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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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3화
293화
그 시각.
섬 안쪽 전각 안. 수왕전에서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패퇴한 수룡방 놈들 힘만으로는 황하상선을 칠 수 없어. 그렇다면 다른 놈들이 합류했다는 건데…… 무원장인가?”
천신명이 나직하게 혼잣말 하듯 말했다.
그의 앞쪽에는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사십 대 중년인 둘과 삼십 대 중반의 장한 둘.
그 중 사십 대 나이에 눈초리가 사나운 중년인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마룡성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천화 오대 중 수경대 대주 구경중이었다.
“훗, 마룡성 따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소.”
“하지만 무원장에서 무사들이 대규모로 움직였다는 보고는 아직 없었지 않습니까?”
“어쩌면 감시망이 무너졌을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황하상선이 저놈들 손에 넘어갔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사십 대 중년인 중 뾰족한 턱을 지닌 자가 말했다.
“아마 다음 목표는 이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공자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천신명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비천의 오당 중 구화당 당주 호백승. 그는 삼태상 바로 아래에 있는 간부로 이곳에 있는 비천 무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곳은 황하상선이 아니오. 무원장에서 핵심고수들이 나서지만 않았다면…….”
그때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적이다! 적이 섬에 상륙했다!”
천신명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앞쪽에 앉아 있던 네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이 온 것 같소, 대공자.”
수경대 대주 구경중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신명이 눈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나가 보지요.”
섬이 칠팔 장 정도 남았을 때 배 밑이 바닥에 닿았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날려 섬으로 날아갔다.
단숨에 섬에 내려선 사람들은 곧장 수룡방 총단을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혁무천과 비룡단이 선두에 서고, 검마보가 좌측을, 무원장 고수들이 우측을 맡았다.
곳곳에 켜진 등불과 화톳불로 인해 목표물을 찾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혁무천과 삼백여 무사들이 총단으로 다가가자, 총단 안에서도 무사 수백 명이 쏟아져 나왔다.
“웬 놈들이냐!”
“멈춰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혁무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대화를 나누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싸움이 끝난 뒤에 해도 되었다.
“공격하시오.”
무심한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좌우와 후면의 삼백여 무사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장대한 체구의 장대산과 철호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천신명은 침입자들의 선두에 선 자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무천! 그가 왔구나!”
좌우에 서 있던 호백승과 구경중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저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자 중 하나인 무원장주 무천이 직접 나섰다.
그렇다면 무원장의 정예들이 모두 나섰다는 뜻.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은 밤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일. 구경중이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전력을 다해서 막아라!”
호백승도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쳐라!”
천신명도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았다.
“오냐, 무천!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선두에 선 비룡단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무너뜨렸다.
화르르르르.
귀원이 손에 쥔 뭔가를 앞으로 뿌리자, 화톳불의 불길이 커지면서 사방이 환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커진 불길이 화룡처럼 쭉 뻗어나가더니 전방에 있던 무사 넷을 덮쳤다.
“으헉!”
“피해!”
“사술이다!”
귀원의 술법을 처음 대해본 무사들은 놀라서 귀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귀원은 술법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다. 무공 역시 절정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두 자 길이 짧은 검을 뽑아든 그는 당황한 무사들을 공격해서 단숨에 셋을 쓰러뜨렸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귀원 쪽으로 쏠린 사이, 다른 곳에서는 천화상단의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압권은 장대산이었다.
그의 커다란 장봉은 일류고수 이하의 무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크기가 컸고 위력도 강력해서 일 장 떨어진 곳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공력까지 늘어서 가히 천장(天將)의 위세가 아닐 수 없었다.
한편, 혁무천은 천신명과 마주섰다.
“천신명, 너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뭔 개소리냐, 무천!”
“첫째는, 천수명을 네 손으로 죽였다는 것이지.”
“허, 헛소리 마라! 죽이긴 누가 누굴 죽여?”
“둘째, 나를 견제하기 위해 수룡방을 친 거다.”
“흥! 네놈이 뭐가 대단해서 견제한단 말이냐!”
“그리고 셋 번째는…… 도망가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지.”
순간, 혁무천의 전신에서 가공할 무형의 기운이 피어났다.
천신명은 막 반박하려다가 숨이 턱 막혀서 이를 악물었다.
‘뭐, 뭐야? 이놈…….’
혁무천이 그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너도 그 힘을 얻었겠지?”
막연한 혁무천의 말에 천신명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도 혁무천이 말한 ‘그 힘’이 뭘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느냐?”
“그 힘을 얻은 사람에게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더군.”
“흥! 그럼 내가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겠군.”
스르르릉.
천신명이 쥐고 있던 검에서 영롱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혁무천은 그걸 보고도 냉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 힘이 대단하긴 하지만, 오늘 너를 지켜주진 못할 거다, 천신명.”
무심한 어조로 말을 마친 혁무천은 천망검을 들며 발끝으로 땅을 밀었다.
남은 거리 이 장.
그 거리가 찰나 간에 지워지며 검첨이 천신명을 향해 뻗어갔다.
“어림없는 짓!”
천신명이 일갈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는 ‘그 힘’을 얻은 후 자신이 지닌 공력을 두 배로 폭주시킬 수 있었다.
