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7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7화
227화
드디어 일진 삼천여 명이 먼저 서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막을 칠 수 있는 자재와 식량운송을 위한 마차만 해도 수십 대나 되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가면 수용할 곳도 마땅치 않고, 생활 자체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하루 간격으로 일천여 명씩 떠났다.
혁무천 일행은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은 정파세력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혁무천도 혈천여록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일단 옥가장에서 지내며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십리림과 옥가장의 인원이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남은 인원이 아직 삼천 명이 넘긴 하지만, 전에 비하면 절간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혁무천 일행은 그동안 무공 수련에 열중했다.
언젠가는 천화상단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막아내려면 일 푼이라도 더 강해져야 했다.
그런데 그날 미시 초, 점심을 먹고 거처로 가는데, 객당의 구석진 곳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 있는데, 누군가가 다투는 듯했다.
심심한데 잘 됐다는 듯, 동대안이 뽀르르 달려가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봐야 큰 차이는 없지만.
“어? 추씨 삼형제잖아?”
그랬다. 추씨 삼형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중년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숫자가 한 명 많음에도 낭패한 모습이었다.
안색은 창백했고,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진 상태였다.
그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걸 생각하면 두 중년인의 강함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두 중년인이 그들을 죽이려고 작정했다면 이미 끝났을 싸움이었다. 일이 커질까 봐 죽이지 않은 것뿐.
“킬킬킬, 그딴 실력으로 우리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두 중년인은 추씨 삼형제를 비웃으며 몰아붙였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바닥에 나뒹굴 듯했다.
그때 그들 사이로 파란 그림자 하나가 뛰어들었다. 동대안이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적산삼혈도 추씨 삼형제잖아?”
추씨 삼형제를 몰아붙이던 두 중년인은 멈칫하고 동대안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웃기게 생긴 놈이군.”
동대안은 대답 대신 섬혼을 뽑았다.
쒜엑! 슈슉!
뭔가가 눈앞에서 번쩍이자, 창산쌍마는 본능적으로 몸을 젖히며 물러섰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고 앞섬이 길게 찢겨졌다.
“이 개자식이!”
“죽어!”
창산쌍마는 욕설과 고함을 내지르고 동대안을 공격했다.
한 사람은 칼을 사용했고, 한 사람은 무기 없이 시퍼렇게 물든 손으로 장법과 조법을 펼쳤다.
절정경지에 이른 자들답게 공격을 펼치는 도와 손에서 강맹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동대안의 섬혼은 그들의 공격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게다가 그의 검은 빠르고, 신법 또한 한 수 위였다.
그가 유령처럼 두 사람의 공격 사이를 누비며 섬혼을 내지르자, 창산쌍마의 입에서 신음과 기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크윽.”
“으헉!”
황급히 대여섯 걸음 물러선 창산쌍마는 공력을 십성 끌어올리고 동대안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동대안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섬혼을 회수했다.
“그만하죠. 동료끼리 뒤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왜 싸우는 거요?”
“이 찢어죽일 놈이…….”
창산쌍마의 첫째 귀도마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치켜떴다.
그러다 뒤에서 자신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기둥 같은 장봉을 든 거인이 보였다. 그리고 결코 자신에 비해 하수가 아닌 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귀도마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끼고 숨을 멈췄다.
“동 형, 그 사람들 데리고 오쇼.”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 창산쌍마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넌 뭐야, 개새……!”
창산쌍마의 둘째 독청마가 욕을 하며 한 걸음 내딛고 손을 뻗었다.
갈퀴처럼 구부러진 푸른 손가락이 당장 혁무천의 목을 움켜쥘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혁무천이 몸을 살짝 틀며 오른손을 들어서 독청마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흠칫한 독청마가 뻗은 손의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빠져나가기에는 혁무천의 손속이 워낙 빨랐다.
우득!
손목 뼈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렸다.
뒤이어 혁무천이 좌수를 앞으로 뻗자, 쾅! 소리와 ‘크엑!’하는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오며 독청마의 몸이 훌훌 날아갔다.
광천일장으로 독청마를 날려버린 혁무천은 귀도마를 바라보았다.
“손에 사정을 두었으니 죽진 않을 거요. 하지만 다음에는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할 거요.”
귀도마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동대안이 추씨 삼형제를 데려왔다.
거처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적산삼혈도가 청산쌍마와 싸운 이유를 말했다.
그들은 청산쌍마가 거드름을 피우며 낭인무사들을 괴롭히자 나섰다고 했다. 상대가 청산쌍마며, 그들이 자신들보다 강한 걸 알고도 분기를 참지 못한 것이다.
마도의 인물이라 하기에는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추일이 혁무천에게 말했다.
“혹, 사람이 필요하지 않소?”
추가 삼형제는 지금까지 어느 곳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보다 더 젊었을 적에는 낭인처럼 싸돌아다녔고, 이십 대 중반인 칠 년 전부터는 청부를 해결하며 살아왔다.
얼마 지금까지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불만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삼십 대 중반이 되면서 자신들도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졌다. 기댈 곳이 있다면 혼인을 해도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노가장에 가게 된 것도 기왕이면 친하게 지낸 그곳에 몸을 담아볼까 싶어서였다.
또한 남양에 온 것 역시 복수도 이유지만, 이 기회에 팔대마세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갈 생각이었다.
