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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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6화
236화
머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 무천이었다.
그 다음 보인 것은, 하늘에서 대지까지 가르며 떨어지는 한 줄기 벼락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구현하고자 애썼던 그 장면이 마치, 느리게 움직이는 그림처럼 눈에, 머릿속에 선명히 박혔다.
‘그, 그거였어!’
순간!
콰아앙!
일성 굉음과 함께 ‘상’이라고 했던 자가 뒤로 튕겨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자가 서 있던 자리에 무천이 서 있었다.
문득 과거의 생각이 떠올라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저런 놈과 한판 붙자고 했다니…….’
하지만 짐짓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그자는 내 상대인데… 왜 자네가…….”
무천은 율이명의 상태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는데도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이미 백 명 이상 죽은 듯 보였다.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만 했다.
“서운하시면 나중에 제가 대신 상대해드리지요. 일단 사람들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율이명은 하마터면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미, 미쳤냐?’
비룡단원들은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살수를 펼쳤다.
비룡장 무사들 중에는 얼굴이 익은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웃음을 띠며 이야기를 나눈 이도 보였다.
그들은 남이 아니었다. 동료였다. 서로의 등을 지켜주던 사람들.
하다못해 자신이 편하게 잠을 잘 동안 눈을 비비며 야간순찰을 돌아주기라도 했다.
그들이 핏구덩이 속에 쓰러져 있었다.
“개새끼들! 다 죽여!”
동대안이 악을 쓰며 섬혼을 뻗었다.
오늘만큼은 혁무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의 섬혼이 번쩍일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사라졌다.
장대산은 한 번에 두세 사람씩 날려버리기도 했고, 철호는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이리저리 통통 튀며 도끼로 이마를 까댔다.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적들 속을 누비는 호광.
나름 무게를 잡으며 한 놈, 한 놈 베어 넘기는 송비.
거기다 장평과 영추문, 철상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적진을 유린했다.
잠깐 사이 삼사십 명이 쓰러졌다.
전달된 충격은 그 배 이상으로 컸다.
천화상단과 천기회 무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전황이 한순간에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신도평은 혁무천이 나타난 것을 알고 눈을 부릅떴다.
“저놈이 어떻게 여길……!”
더 어이없는 건, 검마보 보주마저 몰아붙인 천화상단의 고수가 그의 손에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회주! 아무래도 안 되겠네! 놈들의 지원대가 더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세!”
천기회 장로 문유보의 다급한 말에 신도평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천 앞에서 도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다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일상이 도주하고, 혁무천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걸 보고는 자존심조차 내팽개쳤다.
“신도평! 역시 천기회가 도적질에 나섰구나!”
“후퇴하라 하십시오!”
다급히 명을 내린 신도평은 먼저 송림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 사이 삼십여 장을 줄이고 날아든 혁무천이 검을 내리그었다.
시퍼런 강기가 검첨에서 튀어나갔다.
검강탄기를 기반으로 한 뇌룡섬전세!
송림의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벼락이 떨어졌다.
작심하고 내려친 일격에 허벅지 굵기의 가지들이 잔가지처럼 잘려나가고, 송림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신도평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 팔이 바닥에 나뒹구는 걸 보고는 공포에 질려서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때 천기회의 장로 문유보와 무사들이 혁무천을 공격했다.
“이놈!”
혁무천은 몸을 돌려서 그들을 향해 검을 뿌렸다.
신도평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은 적이 아직 많았다. 그들을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 비룡장 무사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신도평은 잘린 팔을 움켜쥔 채 송림 깊숙이 사라졌다.
***
시뻘건 피와 시신으로 뒤덮인 관도에 분노 실린 침묵만이 휘돌았다.
비룡장과 검마보 무사 백십여 명이 죽었다.
장로와 호법을 비롯해서 간부도 다섯이나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은 구십여 명.
살아남은 자들의 눈에서는 지독한 살기가 흘렀다.
“천화상단과 천기회란 말이지?”
율이명이 이를 갈 듯 말하며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그 ‘상’이라고 했던 자, 천화상단 사람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그리고 도망친 젊은 놈은 신도평이라고, 천기회주의 아들지요. 목을 치려 했는데, 겨우 팔만 하나 자르고 말았습니다.”
“그놈이 천기회주의 아들이라고?”
“저와는 약간 악연이 있지요.”
설아의 반응이 걱정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썼는데, 그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지…….
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망설임 없이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를 것이다.
‘설아를 데려오지 않은 게 다행이군.’
천기회가 관여되어 있는 일이어서 은설을 금룡장에 남겨두었다. 잘한 결정이었다.
그때 목량이 넌지시 그를 불렀다.
“저기, 대형…….”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 목량을 바라보았다.
목량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혁무천은 목량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죽립을 쓰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반쯤 가려진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을 본 혁무천의 이마가 구겨졌다.
자경산과 자화미.
비룡장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왜 표행을 따라왔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율이명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는 사람들인가? 저 친구들 덕분에 후미 쪽 피해가 적었네.”
이때라는 듯 자화미가 말했다.
“아마 오빠와 내가 열 명은 구해줬을 거예요. 그 정도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을 거 같은데요.”
