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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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0화
230화
우문당은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 주장을 편 사람도 자신이었다.
“어쨌든 도움을 줬으니 그 일은 더 따지지 않겠소.”
도움을 주고도 도리어 한소리 얻어먹은 우문당은 어이가 없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자신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울컥, 짜증이 난 그는 그 바람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이 건방진 놈이! 네 애비가 어떤 작자인지 몰라도 자식을 잘못 가르쳤구나!”
혁무천은 우문당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 아버지가 말이오?”
“오냐! 네 애비가 어떤 천한 놈…….”
“숙부!”
우문척은 우문당이 너무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자 급히 말리려 했다.
그때였다.
쏴아아아아.
마치 귓가에서 소음이 들리는 듯했다.
동시에 차가운 눈빛으로 우문당을 바라보던 혁무천의 신형이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머리끝이 쭈뼛 선 우문척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봐, 무천!”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혁무천으로 추정되는 흐릿한 그림자가 우문당을 덮쳤다.
우문당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는 혁무천이 보였다.
분명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는데, 삼 장 밖에 있던 혁무천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초절정고수인 그의 눈으로도 따라잡지 못한 극쾌의 움직임.
반사적으로 두 손을 올린 그는 공력을 끌어올리며 방어막을 형성했다.
쾅!
“끄윽.”
콰광!
“끄으으윽.”
콰과광!
“컥!”
굉음과 신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더니, 결국 우문당의 몸이 훌훌 이장을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서도 네다섯 바퀴 구른 우문당 앞에 혁무천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을 새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조차 제대로 본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어? 하는 사이 굉음이 터져 나오고, 우문당이 날아간 것이다.
무위만 따지면 철혈마련 내에서 십 위 이내에 들 거라고 알려진 철심마수(鐵心魔手) 우문당이.
빤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철혈마련의 간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문척의 눈치만 봤다.
그 사이 혁무천은 쓰러져 있는 우문당을 내려다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데, 정신을 잃은 듯 눈에 초점이 없었다.
몸을 돌린 혁무천은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 있는 우문척을 바라보았다.
“그대를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았다. 죽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해. 다음에는 반드시 죽여줄 테니까.”
우문척이 경악을 억누르고, 묘한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동안 힘을 숨기고 있었군.”
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혁무천을 알고 있다 생각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동대안도.
‘씨바, 저번에 안 건들기를 잘했군. 하여간 엉큼하다니까.’
죽일까 말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떠오르자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발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나 혁무천은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뭘 잘못 알고 있군. 나는 숨긴 적 없어. 그럴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것뿐.”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힘을 다 쓰지 않았다?”
“맞아.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하긴…….”
“그건 우문척,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혁무천의 비수 같은 받아치기에, 우문척은 쓴웃음을 지으며 우문당을 돌아다보았다.
두 사람이 부축해서 일으키고 있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면 말해.”
혁무천의 그 말에 우문척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그럴 일 없어. 숙부님은 숙부님이고, 나는 나야.”
“의외군. 숙부가 다쳤는데 화나지도 않나?”
“글쎄, 별로. 솔직히 오늘 이야기를 아버님께 하면, 아버님이 좋아할지, 분노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골치 깨나 썩였나 보군.”
“하하하하. 좀 그랬지.”
우문척이 대소를 터트리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때 우문당이 끙,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너…… 이 새…….”
우문척이 중지를 튕겨서 그의 수혈을 점했다.
비몽사몽간이던 우문당이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조금 전에 네가 한 말, 숙부님께 그대로 전하지. 두 사람 문제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
“그러지. 이제 출발해야겠군. 해 지기 전에 남양에 들어가려면 서둘러야겠어.”
***
천신명과 천주명은 혁무천 일행이 옥가장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상황 보고를 받았다.
“철혈마련이 나타났다고?”
두 사람 앞에 서 있던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이 힘없이 대답했다.
“예, 대공자. 우문척이 철혈마련 무사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 바람에 공격을 멈추고 물러서야만 했습니다.”
“저들이 우리 쪽의 정체를 알아보았는가?”
“그건 모를 겁니다. 모든 것을 숨겼으니까요. 두 사람이 사로잡히긴 했는데, 바로 자결을 했습니다.”
천신명은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젠장,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무원장의 표행만 공격이 실패한 게 아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풍양표국과 비룡장의 표행도 막지 못했다.
만마성 때문이었다. 만마성의 무사들이 표행에 호위로 나선 것이다.
그 바람에 공격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네 계획은 실패한 것 같다.”
천신명이 천주명을 보며 말했다.
그 계획을 세운 사람은 천주명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 때문에 천화상단의 비밀호위 열댓 명만 잃고 말았다.
하지만 천주명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운송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두 곳은 만마성과 철혈마련 때문에 실패했습니다만, 다른 곳은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천신명은 이마를 찌푸렸다.
어차피 내딛은 발걸음이다. 이제 와서 물러서면 결국 손해만 남는다.
‘한번이라도 성공해야 무사를 잃은 손해를 만회할 수 있어.’
