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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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6화
256화
“어? 어, 송 숙과 율 보주 데리러.”
동대안은 물귀신처럼 송비와 율이명을 끌어들였다.
“빨리 갔다 오쇼.”
방 안으로 들어간 혁무천은 은설의 투정 같은 야단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다.
‘설아는 다 좋은데, 인정이 쓸데없이 많아.’
말에서 떨어진 사람이 눈두덩에 멍든 정도면 다행이지.
갈비뼈 부러진 거야 거짓말이 분명하고.
한편으로는 은설에게 일러바치는 이현이 더 얄미웠다.
‘남자새끼가 말이야…….’
그 사이 동대안이 송비와 율이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혁무천은 이때라는 듯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자자, 조용히 하고. 이현, 오면서 나하고 나눈 이야기 해봐.”
은설은 할 말이 많았지만, 회의를 방해할 수 없어 입만 삐죽거렸다.
이현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포권을 취한 뒤 입을 열었다.
“먼저 마도 쪽의 예상되는 움직임을 생각해봤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현에게로 집중되었다.
본론에 들어간 이현의 표정은 좀 전과 달리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진중해져 있었다.
“단주가 하신 말씀대로, 그들은 정은맹을 끌어내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정파의 본산을 피로 물들이는 겁니다.”
“소림사와 황보세가, 화산이 당한 것처럼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마 그때보다 더 철저히, 분노를 참지 못할 정도로 잔혹하게 손을 쓸 겁니다.”
중원에서 그들이 공격할 만한 곳은 무당파와 제갈세가, 남궁세가, 팽가 등이다.
“황궁에서 보고만 있지 않을 텐데?”
그들은 황궁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동안 손을 쓰는데 한계를 두었다.
“전에는 그걸 꺼려서 몇 군데만 본보기로 쳤지만, 이제는 황궁의 눈치도 보지 않을 겁니다.”
“나는 전에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무당의 속살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만약 그들을 치려 한다면 만마성이든 어디든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거다.”
“악에 바치면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이지요.”
“그래도 안 나오면?”
“복우산에서 마주쳤던 정파 무사들과 관련된 자들을 찾아내서 목을 친 다음 정은맹 코앞에 던져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은맹에 들어가 있는 정파무사들의 결집이 와해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인의 목을 잘라서 머리를 정은맹에 던져준다?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이현이 감정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은맹을 끌어낼 거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혈천여록과 관계된 부분은, 솔직히 저도 감을 잡기가 힘듭니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건…… 무차별적인 살행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마도는 마도대로, 정은맹은 정은맹대로 피바람을 일으킨다는 뜻. 듣고 있던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마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습니다.”
이현이 그 말로 자신의 마음을 대변했다.
혁무천 등은 그때만 해도 단순한 비유 정도로 생각했다.
***
다음 날, 뜻밖의 손님이 금룡장에 찾아왔다.
그로 인해 금룡장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문척.
철혈마련의 대공자이자, 복우산 대회전에서 명성을 떨친 그가 찾아온 것이다.
혁무천은 금룡전의 회의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한상귀를 비롯한 철혈마련의 장로 셋이 함께 자리했다.
우문양은 보이지 않았는데, 복우산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 있었다.
우문척이 안을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
“덕분에.”
“듣자하니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문났던데.”
“이제 본전이야. 들어가는 돈이 많거든.”
영락없이 닳고 닳은 상인처럼 대답한 혁무천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탁자 쪽을 가리켰다.
“바로 갈 거 아니라면 앉지?”
“그럴까?”
시비가 차를 따르고 물러나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우문척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돌아가기로 했네.”
“의외군. 좀 더 몰아붙일 줄 알았는데.”
“더 싸워봐야 별 이득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누구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누구’가 우리 쪽이라면 잘못 생각한 거야. 요즘 원가가 워낙 비싸서 남는 것도 없어.”
피식, 웃은 우문척이 넌지시 물었다.
“자넨 계속 여기 있을 건가?”
“다들 돌아간다는데, 우리도 상황 봐서 돌아가야지.”
“계속 상계에 있을 건가?”
“이쪽도 칼 들고 싸우는 것만큼이나 치열해서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가끔은 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천화상단이라면 좋은 적수지.”
우문척도 천화상단과 부딪쳐 본 적이 있기에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때가 되면 그들에게 죄를 물을까 하는데, 우리와 함께 싸워볼 생각은 없나?”
“천화상단? 글쎄.”
“하긴 련주께서도 천화상단을 상대하려면 부담이 크시겠지.”
혁무천이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것만 해도 가소로운데 련주까지 들먹이자, 장로인 여호청이 발끈해서 나섰다.
“말을 삼가라!”
물품 공급 건으로 혁무천과 앙금이 있던 그였다.
틈이 보이자 곧바로 몰아붙였다.
“일개 상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련주님을 모욕하는 거냐!”
혁무천은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사실을 말해도 난리군.”
