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9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95화
백리우진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장천운을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장천운의 환상에 가까운 기기묘묘한 신법을 직접 접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장천운이 어떻게 두 사람의 손을 빠져나가서 곽도선의 멱살을 움켜쥐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뻗은 손과 손의 간격은 한 뼘에 불과했지 않은가. 그 사이를 빠져나가다니.
턱.
백리우진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린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맙소사!
자신이 알던 주근깨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천상의 선녀가 눈앞에 서 있었다.
면사로 얼굴의 반을 가리진 했지만, 면사 자체가 매미날개처럼 얇아서 사마경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반의반의반도 가릴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매미날개 같은 면사 때문에 사마경의 아름다움이 더욱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소성주가 경국지색이라 하더니, 헛소문이 아니었어.’
그때 문득 ‘소성주가 아니면 내가 그 못생긴 계집을 왜 만나겠나?’라며 큰소리치던 독고민이 떠올랐다.
독고민이 지금 사마경의 얼굴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서 와요.”
전과 똑같은 목소리. 그런데 전보다 열 배는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소성주를 뵙습니다.”
백리우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런데 장천운은 사마경의 얇은 면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소성주, 면사를 왜 얇은 것으로 쓰셨습니까?”
“다른 것은 너무 두꺼운 거 같아서. 왜, 보기 싫어?”
누가 보기 싫다고 했나?
백리우진 같은 음흉한 놈이 침을 흘리며 쳐다보니까 그렇지.
“어차피 가리려면 철저히 가려야지요.”
“이제부터는 이걸로 쓸 거야. 가리지 않을 생각이거든.”
장천운도 그녀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복수에 필요하다면 자신의 얼굴이라도 이용하겠다는 뜻이겠지.
그는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렐 정도니까.
아마 그녀가 그 얼굴로 웃어준다면 청년무사들은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사마경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아름다운 얼굴을 아름답게만 보지 않는 자들도 있으니까.
-얼굴을 팔아서 권력을 움켜쥐려는 욕심 많은 여자.
분명 그런 말이 나올 테니까.
‘어떤 놈이든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이를 다 뽑아버리겠어.’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마경이 백리우진을 보며 말했다.
“백부께서 호위를 위해 보냈다고?”
“예, 소성주. 수혼대의 인원이 너무 적어서 걱정된다며 보내셨습니다.”
“모두 몇 명이지?”
“저를 제외하고 열 명입니다.”
“그럼 수혼대의 일개 조 정도군.”
“하지만 소성주, 우린…….”
백리우진이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걸 피력하려 했지만, 사마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천운, 수혼대 이조로 편입시키면 되겠어?”
장천운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가끔은 사마경의 사악함(?)에 섬뜩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모종의 음모를 품고 들어온 백리우진을 냉원상 아래에 두어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게 묶어두겠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소성주, 일단 백리 공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놀림을 당하는 게 쌤통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부터 매일 백리우진과 마주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물며 무진특조 출신의 흑월조원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모래를 씹는 기분일 것이다.
“그래? 알았어. 백리 공자, 할 말 있으면 해봐.”
내심 안도한 백리우진이 나름대로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소성주, 저와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고위간부들의 자식이나 제자들입니다. 수혼대와 한조로 편성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니…….”
“천운.”
사마경이 또 백리진우의 말꼬리를 잘라먹고 시선을 돌렸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백리우진은 입만 벙긋하다 말았다.
아마 사마경이 예전의 얼굴이었다면 속으로 욕을 퍼부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불만스런 표정조차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예, 소성주.”
“천운도 그렇게 생각해?”
“소성주님 말씀대로 따르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 무슨 문젠데?”
“호위무사는 무공만 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위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아야 하고, 호위대상을 위해서는 목숨조차 초개처럼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흠, 그건 천운 말이 맞아.”
“그런데 제가 봤을 때, 백리 공자의 일행들은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소성주께서 머물고 계신 방 앞에서 시비를 거는 것부터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죠.”
장천운을 흘겨보고 있던 백리우진의 눈초리가 ‘시비’ 운운하는 말에서 쭉 치켜 올라갔다.
‘저 자식이!’
장천운은 알고도 모른 척,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호위대에 있으면 아마 다른 호위무사들이 소화가 안 돼서 뒷간을 뻔질나게 드나들 겁니다.”
“뒷간을 자주 들락거리면 호위를 제대로 할 수 없겠네.”
“바로 그겁니다.”
“흐으음…….”
사마경이 짐짓 고민하는 척하자, 백리우진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니 저희들은 독자적으로 호위를…….”
“그럼 함께 호위를 서는 것도 문제가 되겠군.”
사마경이 다시 한 번 백리우진의 말을 싹둑 잘랐다. 쳐다보지도 않고.
가히 절정에 이른 말끊기신공.
거기에 장천운이 한마디 보탰다.
“얼굴만 봐도 속이 불편할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내가 봐선…….”
백리우진이 더 참지 못하고 불쑥 끼어들었다.
“차라리 호위대 전체를 교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소성주.”
