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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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5화
225화
버럭 소리친 천두공이 찻잔을 들었다.
혁무천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혈천여록입니다.”
“혀…… 쿨럭, 쿨럭!”
천두공이 마시던 차를 뿜으며 기침을 해댔다.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입가의 찻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혁무천만 노려보았다.
“바, 방금… 뭐라 했느냐?”
“혈천여록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세 개로 나누어진 것 중 하나지요.”
천두공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마천제님의… 혈천여록이 만마총 안에 있었다?”
끄덕끄덕.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천두공의 노안에서 불길이 피어났다.
“그걸 네가 어찌 안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해라. 만약 헛소리를 한다면… 너는 만마성의 공적이 되어 일만 무사에게…….”
“대산.”
혁무천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부르자,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던 장대산이 황소눈을 꿈벅이며 대답했다.
“어, 대형.”
“네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지?”
“혈천여록 때문에.”
“할아버지가 책 세 조각 중 하나를 만마성 어디에서 찾으라고 했지?”
“만마의 무덤.”
혁무천은 다시 천두공을 바라보았다.
“대산의 조부님은 장씨 성에 염자를 쓰시는 분입니다.”
“장염? 그 덩치 큰 꼬맹이가 저놈 조부라고? 으음, 그러보니 많이 닮았군.”
나이 육십이 넘은 장염을 꼬맹이라고 부르는 천두공이다.
장대산이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불퉁불퉁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 꼬맹이 아닌데.”
“내 눈에는 꼬맹이일 뿐이다.”
한마디 쏘아붙인 천두공이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혈천여록이 세 개로 쪼개어졌고, 그 중 하나가 만마총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훔쳐갔다, 이거냐?”
“그렇습니다.”
“왜… 왜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 거냐?”
혁무천의 담담하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그걸 훔쳐간 자들이 세상에 나오면 누군가는 진실을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해준 거요.”
천두공은 들어갈 때와 달리 멍한 표정으로 천막을 나왔다.
‘정말일까?’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혈천여록으로 거짓말할 만큼 간 큰 놈이 하늘 아래 누가 있을까.
그런데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자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후우우.’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놈 말대로 말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에 혼란만 가중될 테니까.
힘없이 터벅터벅 걸은 그는 자신의 거처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우뚝 멈춰 섰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주름진 눈꺼풀 속의 두 눈이 한껏 커져서 파르르 떨렸다.
‘처음 그놈을 만났을 때 본 그 무공…….’
그리고… 오늘 본 그 얼굴…….
‘마, 말도 안 돼…….’
만약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설마… 그놈이… 그분의 후예……?’
***
“천화상단이 혈왕을 만났습니다.”
혁무천은 아침부터 들어온 보고에 조소를 지었다.
그들이 혈왕 능전평을 만난 것은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어젯밤 천양묵을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발 먼저 천양묵을 만남으로써 천화상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마도연합의 중심세력은 누가 뭐래도 만마성이다. 가장 큰 물량을 소모할 곳도 만마성이다. 전체 물량 중 삼 할 이상을 그들이 소모한다.
마도의 일반 무사들까지 그들이 책임지고 관리하니까.
문제는 타 세력이 사용할 품목과 물량 중 어느 정도가 천화상단에 넘어가느냐다.
세 끼 식사를 위한 식량 외의 물품 중 상당 부분을 각자의 세력이 따로 구매한다는 것이다.
중원의 난다 긴다 하는 대상인들이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도 그러한 물품들이다.
비룡장과 삼원상단의 기본 목표는 오 할.
그 이상이면 성공하는 거래가 될 것이고, 이하면 실패한 거래가 될 것이다.
“그들이 또 어디를 노릴 거라 보느냐?”
혁무천의 말에 목량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마 마황궁과 귀천교, 마천문을 노릴 겁니다.”
“사도맹은?”
“사공곽 소맹주가 우리와 함께 있는 걸 알 텐데, 사도맹에 손을 내밀겠습니까?”
같은 생각인지 동대안과 송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설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내가 아는 상인들은 무사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세상에는 팔지 못할 물건이 없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 생각하지.”
“아…….”
목량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대안은 투덜거렸고.
“하여간 장사꾼들이 더 무섭다니까.”
혁무천이 몇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사도맹의 맹주는 사공헌이지 사공곽이 아니다. 그는 자신들에게 큰 이득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천화상단의 손을 들어줄 거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제부터 사공곽을 사공헌 곁에 바짝 붙여놓을 테니까. 그럼 저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그만큼 줄어들겠지.”
혁무천이 말을 마치고 찻잔을 들었다.
입술을 축인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천화상단 총단주 천궁환의 진정한 목적이야.”
“예?”
“그가 이번 전쟁의 상거래에 뛰어드는 진짜 목적. 어쩌면 그는 물건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게 목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아니. 나는 그것이 더 신경 쓰인다. 이익을 보지 못해도 밀어붙일 테니까.”
그 말을 듣고서야 목량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아무래도 감시를 배로 늘려야 할 것 같군요.”
