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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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6화
306화
‘알 수가 없다!’
나이뿐만 아니라 무위도 짐작할 수가 없다.
그 말인 즉, 상대가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거기다 또 다른 중년인 둘도 자신에 비해 하수가 아니고,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 역시 최소한 서너 명은 된다.
남궁무룡은 새삼 무원장의 무서움을 깨닫고 전율이 일었다.
전각 안에는 혁무천과 은설, 목량, 철명군, 중리안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영빈각에서 쉬도록 했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서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다음에야 남궁무룡이 철명군 쪽을 보며 물었다.
“옆에 계신 분들은 뉘신가?”
혁무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철명군이 먼저 말했다.
“철명군이오.”
중리안도 무표정한 얼굴로 이름을 밝혔다.
“중리안이오.”
“대정맹을 맡고 있는 남궁무룡이라 하오. 만나 뵈어서 반갑소이다.”
남궁무룡은 예를 취하면서도 의아한 마음이었다.
강호 생활 사십 년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저런 고수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니.
잠깐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이사명이 말했다.
“안 그래도 장주를 한번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 오셨네.”
혁무천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요? 바쁘신 분이 저를 만나려 할 때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말씀해 보시지요.”
“흠, 이 자리에서 말해도 될지 모르겠군.”
“저는 괜찮습니다만,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네. 장주만 괜찮다면 여기서 말하지.”
이사명이 그렇게 운을 뗀 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본론을 말했다.
“맹을 세우긴 했는데 우리가 언제 돈을 벌어봤어야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돈 좀 빌려주게.”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은자 오십만 냥 정도면 되네.”
은자 오십만 냥.
오천 무사가 아껴 쓰면 삼 년 간 맹을 운영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런데도 혁무천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을 빌려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럴 경우 저희에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일단 이십 년 동안 맹의 모든 보급을 저희가 독점으로 공급하지요. 가격은 시장가에 맞출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정도라면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가격만 비싸지 않다면 우리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또 있나?”
“맹이 자리를 잡으면 표행을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원금을 표행비로 감하지요.”
“정말인가?”
대정맹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조건이었다.
원금을 갚기 힘들면 몸으로라도 때우면 되었다. 대정맹을 인정하지 않으면 걸 수 없는 조건.
“힘드시면 일 년에 오만 냥씩 십오 년 동안 갚는 걸로 하셔도 됩니다.”
“아, 아니네. 표행비로 감하겠네.”
당장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남궁무룡과 이사명으로선 큰 짐이 덜어진 셈이었다.
물론 혁무천으로서도 적지 않은 이득이었다.
대정맹이 표행을 책임진다면 장안 일대의 물량 공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은자 오십만 냥이 거금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이삼 년 안에 모두 뽑을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우리가 도울 것 있으면 말씀해 보시게. 능력에 닿는 일이면 도와드리겠네.”
이사명이 편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정혈단이 섬서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혹시 아시는 것 없으십니까?”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네. 하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네.”
“대정맹에서는 정혈단을 어떻게 대할 생각이십니까?”
이사명은 그에 대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파의 제자들 아닌가.
무작정 적으로 대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군.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마인이 되면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네.”
혁무천은 일단 그 정도 대답으로 만족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
이사명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
대정맹 총단에서 나온 혁무천 일행은 객잔에 방을 잡고 여장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쉬는 동안 혁무천은 목량과 함께 장안전장을 찾아갔다.
고풍스런 이층 전각으로 된 장안전장은 겉보기에 크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고 사람도 많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서로 보이는 자가 혁무천에게 다가와 물었다.
“낙양전장 장주님의 소개를 받고 장주님을 뵈러 왔소.”
“아, 저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혁무천과 목량은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전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전에는 걱정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허! 이 사람이……!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겐가?”
“지금 망하게 생겼는데 소리를 지르지 않게 생겼습니까? 제가 그 물건을 서역에서 구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시세가 다른 걸 어떡한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구매가의 절반밖에 안 쳐주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거라도 받든지, 아니면 가서 직접 처분하게. 우린 가격을 더 쳐줄 수 없으니까.”
“진짜 좋은 옥이란 말입니다. 당주 어른!”
“글쎄, 지금은 옥이 시장에 넘쳐난다니까! 그만 가게!”
당주라는 자가 손을 휘젓자, 호위로 보이는 장한 둘이 나서서 그 청년을 몰아냈다.
청년은 버티고 안 나가려 했지만, 무사 둘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놈들아! 옥만 사오면 배로 쳐준다고 하더니! 막상 사오니 반값으로 가져가겠다는 거냐! 이 도둑놈들아!”
청년은 바락바락 악을 썼다.
호위들은 그 청년을 문밖으로 내던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혁무천이 목량에게 말했다.
“네가 만나봐라.”
“예?”
“가서 어떤 사연인지, 어떤 자인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대형.”
목량이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조금 전의 사서가 안에서 나왔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서는 혁무천을 내실로 안내했다.
