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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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5화
305화
절정에 이른 그의 도법은 약하지 않았다.
도첨에서 뻗어나간 도기가 허공을 난자하며 은설을 뒤덮었다.
은설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검을 뻗었다.
“그런 칼질은 닭 잡는 데나 써!”
떠더더덩!
여리게 보이는 은설이 검을 좌우로 흔들 때마다 야율호의 칼이 튕겨나갔다.
검과 칼이 부딪칠 때마다 야율호의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구겨졌다.
손목에서 시작된 고통이 팔을 타고 전신을 뒤흔들자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 이 계집년이……!”
촤라라락!
은설의 검이 점점 빨라졌다.
야율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연신 물러서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도 잠시 뿐,
“그 정도 실력으로 어디서 누굴 욕해!”
차가운 은설의 목소리와 함께 검화가 피어나더니,
푹!
은설의 검이 야율호의 가슴을 파고들며 살과 뼈를 가르고 박혔다.
“컥!”
야율호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눈을 홉떴다.
은설이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냉랭히 말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여자를 괴롭힐 수 없을 거다.”
“이, 이년…….”
야율호는 욕을 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은설은 검을 빼고 좌장을 내쳤다.
쾅!
야율호의 몸뚱이가 이 장을 날아가서 바닥에 처박혔다.
“상황을 정리하자.”
혁무천이 은설 곁으로 오며 말했다.
은설도 죽어가는 야율호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렸다.
“그래요, 오빠.”
자신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쓰러뜨리면 대정맹 무사들이 그만큼 더 살 수 있었다.
공포에 질린 마황궁 무사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도주했다.
살기 위해서는 동료마저 이용했다. 심지어 동료를 상대에게 떠밀고 그 틈을 이용해서 도망치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협곡을 빠져나간 자는 오십여 명.
싸움이 끝난 협곡에는 칠팔백 구에 달하는 시신만이 남아 있었다.
좁은 협곡에 얼마나 시신이 많은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였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평문지부장 관호염은 시신들 사이에 서서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았다.
이십여 명이 서 있었다.
‘도대체 저들이 누군데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아니, 강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압도적인 강함. 절대의 무력!
잠깐 봤을 뿐인데 아직도 가슴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코 대정맹 무사는 아니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무원장의 장주인 무천과 그의 일행들입니다, 지부장.”
진국충이 그의 곁으로 오며 말했다.
“무원장?”
관호염의 눈이 커졌다.
그도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소문을 다 믿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너무 과장된 이야기라고도 했다.
‘강호는 저들을 너무 모르고 있구나.’
“화음에서 만났습니다. 연락을 받고 지원을 하기 위해 달려오는데, 볼일이 있다며 따라왔습니다.”
“볼일이라니?”
“그게…… 무원장을 모욕한 야율호를 잡겠다고…….”
진국충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
관호염은 진국충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진국충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핑계를 댄 것 같습니다. 상인이 강호 일에 끼어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미리 핑계를 만든 거지요. 그리고 실제로 야율호가 무원장을 모욕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으음, 일단 만나보세.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혁무천은 다가오는 관호염과 진국충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정맹 평문지부장 관호염이라 하오.”
“무천입니다.”
“도와줘서 고맙소.”
“뭘 잘못 아셨군요. 우린 대정맹을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내 동생과 무원장을 모욕한 야율호를 징벌하려고 왔을 뿐입니다.”
담담한 혁무천의 말에 관호염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덕분에 마황궁 놈들을 물리칠 수 있었소.”
“잘된 일이군요.”
혁무천은 마치 모르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앞으로 마황궁이 무원장에 책임을 묻거든 우리 핑계를 대시구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아마 저들은 그러지 못할 겁니다.”
“아, 그래요?”
“야율호가 먼저 잘못했으니, 마황궁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황궁은 애초부터 우리 무원장과 거래할 생각이 없는 곳이니, 우리가 저들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도 없지요.”
어느 누가 팔대마세 중 한 곳인 마황궁에 자격 운운할 수 있을까.
오만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관호염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우리에게 그 일을 따지고 들면…… 하루 세끼 다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
하지만 관호염은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살이 떨렸다.
정말 마황궁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다른 세력도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대정맹도.
머쓱한 시간이 흐를 때쯤,
“일단 시신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군.”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철명군이 말했다.
아무래도 피비린내와 널브러져 있는 시신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지요.”
혁무천이 대답하고는 관호염을 불렀다.
“지부장님.”
“말씀하시구려.”
“시신을 저 절벽 밑에 모아주시지요.”
“……?”
“시신을 모아놓고 절벽을 무너뜨리면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군요.”
혁무천을 말뜻을 깨달은 관호염이 진국충과 함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각쯤 지나자 시신이 절벽 밑에 쌓였다.
혁무천이 철명군과 중리안에게 말했다.
“두 분 어르신께서 동쪽을 맡아주십시오. 제가 서쪽을 맡지요. 황토절벽의 윗부분을 무너뜨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네.”
