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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5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4화

254화

 

 

잠시 후.

은설은 넋이 반쯤 빠진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혁무천이 말을 맺은 후로도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설아야?”

혁무천이 부른 후에야 그녀가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후우, 나도 걱정이다. 자화미가 그렇게 집요하게 굴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은설은 자화미의 집요함보다 다른 것에 더 놀라고 있었다.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마라. 깊게 찌른 건 아니니까.”

“다 봤다는 거네.”

“금창약 바르고…… 응?”

“언니의 다 벗은 몸을…… 오빠가 다 봤다는 거잖아요.”

“그건 그 애가 벗어서…….”

“좌우간 본 건 사실이잖아요.”

“상처를 확인하려고…….”

혁무천이 뭐라고 하든 은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치, 내가 먼저 보여주고 싶었는데.”

“…….”

참 이상하다.

내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는데, 왜 그 말에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갈게요.”

“어? 어.”

은설이 돌아간 이후로도 혁무천은 어떤 모습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싱숭생숭했다.

‘설아는 더 예쁠 거 같은데…….’

 

***

 

황촛불이 타오르는 석실.

다섯 사람이 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아 있었다.

“정혈단원들의 수련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상석에 앉아 있는 사마신이 묻자, 좌측의 장한이 먼저 대답했다.

“열흘 정도면 수련이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을 것 같군.”

사마신의 한마디에 네 사람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허운.”

“예, 천주.”

“그대가 이대를 이끌어라.”

“알겠습니다.”

“위군. 그대가 삼대를 맡아라.”

“예, 천주.”

“여청.”

“말씀하시지요.”

“그대가 사대를 맡는다.”

“알겠습니다, 천주.”

“천하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모든 걸 깨끗이 쓸어내야 한다. 세상을 정혈의 바람으로 쓸어낼 것이다.”

사마신의 목소리가 석실을 울리자, 네 사람이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정의의 하늘을 위해!”

“우리의 몸을 바쳐 정천의 세상을!”

 

***

 

천궁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경을 바라보았다.

중리안이 패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다.

그런데 백경마저 무천에게 패한 채 돌아왔다.

삼태상 중 두 사람이 무천에게 패한 것이다.

전이었다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비천의 무게감이 떨어지면 그만큼 자신에 대한 압박감도 약해질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군요.”

천화상단을 이끌면서 처음으로 위기감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날 무천의 요구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후회막심 했다.

그때 결정을 바로 지었다면 아들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같은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어떻게 할 것이오?”

황승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천궁환이 되물었다.

“비천에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황승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백경이 나선 것만 해도 약간은 무리를 한 일이었다. 아마 천주명의 죽음만 아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무림을 자극해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또 나서게 된다면 무림에서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회라 생각하고 천화상단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비천의 자존심이 무너진 상황.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천궁환도 비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고.

“무영객 다섯을 보낼까 하오.”

“중리안 태상과 백경 태상도 어쩌지 못한 자를 무영객 다섯이 처리할 수 있겠소?”

“천위를 책임자로 보낼 생각이오.”

천궁환의 눈이 커졌다.

천위는 천가의 사람이긴 하나 직계가 아닌 방계로, 무공만 따진다면 천가의 인물 중 가장 강했다.

천궁환도 한때는 그에게 사대천화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기려 했었다.

하지만 칠 년 전 모종의 일로 칩거한 후 세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위를 내보낼 생각이시오? 아니 그걸 떠나서, 그 아이가 세상에 다시 나오겠다고 했소?”

“어제 산에서 내려왔소.”

“으음, 잘 된 일이긴 하오만, 그 아이를 세상에 내놓아도 될지 모르겠구려.”

“어차피 세상에 나가려고 산을 내려왔으니 겸사겸사 일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소.”

천궁환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 방계이고 비천에 속해 있다 하나 천위도 천가의 사람이다. 이번 일을 천위가 해결한다면 천가가 해결하는 셈.

게다가 천위가 칩거한 이유를 알기에, 그가 세상으로 나온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보고 가라 전해주시오. 할 말이 있으니.”

“알겠소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은 각자 머리를 굴렸다.

‘비천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놔두어선 안 돼.’

‘천가의 검이 되게 놔둘 순 없지…….’

 

***

 

금룡장에 도착한 지 사흘째.

풍마문의 조장이 서협의 소식을 전해왔다.

“마황궁이 철수했습니다. 남은 무사는 모두 오천여 명 정도 되는데, 분위기가 최악입니다. 혈왕동도 혈왕의 부상이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돌아간다 하고, 철혈마련과 귀천교도 곧 철수할 거라고 합니다. 그럴 경우 사기가 땅에 떨어져서 정은맹을 무너뜨리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정은맹 무사들이 도주했다고는 하나 피해가 너무 컸다.