상계의 사람답게 그는 손익부터 따졌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더하자, 결론이 나왔다.
“좋아, 한번만 더 믿어보마. 대신 실패할 경우 네가 책임져야 할 거다.”
형의 의도를 깨달은 천주명은 이를 악다물었다.
‘나에게 책임을 다 떠넘기시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는 더더욱 싫었다.
나름대로 책임을 회피할 방법도 있었고.
“알겠습니다, 형님.”
대답하는 그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
유시 초.
제 삼로 삼대를 맡은 마황궁 무사들은 복우산으로 들어선 지 세 시진 만에 정은맹 무사들과 마주쳤다.
적의 숫자는 이백여 명. 마황궁 무사들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살기충천한 마황궁 무사들을 보고 겁에 질려서 물러서기 급급했다.
마황궁 무사들은 기세를 올리며 정파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도주하는 정파 놈들 모습이 지나치게 급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작정하고 도주하는 듯했다.
뭔가 께름칙했지만, 좌우가 탁 트인 분지는 암습하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어서 멈추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더욱 열을 내며 정파 놈들의 뒤를 쫓았다.
“크캬캬캬! 모조리 목을 쳐라!”
“뛰어야 벼룩이다, 이놈들!”
삼백여 장을 달려가자 풀이 점점 길어져서 가슴에 닿았다.
발을 디딘 땅이 조금 질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뛰어가는데 크게 거치적거릴 정도는 아니어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도주하는 정파 놈들도 별 지장을 받지 않고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헉!”
“뭐, 뭐야?”
선두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따라가던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며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다.
정파 놈들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는 중이었다.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두가 풀숲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선지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자들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마음이 급해진 간부들이 소리쳤다.
“뭐 하느냐! 빨리 쫓아라!”
“놈들을 잡아!”
수백 명이 벌 떼처럼 몸을 날렸다. 다급한 목소리에 속도를 늦추었던 자들도 힘을 내서 솟구쳤다.
선두를 바짝 뒤따르며 몸을 날렸던 자들이 풀숲에 내려섰다.
그들의 모습도 풀숲으로 사라졌다.
약간 뒤처져 있던 자들은 몸을 날리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풀이 길다 하나 가슴 높이였다. 앞쪽도 같은 종류의 풀이었다. 특별히 더 길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앞서 내려선 자들이 머리까지 잠겨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빨래를 두들기듯 퍽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을 뿐.
하지만 적이 공격하는 기미도 없었고, 다투는 소리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잠깐이었다.
“이쪽으로 오지 마!”
“느, 늪이다! 조심해!”
“다른 쪽으로 돌아가!”
당황과 다급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풀숲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날아가던 자들이 풀숲으로 내려섰다.
퍽, 퍽. 첨벙. 푹푹.
선두에 이어서 뒤따라간 사람들까지, 백수십 명이 모두 풀숲 속으로 사라졌다.
“앞에 늪이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모두 멈춰!”
뒤늦게 다급한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뒤처졌던 이백여 명은 겨우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멈춰선 곳도 무릎까지 빠져들었다. 질척한 늪은 힘을 줄 때마다 더 발이 깊이 빠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모두 뒤로 물러서라!”
귀마당주가 악을 쓰듯 명령을 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황궁 무사들은 늪 때문에 추적이 실패한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귀마당 칠조 조장 영위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위, 위험합니다, 대주! 아무래도 놈들에게 속은 것 같습니다!”
“속긴 뭘 속았단 말이냐?”
“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 늪지대를 통과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귀마당주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그때였다.
“지옥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마도의 버러지들아!”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며 울렸다.
그 직후, 풀숲 사방 가장자리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구쳤다.
화르르르르.
불길은 빠르게 번지며 마황궁 무사들을 향해 달려왔다.
아무리 풀숲이라 하나 바닥이 질척거리는 늪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원인을 안 마황궁 무사들은 공포에 질렸다.
“늪지에 기름이 뿌려져 있습니다!”
“빠져나가!!!”
그러나 질척한 늪지에 무릎까지 박힌 상태였다.
땅을 박차고 솟구칠 수가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발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었다.
발이 깊게 박히면서 가슴 높이의 풀이 머리 위로 올라섰다.
이제는 시야마저 가려졌다.
그 와중에도 불길이 빠르게 번지며 마황궁 무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어서 빠져나가!”
“옆 사람의 손을 딛고 경공을 펼쳐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눈치를 보다가 옆 사람이 깍지 낀 손을 내밀면 그곳에 발을 얹고 위로 솟구쳤다.
당연히 힘센 놈이 먼저 늪지를 빠져나왔다.
심지어 동료를 베어버린 후 쓰러진 자를 밟고 몸을 날리는 자도 있었다.
그 순간!
쐐애애액!
쉬쉬쉬쉭!
허공을 가르는 소음과 함께 수천 개의 암기가 소나기처럼 날아들었다.
동료의 손과 어깨를 받침대 삼아 솟구친 자들이 살 맞은 오리떼처럼 떨어졌다.
분지의 넓은 늪이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