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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9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8화

298화

 

 

“아마 총단주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피가 흐를 거요. 그로 인해 우리도 어려움을 겪겠지. 하지만…… 천화상단은 아예 사라질 거요. 그 전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죽을 것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혁무천의 대답.

고저 없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천궁환은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말을 하는 동안 혁무천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와 파문처럼 퍼졌다.

사대천화조차 그 무형기의 권역에 들어가자 안색이 창백해진 채 이를 악물고 대항했다.

하물며 천궁환과 천인환은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멀거리며 가슴을 옥죄었다.

혁무천이 상황을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 무형기를 퍼뜨리면서 명천겁화의 기운을 슬쩍 끌어올린 것이다.

“어떻게 하실 거요?”

천궁환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입술을 질겅거리며 씹은 그가 잇새로 몇 마디 내뱉었다.

“조, 좋다. 네 요구를 받아들이지.”

 

***

 

드넓은 대전 안에 날이 시퍼런 칼날이 흘러다니는 듯했다.

말 한마디만 잘못 나오면 그 칼이 당장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못해서 끊어지기 직전인 천양전 안.

커다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혁무천과 지천주, 율이명, 목량. 한쪽에는 천궁환과 천인환, 중리안, 천구명이 자리했다.

양측 사이의 탁자 위에는 문방사우가 놓여 있었고, 천궁환이 붓을 들어서 뭔가를 쓰는 중이었다.

잠시 후, 붓을 내려놓은 천궁환이 글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됐나?”

천궁환이 쓰는 동안 글을 다 읽어본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천궁환이 커다란 도장을 들어서 한쪽에 낙인을 했다.

쾅!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낙인에서 천궁환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혁무천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인주가 번지면 다시 써야 할 텐데…….”

사람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혁무천만 힐끔거렸다.

지금 이 판국에 저런 말이 나오나?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간 천궁환이 조심스럽게 도장을 들었다.

화가 나는 건 나는 거고, 두 번 다시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인주는 번지지 않고 제대로 찍혀 있었다.

천궁환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고 천구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올려놓아라.”

천구명이 바위처럼 굳은 얼굴로 작은 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함 뚜껑을 열자 누런 종이로 된 봉투가 보였다.

“천하에서 제일 신용도가 높은 남경 금릉전장과 북경의 연경전장, 제남의 태산전장에서 발행한 은자 백만 냥짜리 전표 열 장이 들어 있다.”

혁무천이 목량을 향해 말했다.

“확인해 봐라.”

목량은 봉투 안에서 전표를 꺼내 확인한 다음 혁무천에게 내밀었다.

“맞습니다, 대형.”

혁무천은 전표가 든 봉투를 받아서 확인해보지도 않고 품속에 넣었다.

그걸로 고금 이래 가장 큰 거래가 성사되었다.

막상 모든 상황이 끝나자 사람들은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도 싸웠던가.

저 종이쪼가리 몇 장이 과연 수십, 수백 명의 목숨보다 대단한 것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 때쯤 혁무천이 말했다.

“천신명은 오늘 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천궁환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오늘 부로 지난 일은 잊을 겁니다. 무원장과 천화상단의 관계는 상가 대 상가로서만 대할 것입니다.”

천궁환은 놀림을 당한 듯 느껴져서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실컷 치욕을 느끼게 해놓고 뭐가 어째?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황하 이북의 거래는 천화상단이 맡고, 황하 이남에 팔 물건을 구하면 우리에게 넘기십시오. 가격은 적절하게 쳐드리지요.”

천궁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뭔가 말뜻이 묘했다. 단순히 협박하는 말과는 느낌이 달랐다.

“무슨……?”

그때 천인환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우리더러 네 뒤치다꺼리나 하란 말…….”

혁무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피잉!

천인환은 말을 다 맺지도 못하고 아혈과 마혈이 찍혀서 입만 벙긋거렸다.

“아마 총단주라면 내 말뜻을 알아들었을 거요.”

“설마…… 황하이북과 관련된 건 우리에게 모두 맡기겠다는 거냐?”

“하시겠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협력관계가 성사되지 않겠습니까?”

황하 이북의 상권은 황하 이남에 비하면 삼 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룡방과 황하상선이 모두 무원장에 넘어간 상황. 그조차도 무원장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막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천화상단에 넘겨준다지 않는가.

하지만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무려 천만 냥을 뜯어간 것으로도 모자라서 황하 이남 상권까지 빼앗아간 놈 아닌가.

얼마나 엄청난 조건을 걸지 몰랐다.

“뭘 바라는 거냐?”

“상계에 뛰어든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만, 장사를 하다 보니 물건 값이 상인에 따라 제멋대로지 뭡니까. 시기나 물량 등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는 거야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상인이 그 점을 이용해서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천궁환은 혁무천이 하고자 하는 말뜻을 짐작하고 눈이 커졌다.

“상인이야 돈을 더 많이 버니 좋겠지만, 일반 양민은 그 때문에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가격과 물량을 조절해 보려고 합니다.”

“그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일개 상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그래도 일부 지역의 사람에게라도 혜택이 돌아가면 그만큼 피해를 입는 사람도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러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본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봐서 실패하면 다음에는 그 실패를 거울삼아서 더 나은 길을 찾는 사람도 나오겠지요.”

천궁환은 이마를 찡그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생각할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총단주께선 우리와 거래를 하면서 그 점만 유념해주시면 됩니다.”

천궁환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굳이 반대할 이유 또한 없었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천화상단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정말 그게 조건의 전부냐?”

“그렇습니다. 아!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천궁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술을 씹으며 물었다.

“말해봐라. 뭐냐?”

