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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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01화
301화
마호걸이 섬서의 상황을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사흘 전에 소식이 전해진 상태였다.
섬서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혈단도 움직이겠군.”
“안 그래도 철저히 주시하라고 했소.”
“하남에 있는 정혈단 무리는 찾았소?”
혁무천의 말에 마호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찾지 못했소. 어디로 숨었는지 꼬리조차 보이지 않고 있소.”
혁무천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마성과 귀천교, 철혈마련. 팔대마세 중 세 곳이 이를 갈며 그들을 찾아 나섰다.
제아무리 정혈단이 강하다 해도 그들과 정면대결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전부 섬서로 갔다는 건가?’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전원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전력이 섬서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크다.
“아무래도 장안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군.”
이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인데, 굳이 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은맹은 당분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섬서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천하의 향방이 갈릴 거다. 장안의 상계도 자세히 알아볼 겸, 겸사겸사 한번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장안은 중원 서쪽에서 가장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더구나 장안의 상계는 중원뿐만이 아니라, 서역과도 교역을 한다.
장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서역과의 교역도 호기심이 들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혁무천은 별원으로 가서 철명군과 중리안을 만났다.
장안으로 가려는 목적을 말하고 함께 갈 인원을 몇 명 요청했다.
“많은 인원은 필요 없습니다. 절정고수 이상으로 열 명 정도만 추려주십시오.”
철명군도 그의 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열 명 정도라면 어려울 것 없지. 그리고 나도 가겠네.”
“철 노사께서 가시겠다면 저야 좋지요.”
혁무천도 철명군의 동행을 반겼다.
철명군 정도의 고수가 함께 간다면, 생각지 못한 고수를 만난다 해도 그만큼 자신이 나설 일이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럼 생명선을 소모할 상황도 그만큼 줄어들겠지.
그런데 중리안이 보고만 있지 않았다.
“형님은 여기 계십시오. 나이 많으신 분을 어찌 먼 곳까지 보내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아직은 괜찮아. 이 기회에 장안 구경이나 해볼 생각이다.”
“형님보다는 한 살이라도 젊은 제가 가는 게 낫지요.”
“글쎄, 걱정 말라니까. 내가 애들을 데리고 가마.”
“제가 가는 게 낫다니까요.”
“어허…….”
“형님…….”
가만히 듣고 있던 혁무천은 두 사람이 고집 피우는 이유를 짐작하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훗, 그렇게 심심했나?’
그랬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여행(?)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중이었다.
할 수 없이 그가 나서서 중재했다.
“그러실 것 없이 함께 가시지요.”
“음? 그래도 되나?”
“아, 그래도 된다면야…….”
그제야 표정이 풀어진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함께 가자.”
“그렇게 하죠, 형님.”
***
별원을 나온 혁무천은 밀소림 제자들이 있는 서원장으로 갔다.
서원장은 중앙에 연무장이 있고, 연무장 사방에 큰 전각이 서 있었다.
조금 특이한 배치였는데, 남 눈에 띄지 않고 수련하기에는 그만이었다.
혁무천이 갔을 때도 중앙의 연무장에서 밀소림 제자 삼십여 명이 수련 중이었다.
연무장 쪽으로 혁무천이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쩐 일이시오?”
운정이 혁무천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혁무천은 대답하기 전에 연무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직 바람이 찬데도 십여 명은 웃통을 벗고 있었다. 구릿빛 탄탄한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댔다.
‘설아를 데려오지 않길 잘했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 혁무천은, 운정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알고 급히 대답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소. 그런데 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소림의 무공치고는 움직임이 조금 날카롭게 느껴지는군요.”
운정이 미미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구결에서 자비(慈悲)를 뺐으니 살(殺)이 강해 보일 수밖에요.”
불문의 무공에는 살계를 억누르는 구결이 녹아 있다. 그 구결을 뺐다는 것은 곧 살기를 강화시켰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도와 싸우기 위해서, 소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겠지.
“자비를 뺀다 한들 근본이 달라지겠소? 굳이 제한을 둘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운정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는 깨달음을 얻어 절대경지에 들어선 고수였다.
한번 깨달음의 관문을 통과한 그이기에 혁무천의 말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여운을 놓치지 않았다.
“자비를 빼지 않으면 소림이 드러날 거요.”
“그럼 차라리 소림을 지우시지요.”
자비가 아닌 소림을 지워라?
자비가 정신이라면 소림은 육신이다. 정신은 근본이고 육신은 가지일 뿐이다.
운정은 눈을 반개한 채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어느 순간 머릿속 한쪽 구석이 환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자비도 지우는 판에 소림을 지우지 못할 건 또 뭔가.
‘공(空)과 색(色)이 다를 게 없거늘…….’
법에 얽매여서 자유로움을 얻지 못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운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서서 보일 듯 말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내면의 의미를 알고서 던진 화두였다.
저 젊은 친구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뭐가 들어 있기에 이십 년 동안의 고민을 말 몇 마디로 날려버린단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고맙소.”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올라서 말한 것뿐이오. 고마워할 것까진 없소.”
운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찰나만으로도 족하다.
스승께서 왜 자신들을 맡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실 말씀이 있다 하셨는데…….”
운정이 막 물어보려 할 때, 두 사람이 다가왔다.
얼굴만 봐도 불만이 느껴지는 삼십 대 중후반 나이의 두 사람, 밀소림의 여섯 조장 중 운해와 운경이었다.
