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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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92화
292화
혁무천은 그들 중 둘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수룡방에 갔을 때 본 자들이었다. 황하를 지배하다시피 한 수룡방의 전선(戰船) 선장이었던 자들.
세 사람 중 가운데 있던 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수룡방의 반동사요.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오랜만이오. 무천이오.”
“이런 꼴을 보여서 면목 없게 되었소.”
“상대가 천화상단이면 수룡방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겠지요. 다만 방주께서 놈들에게 당한 것이 아쉽군요.”
“방주께서 목숨을 던져 막지 않았다면 우리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거요.”
“남은 인원은?”
“모두 합하면 칠팔백 명은 되지 않을까 싶소.”
수룡방이 비록 천화상단에 무너졌다지만 황하 전역에 많은 수하들이 있었다.
혁무천이 만수장원에 온 것은 바로 그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배는?”
“열세 척이 남았소.”
스물네 척 중 열세 척.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가 남았다.
“천화상단에 대가를 받아낼 생각이오. 이제부터 우리와 손발을 맞춰주면 좋겠소만.”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방의 간부들과 회의를 했소. 무천 장주께서 나서주신다면 우린 무조건 따르기로 했소.”
말하는 반동사의 눈에서 복수의 열망이 활활 타올랐다.
수룡방 사람들은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날이 많다 보니 동료애가 유달리 강했다.
때문에 복수의 열망도 컸다.
하지만 천화상단의 위세는 그들에게 무너뜨릴 수 없는 철벽이었다. 그런데 무천이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자들도 손에 힘을 주며 포권을 취했다.
“우리를 이끌어주시오!”
“놈들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겠소, 무 장주!”
혁무천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던 터였다. 특히 배와 배를 운영하는 재주는 천화상단의 숨통을 조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혁무천이 수룡방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첫 번째 목표는 황하상선이오.”
황하상선을 잃으면 황하에 대한 주도권도 잃게 된다. 천화상단으로서는 혈맥이 막히는 거나 다름없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 수룡방 간부들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황하상선만 제대로 처리해도 천화상단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거요.”
혁무천이 마저 말했다.
“오늘 밤 안으로 일행들이 도착할 거요. 황하상선을 공격할 배에 그들을 나누어서 승선시킬 생각이오.”
황하상선에 천화상단 고수들이 타고 있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수룡방 간부들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수룡방이 천화상단에 가장 밀리는 부분이 무력이다.
무원장에서 고수들을 동행시켜 준다면 부족한 무력이 채워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하실 거요?”
“내일부터.”
***
황하의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옷깃을 파고든 찬바람에 몸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날씨 더럽게 춥군.”
뱃머리에서 투덜거리던 장한은 몸을 움츠리며 선실로 향했다.
하지만 곧 선실에 무사들이 가득하다는 걸 떠올리고는 짜증을 냈다.
“에이 씨, 이런 날에 누가 우릴 공격한다고.”
평상시에는 보표가 열 명 정도 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삼십 명으로 늘어났다. 망한 수룡방 놈들이 상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일반 선원이었다.
전에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누워서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선실이 좁기도 했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낮잠이나 퍼잔다며 무사들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은 짐을 부리지도 않고 쉬기만 하면서.
‘지미, 지금이라도 무공을 익혀야 하나?’
하지만 자신의 몸매를 살펴본 장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참자, 참아. 이 절구통 같은 몸으로 무슨 무공.”
선실로 들어가기를 포기한 장한은 다시 선수로 가서 쌓아 놓은 짐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이 막혀서 그럭저럭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 각쯤 지났을 때였다.
하류 쪽에서 올라오는 배가 자신이 탄 배 쪽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 아닌가.
“저 새끼들이 죽으려고!”
그때만 해도 설마 진짜로 자신들을 향해서 오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어?”
장한은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다.
동시에 선창 어딘가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이 새끼들아! 미쳤냐!”
“뱃머리를 돌려!”
하지만 상대측 배는 뱃머리를 돌릴 생각이 없는 듯 똑바로 전진했다.
“부딪친다! 조심해!”
“방향을 틀어!”
이제는 상선 쪽에다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가 비키지 않으면 이쪽에서 비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거리가 십 보 안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멍하니 구경하던 장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대 측 배 선창에 수십 명이 나타났다. 모두 무기를 든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서 상선 쪽으로 날아들었다.
“적이다!”
“막아라!”
상선 위로 날아든 자들은 벙어리라도 된 듯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도검을 휘둘렀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피가 튀었다.
장한은 도망가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눈알만 굴렸다.
자신처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이럴 때 죽은 척,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싸움은 의외로 일찍 끝났다.
선실에 있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들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지거나 강물에 빠졌다.
장한은 바닥에 대고 있는 귀를 통해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눈을 감고 죽은 척했다.
툭툭.
뭔가가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말소리도 들렸다.