혁무천은 말하기 전에 목량을 돌아다보았다.

“천수화가 갇혀 있다고 했지?”

목량의 얼굴이 미미하게 상기되었다.

“예, 대형. 그렇게 들었습니다.”

혁무천이 다시 천궁환을 바라보았다.

“천수화를 풀어주십시오.”

“…….”

“부상자도 치료할 겸 오늘 하루 청풍객잔에 머물 겁니다. 천소명과 천수화에게 밥 한 끼 살 테니 저녁에 오라고 전해주십시오.”

계속된 혁무천의 엉뚱한 말에 천궁환은 뭐라 대답도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이네 마네 했던 사이 아닌가.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그보다는 천구명이 더 발끈했다.

“이보시오, 무 장주! 지금 아버님을 농락하시겠다는 거요?”

“내 말이 농담처럼 들렸나?”

“그게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시오?”

“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

“천소명과 천수화는 어쨌든 내가 마음을 열어줬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부친과 싸웠으니 미안한 마음이 있을 뿐이야. 그게 전부다. 됐나?”

혁무천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전각을 나가기 전에 천궁환에게 말했다.

“우리 무원장과의 사업적인 일에서 그 두 사람을 천화상단 대표로 했으면 하는데, 생각이 있으시면 보낼 때 답도 함께 보내주십시오.”

 

***

 

천화상단을 나선 혁무천은 청풍객잔으로 돌아갔다.

사망자 넷. 부상자가 사오십 명쯤 되었다. 대부분 경상이었지만 중상에 가까운 부상을 당한 사람도 열 명 가까이 되었다.

목량은 일단 점소이를 불러서 제남의 의원 셋을 데려와서 부상자를 치료하게 했다.

그리고 천신명을 천화상단에 데려다주었다.

 

오시쯤 되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대충 정리되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는 오랜만에 느긋한 휴식을 취했다.

혁무천도 몇 사람과 마주 앉아서 차를 즐겼다.

“오빠, 그 종이 열 장이 정말 은자 천만 냥이에요?”

“가짜가 아니라면. 그런데 설마 천화상단이 가짜 전표를 줬겠냐?”

“천화상단이 천하제일상가라는 걸 말로만 들었지, 진짜 천만 냥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솔직히 나도 한 번에 전부 내놓을 줄은 몰랐다. 백만 냥쯤 내놓고 나머지를 나누어서 내놓겠다고 하면 이자를 받으려 했는데. 그럼 이자만 해도 얼마야?”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천만 냥을 뜯어내놓고 이자 타령이라니.

율이명이 물었다.

“그럼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천만 냥을 내놓으라고 한 건가?”

“한번 질러본 거지요. 사실 처음에는 천만 냥을 불렀다가 오백만 냥까지 내려갈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말하는 투가 있는 것 같지 뭡니까. 그래서 밀어붙인 겁니다.”

“…….”

모두들 입을 벌렸다.

배포 하나는 천하제일이었다.

“저, 대형. 그런데 황하 이북은 왜 천화상단에게 순순히 양보한 겁니까?”

속으로 혀를 내두른 목량이 넌지시 물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황하 이북까지 손을 뻗치기에는 아직 조직적으로 무리야.”

목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대형 말씀이 맞습니다.”

“차라리 천화상단에게 맡겨 놓고 이익만 공유하는 게 나아.”

“아……!”

목량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혁무천이 양보한 진정한 이유를 눈치 챈 것이다.

대형은 양보한 것이 아니었다.

천화상단의 조직망을 굴려서 이익을 취하겠다는 뜻.

천궁환도 물건만 가져오면 황하 이남은 무원장이 알아서 팔 테니, 중간에서 이익을 남길 수 있어 불만이 없을 것이다.

황하 이남의 물건을 황하 이북에 팔면서 이익도 챙길 수 있고.

도대체 그 긴박한 순간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그건 그렇고, 풍마문에 연락해서 정은맹과 정혈단의 상황을 알아봐라.”

“예, 대형.”

 

신시 무렵.

철명군과 중리안이 혁무천을 찾아왔다.

그들의 정체를 안 무원장 사람들은 바짝 긴장했다.

특히 철명군의 장대한 체구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엄은 취광마도 마용산조차 기가 죽을 정도였다.

혁무천이야 웃으면서 그들을 반겼지만.

“어서 오십시오.”

철명군과는 이미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중리안이 따라온 것이 의외일 뿐.

“설마 일을 그렇게 처리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철명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혁무천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래도 천궁환이 멍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장사꾼답게 계산이 빨랐던 거지요.”

“하긴, 모든 걸 잃는 것보다는 절반이라도 챙기는 게 이득이지.”

“결정은 하셨습니까?”

그때 은설이 직접 차를 들고 와서 따랐다.

철명군이 그녀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마디 했다.

“좋은 아이군.”

“좋게 봐줘서 고맙습니다.”

“하긴 네 곁에 있는 아이인데 오죽할까. 나중에 새끼 생기면 나한테 하나 맡겨라.”

“…….”

갑작스런 철명군의 말에 혁무천의 입이 달라붙었다.

은설도 얼굴이 빨개졌고.

“싫냐?”

“아, 아닙니다. 저야 좋습니다만…….”

혁무천이 말꼬리를 끌며 은설을 봤다.

은설이 미소를 지으며 포권의 예를 취했다.

“미리 감사드려요.”

철명군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들이 왜 모를까.

훗날 자식이 생기면 제자로 삼겠다는 뜻. 자식이 철명군 같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최상의 복이었다.

철명군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네가 그렇게 하겠다니, 나도 네 부탁을 받아들이마.”

“감사합니다.”

내기에서의 부탁은 다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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