수련을 하느라 가슴 앞섶이 풀어헤쳐진 그들은 혁무천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사형?”
“언질도 없이 수련장에 들어오다니, 과한 것 아니오?”
밀소림 제자들 중에는 혁무천이 자신들을 지휘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운해와 운경이었다.
그들도 혁무천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천화상단에서의 일로 능력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그래봐야 장사꾼 아닌가.
대소림과 정파의 부활을 위해 살아온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혁무천도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데도 허락을 받아야 하오?”
운해도 밀리지 않았다.
“남의 무공 수련을 구경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 아니오?”
“뭐가 그리 대단해서?”
“뭐요?”
“반쪽짜리 무공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구경도 못하게 하냔 말이오?”
“말이면 다 말인 줄 아시오!”
운경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혁무천도 말싸움이라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처음부터 그들을 자극할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내가 원래 거짓말을 잘 못하오. 그래서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 거요.”
은근슬쩍 돌려서 까 내리자 운해와 운경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흥! 그렇게 대단한 실력이면 어디 한번 보여주시지.”
“그것도 괜찮군. 어디 실력 한번 봅시다.”
운룡이 당황해서 두 사람을 말리려 했다.
“운해, 운경, 이 무슨……?”
그런데 운정이 오히려 운룡을 말렸다.
“운룡 사제, 어차피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네. 이참에 장주의 무공이나 제대로 구경해보세.”
“사형?”
“언제까지 가슴에 불을 안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쯤에서 혁무천이 나섰다.
“남자들끼리는 말보다 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지. 일조장의 말처럼 언젠가 겪어야 한다면 오늘 하는 것도 괜찮겠어.”
무심한 어조로 말을 마친 혁무천은 연무장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연무장에서 수련하다 말고 말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밀소림 제자들이 좌우로 쫙 갈라져서 가장자리까지 물러섰다.
운해와 운경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운해가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서 혁무천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가 세 걸음쯤 걸었을 때 혁무천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둘이 함께 오시오.”
“흥! 나 혼자서도 충분하오.”
중앙에 도착한 혁무천이 몸을 돌리고는 무심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대가 팔대마세의 주인만큼 강하다면 혼자 나서도 좋소.”
“…….”
운해와 운경이 답을 못하자, 운정이 나섰다.
“둘이 해라.”
운해와 운경은 여전히 불만이었지만 운정의 말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흥! 후회하지 마시오.”
“좋아, 장주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보자고.”
둘은 냉랭히 말하고는 중앙으로 나아갔다.
혁무천이 무기를 들지 않았기에 그들 역시 무기보다는 적수공권으로 상대할 작정이었다.
밀소림의 제자들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혁무천은 오연히 서서 좌우의 두 사람의 공격을 기다렸다.
운해와 운경은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쉽게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신중을 기하게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막상 혁무천과 마주하자 숭산의 거대한 백장 석벽에 앞이 막힌 듯 느껴졌다.
거대한 압박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
그렇게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도 모르게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숨통을 조여오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 운해가 먼저 튕기듯 쇄도하며 쌍장을 뻗었다.
후우웅!
소림의 절기 중 강맹함을 자랑하는 대력금강장을 바탕으로 한 장법이 그의 쌍장에서 펼쳐지며 장영이 혁무천을 향해 밀려갔다.
“차앗!”
간발의 차이를 두고 운경도 천수여래장을 변형시킨 장법을 펼쳤다.
적절한 시간차, 강맹함과 변화막심 한 공격이 조화를 이루면서 혁무천을 압박했다.
초절정경지의 고수 이인의 합공은 빠져나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만발하게 피어난 장영은 금방이라도 혁무천의 몸에 틀어박힐 듯했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을 유지한 채 살짝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우수를 가슴 높이로 들어서 뻗어내고, 좌수로는 원을 그리며 앞으로 밀어냈다.
단순한 두 동작이 이루어진 순간!
두 사람 앞을 벽이 다시 가로막았다. 뿐만 아니라 숨 막히게 하는 그 거대한 벽이 그들을 덮쳤다.
일곱 자 앞까지 다가간 운해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운경의 눈이 커졌다.
떠덩! 텅!
거의 동시, 두 번의 충돌음이 울렸다.
쇄도하던 운해와 운경은 눈을 치켜뜨고 이를 악문 채 주르륵, 서너 걸음 밀려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차 공격에 나섰다.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서 자신들이 평생 익힌 재주를 다 쏟아냈다.
백년 공력이 실린 두 사람의 막강한 공세에 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나며 회오리쳤다.
혁무천은 방어만 하면서 두 사람의 공격을 상대했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
초식이 더해질수록 운해와 운경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땀마저 맺혔다.
반면 혁무천은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가 움직인 행동반경은 일 장에 불과했다. 그 안에서 초절정고수 두 사람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방어만 한 것이 아니었다.
소림사는 백 년 전만 해도 정통 무학의 최고봉으로 군림했었다.
특히 초식과 무공절기의 다양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강호인으로 수십 년 살아도 소림사의 칠십이종 절기를 다 구경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혁무천은 오늘 하루에만 소림사의 절기 중 열 가지는 구경한 듯했다.
비록 자비가 빠진 무공이지만, 초식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백 초식이 막 지났을 때, 혁무천이 좌우로 쌍장을 뻗으며 무진일선공이 실린 광천장을 펼쳤다.
후우웅!
운해와 운경도 이를 악물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