어제 저녁만 해도 만마성, 마천문, 사도맹을 놓고 고민했었다.
사실 팔대마세에 비하면 비룡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객잔에서 이야기 좀 해줬다고 준 대가를 보나, 개개인의 능력을 보나 일개 상인 집단이 아닌 듯했다.
특히 독청마를 일수에 날려버린 비룡단주는 능력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 역시 마음을 흔들었다.
“만약 공자가 받아준다면 우리의 나머지 삶을 맡겨보고 싶소.”
혁무천은 송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적산혈삼도라면 자신 몫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나는 찬성하네.”
이번에는 목량을 보고 물었다.
“백만 냥을 맡겨도 될 사람들이라 보느냐?”
목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대형께서 결정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초감각을 지닌 목량이 그리 봤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다.
혁무천이 추일을 보며 말했다.
“좋소. 그대의 형제를 우리 비룡단의 식구로 받아주겠소.”
“고맙소. 우리 삼형제는 충심으로 공자를 모시겠소.”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송비를 바라보았다.
“송숙이 맡아주십시오.”
송비의 입에 헤벌쭉 벌어졌다.
“그러지.”
그때 밖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무천을 만나러 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혁무천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대산, 안으로 모셔라.”
곧 천막의 입구가 젖혀지고 한 사람이 들어섰다.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인, 양화송이었다.
혁무천이 그를 빤히 보며 물었다.
“어쩐 일이오?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소?”
양화송은 콧등을 씰룩이더니 툭 내뱉듯 말했다.
“소성주께서 이야기를 전하라 하셔서 왔네.”
“아쉽군. 귀하의 대답을 원했는데. 어디 말해보시오. 그가 무슨 말을 전하라 했소?”
“천화상단이 우문양을 만났다 하네. 그런데 우문양이 그 이후 고민에 빠진 모습이라고 하더군.”
혁무천의 담담하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문양은 조석지변으로 마음이 변할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이미 사도맹의 일도 있었지 않은가.
“천화상단이 큰 선물을 준 모양이군요.”
“자세한 건 나도 모르네.”
“알았소. 어쨌든 고맙소.”
양화송은 멈칫거리더니 한마디 툭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나중에 보세.”
혁무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나중에 보자고?
평소 그런 말을 할 양화송이 아니었다. 마천문에서도 자신을 피해 다니기 바쁜 사람이 그였다.
어쩌면 이곳에 온 것도 그가 자진해서 온 것일지도……
“그러죠. 괜찮으면 해가 진 다음에 오시오.”
“그러지.”
양화송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하고는 천막을 나섰다.
혁무천은 양화송이 나간 입구를 잠시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우문양을 만나봐야 할 것 같군.”
철혈마련이 마음을 돌린다면 계획에 약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단 확실한 원인이라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
팔대마세 중 아직 서협으로 떠나지 않은 세력은 모두 셋이었다.
만마성과 철혈마련, 그리고 마황성.
혁무천은 혼자서 철혈마련이 있는 후원 쪽으로 갔다.
그런데 우문양이 있는 방 앞쪽에서 네 사람이 앞을 막아섰다.
삼십 대 중반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철혈마련이 자랑하는 삼령 중 철혈사령대의 정예 대원들.
“무슨 일로 왔는가?”
혁무천은 그들이 자신을 알면서도 막아선 걸 보고 무심하게 표정이 굳어졌다.
“비룡장의 무천이라 하오. 우문 공자를 만나러 왔소.”
철혈사령대 대원 중 눈에 칼자국이 있는 자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공자께선 지금 바쁘셔서 손님을 만나지 않네.”
“가서 말씀이나 드려보시오. 계약 때문에 왔다고.”
“아무도 안 만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오십 대 중반의 중노인이 나왔다. 철혈마련의 장로 중 한 사람인 백절마검 여호청이었다.
“계약이라니? 무슨 말인 줄 모르겠군. 우린 계약서 쓴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말이야.”
혁무천은 차가운 눈으로 여호청을 보고는 말했다.
“강호에서는 말 한마디가 종이에 적힌 것보다 중한 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몇 십만 냥의 거래를 말 한마디만으로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천화상단과도 아직 계약서를 쓰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이따 쓰기로 했네.”
“결국 계약을 깨겠다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럼 멀리 배웅하지 않을 테니 그만 가보게.”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문전박대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혁무천은 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봐, 우문양! 정 바쁘다면 돌아가지. 그런데 하나만 알아두어라. 남자새끼는 말이야, 너처럼 사는 게 아니야!”
“이 건방진 자가!”
눈에 칼자국 있는 자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혁무천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지금 건방지다고 했나? 너 따위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뭐야? 이 새끼가!”
눈에 칼자국이 있는 자는 버럭 소리치고는, 혁무천을 향해 몸을 날리며 쌍장을 쳐냈다.
혁무천은 그를 향해서 우수 일장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그의 장심과 손가락 끝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뿜어지더니 손바닥 형상으로 쫙 펼쳐졌다.
순간, 칼자국이 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졌다.
‘헉!’
거대한 손 그림자가 몸을 덮쳐 왔다. 숨이 턱 막혀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직후,
쾅!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붕 떠서 방문을 와장창 부수며 방 안으로 날아가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