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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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45화
245화
목량이 움찔하며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크게 무리를 하지 않고 천천히 안으로 전진하는 것이지요. 역시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피해가 많이 줄어들 겁니다.”
송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우 이삼십 리 전진하는데 식량이 문제가 될까?”
“그리 쉽게 전진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미 싸움의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제가 봐선 하루 종일 전진해도 일이백 장밖에 가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팔문금쇄진은 파훼법을 모르면 미로를 빙빙 돌게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허어…….”
송비가 탄식하듯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결국 마도연합은 힘으로 밀고 들어갈 거다. 피해가 아무리 커도.”
은설이 그 말에 의문이 담긴 투로 반문했다.
“정말요?”
“그게 만마성주와 마천문주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지.”
너무나 당연하다는 투.
목량이 혁무천의 말에 동의했다.
“저 역시 대형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정은맹 쪽에서도 그걸 바라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 바라겠지. 최대한 피해를 입히는 게 목적일 테니까.”
혁무천의 그 말에 사공미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저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사도맹 사람들이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 했다.
“네가 가서 뭐하게?”
“어떻게든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고 좋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야죠.”
“네가 가서 알려주면, 그 사람들이 무조건 네 말만 따를 거라고 생각하냐?”
“그건 아닐지 모르지만…….”
“마도연합에 어수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 네가 갈 때쯤에는 해결 방법을 찾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다.”
“정말… 그럴까요?”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 물론 나 역시도 모르는 일이 많지만. 어쨌든 지금은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면서 움직이는 게 나아.”
사공미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좁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제 뭐든 무 공자가 하라는 대로 할게요.”
말투며, 바라보는 표정이 어째 수상하다.
감동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눈도 뭔가 이상하고.
“무슨 뜻이야? 은근슬쩍 엉뚱한 생각하는 거라면 그냥 가.”
누가 저를 위해서 그런 말 한 줄 아나?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한 말일 뿐인데.
혁무천은 괜히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고개를 돌린 그가 풍마문 사내에게 말했다.
“이 근방에 풍마문 사람들이 몇이나 있소?”
“정확하진 않아도 서너 명은 될 겁니다.”
혁무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그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지시가 이어지면서 풍마문 사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혁무천 일행은 풍마문 사내를 보내고 내향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올 때보다 속도는 오히려 더 느려졌다.
이십 리쯤 가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마을 어귀의 바위에 진풍이라는 마을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껏해야 백여 호가 될까 싶었는데, 마을 가운데쯤에 객잔이 두 개나 있었다. 섬서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어서 오가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듯했다.
“여기서 쉬며 기다리는 게 좋겠군.”
내향까지 남은 거리는 십여 리.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냥 가도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기다린다는 말뜻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골 객잔 치고는 제법 컸다. 일층에는 탁자가 여덟 개 있었고, 이층에는 언뜻 봐도 사인용 탁자가 네 개쯤 있을 듯했다.
그런데 이층에는 그들보다 먼저 온 선객이 있었다.
인원은 여섯 명. 이삼십 대 젊은 무사 넷과 사오십 대 중년인이 둘이었다.
특히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자는 복장이 조금 특이했다. 펑퍼짐한 도복을 걸치고 머리에는 도관처럼 보이는 모자를 쓰고 있는데, 중원의 일반적인 도사와는 복장이 조금 달랐다.
식사를 하던 그들은 객잔으로 들어오는 비룡단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장대산을 본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저 친구, 엄청 크네.”
“어디서 기둥을 뽑아서 들고 다니는구만.”
그들이 바라보는 사이, 비룡단원들은 일층의 탁자를 네 개 차지해서 자리에 앉았다.
장대산을 본 사람들마다 모두 한두 마디씩 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은설과 사공미미, 자화미, 그리고 혁무천에 대해서도 말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자, 뭘 드시겠습니까?”
어린 점소이가 멈칫거리며 다가와서 주문을 받아갔다.
어차피 곧 할 일(?)이 있으니 간단하게 요리 몇 가지와 차를 주문했다.
먼저 차가 나오고, 요리가 하나씩 나왔다.
“제법 괜찮은 친구들 같은데?”
차로 입술을 축인 송비가 이층에 있는 자들을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평범한 무사들은 아니었다.
여섯 모두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특히 도사 차림의 중년인과 삼십 대 장한 하나는 다른 네 사람에 비해 한두 단계 위의 고수였다.
그 두 사람은 뭔가를 느꼈는지 입을 꾹 닫은 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호남 아래쪽에서 온 사람들 같군요. 저 도사, 형산에 있는 귀룡파의 도사요.”
혁무천이 말하며 이채 띤 눈빛을 반짝였다.
귀룡파(鬼龍派)는 호남 형산 남쪽에 있는 도문이었다. 제자들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지닌 재주가 괴이해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문파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혁무천은 귀룡파의 도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귀도(鬼道)가 귀룡파의 제자라고 했지.’
비록 대마천의 천붕십이마에 들지는 못했지만, 백마 중에서는 빠지지 않는 고수였다.
특히 그가 지닌 괴이한 술법과 잡다한 재주는 적을 혼란으로 빠뜨리곤 했었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아마 저 펑퍼짐한 도복 안쪽에는 술법을 펼치기 위한 온갖 기물이 들어있을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상기한 혁무천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귀룡파의 제자가 이곳까지 오다니, 의외군요.”
이층의 도사가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귀룡파의 제자는 모종의 사연으로 인해 지난 오십여 년 동안 세상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간혹 나온다 해도 될 수 있으면 일반 평복을 했다.