귀찮은 벌레 정도로 생각했던 정파에게 일만 명에 달하는 마도 무사들이 죽었지 않은가 말이다.

싸움에서 이겼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마도를 더욱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혈왕의 패배였다.

“사람들은 그를 천강사신(天强死神)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대일의 싸움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십초식 만에 패했다는 말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목량이 말했다.

“마도 쪽에서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지금까지와 다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니 계속 주시해야만 합니다.”

“너라면 정은맹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겠느냐?”

혁무천이 목량에게 물었다.

목량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책사가 아니라서 방법에 대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합니다.”

“말해봐라.”

“그동안에는 마도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과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황궁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졌다……?”

혁무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그 말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에는 마도가 마도답지 않게 행동할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정파가 고개를 쳐들면, 언제든 짓눌러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힘으로 짓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강호의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마도의 자존심이 뭉개진 것이다.

“마도는 이제 극단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은맹을 밖으로 끌어내려 하겠군.”

“그렇습니다, 대형. 아마 많은 피가 흐를 겁니다.”

방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혁무천의 시선이 풍마문의 조장에게로 향했다.

“한시도 마도연합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마시오.”

“예, 단주.”

“그리고 이번에 피해가 큰 마도문파에 감시를 붙여 놓으시오. 그에 대한 대가는 따로 계산할 테니까.”

“문주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풍마문의 조장이 나간 후, 혁무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목량에게 말했다.

“네 느낌대로 이야기해 봐라.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목량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렸다.

“혈천지야(血天之夜). 하늘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한쪽만 피바람을 일으켜도 세상이 피비린내로 가득할 텐데, 양쪽에서 동시에 피바람이 불어대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혁무천이 우려하는 부분도 그 점이었다.

코앞에 닥친 혈풍은 두 줄기가 있었다.

혈천여록으로 인한 혈풍.

마도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한 혈풍.

강호무림에서의 일만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충돌로 인한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주위까지 모조리 빨아들일 때다.

그 회오리바람에 비룡장은 물론, 구룡상단까지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아무래도 그가 필요할 것 같군.’

 

***

 

“정말 대단해!”

신도명산은 복우산의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가슴 속의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어디에서도 신도명산과 천기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오직 정은맹 이야기뿐이었다.

“멍청한 마도 놈들. 그런 간단한 수에 당하다니. 지금까지 그딴 놈들에게 눌려 지낸 것이 억울할 정도야.”

“정은맹에 대단한 책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주.”

이현이 깊어진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신도명산은 그의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단하기는? 그 정도야 머리만 조금 돌아가면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복우산의 지형에 맞춰서 십면매복진과 팔문금쇄진을 설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이현이 몇 마디 덧붙이려 하자, 신도명산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런 생각을 못하느냐?”

“…….”

“그런 생각을 미리 했으면, 우리가 마도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을 것 아니냐? 그럼 천하 정파가 우리 천기회를 우러러봤겠지.”

이현은 차마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정은맹과 천기회는 태생과 활동 지역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도명산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요즘 너를 보면 점점 믿음이 떨어진다. 어째 갈수록 둔해지는 것 같아.”

이현은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군사적인 일은 상천이와 집정당주 진효가 대신 할 거다. 너는 자금관리에 힘써라. 그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회주……?”

이현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고 신도명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금 관리나 하려고 부인과 떨어져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신도명산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전에 무천이란 놈이 와호산장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놈을 제거했다면 평아도 죽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됐다. 사람 볼 줄도 모르는 너에게 내가 뭘 더 바라겠느냐? 그나마 내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가봐.”

이현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않고 일어났다.

온몸에서 믿음의 무게가 부스러진 만큼 힘이 빠졌다.

몸을 돌린 그가 방을 나가려는데 적상천과 진효가 들어왔다.

적상천은 무천에 대한 공격 실패로 욕을 먹긴 했지만, 백경의 실책을 부각시켜서 화살을 천화상단으로 돌린 덕분에 그 이상의 질책은 면할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적상천이 조소를 지었다.

장로를 제외하면, 군사직을 맡고 있는 이현이 실질적인 이인자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오늘 부로 이현은 더 이상 이인자가 아니었다.

이인자는커녕 십인자에도 들지 못할 것이다.

‘머리만 믿고 나대더니, 꼴 좋군.’

 

방을 나선 이현은 앞만 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더는 안 되겠구나.’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군사의 자리는 처음부터 욕심이 없었다.

그가 나선 것은 정의를 세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신도명산이라면 그 일을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가슴을 갖고 있었다. 최소한 삼 년 전에 봤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와호산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뭔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힘을 얻은 대신 정의의 불꽃이 희미해진 듯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리에 욕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를 만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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