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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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무……!”
마중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혔다. 경악으로 크게 떠진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귀천교가 우리 구룡상단을 건드린 것에 대해 해명을 들어야겠다.”
“…….”
“분타로 갈 생각인데, 수하들을 줄줄이 묶어서 데려가길 원하나? 아니면 그대가 조용히 안내해줄 건가?”
줄줄이 묶어서 분타까지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게 될 터. 귀천교의 자존심은 똥통에 처박히고 말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내, 내가…… 안내해주겠소.”
***
혁무천의 명령대로 귀천교 무사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살이 조금 찢어지거나, 내장이 뒤틀리기만 했을 뿐.
혁무천은 그들을 놔둔 채 마중을 앞세우고 귀천교 숙주분타로 갔다.
귀천교 숙주분타는 삼사백 명이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비룡단이 갔을 때는 이백여 명이 있었다.
엉망이 된 마중이 비룡단을 데리고 들어가자, 오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숙덕거렸다.
“어? 부분타주님이…….”
“어디서 터졌나?”
“쉿, 독사가 저 정도 됐으면 상대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다져졌을 거야.”
“그런데 저놈들은 뭐지?”
마중은 그 중 두어 마디를 알아듣고 이를 악물었다.
‘씨발…….’
하지만 그럴수록 어깨에 힘을 주려 노력하며 걸음을 옮겼다. 곧 죽어도 독사였다.
“뭐야?”
귀천교 숙주분타 분타주, 흑웅마수 맹금여는 안으로 들어온 마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우락부락한 인상에 눈살까지 찌푸리자 쥐어 터져서 화가 난 곰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 엉망이 됐어?”
“그게…….”
마중은 말꼬리를 끌며 뒤를 향해 눈짓을 했다.
맹금여의 시선이 마중의 뒤로 향했다.
그런데 마중이 미처 말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새끼들은 뭐야?”
마중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분타주…….”
“왜 그래? 저놈들 뭐냐니까?”
송비가 먼저 마중의 어깨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단주, 내가 먼저 조지겠네.”
우락부락한 인상. 거침없는 말투. 그런 맹금여를 보고 이상한 승부욕이 고개를 들었다.
혁무천은 송비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이래저래 경험이 많은 송비라면 맹금여를 잘 다룰 수 있을 듯했다.
송비가 먼저 돌을 던졌다.
“이봐, 네가 맹금여냐?”
“뭐?”
맹금여는 눈을 치켜뜨고 송비를 노려보았다.
나이도 조금 더 먹은 것 같고, 인상 역시 자신에게 밀리지 않았다.
‘뭐하는 놈이지?’
순간적으로 송비를 살펴본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는 송비보다 두 치 정도 더 커보였다.
“당신 뭐야?”
“나? 송비. 무원장에서 왔다.”
“무원장?”
맹금여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서 최근 가장 위험한 어떤 자들을 떠올렸다.
“비룡단?”
상인이면서도 강호 대세력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자들.
천기회도 박살났고, 천화상단도 깨졌다고 했다.
들리기로는 검마보의 주인, 단천검마 율이명조차 비룡단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고 했다.
만마성의 대공자 천화광은 물론이고, 성주인 천양묵조차 인정했다는 말도 들렸다.
심지어 철혈마련의 소련주 우문척은 철혈마련 무사들에게 비룡단을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놈들이 자신을 찾아왔다.
왜 왔는지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맞아. 철룡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하던데.”
놈들은 철룡가 때문에 왔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서가 찜찜했는데, 정말로 놈들이 온 것이다.
“그래, 했지. 뭔가 수상한 점이 있어서 말이야.”
“그놈, 일단 주둥이부터 다져놓고 대화를 하는 게 좋겠군.”
송비의 도발에 맹금여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번뜩였다.
“나이 좀 처먹었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군.”
“어때? 둘이 한판 붙을까? 나이는 한쪽에 떼어놓고.”
