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6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69화
269화
혁무천은 잠시 그를 보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종채삼이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사이 주위의 싸움은 거의 정리가 되었다. 마도 쪽 무사들은 싸울 의욕을 잃은 자들 대여섯 명만이 무기를 든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린 갈 길이 바쁘니 이만 가볼 거요. 막고 싶으면 계속 막아보시오. 단, 손에 사정을 두는 것은 이번뿐이오. 다음에는 살아서 갈 생각을 말아야 할 거요.”
무심한 어조로 말을 마친 혁무천은 종채삼을 놔둔 채 옆으로 몸을 돌렸다.
“출발하시오.”
비룡단원들은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무기를 거두었다.
마도 무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쪽으로 물러섰다.
혁무천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객잔 쪽을 바라보았다.
객잔 이층에 아무도 없었다.
한편, 객잔의 이층 방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혁무천이 봤던 중년인과 육순의 노인, 그리고 중년인의 호위로 보이는 두 장한.
몸을 돌려서 앉은 중년인에게 맞은편의 노인이 말했다.
“무원장의 주인인 무천이란 자 같습니다.”
“무원장?”
“본래 그는 상가인 비룡장의 비룡단주였는데, 비룡장이 역성에 지부를 설치하면서 그곳을 책임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상가의 사람이라고?”
“예, 주군.”
“중원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군.”
“그자가 마음에 드십니까?”
“송노.”
“예, 주군.”
“그는 내 존재를 눈치 채고 나를 바라보았어. 그는 나에 대해서 뭔가를 느낀 것 같은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렸지.”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보겠습니다.”
“함부로 건드리지는 마. 긁어 부스럼 날 수 있으니까.”
“예, 주군.”
“신도명산은?”
“낙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효웅의 기질이 다분한 자야. 그의 말은 반 이상 믿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중년인은 찻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던 혁무천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비록 상당한 거리였지만, 그 눈빛에는 분명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눈빛, 절대자의 위에 오른 자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눈빛이었어.’
***
천궁환의 눈빛이 차갑게 타올랐다.
“서주상단과 양가장, 연가상단, 운포원, 장가장까지 그놈과 거래를 텄단 말이지?”
“예, 총단주. 지난여름과 가을 초에 비축했던 물량을 모두 무원자에 넘겼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왜 하필 그놈이란 말이냐?”
마음이 흔들린 천궁환이 쌍소리를 하며 짜증을 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천신명이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그 물량이라면 저희도 처분이 곤란해서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멍청한!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원장과 거래를 했다는 것이야! 장사란 처음 거래가 어렵지, 한번 거래를 트면 언제든 다시 거래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다.”
부친에게 한 소리 들은 천신명은 이마를 찌푸리더니 눈빛을 번뜩였다.
“아버님, 저들이 먼저 저희를 건드렸으니 저희도 놈들의 뒤통수를 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방법이라도 있느냐?”
“지난 몇십 년 동안 저희가 가장 아쉬워하던 일이 무엇입니까?”
“몇십 년 동안 아쉬워하던 일?”
천궁환이 되묻자, 한쪽에서 듣고 있던 천구명이 말했다.
“아쉬워하던 거라면…… 황하상선 말입니까?”
“맞다.”
“하지만 황하상선은 이제 우리가 차지했지 않습니까?”
“물론 황하상선은 우리 손에 들어왔지. 하지만 우리가 원하던 것을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야.”
천신명의 그 말에 천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황하상선의 운영은 우리가 하지만 황하의 권리는 우리에게 없지.”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황하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천궁환은 천신명의 말뜻을 깨닫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네 말은…… 수룡방을 치잔 말이냐?”
“수적들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황하에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지요. 아마 황궁에서도 좋아할 겁니다.”
“흐음…….”
천궁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수룡방을 얻는다면 황하를 완벽하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는 수룡방이 구룡상단에 속한 구주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건 안 돼요, 오라버니!”
천수화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너는 조용히 해라.”
“우리 천화상단이 언제부터 무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았죠? 그건 도적이나 하는 짓이에요!”
“흥! 너는 수룡방이 수적들의 집단이란 걸 모른단 말이냐?”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엄연히 구룡상단에 속해 있잖아요!”
“수화 너는 네 오빠를 죽인 무천 그놈을 감싸겠다는 거냐?”
“솔직히 저는 그가 주명 오빠를 죽였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
“뭐야?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그만해라!”
천궁환이 두 사람의 말다툼을 말렸다.
그러고는 천수화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했거늘, 네가 지금 애비의 명령을 어기겠다는 거냐?”
“어기겠다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 사실 확인을 하자는 거죠. 만약 오빠가 다른 사람에게 죽었다면 오빠가 얼마나 억울해 하겠어요.”
“이미 많은 사람의 증언을 확인했다. 무엇을 더 확인한단 말이냐?”
“그 사람의 말은 들어보지 않았잖아요. 저를 보내주세요. 그럼 제가 가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겠어요.”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나는 내 딸이 오빠보다 그놈 말을 더 믿으려 한다는 걸 참을 수 없구나.”
천수화는 이미 혁무천을 몰래 만나려 가려다가 걸렸다. 그 바람에 백일 동안 천화상단을 나갈 수 없다는 근신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천수화는 입술을 질겅 씹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천소명을 바라보았다.
“소명, 너도 정말 그 사람이 둘째 오빠를 죽였다고 생각해?”
