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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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6화
276화
“정혈단이다! 막아!”
장원 안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악을 쓰듯 외치는 목소리에서는 공포마저 느껴졌다.
사방에서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베어진 머리가 땅바닥에서 굴러다녔다.
“으악!”
“물러서지 말고 놈들을 막아라!”
“크억!”
“으아아아아! 죽어라, 개자식들아!”
어둠을 뒤흔드는 처절한 비명과 악다구니는 일각이 지나서야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각이 지났을 때쯤에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해졌다.
그날 밤, 전마문이 혈해에 잠기고, 무사 육백여 명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공포에 질려서 일찌감치 도망친 오십여 명만이 목숨을 건졌을 뿐.
***
“뭐야?!”
박주(亳州)에 있던 악사광은 전마문의 멸문 소식을 듣고 대노했다.
전마문에 보낸 무사 사백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일천 무사 중 사 할에 이르는 무력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멸하다니!
그로서는 복우산에서의 손실보다 이번의 패배가 더욱 뼈아팠다.
정은맹의 맹주가 바뀌었으니 내부가 수습될 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다.
정혈단 역시 바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빗나가버린 것이다.
“놈들은 어디에 있느냐?”
보고를 올리는 전령이 잔뜩 긴장한 채 대답했다.
“전마문을 친 후 동진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온단 말이냐?”
“그게…… 이후 흔적이 끊겨서…….”
“모든 정보망을 가동해서 찾아내라고 해!”
“예, 소교주!”
악사광은 전령이 나가자 이를 갈았다.
평소 음침할 정도로 조용하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라 할 정도의 분노였다.
하지만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출행에서 우문척과 암중으로 경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사백이나 되는 무사들을 잃었으니…….
“빌어먹을! 우문척이 좋아하겠군.”
그때, 악사광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던 전독승이 넌지시 말했다.
“소교주, 무원장에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소?”
“무원장?”
“그들의 정보망은 본교에 뒤지지 않소. 어쩌면 놈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소?”
“그것도 괜찮은 방법 같군.”
무원장 주인인 무천이 소수의 고수들을 대동하고 백마궁을 쳤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무력이었다.
가깝게 지내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무천에게 사람을 보내시오.”
***
박주에서 남쪽으로 사백 리, 부양에 머물고 있던 우문척은 한나절 정도 늦게 전마문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전마문이 정혈단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고 조소를 지었다.
“악사광이 열 좀 받았겠군.”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언제 철혈마련 쪽도 놈들에게 당할지 몰랐다.
인정하긴 싫지만, 정혈단의 무력은 막강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강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주들의 무공이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와 대등할 정도라 했다.
물론 자신은 그들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이 넓은 대륙에서 항상 자신이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악사광에게 내가 만났으면 한다고 전해라.”
“예, 대공!”
전마문에 대한 보고를 올린 비천마단의 삼대주 육종은 예를 취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우문척이 이번에는 혈영에게 명령을 내렸다.
“혈영, 네가 무천에게 갔다 와야겠다.”
혈영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겨우 폈다.
그는 되도록 무천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와 엮인 일은 이상할 정도로 잘 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와 관련된 내기도 할 때마다 졌고.
하지만 주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예, 대공.”
“왜, 싫으냐?”
“아, 아닙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대공.”
***
혁무천은 자신을 찾아온 요문원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문원은 누가 봐도 기분이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혁무천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무천이 금적위를 죽이고 백마궁을 박살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놈 아닌가 말이다.
이런 놈에게 대들었으니…….
“소교주께선 장주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계시오.”
“본 장의 정보망을 이용해서 전마문을 친 정혈단의 위치를 찾아달라?”
“그렇소이다.”
“알았소. 중요 거래처의 부탁인데 들어줘야지요.”
“고맙소이다.”
요문원은 내심 안도했다.
철룡가에서의 일을 문제 삼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철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이번 도움으로 나중에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우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들은 전마문을 공격한 후 영흥 쪽으로 이동했소. 아쉬운 것은 한 시진 정도 추적했는데, 그들에게 들켜서 더 이상 추적하지 못했다는 거요.”
요문원은 눈을 홉떴다.
“영흥? 주구 쪽으로 가지 않았단 말이오?”
영흥은 동북쪽이다. 반면 주구는 정동 방향.
결국 정혈단이 향하는 목적지가 자신들의 예상과 다르다는 뜻이다.
“그렇소. 우리 쪽 판단에 의하면, 그들은 주구 쪽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리는 것 같소. 귀천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소만.”
“말씀해주셔서 고맙소이다. 그 사실을 바로 소교주께 전해야할 것 같소. 그럼 이만.”
요문원은 서둘러서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섰다.
한시가 급했다.
혁무천은 요문원이 떠나자, 목량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풍마문과 개방에 연락해서 정혈단의 단주가 속한 무리들이 어디에 있는지 최대한 빨리 찾아보라고 전해라.”
“예, 대형.”
정혈단은 지금까지 최대 사 개조로 나누어져서 마도문파를 공격했다.
이번에 전마문을 친 자들은 그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단주도 없었다.
즉 주력은 아니라는 뜻.
