을 위협했다.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처음 쏘았고, 이십 장 거리가 될 때쯤에는 다섯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들이 쏘는 화살은 더욱 위협적이었다.
대정맹 무사들은 그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화살을 막기 위해서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이미 마황궁의 화살 공격에 대정맹 무사 백여 명이 부상을 입거나 죽은 상태였다.
하지만 기마대 뒤쪽에서 이천오백 무사가 달려오고 있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여유가 없었다.
“쳐라!!!”
수천 무사로 인한 소음을 뚫고 외마디 명령이 천공을 울렸다.
“정파의 위선자들에게 마황궁의 위엄을 보여줘라!”
무기를 뽑아든 마황궁 기마대 무사들은 마상을 박차며 대정맹 무사들 진영으로 몸을 날렸다.
마상에서의 공격은 일반 무사들에게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무림의 고수들에게는 말을 탄 것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대정맹 무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마주쳐갔다.
양충화가 자신의 말대로 창을 들고서 선두로 나섰다.
장창을 휘둘러서 서너 명을 튕겨낸 그가 창을 쭉 뻗어 야율대원 쪽을 가리켰다.
“와라! 야율대원! 나와 한번 붙어보자!”
“와하하하! 양충화! 산속에 숨어서 숨죽이며 살던 놈이 말이 많구나! 너희들이 상대해봐라!”
야율대원이 대소를 터트리며 말하자, 그의 좌우에 있던 사십 대 중년인 셋이 마상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마황궁주를 호위하는 마황육위 중 셋의 합공.
비록 야율대원이 욕은 했지만 그만큼 양충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발을 땅에 굳게 디딘 양충화는 일곱 자 길이 장창을 잡고 공력을 집중시켰다.
우우우우웅.
창에서 벌떼 우는 소리가 나며 강력한 기운이 회오리치듯 퍼졌다.
동시에 세 중년인이 양충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칼을 내리쳤다.
세 줄기 벼락이 양충화를 노리고 떨어졌다.
양충화는 굳게 잡고 있던 창을 쳐들며 손목을 비틀었다.
콰우우우우!
창끝이 용틀임을 하듯 뒤틀리며 가공할 기운을 폭사시켰다.
쩌저저저정!
창에서 폭사한 기운이 세 중년인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뿐 아니라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튕겨나간 중년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타앗!”
양충화가 기합을 내지르고 몸을 날리며 창을 휘돌렸다.
창에서 일어난 기운이 폭풍처럼 휘돌면서 중년인 중 하나를 덮쳤다.
중년인 역시 절정경지의 고수였지만 양충화가 펼친 공세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맞상대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양충화의 공격이 한발 빨랐다.
가가가각!
창에서 뻗어나간 날카로운 기운이 중년인의 앞섶을 갈가리 찢으며 살과 뼈까지 갈랐다.
그러고는 크게 원을 그린 창이 또 다른 중년인을 향해 떨어졌다.
떨어지는 창을 본 중년인은 피하지 않고 칼을 들어 막았다.
쾅!
중년인은 창을 옆으로 비켜내려 했다. 하지만 창에 실린 힘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굉음과 함께 떨어진 창은 칼을 짓누르고 그의 어깨뼈마저 부러뜨렸다.
순식간에 절정고수 둘이 무너지자 야율대원의 표정도 굳어졌다.
“제법이구나, 양충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양충화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모두 놈들을 쳐라!”
약간 뒤로 처졌던 마황궁 무사들이 대정맹 무사들을 향해서 모래폭풍처럼 밀려갔다.
때마침 거친 황사바람이 북동풍을 타고 밀려드는 바람에 그 위세가 대정맹 무사들에게는 실제보다 과장되게 느껴졌다.
대정맹 무사들은 황사바람과 함께 밀려드는 마황궁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물러서지 마라! 협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워라!”
“마도에 굴복할 것인가! 검을 들어 마도의 목을 쳐라!”
양충화와 간부들이 공력을 높여 소리치며 사기를 진작하려 했다.
하지만 한번 꺾인 사기는 쉽게 반등하지 못했다.
반면 사기가 오른 마황궁 무사들은 대정맹 무사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결국 양충화는 이를 으드득 갈고 후퇴를 결정했다.
“후퇴하라! 흩어지지 말고 적을 상대하면서 물러서라!”
“후퇴! 흩어지지 마라!”
총단에서 날아든 전서에도 후퇴할 경우에 대한 명령이 적혀 있었다.
지원대도 일이차에 걸쳐 출발했다고 했다.
그들만 도착하면 얼마든지 반격할 기회가 있으리라.
대정맹 무사들은 동천현까지 후퇴한 후에야 장안과 위남에서 달려온 지원대와 조우했다.
야율대원도 대정맹에 지원대가 합류했다는 것을 알고 추격을 중지시켰다.
양충화는 분노를 씹으며 간부들을 독려했다.
“부상자들을 치료해라!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놈들을 칠 것이다!”
***
혁무천은 동천 남쪽 삼십 리 떨어진 마을의 객잔에서 대정맹이 동천까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지원대가 도착해서 합류했습니다. 마황궁도 그걸 알고 공격을 멈춘 상태입니다.”
목량이 풍마문의 정보원이 가져온 소식을 전했다.
혁무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목량에게 물었다.
“사도맹 쪽의 움직임은?”
“처음에 황하를 건넌 자들도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이번 마황궁의 공격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
“대형께서 보낸 서신이 신경 쓰여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다음 움직일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 다행인데…….”
과연 사도맹이 자신의 말을 신경 쓸까?
그게 의문이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작금 강호에서 그가 차지한 위치를 전혀 모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사도맹의 수뇌부 중 흑룡방과 귀곡이 뒤늦게 마음을 바꾼 것도 그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사도맹이 끼어들지 않으면 일을 처리하기가 어렵지 않겠군.”
혁무천이 담담하게 말하자,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상대는 팔대마세 중 마황궁이다.
그들을 처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저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강호에 몇이나 되겠는가.
“동천으로 가실 겁니까?”
목량이 다시 물었다.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봐야 귀찮은 일만 생길 게 뻔해. 우린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싸움이 벌어지면 마황궁의 옆구리에 한방 먹인 후 빠진다.”
철명군도 그 말에 동조했다.
“하긴 합류하며 이런저런 소리를 할 거네. 그런 소리 들을 바에는 따로 움직이고 빠지는 게 낫겠지.”
“서원장 사람들이 도착하면 출발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