“어차피 천궁환의 진심을 이행할 수 있는 자는 몇 안 된다. 그들에게 집중해라.”
“예, 대형.”
혁무천은 그쯤에서 천막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식, 혁무천은 실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천화상단은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정말이에요?”
은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혁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오빠가 누구냐?”
“…….”
동대안이 자리에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
“이게 누구신가? 무천 아닌가?”
우문양은 자신을 찾아온 무천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자네가 이곳에 왔다는 말은 들었지. 그런데 어쩐 일인가?”
“돌려 말하지 않겠네. 나는 비룡장을 대표해서 철혈마련과 거래하기 위해 찾아왔네.”
“하하하, 그래. 자네가 장사꾼과 함께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 최근 들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지.”
우문양이 대소를 터트리고는 약간 비꼬듯이 말했다.
무천에게 일수 격돌에서 밀린 그였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날의 손해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러나 혁무천은 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장사도 해볼 만하더군.”
“흐음, 그래? 말하는 거 보니 이제 장사꾼이 다 됐군.”
“그렇게 생각한다면 철혈마련의 물자 공급을 나에게 맡겨주게. 아마 조건은 어디보다도 후할 거네.”
그때 옆에 서 있던 오십 대 중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건 팔러 왔다는 놈의 허리가 너무 뻣뻣하구나.”
혁무천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서로 이익이 되자고 하는 일인데, 굳이 숙일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흥! 장사꾼의 기본이 안 된 놈이군.”
“정 우리가 싫으면 십만 냥을 더 주고 다른 상인의 물건을 사시지요.”
“뭐라?”
버럭 소리치려던 중노인은 ‘십만 냥’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눈이 커졌다.
“그럼 네놈은 우리에게 다른 곳보다 십만 냥 싸게 물건을 주겠다는 거냐?”
“물론이지요. 아마 우문척이 있었다면 당장 문서를 작성하자고 했을 겁니다.”
“네가 어떻게 척아를……?”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지요. 함께 천화상단과 싸우기도 했고요.”
중노인, 우문곡의 눈이 커졌다.
우문양의 숙부인 그는 무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소문만 들었을 뿐.
그런데 우문척과 잘 아는 것만으로도 놀랍거늘, 함께 천화상단을 상대로 싸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천화상단이 천기회를 도운 걸로 아는데, 철혈마련이 설마 천화상단과 거래할 생각인 것은 아니겠지요?”
“그게 사실이냐?”
우문양도 부리부리한 눈이 커졌다.
“정말인가?”
철혈마련은 소림사에서 천기회와 싸웠다. 그 싸움에서 수십 명이 천기회의 반격에 목숨을 잃었다.
원수라면 원수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도운 천화상단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외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사실이라면, 비룡장과 거래하겠다.”
“못 믿겠으면 만마성 성주님께 물어봐.”
***
사도맹주 사공헌은 앞에 놓인 물건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이걸 그대들이…….”
천화상단에서 가져온 상자에 책이 한 권 담겨 있었다.
그 상자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뜻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천화상단이 강호상계에 손을 뻗다니.
그 말인 즉, 그들이 암묵적으로 맺어진 제약을 풀고 강호에 나온다는 뜻이나 같았다.
그런데 상자 안의 책이 그의 부동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자 안의 책은… 사공가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사공가의 삼대무공 중 하나, 북천마령공(北天魔靈功)의 원본이었다.
“육십 년 전 태행산 도관에서 구입한 만권서에 끼어 있던 것입니다. 삼 년 전 서고를 정리하던 중 찾아냈지요. 늦게 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천신명은 담담히 말하고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공헌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상자 안에는 여전히 북천마령공 비급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든 그가 천신명을 바라보았다.
“뭘 바라는 건가?”
“많은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가 유지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천화상단이 강호에 나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가?”
“믿지 않으실지 모릅니다만, 상계 외에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 점만큼은 분명하게 약속드리지요.”
“으으음.”
침음을 흘린 사공헌은 상자 안을 다시 바라본 후 시선을 들었다.
“알았네. 상의해보지.”
천신명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다시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맹주. 아버님께서도 맹주님의 마음을 잊지 않으실 겁니다.”
***
만마성과 마천문은 예상대로 비룡장이 물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철혈마련까지 합하면 전체 물량 중 사 할 오 푼은 되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온 곳이 있었다. 혁무천의 우려대로 사도맹이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서 천화상단과 계약을 한 것이다.
“미안하게 됐네.”
사공곽이 찾아와서 고개를 푹 숙였다.
사공미미는 입이 한발은 튀어나왔다.
“너무해요. 아버지도 갑자기 결정을 바꾸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버님도 이유가 있으니 그러셨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유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러면 우리 사도맹의 신용만 떨어진 셈이 되었잖아요.”
“그래도 무기는 비룡장에서 공급하기로 했잖느냐.”
“쳇. 그마저도 없었다면 아버님을 원망했을 거예요.”
그랬다. 사도맹은 나머지 주요 물품은 모두 천화상단과 계약하고 무기만 비룡장과 계약하기로 했다.
강호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철룡가와 낙양철방을 비룡장이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공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마주한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