“시끄러.”
혁무천이 싸늘하게 말하자, 자화미가 찔끔해서 입을 닫았다.
대신 자경산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시오. 그들의 눈길이 점점 비룡장에 가까워지는 거 같아서 나왔소. 잘못하면 비룡장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혁무천도 철혈마련이 그들을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비룡장을 나왔으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지, 왜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물론 그 이유를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한숨이 나오는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나도 더 참지 않을 거다. 묶어서 마련으로 보내버릴 것이니 알아서 해.”
“알았어요.”
자존심이 상해서 돌아설 만한데도 자화미는 생긋 웃었다.
정말 질긴 여자였다.
시신이 정리되자, 부상자들을 마차에 싣고 사진으로 갔다.
혁무천은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그러고는 마을에 있는 의원 세 사람을 모두 데려와서 부상자부터 치료하게 했다.
의원들이 부상자를 치료하는 동안 혁무천은 대책을 논의했다.
“목량, 놈들에 대한 추적은?”
“풍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 한 놓치지 않을 겁니다.”
“천화상단과 천기회는 오늘 일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다.”
혁무천의 입에서 차갑게 흘러나온 말에 율이명이 동조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목숨에 대한 빚은 목숨으로 받는 수밖에요.”
“나 역시 찬성이네. 죽일 놈의 새끼들…….”
“그들은 곧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후드득 떨었다.
***
천신명은 안색이 창백한 부일상을 보며 이를 악다물었다.
‘제길, 단천검마 율이명과 검마보 정예 고수들이 표행의 호위로 나서다니!’
그들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 검마보에서 오늘 일을 강하게 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무천!
그놈이 다 된 밥을 엎어버렸다.
그 와중에 부일상마저 패하고 내상을 입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부일상의 표정이었다.
흔들리는 눈빛. 절대경지에 들어섰다는 그의 가슴에 두려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후우, 미치겠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책임을 절반쯤은 천기회에 전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큰 피해를 봤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사대천화에게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었다. 이번 일의 실패에는 자신들의 정보부재 책임이 컸다.
“면목이 없네.”
부일상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만이 많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번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하의 천화상단이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천화상단의 대공자로부터 내려온 명령이라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번 공격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십시오.”
“알겠네. 그런데 총단주께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제가 서찰을 하나 써드릴 테니 아버님께 드리십시오.”
“그러지. 더 할 말 없으면 가보겠네.”
부일상은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천주명은 방문이 닫히는 걸 보고는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병신같이! 그깟 놈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겁에 질리다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천신명을 찾아갔다.
천신명은 천주명의 보고를 받고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잠시 바라본 그는 고개를 내리더니,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니…….”
휙- 퍽!
쨍그랑!
“윽!”
천신명의 손을 벗어난 찻잔이 그대로 천주명의 이마를 때렸다.
찻잔이 부서지면서 찻물과 함께 튀었다.
찻잔과 부딪친 이마가 찢겨지고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멍청한 놈!”
“혀, 형님…….”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결국 무천이란 놈에게 빌미만 제공하고 말았구나.”
“그곳에 갔던 사람들은 모두 본가로 돌아가라 했습니다.”
“돌아가라 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실패할 경우 이곳으로 오지 말라고 했어야지!”
천주명은 찢어진 이마를 붙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끈적끈적한 피가 손바닥을 적셨다.
누가 실패할 줄 알았나?
“내가 멍청한 네놈을 믿은 게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느냐?”
‘제길, 자기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해놓고…….’
결과가 좋으면 자신이 잘해서고, 나쁘면 남 탓이다, 이건가?
고개 숙인 천주명의 눈매가 씰룩였다.
‘흥! 내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모든 잘못을 천기회에 떠넘겨라.”
천신명의 말에 천주명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 형님.”
***
신도평은 부상 때문에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하며 북상했다.
지혈을 단단히 했음에도 속도를 높이면 혈류가 빨라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해가 질 때쯤 작은 마을에 도착한 천기회 장로 유전곡이 허름한 마차 한 대를 구했다.
천기회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을 자지 않고 음식만 구한 후 마을을 나섰다.
신도평의 부상으로 두 시진 동안 겨우 칠십 리를 달려왔을 뿐이다.
마차를 끌고 가면 속도도 높일 수 없다.
자칫하면 꼬리를 잡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거리를 최대한 벌리는 게 중요했다.
밤길을 재촉한 그들은 해가 떠오를 때쯤 멈추어 섰다.
낡은 마차의 한쪽 바퀴가 부서지는 바람에 마차를 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차를 버리고 말만 따로 떼어냈다.
그때 마침, 저 멀리 산자락에 건물 서너 채로 된 작은 도관이 보였다.
“저기서 쉬었다 가도록 하지요. 도관이라면 치료할 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색이 창백한 신도평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피를 워낙 많이 흘려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대로는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었다.
유전곡은 아직도 불안했지만, 설마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전진을 더 강요하지 않았다.
밤새 달려온 거리가 팔십여 리는 되었다. 싸움이 벌어진 곳에서 백오십여 리. 이 정도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렇게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