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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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82화
282화
홍택은 눈을 깜박였다.
“무, 무천?”
혁무천은 검을 놓아주고 팽조환을 쳐다보았다.
그때 바깥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원대다!”
“비룡단이 왔다!”
혁무천은 안색이 급변하는 팽조환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정은맹이 마도를 친다며 기껏 공격한 곳이 마룡성이라니, 실망이오.”
“이놈! 마룡성은 마도 놈들이 아니더냐?”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는 말 아쇼?”
“…….”
“마룡성은 구룡상단에 속한 곳이어서 운송과 보표를 주로 하지요. 그래서 이번 정사대전에도 뛰어들지 않았소. 그런데 하고많은 마도세력 중 다른 곳은 다 놔두고 마룡성을 공격하다니. 웃기지 않소?”
팽조환의 얼굴이 벌게졌다.
사실 그도 마룡성 공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마교, 귀천교, 철혈마련 등 팔대마세의 정은맹 견제를 위한 거점도 거리 면에서 마룡성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맹주는 거리가 가깝다며 마룡성 공격을 지시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맹주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나섰다.
그런데 마룡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고, 이제는 무천과 비룡단마저 달려왔다.
‘젠장!’
하지만 그는 벽력신도 팽조환. 정은맹의 부맹주이며 도에 관한한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 아닌가.
자존심 때문에라도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잔소리 마라!”
팽조환은 버럭 고함을 내지르고 혁무천을 공격했다.
쉬아아앙!
그가 휘두르는 벽력도에서 푸르스름한 강기가 뻗어 나왔다.
혁무천은 천망검을 뽑아들고 정면으로 마주쳐갔다.
그물처럼 펼쳐진 도강이 허공을 갈가리 찢으며 밀려드는 게 보였다.
혁무천은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냉정하게 벽력도의 도망 사이로 천망검을 밀어 넣었다.
천망검과 벽력도가 뒤엉키고,
쩌저저저정!
떠더덩!
십여 번의 충돌음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 천망검이 벽력도를 휘감으며 한쪽으로 밀어냈다.
가가가각!
팽조환은 밀리지 않으려고 공력을 십성 끌어올려서 벽력도에 주입했다.
그러고는 오히려 혁무천의 검을 밀어내려 했다.
순간, 천망검에서 피어난 검강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팽조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작심하고 펼친 일도가 파훼되고 거대한 검영으로 눈이 가득 찼다.
“타아아앗!”
본능적으로 기합을 내지른 팽조환은 전력을 다해서 벽력진천도를 펼치며 혁무천의 검세를 차단했다.
콰광!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팽조환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다급히 중심을 잡은 그는 칼을 앞세우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가슴이 얼얼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자신이 도를 제대로 쥐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무천과 함께 온 자들이 가세한 후의 상황이었다.
그들에 의해 정은맹의 한쪽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때 한줄기 전음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라도 그냥 떠난다면 우리도 오늘 일을 잊을 거요. 결정은 귀하가 내리시오. 수하들을 다 죽게 놔둘 건지, 아니면 이쯤에서 물러날 건지.>
전음의 주인은 혁무천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혁무천을 노려보던 팽조환은 입술을 깨물고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혁무천은 팽조환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철수해라!”
팽조환이 소리치자 사방에서 호응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
“정은맹 무사들은 철수하라!”
홍택은 혁무천이 팽조환을 놔주는 것처럼 보이자 인상을 썼다.
“왜 저놈들을 그냥 보내는 건가?”
“안 보내면, 정은맹과 끝장을 보고 싶소? 이긴다 해도 수하들이 다 죽을 텐데?”
“응? 뭐, 그건 아니지만…….”
홍택도 일파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계속 싸울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비룡단 덕분에 겨우 위기를 면했을 뿐, 시간이 더 지나면 마룡성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망하는 거다.
“사상자부터 살펴보시오. 성주도 어깨 지혈하고.”
그러고 보니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으으음, 알았네.”
죽은 사람만 이백 명은 될 듯했다.
부상자는 셀 필요도 없었다. 부상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평상시라면 초상집 같은 분위기여야 했다. 하지만 마룡성 무사들은 승리자라도 된 것처럼 밝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사실, 승리한 거나 다름없었다.
팔대마세를 상대로 버텨온 정은맹 아닌가. 그들에게 공격 받고 이 정도 피해로 끝났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씨바, 정은맹도 별 것도 아니잖아?”
“괜히 떨었네.”
“헛소리 말고 부상자나 한쪽으로 옮겨라!”
혁무천은 내실로 들어가서 홍택과 마주앉았다.
홍택도 어깨를 천으로 감싼 상태였다. 안색이 창백한 걸 보니 내상도 제법 심한 듯했다.
“도와줘서 고맙네.”
“무사들이 무공을 열심히 수련한 덕분에 위기를 넘겼소만, 당분간은 활동을 금하고 힘을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 거요.”
홍택이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후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정은맹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하지만, 피해가 너무나 컸다. 간부들도 절반은 죽거나 부상이 심했다.
외부에 나간 무사들이 돌아온다 해도 오백 명이나 될까?
마도십문에 이름을 올리는 게 창피할 정도의 무력이었다.
“전열을 정비하고 인원이 보강될 때까지, 무원장에서 온 무사들을 마룡성에 남겨놓고 가겠소.”
“무원장 무사들을 남겨 놓는다고?”
홍택이 흠칫하며 반문했다.
무원장에서 온 무사들은 비룡단만이 아니었다. 이백 명 정도의 무사들이 함께 왔다.
그들의 무력은 결코 마룡성 무사들에 비해 약하지 않았다.