“미안해, 누나. 나는 누나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아.”
묘한 뜻이 숨겨진 말이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가 범인이란 말은 아니었다.
그때 천궁환이 말했다.
“수화 너는 당분간 상단의 일에서 손을 떼라.”
“아버지!”
“이건 애비가 아니라, 상단의 총단주로서 내리는 명령이니라!”
“…….”
입술을 찢어질 것처럼 꽉 물은 천수화가 홱 몸을 돌리고 회의장을 나갔다. 성큼성큼 나가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왜 우리 천화상단이 이렇게 된 거지? 아버지는 왜 내 말을…….’
밖으로 나온 천수화는 우뚝 멈춰 섰다.
어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버지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때 회의장 문이 열리고 천상화가 나왔다.
“수화야.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해.”
“언니…….”
“네 맘 알아. 가자.”
천수화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천상화를 따라갔다.
지금 가족 중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언니뿐이었다.
***
무원장으로 가는 도중에 수많은 소문이 들려왔다.
정파와 마도문파 간의 싸움은 하루도 쉬지 않고 벌어졌다.
그 와중에 마도의 하늘에 새롭게 떠오른 별, 사마룡에 대한 이야기는 뼈와 살마저 더해졌다.
정혈단의 혈겁 소식도 하루에 한두 건씩은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원장이 하루거리쯤 남았을 때 우려했던 말이 들려왔다.
정파가 정혈단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소문이었다.
거기다 더해 정은맹 맹주 사마진웅이 정혈단을 비호하며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고 있다는 말마저 돌았다.
혁무천은 혼돈의 수레바퀴가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길을 재촉했다.
비천단이 무원장에 도착했을 때, 영빈각에 반가운 손님이 와 있었다.
앙천마도, 한때 통천마군이라 불렸던 절대고수. 지천주가 손녀와 함께 도착한 것이다.
혁무천은 황보중 가족에게 별채 하나를 따로 배정해준 후 쉬게 하고 지천주를 찾아갔다.
지천주는 손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가 혁무천을 맞이했다.
혁무천은 포권을 취하고 간단하게 인사말을 건넨 후 지천주의 옆을 바라보았다.
지천주의 손녀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열네댓 살 정도로 보였다.
몸이 말라서 그런지 체구가 조금 작은 듯 느껴졌다. 피부는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하얬다. 작은 얼굴에 비해 눈이 컸는데, 티 없이 맑은 흰자에 눈동자가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좀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혁무천의 말에 지천주가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는 자네가 보내준 약을 복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각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네. 그런데 지금 반 시진 동안 나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지.”
그만큼 많이 좋아졌다는 뜻이었다.
“다행이군요. 약을 보내고도 효과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었습니다.”
“이곳으로 오면서 이 아이의 병을 처음에 알아낸 의원을 만나 진맥을 받아보았네. 맥이 조금 약하긴 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 하면서 놀라더군.”
“정말 잘 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건강해지겠지요.”
“모두 자네 덕분이네.”
그때 소녀가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지수수가 은인께 인사 올려요. 은인의 은혜, 삼생토록 잊지 않을 거예요.”
“일어나라. 네가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분은 할아버지다. 나는 단지 약을 하나 구해주었을 뿐이야.”
“그 약이 저를 침상에서 일어나게 만들었어요.”
일어나서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이 영롱하게 빛을 발했다.
혁무천이 그 모습을 보고 무심결에 말했다.
“너처럼 예쁜 소녀가 아파하고 있으면 누구든 도와주고 싶었을 거다.”
지수수의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앞에 있는 무천이란 사람은 그녀가 본 그 어떤 이보다 잘 생기고 마음씨도 좋았다.
그날 소녀의 가슴에 새로운 꿈이 싹텄다.
“자네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왔네. 내 힘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하게.”
흐뭇한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손녀를 바라보고 있던 지천주가 말했다.
혁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분간은 내 집이다 생각하고 손녀와 편하게 지내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네.”
지천주의 방을 나온 혁무천은 객당을 가로질러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그런데 객당을 나서기 전에 누군가가 불렀다.
“저기, 무 공자.”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보른 곳을 바라보았다. 눈에 익은 얼굴이 보였다.
“엇? 백 형 아닙니까?”
과거 백마궁에 갈 때 만났던 냉홍검 백도강이었다.
“오랜만이오. 무 공자의 이름이 들려서 찾아왔소.”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백마궁에서는 언제 나오셨습니까?”
“그게, 무 공자가 떠난 후 우리를 의심하는 거 같아서 바로 나왔소.”
“다른 분들은……?”
백도강이 대답 대신 뒤를 돌아다보았다.
객방에서 몇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염호랑과 관악, 고군상. 당시 함께 백마성에 갔던 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그날 이후 함께 돌아다녔소.”
혁무천은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요.”
혁무천은 백도강 일행을 목량 아래에 두기로 했다.
특히 염호랑은 정보 취급과 판단력 등이 매우 뛰어난 자였다. 목량과 손발을 맞추면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했다.
백도강 등도 마땅한 역할이 없어 아쉬웠는데, 군사나 다름없는 삼현 중 일인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되자 만족해했다.
***
무원장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사들인 물량을 처분하려면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하는 것이 가장 나았다.
또한 한 곳, 한 곳을 상대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거래하는 게 유리했다.
시간을 두고 거래를 하면 물량이 풀리면서 가격이 하락할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