내실에는 육순 초반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넓은 얼굴에 눈이 칼로 선을 그은 것처럼 가늘었는데, 제법 꼬장꼬장한 성격일 것처럼 보였다.
‘동 형이 왔으면 한마디 했겠군.’
작은 눈이나, 가는 눈이나.
“낙양전장에서 소개해서 왔다고 들었소만.”
노인의 말에 혁무천은 소개서를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
“소개서입니다. 보시면 아실 겁니다.”
노인은 소개를 펼쳐서 읽어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이구, 귀빈이 오셨구려.”
강호에서 바람을 일으켰다면, 상계에서는 폭풍을 일으킨 사람이 무천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무천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장안전장의 주인 마화공도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장안전장의 마가가 무원장주를 뵈오.”
“장안이야말로 다양한 사업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 같더군요. 해서 장주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 왔습니다.”
“허허허, 잘 오셨습니다. 뭐든 생각하신 사업이 있으면 말씀해보시구려.”
무천은 마화공과 반 시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웃음 띤 표정으로 장안전장을 나왔다.
무천과 낙양전장의 관계를 안 마화공이 안달을 하며 욕심을 낸 덕분에 보다 좋은 조건으로 사업 이야기가 오갔다.
무천으로서도 만족한 결과였다.
사실 그걸 노리고 낙양전장주 화문역의 소개서를 받아온 것이지만.
‘소개서 한 장이 최소한 백만 냥의 이익을 가져왔군.’
십 년 간 이익으로 오 푼을 더 챙겼으니 족히 그 정도 이익은 될 듯했다.
“만나고 왔습니다, 대형.”
혁무천이 장안전장을 십여 장쯤 벗어났을 때, 씩씩거리던 청년을 따라간 목량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라더냐?”
“아무래도 장안전장의 간부가 중간에서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장안전장 자체가 그랬든지요.”
“그래?”
“서역의 상등품 옥을 구해오면 이익을 보장해 준다며 돈을 빌려줘 놓고, 막상 옥을 구해오니 시세 이상은 줄 수 없다며 가격을 후려친다는 게 그자의 주장입니다.”
“흠, 시세에 맞게 매입하는 거라면 따지기도 애매할 거 같은데, 다른 문제라도 있는 건가?”
“그 시세를 장안전장에서 조종한 거 같습니다.”
“시세를 조종해서 낮추어 놓고 그 가격에 옥을 매입하겠다?”
“예.”
“그럴 거면 왜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그렇게 한 거지?”
“장안전장이 노리는 건 옥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라고 합니다. 워낙 위치가 좋은 곳에 지어져서 많은 사람이 탐을 내고 있다더군요.”
“집을 노린다? 그럼 빚을 지게 해놓고 집을 헐값에 뺏으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자의 부친인 상우안은 한때 장안에서 잘 나갔던 상인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삼 년 전 갑자기 죽으면서 장부까지 사라진 바람에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부가 사라졌으면, 줄 건 줘야 하고, 받을 건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겠군.”
“예,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돈을 벌어 빚을 모두 청산하려고 했는데, 거꾸로 돈이 더 들어갈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럼 장안전장에도 줘야 할 빚이 있었겠군.”
“이번에 옥을 사면서 빌린 오만 냥 외에도 삼만 냥의 빚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옥의 제 가격은 얼마라고 하더냐?”
“십만 냥입니다. 그래서 옥을 제 가격에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거지요.”
목량의 말을 들은 혁무천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가자. 그 옥을 우리가 매입해야겠다.”
“예, 대형.”
목량은 혁무천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혁무천이 그 상우상이라는 자를 생각해서 옥을 사려는 건 아닐 것이다.
뭔가 적절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상가장은 장안의 동문 쪽에 있었다.
대로 인근, 장안 최고의 상권과 인접한 데다 건물들이 고풍스러웠다. 특히 잘 가꾸어진 정원은 장안 제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혁무천이 목량과 갔을 때, 상우상은 초조한 표정으로 장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상우상이라 하오.”
“무천이오.”
상우상은 무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서역에 다녀오느라 무천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듯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세 사람을 내실로 들어갔다.
곧 젊은 여인이 차를 가져왔다. 이제 스물두어 살 정도로 보였는데 시비라고 하기에는 은은한 기품이 배어 있었다.
혁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옥을 우리가 매입하겠소. 가격은 십만 냥을 쳐주지.”
상우상은 생각보다 후한 가격에 표정이 환해졌다.
솔직히 본전만 받아도 다행이라 생각했거늘.
“정말이오?”
“누가 장난만 치지 않았으면 그 가격이 적당하다고 하더군.”
혁무천의 그 말에 상우상이 분개한 표정을 지었다.
“맞소. 내가 봐선 장안전장이 시세를 강제로 낮춘 게 분명하오.”
“원한다면 집도 제 가격에 매입하겠소.”
상우상의 눈이 커졌다.
“집도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