그거라면 맹금여도 대환영이다.
“그거 좋지.”
“깨져도 불만 없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귀천교 숙주분타 앞마당에서 뜬금없는 대결이 펼쳐졌다.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비룡단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귀천교 숙주분타 무사들이었다.
하인들도 몇 있었지만,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경했다.
후우웅!
맹금여의 몸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절정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마공이라기보다는 패도의 무공을 익힌 자였다.
쌍수로 펼치는 흑령수는 잡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단단한 청오석조차 그의 손에 잡히면 모래처럼 부서진다.
“타앗!”
맹금여가 몸을 날리며 선공에 나섰다.
“좋아! 와라!”
송비도 검을 사용하지 않고 쌍장으로 맞섰다.
그때부터 송비와 맹금여의 개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실 무위만 놓고 보면, 맹금여는 송비의 십초지적에 불과했다.
송비가 죽이려 작정했다면 맹금여는 내년 오늘이 제삿날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비는 처음 볼 때부터 맹금여에게서 호전적인 투기를 느끼고, 승부를 떠나 맹금여의 기를 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서 개싸움이 되어버렸다.
퍼벅!
“큭! 개……!”
“그놈의 주둥이를!”
“오냐, 어디 쳐봐……!”
퍽!
“치라면 못 칠 줄 아나?”
“비겁하게…….”
“순진한 놈이군. 죽고 사는 판에 비겁이 어딨어?”
두 사람은 싸우는 내내 쉬지 않고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맹금여는 악착같이 물어뜯기 위해서 별의별 수단을 다 썼다.
심지어 바닥의 흙을 집어서 송비의 눈에 던지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송비가 먼저 ‘죽고 사는 판에 비겁이 어딨어?’라고 했던 터라 망설이지도 않았다.
비록 그러다가 몇 대 더 맞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의 대결은 이각이 넘을 때쯤에서야 멈췄다.
“헉헉헉…….”
“후우…….”
“씨바…… 죽여…….”
“아직, 조금 더 하고…….”
“…….”
“내가 아는 어떤 인간은, 한 시진 동안 패기도 하거든.”
“설마…….”
송비가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나도 기회가 되면 한번 한 시진을 채워보고 싶었지.”
부르르, 몸을 떤 맹금여가 털썩 주저앉았다.
“제길, 졌수. 맘대로 하쇼.”
마침내 귀천교의 악바리 맹금여가 나자빠졌다.
귀천교 무사들은 입을 닫고 숨소리도 조심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귀천교에서도 숙주의 중요성을 알기에 절정고수를 분타주로 보냈다.
그런데 부분타주에 이어 분타주까지.
독사와 악바리가 모두 꺾였다.
차라리 도검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죽어갔다면 어떻게라도 해볼 텐데…….
그때 혁무천이 맹금여에게 다가갔다.
“악사광에게 내 말을 전해주시오.”
맹금여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넌 또 뭐하는 새끼냐?”
대답은 송비가 했다.
“비룡단주 무천. 아까 한 시진 동안 팼다고 한 사람.”
맹금여의 몸이 축 처졌다.
눈빛도 이미 지옥의 강을 건너간 듯 흐릿해졌다.
“……씨바.”
혁무천이 그에게 말했다.
“알고 보면 순한 사람이오. 송 숙이 뭘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뿐.”
맹금여는 그 말이 더 무섭게 들렸다.
얼굴은 기가 막히게 생긴 놈이 눈빛은 아수라였다.
그래도 혁무천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다. 한 시진 동안 맞고 싶지도 않았고.
고분고분 말하면 살려줄지도…….
“무슨 말을… 전해 주라는… 거요?”
“철룡가의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은자 일만 냥을 줄 것. 강압적인 물량 이동 금지를 즉시 풀 것.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말까지. 그대로 전해주시오.”
“……”
“아! 하나 더 있군.”