어쩌면 단주가 속한 무리는 또 다른 목표물, 좀 더 큰 목표물을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
그날 어스름이 밀려들 무렵, 이번에는 혈영이 무원장에 찾아왔다.
혁무천은 교대로 찾아오는 그들을 보고 실소가 나왔지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어쨌든 큰 거래처니까.
“어쩐 일이오?”
“대공께서 보냈소.”
“우문척이?”
“그렇소.”
혈영은 이상한 곳에서 희열을 맛보았다.
무천이 우문척에게는 반말을 하면서 자신에게는 반존대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선지 혁무천의 얼굴이 전보다 더 잘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대공께서는, 과거에 한 약속의 대가로 정은맹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으면 하시오.”
전에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단,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만 받아들이겠다고 했었다.
“우문척 그 친구, 욕심이 많군.”
“좀 그런 편이지요.”
혈영의 입에서 농담조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항상 차갑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표정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우문척에게 핀잔을 주는 말이 이렇게 멋지게 느껴질 줄이야.
하지만 곧 표정관리를 하며 짐짓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공께서는 그리 말씀하면 아실 거라 했소.”
“하긴, 약속한 것이 있으니 지켜야겠지. 가서 우문척에게 말하시오. 이번에 새로 맹주가 된 신도명산이 외세를 끌어들인 것 같다고.”
“외세요?”
“인원은 이삼천 명 정도로 보이는데, 복주의 남황궁일지도 모르오. 좀 더 자세한 걸 알아보고 있으니, 확인되면 알려준다고 하시오.”
사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알려준 것이 아니다.
신도명산과 남황궁을 견제하기 위해서 알려준 것일 뿐.
자신의 말을 듣고 우문척이 남황궁을 견제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혈영에게는 엄청난 정보였다.
“알겠소. 그리 말씀드리겠소.”
***
사마진웅은 보던 책을 놓고 시비가 차를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쌉쌀한 향기가 김을 따라서 모락모락 피어났다.
“고맙다.”
시비는 사마진웅의 말에 멈칫했다.
“아닙니다, 맹주님.”
“허허허, 나는 이제 맹주가 아니니라.”
차를 다 따른 시비는 입술을 깨물며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사마진웅은 찻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시비는 그 모습을 보면서 몸을 돌렸다.
얼마나 입술을 세게 깨물었는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맹주님. 하지만 저는 살아야 해요. 제가 죽으면 엄마와 동생들도 굶어죽을지 몰라요. 정말 죄송해요.’
사마진웅은 시비의 뒷모습을 잠깐 지켜본 후 차를 마셨다.
전이나 조금도 다름없는 맛이었다.
몇 모금 마시자 목구멍에서 칼칼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거북하지도 않았다.
천천히 차를 비우며 책을 보던 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연기처럼 창문을 넘어오는 게 보였다.
“웬 놈……?”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마진웅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를 악다문 그는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며 눈을 치켜떴다.
언뜻 복면을 한 자의 눈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쳐진 게 보였다.
‘혹시……?’
문득 어떤 가정이 떠올랐다.
자신이 맹주 직위에서 밀려날 때부터 우려했던 가정이었다.
그 가정이 현실로 드러난 듯했다.
“네놈은……!”
그때 순간적으로 다가온 검은 복면인이 번개처럼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한 자 다섯 치 길이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사마진웅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뒤로 물러나며 일장을 내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래도 마지막 일수가 통했는지 다가오던 자가 물러서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사마진웅은 남은 힘을 다 끌어올려서 뒤로 구르며 방문을 밀쳤다.
방문 밖에 있던 호위무사들이 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맹주님!”
“자객이다!”
호위무사들이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일격을 실패한 검은 그림자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몸을 날렸다.
호위무사들도 뒤를 따라서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 한 사람이 검은 그림자의 머리 위를 덮치는 게 보였다.
“감히 사마 대협을 해치려 하다니!”
그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일장을 내갈겼다.
퍽!
강맹한 격공장이 검은 그림자의 머리에 떨어졌다.
머리가 반쯤 부서진 검은 그림자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한쪽으로 나뒹굴었다.
그즈음, 주방의 한쪽 구석에서도 시비가 눈매를 파르르 떨며 죽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진 지 일각쯤 지났을 때, 만가장 구석진 곳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서구는 하늘을 한바퀴 맴돈 뒤 곧장 남쪽으로 날아갔다.
***
혁무천은 아침 일찍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마호걸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마호걸이 그토록 다급하게 달려와서 보고할 만한 내용은 한두 가지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숨을 가라앉힌 마호걸이 말했다.
“정은맹 전 맹주 사마진웅이 자신의 방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급전으로 왔소.”
“자객?”
“그렇소.”
“그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을 아무도 몰래 뚫고 들어가서 사마 맹주를 공격했다니, 대단한 자객이군.”
왠지 꼬인 것 같은 혁무천의 목소리에 마호걸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자객에게 당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자객이라 하면 자객이겠지요. 누구를 위해 움직였느냐가 문제일 뿐.”
마호걸은 혁무천의 망에 머리가 환하게 트이는 듯했다.
“그렇구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맹주는 어떻게 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