그 바람에 이제는 귀룡파의 복장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제 이십 대로 보이는 자가 단언하듯 말하는 것 아닌가.
“그대가 본 파를 어떻게 아는가?”
전형적인 호남 남부의 사투리였다. 그래도 짤막한 말이어서 알아듣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들은 적이 있지요. 귀룡파의 제자들은 신묘한 술법을 펼친다고 하더군요.”
중년도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귀룡파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술법 때문이었다. 귀룡파의 제자 하나가 술법을 사용해서 양민 수십 명을 죽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개인의 복수를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 일로 관에서는 일만 병사들을 동원해서 귀룡파의 도관을 폐쇄까지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귀룡파 제자들이 사정과 협박을 병행하며 관을 설득시켰다.
결국 관에서도 오십 년 동안 형산 일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폐쇄를 취소했다.
그 후 귀룡파 제자들은 형산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나갈 때도 귀룡파 특유의 복장을 하지 않았다.
그 세월이 오십 년이 넘었다.
“뭘 잘못 알고 있군. 우린 술법을 쓰지 않는다네.”
“이런, 아쉬운 일이군요.”
“뭐가 아쉽다는 건가?”
“귀룡파의 술법이 필요한 곳이 있는데, 이제 술법을 쓰지 않는다니, 아쉬운 일 아니오?”
중년도사는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귀룡파의 술법을 얼마나 알아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때 혁무천이 한마디 덧붙여서 중년도사를 떠보았다.
“보아하니 마도연합 쪽에 가는 것 같은데, 아니오?”
그에 대한 대답은 삼십 대로 보이는 장한이 했다.
“맞아. 우린 서협의 마도연합으로 가는 길이다. 그쪽도 그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닌가?”
혁무천은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곳에 가는 목적이 뭐지? 설마 ‘마도세상을 위해!’라는 웃기는 이유는 아닐 거고……. 돈? 아니면 명예?”
“무사가 되었다면, 강호에 나와서 이름을 떨쳐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 와중에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
“솔직하군.”
“그런 걸 숨긴다는 게 웃기는 일 아닌가?”
“그 말이 맞아.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겠지?”
“우린 이제 이곳에 와서 자세한 건 알지 못해.”
“칠팔천 명이나 되는 마도연합 무사들이 복우산에 들어가서 정파의 방어망에 걸려 고전하고 있다던데. 자칫하면 명예도, 돈도 얻지 못한 채 복우산에 들어가서 개죽음 당할 수 있어.”
“하하하, 싸우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면 그게 어디 무사인가? 자네는 죽음이 두려운가 보군.”
제법 대가 센 자다.
솔직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외로 쓸 만해 보인다.
“그런 마음이라면 우리와 함께 해보지 않겠나? 돈은 마도연합보다 더 줄 거고, 이름을 떨치기도 더 쉬울 거야.”
장한은 혁무천 일행이 절대 평범한 무리가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혁무천의 제안에 코웃음 치지 못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나는 비룡장의 비룡단주 무천이라 하지. 그럼 돈을 더 준다는 말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고, 아마 이름을 떨칠 기회도 자주 있을 거야.”
“그대가 비룡단주 무천?”
장한, 탕초양이 처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장 귀에 익은 이름 중 하나가 바로 ‘무천’이었다.
이제 그 이름은 팔대마세의 소주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가 있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거품일 뿐이라면서 오히려 자신의 입에 거품을 물고 씹어대기도 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팔대마세의 소주인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층의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어때? 내 이름을 안다면 내 말이 허풍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 것 같은데.”
탕초양은 고개를 돌려서 중년도사를 바라보았다.
중년도사, 귀원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탕초양이 그의 전음을 다 듣고는 다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좋아, 그럼 조건부터 들어보지. 얼마를 줄 건가?”
“한 달에 은자 백 냥. 일 년 동안 일해주면 은자 천오백 냥을 주지. 그대와 저 양반은 이천 냥을 주고.”
탕초양과 귀원 외의 사람들이 또 놀라서 눈을 홉떴다.
도대체 벌써 몇 번째 놀라는 건지…….
사실 그들은 먼 길을 오다 보니 돈이 거의 다 떨어져가던 판이었다.
이러다가는 도적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거금을 준다고 하니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상대가 최근 귀를 따갑게 하던 무천과 비룡단 아닌가 말이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싫으면 말고.”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탕초양이 재빨리 대답했다.
어디에 간다 한들 그 정도 보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름을 떨치는 일에 대해서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상대가 비룡단주 무천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끝난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럼 우리가 허락하면 우리도 비룡단원이 되는 건가?”
“그래. 싫다면 다른 조직으로 보내주지. 비룡장에는 비룡단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럴 필요 없어. 비룡단원이 되지.”
“잘 생각했어.”
혁무천은 내심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동대안이 없는 게 아쉬웠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괜찮은 자들을 얻었다. 뭔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탕초양도 불만이 없었다.
사실 서협에 간다 해도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마도연합은 팔대마세와 마도십문 등 마도사파의 대 세력이 연합한 곳. 당연히 고수들도 많을 게 분명했다.
자신들도 약하진 않지만, 그들을 뚫고 이름을 떨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보수야 말할 것도 없고.
‘듣기로는 한 달에 은자 열 냥을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비룡단에 들어가는 게 나았다.
“그럼 언제부터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지금부터.”
혁무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였다.
쏴아아아아아.
귀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층에 있던 탕초영 일행도 뭔가를 느꼈는지 좌우를 둘러보았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곧,
촤라락!
주렴이 거칠게 걷히면서 세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적상천, 옥귀정, 그리고 백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