철명군이 흔쾌히 대답하고 중리안과 함께 동쪽 절벽으로 갔다.
혁무천은 서쪽 절벽으로 갔고.
절벽 위를 쳐다본 혁무천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십 장쯤 떠오른 그는 절벽을 향해 쌍장을 내쳤다.
콰광! 콰르르르릉!
격공장이 절벽을 강타하자, 굉음과 함께 절벽 상단이 무너지면서 산사태라도 난 듯 황토가 밀려 내려왔다.
동쪽에서도 철명군과 중리안이 절벽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절벽에서 밀려내려온 황토가 빠르게 시신을 뒤덮었다.
시신 팔백여 구를 묻는데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대정맹 무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의 눈에는 손짓 몇 번으로 절벽을 무너뜨리는 세 사람이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대정맹 무사들과 혁무천 일행이 떠나가고 이 각쯤 지났을 때였다.
무사 백여 명이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 중 선두에 섰던 사내가 무너진 절벽을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정맹이 마황궁을 몰살시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군.”
그의 옆에 서 있던 자가 말했다.
“부상자들이 많아서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추적할까요?”
백의를 입은 사내, 정혈단 삼대주 여청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먼저 그걸 알아본 후 처리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대주.”
정혈단원들이 협곡에서 사라진 후, 황토절벽 위에 십여 명이 나타났다.
밀소림의 운룡과 그 조원들이었다.
“역시 장주의 말대로 저들이 나타났군.”
“마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것 같군요.”
“무천 장주가 우려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운룡은 미간을 좁혔다.
마에 물들었다 하나 본래 정파의 기재들이었던 자들이다. 저들에게 죽은 자들도 대부분 마도인들이고.
마로 마를 물리치는 이마제마를 실현하는 자들이라 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언젠가는 마에 먹혀서 진정한 마인이 될 터.
“그들이 정파마저 공격하려 하면 제거하는 수밖에 없소.”
아쉽고 답답하지만, 이리저리 생각해도 무천의 결정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형께 연락하게. 우린 계속 저들의 뒤를 쫓을 테니까.”
한쪽에 서 있던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풍마문의 정보원으로, 밀소림의 연락을 책임지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
장안성의 성벽은 장엄함이 느껴질 정도로 웅장했다.
삼층으로 된 성문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낙양성과는 또 다른 멋이 느껴졌다.
혁무천은 성문을 올려다본 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 년 만인가?’
그가 느낀 세월로는 정확히 삼 년 삼 개월 만이었다. 실제로는 백 년이 훌쩍 넘었지만.
성은 그때 그대로였다.
성 안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전에 봤던 건물 대신 다른 건물이 서 있는 곳도 있었다.
혁무천이 장안에 들렀을 때 머물렀던 객잔도 사라지고, 대신 더 큰 객잔이 들어서 있었다.
“장안에 와봤어요?”
은설이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가 혁무천을 처음 만났을 때, 혁무천은 영락없는 강호초출의 시골 청년 같았다.
심지어 돈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이야 천하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상인이 되었지만.
그런 사람이 장안 같은 대성을 잘 안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런데 오랜 기억을 더듬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주 옛날에.”
혁무천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런데 진짜로 장안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뒤에 있었다.
철명군과 중리안뿐만 아니라 뒤에 졸졸 따라오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장안이 초행길이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살면서 장안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은 호광과 목량, 은화삼절 중 관남우밖에 없었다.
“우와!
“저 성문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웅장하군.”
“휘유! 굉장한데?”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영락없이 촌놈들이었다.
중앙의 대로에 들어섰을 때, 무기를 소지한 무사 셋이 혁무천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 삼십 대 후반이나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원장 분들이십니까?”
관호염, 진국충과 위남지부까지 동행했었다. 미리 연락을 했다고 하더니 마중을 나온 모양이다.
“그렇소만.”
“대정맹의 남사원이라 합니다. 저흴 따라 오십시오.”
남사원은 혁무천 일행을 대정맹 총단으로 안내했다.
대정맹 총단이 있는 장원은 장안성 안 북문 쪽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세력의 총단이 외진 곳에 있는 걸 생각하면 의외였다.
본래 마황궁의 장안지부를 그대로 총단으로 썼는데, 그만큼 마황궁이 오랜 세월 장안을 제집처럼 장악했다는 뜻이었다.
총단 안으로 들어가자, 남궁무룡과 이사명이 연무장까지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네.”
이사명이 담담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두 분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남궁무룡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황궁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네. 평문의 이야기는 들었지. 고맙네.”
“별 말씀을. 마침 저희 무원장과 제 동생을 모욕한 야율호가 있다 해서 잠깐 거들었을 뿐입니다.”
“먼 길을 왔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세.”
“예, 맹주.”
혁무천은 포권을 취하며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서 철명군과 중리안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시지요.”
혁무천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던 이사명과 남궁무룡은 그 말을 듣고서야 혁무천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지 노인인지 나이를 분간하기 힘든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본 남궁무룡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