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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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74화
274화
그들이 나타나자, 백마궁 무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한 채 뒤로 물러섰다.
그때 혁무천이 허공을 훌훌 날아서 은설 앞에 내려섰다.
“빚을 받으러 왔지.”
“빚?
금적위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너는…… 무천?”
금가휘가 혁무천을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혁무천도 금가휘를 바라보았다.
“은자추란 분을 모르진 않을 거야.”
금가휘가 왜 모를까. 그 일 때문에 백마궁이 한바탕 뒤집어졌는데.
“은자추는 네가 빼돌렸지 않느냐?”
“맞아. 그리고 고문의 후유증 때문에 결국 돌아가셨지.”
“흥! 고작 그런 자 때문에 우리와 대적하겠다는 거냐?”
“고작! 고작 그런 자?!”
은설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금가휘를 노려보았다.
금가휘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너는 무창의 황학루에서 만났던 그 계집이구나.”
“그래, 나다! 네놈이 고작 그런 자라고 한 사람의 딸!”
“응? 그래?”
“네놈들을 죽여서 아버지의 한을 풀어줄 것이다!”
은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호위무사가 앞을 막으려 하자 금가휘가 손을 저었다.
“비켜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 순간, 은설이 뻗은 검에서 휘황한 검기가 피어났다.
그제야 은설이 범상치 않은 고수라는 걸 눈치 채고 금가휘의 안색이 급변했다.
급히 검을 빼든 그는 은설의 공격을 막았다.
쩌저저정!
연이은 폭음과 함께 금가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은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살초를 펼쳐냈다.
혁무천과 신니가 놀랐을 정도로 무공에 뛰어난 자질이 있는 은설이다.
영단을 복용하고 혁무천의 가르침을 꾸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녀의 검은 이미 초절정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그녀의 검을 상대한 금가휘는 뒤늦게야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고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은설의 검이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금가휘의 검세를 갈기갈기 찢으며 빈틈을 비집고 들어간 은설은 물러서는 금가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눈을 치켜뜬 금가휘는 다급히 몸을 틀며 은설의 공격을 벗어나려 했다.
그 순간, 은설의 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휘어지며 금가휘의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금가휘의 왼팔이 팔꿈치 부분에서 떨어져 나갔다.
“헉!”
순간적으로 팔을 잘라 버린 은설의 검은 곧바로 금가휘의 목을 노렸다.
“가휘야!”
금적위가 대경해서 몸을 날리며 은설을 향해 우장을 뻗었다.
후우웅!
강력한 격공장이 은설의 옆구리를 향해 뻗어갔다.
은설은 몸을 틀면서 찰나에 검을 아홉 번 휘둘러 금적위의 장세를 와해시켰다.
그 사이 혁무천이 그녀 곁으로 날아들었다.
“물러서라, 설아!”
냉랭히 소리친 그는 금적위를 향해 광천장을 펼쳤다.
쾅!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 장 정도 튕겨난 금적위는 숨이 턱 막히는 충격에 눈을 치켜뜨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뭣들 하느냐! 놈들을 쳐라!”
한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백마궁의 장로 하나가 악을 썼다.
궁주를 호위하는 사대호법뿐만 아니라, 백여 명에 달하는 백마궁 정예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혁무천은 달려드는 궁주의 사대호법들을 보며 검을 뽑았다.
어차피 시작한 일, 대충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개도 어설프게 패면 물겠다고 달려드는 법이다. 팰 때는 확실히 패야 공포에 질려서 눈만 봐도 꼬리를 만다.
백마궁도 예외는 아니다.
어설프게 건들면 강력한 적만 하나 더해질 뿐.
확실하게, 철저히! 다시는 자신을 향해, 무원장을 향해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오오오오.
천망검에서 용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혁무천의 손에서 펼쳐진 대천룡구검세는 가히 신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대호법을 단 이초식 만에 쓰러뜨린 혁무천은 곧장 금적위를 공격했다.
백마궁의 정예무사들이 모두 몰려온 상황.
그는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사랑하는 설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생명선 하나쯤 포기한들 어떠랴.
콰아아아!
어둠 속에서 꿈틀대며 날아드는 묵룡의 가공할 위력에 금적위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노오오옴!”
그는 괴성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 쌍장을 쳐냈다.
웅혼한 장력이 회오리치며 혁무천을 향해 밀려갔다.
혁무천은 차가운 눈으로 금적위를 바라보며 검을 흔들었다.
뇌룡섬전세.
묵룡이 벼락처럼 뻗어가며 장력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그러고는 곧장 달려들어서 금적위의 가슴마저 갈라버렸다.
뒤로 튕겨져 나간 금적위의 가슴에서 핏물이 뭉클거리며 솟아나왔다.
“이, 이, 이런…….”
금적위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에는 어느새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혁무천은 그런 금적위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후 은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팔이 잘린 금가휘가 바닥을 기는 게 보였다.
은설의 검에 당한 듯 옆구리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 계집을 막아!”
“이 죽일 년!”
오십 대로 보이는 백마궁의 장로 둘이 욕설을 퍼부으며 은설을 향해 날아들었다.
혁무천은 미끄러지듯 삼 장을 찰나에 이동해서 두 장로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강기가 솟구친 천망검으로 두 장로의 도검을 쳐냈다.
떠더덩!
달려들던 장로들은 손아귀가 으스러지는 충격에 눈을 부릅뜨고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혁무천이 허공에 아홉 개의 점을 찍었다.
