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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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61화
261화
전독승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기껏해야 십여 명. 철룡가까지 합한다면 제법 숫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귀천교 정예무사 오백을 상대할 수는 없다.
‘미친놈!’
한마디 쏘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각 한 번으로 절정고수들의 진기를 흐트러뜨리고, 단 일 장으로 절정고수인 요문원에게 내상을 입혔다.
더구나 아직 주무기로 쓰는 검은 뽑지도 않은 상태.
식은땀이 전독승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라 하더니,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는 귀천교의 사대호법 중 한 사람으로서 남들이 모르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천화상단의 절대고수 중 두어 명이 무천과 싸우고도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교주나 소교주는 믿는 것 같았지만, 그와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과장된 소문일 뿐이라 치부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반 시진에 우리를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전독승은 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 봤다. 하지만 자신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결정하기 어렵다면 내가 방법 하나를 말씀드리지. 어떻소? 들어보겠소?”
혁무천이 재차 물은 후에야 전독승의 입술이 떨어졌다.
“말해봐라.”
“숙주분타에서 차액인 오천 냥을 내놓는 거요. 어떻소?”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맹금여가 흠칫했다.
하지만 곧 혁무천의 말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는, 전독승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호법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소.”
이미 오천 냥은 주겠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이자니 굽히는 느낌이고.
전독승은 얼굴을 씰룩였다.
혁무천이 재촉했다.
“싫으면 마시고.”
전독승은 혁무천의 입을 노려보았다.
‘저놈의 주둥이를…….’
어쨌든 답을 해주어만 했다.
“분타주가 그리 하겠다면 내가 뭐라 하겠나.”
결국 전독승도 한발 물러섰다.
오늘 일에 대해서 빚을 갚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
“대신 철룡가의 물량 중 삼 할을 우리에게 넘겨라.”
“삼 할을?”
“철룡가도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하지 않겠나?”
혁무천은 공사철을 돌아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격만 제대로 쳐준다면 못 넘길 것도 없네.”
“가격이야 당연히 제대로 받아야지요. 대신, 앞으로 일대에서의 위험을 귀천교가 막아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지요. 어떻습니까, 전 호법님.”
앞으로 귀천교의 영역에서는 귀천교가 철룡가를 지켜줘라, 그 말이다.
전독승도 그 말에는 바로 대답을 하기가 애매했다.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교주가 내린 명령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가면 그에 대해서 상의해보지.”
“기왕이면 문서로 작성해서 가져와주시기 바랍니다.”
전독승과 귀천교 무사들은 들어온 지 이각 만에 철룡가를 나섰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공사철과 철룡가의 원로들은 안색이 해쓱했다,
“가주께서는 제가 잘못 처리했다고 보십니까?”
혁무천의 말에 공사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가족과 형제, 동료들의 생사가 달려 있으니까. 하지만 더는 굴욕을 참기만 하면서 살지 않겠네.”
“그게 구룡상단이 힘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우리 철룡가는 전폭적으로 자네의 뜻을 지지하겠네.”
“뜻이 그러하시다면, 철룡가에 맞는 무공을 드리지요.”
무천 정도의 고수가 하찮은 무급 하나 던져주겠다는 것은 아닐 터.
철룡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고맙네, 단주.”
***
그 일이 시작된 것은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마황궁 상주분타의 담장을 넘어온 복면인들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치고, 허리를 자르고, 머리를 터트리고…….
백의, 복면인.
그들의 정체를 안 만마성 무사들은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저항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실력의 격차가 컸다.
“으아악!”
“이 악귀 같은 놈들!”
“놈들을 막아라!”
“도망쳐!”
“크아악!”
비명과 악다구니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시뻘겋게 변한 넓은 연무장에는 이미 이백여 구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나 참혹한지 시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도륙당한 인간의 파편이라고 말해야 맞을 듯했다.
참혹한 살육은 이 각 동안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명이 잦아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복면인들은 대항하는 자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미련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곳에 남은 것은 삼백여 구의 도륙 당한 시신뿐이었다.
마황궁 상주분타가 피로 뒤덮인 그날.
섬서성의 위남과 함양의 마황궁 분타, 그리고 하남 등주의 만마성 분타에도 혈풍이 몰아쳤다.
단 하루 만에 일천 명에 가까운 마도 무사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피가 내처럼 흘렀고, 구역질나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혈천강호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술시 무렵.
짧은 내용이 적힌 서신 하나가 정문 위사를 통해 목량에게 전해졌다.
내용을 본 목량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혁무천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천위라 한다. 두렵지 않다면 혼자 나와라. 소하(素河)에서 기다리마.]
천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유도 적혀 있지 않았다.
서신을 읽어본 혁무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천화상단인가?”
“가실 겁니까?”
목량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가지 않으면 겁쟁이라고 할 것 같은데?”
“자존심을 건드려서 혼자 나오시게 하려는 겁니다. 혼자 가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저들은 혼자 오지 않을 겁니다.”
피식, 혁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량, 남자는 말이다, 때로는 가시밭길인 줄 알면서도 가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목량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너무 걱정 마라. 이 형이 말이다, 네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하니까.”