동일한 공력을 지닌 자라면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약간의 공력 우위를 지닌 자들 역시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
상대는 의아함과 의문을 품었지만 그의 비밀을 모른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무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보다 두 배의 공력이 아니라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죽여버리겠어!’
콰르르릉!
굉음이 울리면서 두 사람의 검세가 정면으로 뒤엉켰다.
두 사람 사이에서 기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두 사람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서로의 심장과 목을 노렸다.
눈 깜짝할 순간에 사오 초의 공방이 벌어졌다. 초식 대결이라기보다는 힘 대결처럼 보일 정도로 광폭한 격돌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검이 석 자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겨눈 채 멈췄다.
우우우우웅.
두 사람의 검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맞서면서 구(球)처럼 부풀었다.
묵색을 띤 기운과 푸른색을 띤 기운이 뒤섞였다.
그도 잠시, 직경 여섯 자 크기로 부푼 기운이 폭발하듯 터졌다.
쾅-!
뒤로 이 장 정도 튕겨나간 천신명이 이를 악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목이 막혀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런데 무천이란 놈은 자신보다 충격이 덜한 듯했다.
‘어떻게……?’
혁무천은 세 걸음 물러선 뒤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천신명을 향해 검을 뻗었다.
뇌룡섬전세.
천망검의 검첨에서 강기가 뇌전처럼 뻗어나갔다.
천신명은 사력을 다해서 검을 들어 혁무천의 검세에 맞섰다.
콰광!
다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천신명의 몸뚱이가 훌훌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후 서너 번 더 뒹굴었다.
“대공자!”
호백승이 악을 쓰듯 외쳤다.
그는 천신명을 도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능력으로는 지천주의 앙천마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천위는 싸움에 나서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쓰러진 천신명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될 것을 뭐 그리 욕심을 냈던 것이냐.’
그와 천신명은 어릴 적 함께 놀면서 지냈다. 그러나 적자 장손과 방계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커서는 사랑하는 여인마저 빼앗겨야 했다. 상대가 적자 장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천위를 잊지 못한 그 여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미안하다, 수매. 나는 신명을 용서할 수가 없구나.’
천화상단 무사들의 숫자는 무원장에 비해 세 배나 되었다.
하지만 숫자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무원장 쪽에는 이정과 전교, 마용산, 율이명, 송비, 동대안, 은설, 호광 등 일당백의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만 해도 열 명 가까이 되었다.
그들 외에도 개개인의 대결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고수들이 무원장 쪽에 훨씬 많았다.
혁무천은 빠르게 무너지는 천화상단 무사들을 놔둔 채 천신명 앞에 섰다.
천신명은 안간힘을 다해서 상체를 일으켰지만, 두 다리로 버티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두 팔을 파르르 떨며 몸을 지탱한 그는 분노가 타오르는 눈으로 혁무천을 올려다보았다.
“죽여라, 무천.”
“천신명, 나를 원망할 것 없다. 네 운이 여기까지인 걸 어쩌겠느냐.”
혁무천은 좌수를 뻗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풍을 튕겼다.
퍼버벅.
혈도가 찍힌 천신명의 몸이 풀썩풀썩 튀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단전이 파괴된 이상 흩어진 공력은 영원히 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목숨을 끊지 않은 것도 천소명과 천수화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수룡방의 주인이 다시 바뀌는 데까지는 기껏해야 이 각이 걸렸을 뿐이었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이어서 천화상단 무사들은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결국 도주를 포기한 백여 명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아침이 되자 전날 밤의 치열한 싸움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습되지 않은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고, 바닥은 검붉은 물감을 뿌린 듯했다.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서 속이 약한 사람은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혁무천은 날이 밝자 섬을 나섰다.
이미 수룡방의 이후에 대해서는 반동사와 이야기를 마친 터였다.
수룡방은 이제 황하상선과 하나가 되어서 새로운 미래를 펼쳐 가면 된다.
***
무원장 무사들은 만수장원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십여 명씩 나누어져서 제남을 향해 이동했다.
혁무천은 비천단과 동행했다. 지천주와 천위, 이정, 전교도 비천단에 속한 상태였다.
미시 무렵, 평음을 지나갈 때쯤 혁무천이 천위를 보며 말했다.
“천 형은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돼.”
천위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백경만 상대할 생각이니까.”
사랑하던 여인을 천신명과 맺어지게 만든 사람이 백경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임무를 줘서 다른 곳에 보내지만 않았어도 언연수는 천신명의 여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야 백경이 천신명 때문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내보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후였다.
그 후 지금까지 심장을 에는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태상 백경. 그에게 자신이 겪은 아픔을 그대로 돌려주리라.
그런다고 사랑하는 여인이 살아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혁무천은 천위에게 남모를 사연이 있다는 걸 눈치 챘지만 묻지 않았다.
***
혁무천이 제남으로 가고 있을 때쯤, 천화상단 내에서는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넓은 천화대전에 천화상단 총단주 천궁환과 비천 삼태상의 태두 철명군, 단 두 사람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철명군은 나이가 칠십 대임에도 겉으로는 오십 대로 보일 정도였다.
약간 거무스름한 피부에 건장한 체구, 은연중 흘러나오는 위엄은 그가 왜 삼태상 중 첫째인지 알게 해주었다.
“무천이란 자가 오면 처리해 달라?”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