구성 공력을 끌어올린 혁무천의 검은 무시무시했다.
거리가 일 장 정도 떨어져 있는 데도 두 장로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입을 떡 벌린 채 비틀거리는 그들의 몸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혁무천은 장로 둘을 지옥으로 보내고 또 다른 먹이를 찾아 움직였다.
혁무천은 지옥에서 튀어나온 사신 같았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장력을 쳐내면 두세 명이 튕겨져서 날아갔다.
신법은 유령과 같아서, 때로는 대여섯 명의 혁무천이 나타나 백마궁 무사들을 휩쓸었다.
혁무천 일행과 남궁세가의 사람들 역시 이삼십 배가 넘는 적을 맞이하고도 밀리지 않았다.
의외로 다수와의 격전에서 귀원의 술법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나녀환무(裸女幻舞).”
그가 중얼거리며 뭔가를 뿌려댈 때마다 수십 명의 백마궁 무사들이 입을 헤 벌리고 우왕좌왕했다.
“으와와!”
“저저저……!”
동대안과 장평, 탕초양, 남궁태와 묵천단원들은 우왕좌왕하는 자들의 숨통을 어렵지 않게 끊어버렸다.
그들은 몰랐지만, 백마궁 무사들은 눈앞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단체로 춤을 추니 넋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사술을 쓴다! 조심해!”
“정신 차려라! 환영에 속지 마!”
뒤늦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지만 눈을 감고 싸울 수 없는 이상은 술법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혈전이 이어지면서 드넓은 마당이 백마궁 무사 사백여 명의 시신으로 뒤덮였다.
피를 머금은 바닥은 혈해(血海)가 되었다.
쓰러진 화톳불에 비친 그 광경은 인세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오빠, 이제 그만해요.”
은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복수를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궁주 금적위는 가슴이 갈라져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다. 후계자인 금가휘도 자신의 검에 팔이 잘리고 옆구리가 길게 베어져서 살 수 없을 듯했다.
그리고 수백 명이 죽었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한들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더 죽여야 할까 싶었다.
게다가 자신의 복수를 거들기 위해 남궁세가 묵천단 무사 몇 명이 목숨을 잃고, 장평과 탕초양도 부상을 입은 듯 옷이 핏물로 얼룩져 있었다.
왜 저들이 자신의 복수 때문에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 모두에게 미안했다.
혁무천도 그녀의 마음을 알고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그의 목소리가 암천에 울려 퍼졌다.
격렬하던 싸움이 빠르게 식었다.
공포에 질린 백마궁 무사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서서 창백한 표정으로 눈치만 봤다.
아직도 남은 숫자가 삼백여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자신들이 수적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혁무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금가휘를 바라보았다.
팔이 잘리고 옆구리까지 베어진 금가휘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의 눈에는 불길 같던 분노도, 투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금적위 곁에 있는 금가후 역시 창백하게 질린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큰 부상이 없었다.
혁무천이 금가후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금가후, 끝을 보고 싶으냐?”
금가후는 이를 악다물고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아버지가 죽고 형도 죽으면 백마궁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피해가 더해지면 파멸이다. 그로선 상대가 멈춘 것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오. 우린 당신들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소.”
그는 잇새로 대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에게 비겁자라 욕을 먹더라도 지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오늘 일을 따지고 싶으면 언제든 무원장으로 찾아와라. 단, 그때는 백마궁을 지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금가후는 지옥사신 같은 무천과 얼굴을 다시 마주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우린 무원장과 싸우고 싶지 않소.”
혁무천은 검을 검집에 회수하고 걸음을 내딛었다.
“가자, 설아.”
전면을 막고 있던 백마궁 무사들이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백마궁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이 걸음만 옮겼다.
구성 공력을 끌어올리며 생명선이 줄어드는 대가로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 덕분에 설아도 이상이 없고 피해를 최소화 시켰으니 불만은 없었다.
남궁태는 그런 혁무천의 등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세상에…….’
오늘 본 광경은 그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일보다 충격적이었다.
스물일곱 명으로 백마궁 무사 수백 명을 죽였다. 백마궁 총단에 있는 무사 중 절반은 죽은 듯했다.
궁주 금적위와 후계자인 금가휘, 그리고 장로 대여섯 명도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강호가 뒤집어질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무천의 무위였다.
검을 뻗거나 휘두를 때마다 묵룡이 솟구치고 벼락이 치는 듯했다.
백마궁의 정예무사 수백 명도 그의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일당천의 기세!
나름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무위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었다.
자신이 무천과 싸운다면 몇 초식이나 버틸 수 있을까?
오 초식? 십 초식?
금적위가 무너진 걸 보면 오 초식조차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문득, 그동안 무천을 대했던 남궁세가의 태도가 걱정되었다.
‘설마 서운하게 했다고 본가에 검을 들이대진 않겠지?’
그때 혁무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우리 무원장과 남궁세가가 잘 협조하면서 지내면 좋겠군.”
남궁태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오. 당연히 잘 지내야지요.”
***
사마신은 제갈위군의 보고를 받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차가운 표정,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신도명산이 맹주가 되었단 말이지?”
“예, 천주. 부맹주 팽조환과 육기주 중 삼기주가 그자와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신도명산이 평정원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맹주께 원주의 지위를 주었다 합니다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이면 반발이 심할 것 같으니까, 살려서 인질로 삼겠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너무 마음이 약한 게 탈이야. 그런 자는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했어.”
눈 깊은 곳에서 서서히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잔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