혁무천이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맹금여를 보며 말했다.
“어디를 택할 건지 확실하게 결정하라 하시오.”
“무슨 말인지?”
“아마 그 말만 하면 악사광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거요.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고.”
혁무천은 말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천교 무사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숫자는 이백 명이 넘어서 삼백 명 가까이 되었다.
그들이 무기에 손을 얹고 맹금여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이곳부터 깨끗이 쓸어버리고 기다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혁무천의 말에 맹금여가 기겁했다.
“단……!”
“아니지, 그럼 철혈마련만 너무 좋아지잖아? 우문척이 보상을 해줄 것도 아닌데.”
‘휴우.’
“그래도 쓸어버리는 게 나으려나?”
‘헉!’
그때 은설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귀천교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삼십 대 장한 하나가 품속에서 손을 빼서 그녀를 향해 뿌렸다.
십여 개의 암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따다다당!
은설은 어느새 빼든 검을 휘둘러서 암기를 모조리 쳐냈다. 그와 동시에 좌수를 쫙 펼쳐서 장한을 향해 뻗었다.
거리가 일 장이나 남았는데도 강맹한 격공장이 장한의 가슴을 직격했다.
쾅!
장한의 몸이 튕겨져서 나뒹굴었다.
은설은 몰래 암기를 던지려던 귀천교 조장을 단숨에 처리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몇 사람이 은설을 공격하기 위해 뛰쳐나왔다.
그 순간!
부우웅!
장대산이 장봉을 휘둘러 폭풍을 일으켰다.
봉에 맞지도 않았는데 뛰쳐나온 자들이 뒤로 날아갔다.
뒤이어 철호가 튀어나가면서 쌍도끼를 휘둘렀다.
풍차처럼 휘둘러진 도끼에 서너 명이 팔다리가 쪼개진 채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충격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귀천교 무사들은 다리가 굳어버린 듯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혁무천이 냉랭히 말했다.
“역시 쓸어버리는 게 낫겠어. 싹, 다 죽여버리고 말을 전하면 내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겠지.”
그의 몸에서 소름끼치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맹금여가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공격하지 마!”
그는 안다. 비룡단이 마음만 먹으면 분타 안의 무사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다는 걸.
‘소문이 사실이었어!’
귀천교 무사들은 맹금여가 악을 쓰며 명령을 내리자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은설에게 일류고수인 조장이 맥없이 당하는 것을 본 터였다.
거인과 땅딸막한 청년이 장봉과 도끼를 몇 번 휘두르는가 싶었는데 일곱 명이 쓰러졌다.
저들에게 자신들의 머릿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혁무천은 무사들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살기를 거두었다.
그러고는 맹금여를 바라보았다.
“믿어도 될지 모르겠군.”
“미, 믿어주쇼.”
“그럼 믿고 그냥 가지.”
한껏 분위기를 잡아놓은 혁무천은 그제야 돌아섰다.
***
비룡단이 귀천교 숙주분타에서 벌인 일에 대한 소문이 숙주 전체에 퍼졌다.
공사철은 비룡단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그곳의 일을 보고 받았다.
“푸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대소를 터트렸다.
귀천교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되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진국인 친구야.”
하지만 공진강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귀천교가 순순히 요구를 들어줄까요?”
“그들도 고민이 될 거다. 안 그래도 정은맹 때문에 피해가 큰데, 구룡상단마저 적으로 삼으면 좋을 게 없거든.”
아마 무천도 그 점을 노리고 강하게 나간 것 같았다.
힘만 강한 게 아니라 머리까지 뛰어난 자였다.
그때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비룡단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오늘 잔치를 벌여야겠구나. 주방에 말해서 최대한 차리라고 해라.”
그날 밤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온갖 요리가 다 올라왔다.
그런데 한창 이야기 중에 공사철의 눈이 어딘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철호의 도끼였다.
“그 도끼 좀 볼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