왠지 찜찜했다.
이러다 먹혀버리는 것 아닐까?
“왜, 싫소?”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나는 우리 구룡상단을 형제처럼 생각하는데, 성주는 그런 마음이 아닌가 보군요.”
“그럴 리가! 하하, 나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네.”
“설마 밥값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건……?”
“에이, 자네가 벌어준 게 얼만데.”
“그럼…… 혹시 내가 마룡성을 집어 삼키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요?”
정곡을 찔린 홍택은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뭐,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걱정 마시오. 그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무원장도 늘어나는 인원 때문에 고민인 판이오.”
“하, 하. 알았네. 내 어찌 자네를 오해하겠나.”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홍택을 보며 혁무천이 넌지시 말했다.
“사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마룡성의 독립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대신 무원장과 하나로 묶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소.”
“음?”
홍택이 흠칫했다.
하지만 혁무천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찻잔을 잡아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귀찮은 일도 많아질 것 같아서 접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홍택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묘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처럼 강호가 극도로 혼란스러울 때는 뱀대가리보다 용꼬리가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경 쓰지 말라 하니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그럼 쉬시오.”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돌아서는 그의 등에 대고 홍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생각은 해보겠네.”
“알았소. 정 그런 마음이시라면, 귀찮더라도 형제들을 위해서 제가 참아야지요.”
혁무천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홍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다음날 이른 아침.
운공조식을 행하고 있던 혁무천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기운을 갈무리하고 일어났다.
풍마문의 정보원이 찾아온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풍마문의 정보원이 열기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정혈단의 거처를 찾아냈습니다.”
“어디요?”
“창평 인근 계곡에 있는 사찰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인원은?”
“이백 명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도 계속 감시 중이오?”
“예, 장주.”
혁무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명령을 내렸다.
“철혈마련과 귀천교가 정혈단을 추적 중인 건 알 거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악사광과 우문척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시오. 무원장에서 보냈다고 하고.”
“예, 공자.”
“아, 이왕이면 시간을 똑같이 맞춰서 알려주시오.”
“예? 예, 알겠습니다.”
풍마문 정보원은 의아해 했지만, 곧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대답했다.
철혈마련과 귀천교의 소주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었다. 의문을 품어봐야 자신의 명만 짧아질 뿐.
***
점심 무렵, 악사광은 혁무천의 이름으로 전해온 소식을 접하고 즉시 간부들을 소집했다.
“정혈단 놈들의 위치가 파악되었소. 외부에 나가 있는 수하들이 있으면 모두 불러들이시오. 이 각 후 출발할 거요.”
부리나케 방을 나간 간부들은 수하들을 점검했다.
몰래 술 한 잔 할 겸 점심을 외부에서 해결하려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어떤 새끼가 나갔어? 잡아와!”
“술 처먹은 새끼, 늦게 오면 주둥이를 찢어버릴 거다!”
“빨리 모여!”
미시 정(未時 正: 오후2시), 오백여 명의 귀천교 무사대가 살기충천한 표정으로 장원을 나섰다.
***
비슷한 시각, 우문척도 철혈마련 간부들과 함께 방을 나섰다.
“창평 인근에 있다고?”
우문척이 묻자, 비천마단 삼대주 육종이 즉시 대답했다.
“예, 대공.”
무원장 쪽에서 정혈단의 위치와 관련된 정보가 들어왔다.
확인해볼 시간 여유가 없었다. 언제 놈들이 또 이동할지 몰랐다. 그 전에 달려가야 했다.
“귀천교도 알고 있나?”
악사광이 지휘하는 귀천교의 정혈단 추적대가 오십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그들도 바로 움직이겠군.”
우문척은 휘하 간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하들을 모두 준비시키시오.”
“굳이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문척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서 질문한 자를 바라보았다.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 철마당 당주 임광이었다.
그는 평소 우문척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련주의 장자라 하나 간부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문척보다 우문양이 철혈마련의 련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우문척은 임광을 향해 우수를 뻗었다.
갑작스럽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일장에 임광은 대처할 시간조차 없었다.
쾅! 소리와 함께 삼 장이나 날아간 임광이 데굴데굴 굴렀다.
좌우에 있던 간부들은 석상처럼 굳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우문척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정혈단이다. 잊지 마라. 적을 경시하는 순간 동료들이 죽어갈 것이다.”
“예, 대공!”
대답하는 간부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
사찰 안 불당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천주.”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양쪽 합해서 일천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마신은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갔다.
약간 열린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창문을 연 그는 저 멀리 계곡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곧 이곳이 지옥이 되겠군.”
아마 시뻘건 혈화가 계곡을 뒤덮으며 피어날 것이다.
“후후후후.”
사마신의 입가에 하얀 살소가 피어났다.
철저하게 이동 경로를 감추어서 애를 닳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도 놈들은 혈안이 되어서 자신들을 찾아 나섰다.
마음이 급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이다. 게다가 놈들은 정은맹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자신들이 고의로 정보를 흘렸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자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허운이 사마신의 등에 대고 물었다.
사마신은 천천히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
“놔두게. 누군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보다 정은맹은?”
그에 대해서는 제갈위군이 말했다.
“내부의 분란을 진정시키려고, 어제 팽 부맹주를 앞세워 마룡성을 공격했다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훗, 팽조환 체면이 말이 아니겠군.”
“이번에 마도가 큰 피해를 입는다면, 체면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인 공격에 나설 겁니다.”
“최대한 공멸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강호 전체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다.”
“예, 천주.”
그때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천주, 귀천교 무리가 십 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