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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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9화
299화
“일 년 동안만 저를 도와주십시오. 만약 그게 어려우면 저와 천화상단의 싸움에라도 끼어들지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부탁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철명군이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랄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중리안이 말했다.
“우리 비천은 천화상단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혁무천은 생각지 못한 그 말에 눈이 살짝 커졌다.
철명군이 몇 마디 덧붙였다.
“원래는 너를 처리해주는 조건이었지. 처리하기는커녕 결국은 이렇게 됐지만.”
“…….”
“그래도 어쨌든 천궁환과 담판을 지었다. 비천의 아이들 중 반을 남겨놓겠다고 했더니 받아들이더군. 대신 천화상단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기로 했다.”
“그럼……?”
“당분간 먹고살아야 할 곳이 필요한데, 네가 도와줘야겠다. 싫으면 말하고.”
“싫기는요. 하하, 마침 무원장에는 빈 방이 많습니다. 필요하면 장원 하나를 통째로 드리지요. 물론 경비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 중 하나가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판이다.
장원이 아니라 궁이라도 지어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영객이라는 자들을 괜히 죽였군.’
***
어스름이 밀려들 때 천소명과 천수화가 객잔으로 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더 따라왔다.
혈월선자와 천상화가.
“소명이와 수화에게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설마 쫓아내지는 않겠죠?”
천상화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녀를 처음 본 많은 사람들이 반쯤 넋을 잃었다.
미소를 짓는 그녀는 그 자체로 무서운 무기였다.
혁무천은 그녀가 반갑지 않았지만 쫓아내지는 않았다.
“이곳 음식이 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
“걱정 말아요. 편식하는 편은 아니니까.”
천상화가 말을 멈춘 후에야 천수화가 말했다.
“꺼내줘서 고마워.”
“고마워할 것 없어. 필요해서 풀어달라고 한 거니까. 들어가자.”
식사는 혁무천과 은설, 천소명 남매 셋, 그리고 혈월선자와 목량이 함께 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차를 마시며 혁무천이 말했다.
“소명, 내가 왜 불렀는지 듣고 왔겠지?”
“예. 무원장과 천화상단 간의 사업에 대해서 천화상단의 대표로 저와 수화 누님을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다. 앞으로 많은 일이 생길 거다. 네가 중간에서 적절하게 조율했으면 한다.”
“상단에 뛰어난 사람도 많은데 왜 저희를 택하신 겁니까?”
“천화상단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와 수화밖에 없거든. 우리 쪽은 여기 목량이 대표로 나설 거다.”
“저도 그 일에 끼워주시면 안 되나요?”
천상화가 끼어들며 말했다.
혁무천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넌 안 돼.”
“왜요?”
“천화상단 안에서만 지낸 네가 장사를 어떻게 알아?”
“나는 정해진 것만 하면 되죠.”
“괜히 끼어들어서 일 그르치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
“당신한테 가면 되죠.”
그녀의 갑작스런 말에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혁무천이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한번만 더 그런 농담을 하면 쫓아낼 거다.”
“쳇, 농담 아닌데. 그래도 뭐 알았어요. 하지 말라면 안 하죠.”
혁무천은 슬쩍 은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차를 마시는 은설의 표정은 담담했다.
‘휴우.’
하여간 천상화라는 저 여자가 문제다.
무작정 쫓아낼 수도 없고…….
혁무천이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 때 천수화가 물었다.
“그럼 우린 주 거처를 어디로 정해야 하지?”
“집에 있다가 상황에 따라 연락하면 돼. 전서구를 몇 마리 길들일 생각이니까.”
“차라리 한 사람은 이곳에 있고, 한 사람은 무원장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불편할 텐데?”
“괜찮아. 어릴 때부터 밖으로 많이 돌아다녀서 객지 생활이 몸에 익었거든.”
“네가 가겠다는 거야?”
“소명이는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질 거야. 오빠 두 분 공백을 메우려면.”
그때 천상화가 나섰다.
“차라리 내가 가면 어때? 이 기회에 객지 생활도 좀 해보게.”
“아가씨! 안 돼요.”
혈월선자가 화들짝 놀라서 말렸다.
“뭐가 안 돼? 나라고 해서 매일 집에만 있으란 법 없잖아.”
“하지만…….”
“맞아. 언니는 안 돼.”
천수화도 반대했다.
순간, 지금까지 화사하던 천상화의 표정이 얼음꽃처럼 차가워졌다.
“왜 너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니?”
천수화가 바로 대답을 못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듯이.
그 모습을 본 천상화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화야, 뭐든 너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그거 착각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다 할 수 있어.”
움츠러들었던 천수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고개를 들었다.
항상 천상화 앞에서 주눅 들었던 힘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가슴 저 깊은 곳에 단단히 뭉쳐 있던 두려움이라는 찌꺼기를 털어냈다.
“아냐, 언니. 이번 일은 무 공자가 나에게 맡기셨어. 그러니 내가 할 거야.”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러는 거니?”
천상화의 꾀꼬리 같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눈빛도 다시 차가워졌다.
“천상화, 착각은 네가 하고 있는 것 같군.”
혁무천이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뭘요?”
“수화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착각이다. 너는 네가 잘하는 걸 해. 수화가 잘하는 건 수화에게 맡기고.”