철룡가를 나선 혁무천은 소하로 향했다.
철룡가의 일꾼에게 물어본 바에 의하면, 철룡가에서 소하까지 오 리 정도 된다고 했다.
소하는 그리 넓지 않은 강이었는데, 맑은 물과 하얀 모래 때문에 소하라 불린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하는 밤인데도 하얀 빛을 발했다.
안 그래도 유난히 하얀 모래가 달빛까지 받아서 마치 은가루가 뿌려져 있는 듯했다.
혁무천은 하얀 모래사장을 터벅터벅 걸었다.
저 앞쪽, 둥근 달 아래에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그의 어깨 위로 검병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옷자락이 강가의 바람을 따라서 펄럭거렸다.
제법 운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혁무천이 다가가자, 강을 바라보며 서 있던 그가 몸을 돌렸다.
“왔군.”
“그대가 천위인가?”
“맞아.”
천위라는 자는 삼십 대 초반쯤의 나이였다.
조금은 거칠게 느껴지는 옷차림. 머리도 천으로 대충 묶어서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낭인이었다.
“천궁환이 보냈나? 아니면 비천에서?”
“눈치가 빠른 친구군. 비천까지 알다니.”
혁무천은 좌측의 숲을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극히 미세한 기운이 몇몇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천위가 말했다.
“걱정 마. 그들은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왜 데려온 거지?”
“데려가라고 해서.”
의외로 솔직한 면이 있는 자였다.
“외외군. 천화상단에 그대와 같은 자가 있다니. 하긴 소명이나 천수화도 괜찮은 친구들이었지.”
“나도 그 아이들은 좋아하지. 천 가의 사람 중 그나마 순수함이 남아 있는 아이들이거든.”
“다행이군. 그대를 죽이지 않아야 할 명분이 하나 생겨서.”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이 된다고 하더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나는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럼 다행이고.”
스르르릉.
검이 천천히 뽑혀 나왔다.
“인태상과 지태상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고 들었지. 최선을 다할 것이니 멋진 승부가 되었으면 좋겠군.”
검을 든 천위의 전신에서 달빛이 반사되듯 순간적으로 기운이 폭사했다.
혁무천은 천위의 무공이 전에 만난 중리안이나 백경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새삼 천화상단의 가공할 무력에 혀를 내둘렀다.
천망검을 빼든 그는 무진일선공을 끌어올렸다.
스스스스스.
바닥의 모래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선공은 천위가 먼저 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뒤이어 달과 대기를 동시에 가르며 검강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검강탄기(劍罡彈氣).
극상승의 검공이 예비 동작도 없이 펼쳐졌다.
혁무천은 천망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려 날아드는 검강을 막아냈다.
텅!
맑은 소리가 울리면서 강기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혁무천은 천위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천망검으로 창천비룡세를 펼쳤다.
천망검의 검첨에서 솟구친 강기가 비상하는 용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떨어져 내리던 천위가 검을 열십자로 갈라 쳤다.
떠더덩!
강맹한 기운이 충돌하면서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다.
그 직후 혁무천의 신형이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천위는 삼 장 정도 튕겨져 나가서 내려선 후, 놀라지 않고 검을 내밀며 흔들었다.
그의 검에서 강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어둠을 뚫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기를 쳐냈다.
쩌저저저정!
귀청을 찢어발기는 폭음이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혁무천은 뇌룡섬전세와 광룡혈류세를 연달아 펼쳐서 천위를 압박했다.
천위는 처음과 달리 굳어진 표정으로 혁무천의 공격을 막아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력한 검세.
때로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때로는 별이 쏟아지는 듯했다.
중리안과 백경이 왜 무천을 이기지 못했는지 단 몇 초식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하구나.’
이를 악문 그는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서 마주 공격을 펼쳤다.
소하의 하얀 모래가 폭발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그 속에서 달빛을 받은 검강이 쉬지 않고 허공을 갈랐다.
콰과과광!
진짜 용이라도 되는 듯, 꿈틀거리며 방향을 튼 검강의 기운이 천위의 가슴 앞자락을 훑고 지나갔다.
천위의 공격도 혁무천이 펼친 검세의 실낱같은 틈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뒤로 물러서고, 갑자기 소하 강변이 고요해졌다.
바람소리, 솟구쳤던 모래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혁무천과 천위는 오 장 정도 거리를 둔 채 서로를 응시했다.
휘청.
천위가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의 가슴언저리에서 검게 보이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무섭고, 멋진 검이군.”
“당신 검도 굉장했어.”
혁무천의 가슴 옷자락도 잘려져서 나풀거렸다. 하지만 옷자락이 잘린 것이 전부.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다만, 목에 있던 생명선 한 줄이 반쯤 줄어든 것이 아쉬울 뿐.
하지만 천위는 생명선 반 줄을 포기해야 할 만큼 강한 상대였다.
“무슨 검인가?”
“대천룡구검세 중 구룡파천세.”
“뒤로도 더 있나?”
“하나 더 있지.”
“아쉽군. 그 검도 마저 봤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무형의 기운이 빠르게 다가왔다.
숲속에 숨어 있던 무영객이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