“안 죽은 거 알고 있으니까 일어나.”
동대안이 장한의 머리를 발로 콕콕 찍으며 말했다.
장한은 그래도 죽은 척, 숨도 멈추고 버텼다.
“선택은 네가 해. 배를 정리하는데 도와주면 목숨을 살려주지. 보수도 줄 수 있어. 아니면 그냥 목을 잘라…….”
장한은 벌떡 일어났다.
“도와드립죠! 뭐든 말만 하십쇼!”
***
황하를 오르내리던 황하상선 배들이 하나둘 운행을 중지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흘렀을 때, 천화상단에 비상이 걸렸다.
탕!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친 천궁환이 눈을 치켜떴다.
“뭐야?! 황하상선이 뭐가 어떻게 돼?”
보고를 올리던 천구명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상선 스물두 척이 수적에게 당했다 합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혹시 수룡방이더냐?”
“현재로선 그놈들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방주도 죽고 쓸 만한 놈들은 저번에 대부분 제거된 걸로 아는데, 그놈들이 어찌 우리 상단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황하상선을 납치할 수 있단 말이냐?”
“아무래도…… 무원장 놈들이 끼어든 것 같습니다.”
“무원장?”
천궁환은 그 한마디에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무원장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아직 아무런 연락도…….”
쾅!
천궁환이 다시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두 쪽 나고 다리가 부러지며 주저앉았다.
“당장 황하상선을 공격한 놈들에 대해서 파악해 봐!”
“예, 아버님.”
천구명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돌아섰다.
악 다물린 이에서 으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젠장!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 움직이다니.’
천소명은 그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사소한 일에도 곧잘 흥분하곤 했다.
아마 무천과의 만남 이후였던 것 같다.
‘후우, 처음부터 무조건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였어야 했어.’
하다못해 적으로 삼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복우산 정사대전에 연관되면서 그와 적이 되고 말았다.
‘수화 누님이라도 있었으면…….’
천수화는 며칠 전 장원을 몰래 빠져나가려다 잡혀서 갇혔다.
그 일은 천소명도 의외였다.
수화 누님은 무천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장원을 나가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아버님의 호위에게 붙잡혔다.
아버님은 수화 누님의 움직임을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물론 의심 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화 누님은 떠나려 하기 전에 한 사람을 만났다. 상화 누님을.
‘정말 상화 누님이 아버님께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그런데 왜?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다.
“소명아.”
천궁환이 천소명을 불렀다.
정신을 가다듬은 천소명이 대답했다.
“예, 아버님.”
“너는 내가 너무 과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느냐?”
“아버님께서 무천이란 사람을 그만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애비는 살아오면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도. 그런데 그자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걸린다.”
정말 의외였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니.
말은 마음에 걸린다고 했지만, 천소명은 그 말이 곧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서 나에게 비천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웃고 넘겼지. 비천이 어떤 곳인데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가 해결해?”
“…….”
“차라리 그때 그의 조건을 들어주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도 없었을 텐데…….”
천소명은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했다.
아버지의 후회하는 말도 처음이었다. 이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와 우리는 어느 한쪽이 숨을 멈추기 전에는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
천소명이 그 말을 듣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지금이라도 그와 협상을 하면…….”
“둘째가 죽은 순간 협상의 가능성도 사라졌느니라.”
“아버님, 솔직히 수명 형님을 그가 죽였다는 걸…….”
천궁환이 손을 들어서 천소명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천소명의 두 눈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그가 죽였다. 그래야만 한다. 알겠느냐?”
천소명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도 둘째 형을 그가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어쩌면 누가 죽였는지도 알지 모른다.
알면서도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모른 척하고 있을 뿐.
천소명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과연 지금과 같이 사는 게 행복일까?’
돈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일까.
난생 처음으로 행복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
황하상선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상선에 타고 있는 무사들로서는 무원장의 무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 사흘 만에 황하상선을 운행 불능으로 만들어버린 혁무천은 다음 목표물을 향해 움직였다.
그가 노리는 두 번째 목표물은 다름 아닌 수룡방 총단.
이제는 천화상단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천화상단이 발칵 뒤집힌 그날.
미시(未時:오후1시~3시) 초(初)에 만수장원을 출발한 혁무천 일행은 석양이 지기 전에 동평호에서 삼십 리 떨어진 양산(梁山-수호지의 양산박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수룡방의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혁무천 일행을 안내했다.
혁무천 일행은 마룡성에서 온 무사까지 합쳐져서 모두 삼백 명 정도 되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동평호 가장자리 갈대숲에 일곱 척의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배는 오륙십 명이 타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한 척에 사십여 명씩 나누어 탄 배는 곧장 수룡방 총단이 있는 섬을 향해 나아갔다.
어둠이 점점 짙어져서 이제는 섬도 짙은 먹물의 농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섬에서 하나둘 켜진 불빛 덕분에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