천상화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굴렸다. 치켜 올라간 눈초리에서 순간적으로 한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곧 고개를 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 게요.”
혁무천은 급변하는 천상화의 표정을 보고 왠지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 문제를 더 길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좋아. 그럼 소명은 이곳에 남고, 수화는 무원장으로 와라. 비천의 사람들이 올 때 함께 와.”
천소명은 천상화의 본 성격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가 천수화에게 또 무슨 짓을 할지 걱정 되었다.
‘그래, 차라리 수화 누나는 당분간 무원장에 가 있는 것이 낫겠어.’
그렇게 생각한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 형.”
***
제남을 나선 혁무천은 무원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수룡방에 들렀다.
결과도 알려줘야 하고, 지시를 내릴 일도 있었다.
수룡방 간부들은 천화상단이 무원장에 두 손을 들었다는 걸 알고 경악과 동시에 환호했다.
거기다 혁무천이 내놓은 돈에 또 한 번 놀랐다.
“은자 백만 냥이오. 사상자에게 가족이 있으면 적절히 보상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재건에 보태도록 하시오. 그리고 황하상선의 보호 대가로 매년 이십만 냥을 줄 거요.”
은자 백만 냥!
그리고 매년 은자 이십만 냥!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수룡방은 무원장이 망하지 않는 한 앞으로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장주!”
반동사는 감격한 듯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포권을 취하고 무릎을 꿇었다.
다른 수룡방 간부들도 뒤따라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혁무천을 받들었다.
“일어나시오.”
혁무천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며 손을 젓자, 무릎을 꿇었던 일곱 명이 모두 일어났다.
경악한 표정.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일어선 게 아니었다. 혁무천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그들을 일으킨 것이다.
“하 노인은 와 있소?”
혁무천이 묻자, 반동사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장주. 뒤채에 있습니다.”
수룡방에는 혁무천을 기다리는 손님이 한 사람 와 있었다.
혁무천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노인은 방문이 열리자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년 둘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잘생긴 청년과 기품 있는 선비 같은 청년이었다.
노인, 하공망도 무원장의 주인이 천하의 미남자라는 말을 들은 터라 혁무천의 정체를 바로 눈치 챘다.
“이 늙은이가 황하상선을 맡고 있는 하공망이오. 부르셨다 들었소.”
“앉으시지요.”
혁무천은 하공망과 마주 앉아서 차를 마셨다.
하공망은 눈처럼 하얀 백의를 입고 있었는데, 옷과 달리 표정은 억만 근 바위를 짊어진 사람처럼 무거웠다.
“황하상선은 하 노야의 모든 것이라 들었소.”
하공망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물두 살 때부터 사십 년을 황하에서 살았으니 그렇다 할 수 있지요.”
“나는 하 노야에게서 황하상선을 뺏을 생각이 없소.”
혁무천의 말에 황하상선의 주인, 하공망은 눈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이미 황하상선 서른두 척의 배 중 스물여덟 척이 수룡방에 의해 나포되었다.
황하상선의 손발이 다 묶인 상황.
실질적으로 모든 것이 수룡방에, 아니 무원장에 넘어간 거와도 같았다.
더구나 무원장주가 이곳에 왔다는 건 천화상단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뜻.
당연히 황하상선도 무원장에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하면 이 늙은이에게 계속 맡기시겠다는 거요?”
“그렇소. 전과 다름없이 운행을 해주시면 되오. 그리고 이익 분배는 칠 대 삼. 하 노야에게 삼을 드리겠소.”
하공망의 눈이 커졌다.
기존에는 팔 대 이였다.
일 할을 더 주겠다는 뜻.
“정말이오?”
“단, 조건이 있소.”
하공망은 ‘그럼 그렇지.’하면서도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말씀해보시구려.”
“총이익의 일 할을 황하 일대의 빈민을 위해 쓰도록 하시오.”
“…….”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하공망은 입이 살짝 벌어졌다.
설마 그런 조건을 달 줄이야.
“내가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오. 나중에는 그 일 할이 몇 배의 이익으로 돌아올 거요.”
하공망의 노안이 잘게 떨렸다.
아닌 척 하지만 하공망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무원장의 주인을 활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저 몇 명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수천, 수만 명이 그리 말한다고 했다.
이번 겨울, 무원장에서 백 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굶어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공망은 주름진 손을 힘껏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소이다, 장주. 꼭 그렇게 하겠소이다.”
***
수룡방의 일을 마친 혁무천은 마룡성까지 들렀다가 무원장으로 향했다.
그 즈음에는 추위가 한풀 꺾여 있었다.
무원장에 도착한 혁무천은 천화상단과의 담판 결과를 알려주었다.
백리양과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은자 천만 냥.
황하 이남의 상권 포기.
백리양은 얼굴까지 벌게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천화상단이 천하제일상가라는 사실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속은 무원장이 챙기게 되어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를지 몰라도, 상인들은 천하제일상가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일 년 안에 알게 될 것이다.
‘대형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백리양은 처음으로 혁무천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비천에게 장원을 하나 내줄 생각인데, 어느 곳이 좋을까?”
이현은 혁무천이 질문을 던진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장원을 따로 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