사마경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서 백리우진을 직시했다.
백리우진은 그녀를 납득시킬 기회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다.
“지금 수혼대와 흑월조를 모두 합해봐야 삼십 여명 밖에 안 됩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지금보다 더 강한 사람들로 채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사마경은 그가 말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맑은 갈색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였다.
‘후후, 내 말에 넘어갔군.’
한껏 고무된 백리우진이 강한 어조로 청하며 포권을 취했다.
“호위에 대한 것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소성주!”
그를 쳐다보고만 있던 사마경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주 쌀쌀맞게.
“하고 싶은 말 다했어?”
“예?”
“어디서 그렇게 배웠어?”
“무슨 말씀이신지…….”
“남의 말을 함부로 끊는 그 버릇,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은 거야.”
“…….”
먼저 말을 끊어댄 사람이 누군데?
하지만 백리우진은 자신과 사마경의 차이를 생각지 못했다.
주인과 하인. 설령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대는 만인지상의 소성주 아닌가 말이다.
“왜? 내가 말을 끊은 것이 기분 나빴나 보지?”
“그게 아니라…….”
“더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을 내가 계속 듣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다그치는 사마경의 목소리에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백리우진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호위대를 흑월조보다 더 강한 사람들로 채울 수 있다고?”
퍼뜩 정신을 차린 백리우진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성주.”
“정말 자신 있어?”
“예, 소성주!”
“밖에 있는 일행이 흑월조보다 강하다는 거네?”
백리우진도 그에 대해서는 바로 대답을 못했다. 그도 흑월조원 중 몇 사람의 강함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장천운과 구산은 자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최소한 약하진 않습니다.”
그는 사공명신과 두양양에 대해선 알지도 못했다.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천운.”
“예, 소성주.”
“흑월조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누구지?”
당사자가 혹시라도 알게 되면 서운해 할 텐데,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장천운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유고원과 저두심입니다.”
사실이니까.
“그 두 사람하고 백리 공자 일행 중 두 사람하고 비무를 시켜보면 어떨까?”
생각지 못한 제안.
백리우진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유고원은 무진특조 중에서도 제일 약했었다.
저두심이라면 장천운과 같은 흑도출신으로, 돼지처럼 쪘던 살이 빠지긴 했지만 다리를 절룩거렸고.
약골과 다리병신.
장천운의 말대로 흑월조 중 제일 약하다고 할 수 있었다. 누가 나서도 그 두 사람 정도는 이길 수 있으리라.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소성주. 그런데 흑월조장이 찬성할지 모르겠습니다.”
백리우진이 먼저 찬성하며 장천운을 압박했다.
“소성주께서 바라신다면야…….”
장천운은 짐짓 하기 싫은 사람처럼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무뚝뚝하면서도 나직한 그의 말투가 약세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백리우진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자존심 세우려다가 괜한 사람들 다치게 하지 말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다. 너야말로 걱정 되면 최고 강한 자들을 내보네.”
“후후후, 유고원처럼 나약한 놈이나 절름발이 정도는 아무나 나서도 이길 수 있지.”
“차라리 나하고 너하고 붙어보는 게 어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소성주께서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들의 대결을 원하시니까 말이야.”
“그럼 할 수 없지.”
그쯤에서 사마경이 나섰다.
“언제 할 거야?”
“쇠뿔은 달았을 때 빼야 잘 빠지죠.”
이번에도 백리우진이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먼저 답했다.
장천운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유고원과 저두심은 장천운에게 설명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겁이 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겁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흥분되었다.
“백리우진이 데려온 도련님들과 비무를 한단 말이지?”
“나는 누구하고 붙지?”
유고원은 강련곡 시절 제일 약했다.
본시 그는 무공보다 정보의 분석과 계산 쪽에 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수련할 때만 해도 약한 무공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왕조산에게 당한 이후 흑월조에 들어가서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그리고 저번 소성주 탈주사건 이후에 또 한 번 깨달았다.
적어도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정도는 강해져야 한다는 걸.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흑월조원들이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추소철이 ‘이제 함부로 서생나부랭이라고 놀리지도 못하겠군.’이라고 하며 고개를 저었을까.
저두심은…… 굳이 설명할 것도 없었다.
몸이 반쪽이 되었는데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랴.
비무 장소는 수혼대 연무장으로 정해졌다.
흑월조원은 물론이고, 비무소식을 듣고 나온 수혼대원들도 한쪽에서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건너편에는 백리우진이 이십대 청년 열한 명과 함께 서 있었다.
모두가 간부의 아들이거나 제자 신분인 청년들. 나름대로 구천성에서 잘 나가는 기재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수혼대원 대부분이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그들 중 흑월조원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일 년 간 단 한 명도 추가배치 된 사람이 없으니까.
문제는 상대가 구천성의 기재들이라는 것과, 상대가 유고원과 저두심이라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은 아무래도 구천성의 잘난 공자들에 비해서 밀릴 듯했다.
그때 유고원이 나서며 말했다.
“누가 나와 싸울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