“뭐야?”
눈을 치켜뜬 여호청이 말릴 틈도 없이 손을 뻗었다.
혁무천은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슈욱!
뭔가 한 줄기 빛이 뻗어나가더니 여호청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동대안의 섬혼이었다.
“거, 대화 나누는데 조용히 좀 하쇼.”
“이, 이놈들이……!”
여호청은 발끈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검이 뻗어 나오는 걸 보지도 못했다.
검이 꼬챙이처럼 가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게다가 그림자도 없이 날아들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맞상대한다 해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동 형, 검을 거두쇼.”
혁무천이 말하자, 동대안이 섬혼을 거두어들였다.
“고마운 줄 아쇼. 누구처럼 손이 박살나서 밥 먹는데 고생하면 어쩔 뻔했소?”
“이…….”
여호청은 입술을 씹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었다.
‘두고 봐라. 나중에 만나면…….’
그때 우문척이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아마 자네의 제의를 거절할 거네.”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다를 수 있네.”
“그래? 그럼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군.”
“단, 자네가 약속해 줘야 할 일 있네.”
“약속? 뭔데?”
우문척은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음으로 말을 전한 우문척이 입을 닫았다.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우문척은 이각 정도 머물렀다가 돌아갔다.
혁무천은 그가 나간 정문 쪽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이제 날개를 펼치겠다는 건가? 하긴 때가 되긴 했지.’
***
우문척이 떠난 지 한 시진쯤 지났을 때,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모두 다섯. 그 중 한 사람은 놀랍게도 사야였다.
“의외군, 그대가 나를 찾아오다니.”
항상 만마성주 곁에 붙어 있던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는 혁무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성주님의 명으로 왔어요.”
사야는 보일 듯 말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혁무천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뒷짐을 풀고 오른손을 펼쳐서 앞으로 내밀었다.
혁무천의 그녀의 능어처럼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백옥을 깎아서 만든 것처럼 빛이 나는 듯했다.
그 손 위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갈색 가죽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갈색주머니를 쳐다보던 혁무천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혹시……?’
그는 손을 내밀어 사야의 손에서 가죽주머니를 집었다.
그의 손끝이 사야의 손바닥을 긁듯이 훑으며 지나갔다.
사야의 백옥 같은 손과 기다란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혁무천은 그녀의 반응보다 가죽주머니 안에 든 물건이 더 궁금한 듯 시선을 가죽주머니에서 떼지 않았다.
그는 끈을 풀고 가죽주머니 입구를 열었다.
은은한 약향이 주머니 안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혁무천은 약향의 정체를 짐작하고 눈을 들어 사야를 바라보았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
“우린 일단 만마성으로 돌아갈 거예요.”
짐작했던 일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죽어갈 거예요.”
그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성주님께선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당신이 만마성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시는 것 같아요.”
“방해할 생각 없다. 우리에게 피해만 없다면.”
“다행이네요.”
사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난 당신이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아요.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빛에 스며있던 은은한 녹광이 유난히 강해졌다.
“그걸 알려고 직접 온 건가?”
약만 전하려 했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도 충분했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왔다.
아마도 자신에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듯했다.
무당의 무곡진인, 소림의 항마동에서 나왔다는 노승처럼.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좋아.”
“언젠가,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으면 저를 찾아오세요. 비밀은 꼭 지켜드릴게요.”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가끔 자신의 정체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알려줄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영원히 비밀이어야만 했다.
“더 할 말 없으면 돌아가. 성주님께 고맙다는 말 전하고.”
사야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할 말을 망설이는 것인지…….
“다른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뭘?”
“저, 여자로서 예뻐요?”
“…….”
이거, 위험한 여자다.
‘설아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군.’
솔직히 사야의 미모는 그 어떤 여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아니, 그녀에게는 어느 여인도 따라가지 못할 신비함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줄 수는 없었다. 그럼 문제(?)가 더 커질지 모른다.
“봐줄만 해.”
“그 말, 예쁘다는 말로 알게요.”
“알아서 뭐하게.”
“그냥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 한 번쯤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그 말을 할 때는 왠지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갈게요. 아마 한두 번은 더 만나게 될 거예요.”
“왜?”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운명이 그런 거 같아요.”
사야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혁무천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도 되었다.
‘도대체가 심중을 알기 어려운 여자군.’
그는 그녀가 방을 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만마성의 호위무사 넷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야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혁무천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혁무천은 사야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서야 손에 들린 가죽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든 그는 방을 나가서 동대안을 찾아갔다.
“동 형이 서협에 좀 다녀와야겠소.”
“서협에?”
동대안이 작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가서 앙천마도를 만나시오.”
혈왕이 아직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앙천마도 지천주도 서협에 있었다.
“그 사람은 왜?”
혁무천은 가죽주머니를 동대안에게 내밀었다.
“가서 이걸 주고 내 말을 전하면,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