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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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3화
223화
야율호와 마황궁 무사들이 돌아가자 혁무천은 은설을 바라보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소란을 일으킨 것이 미안한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해요, 오빠. 제가 괜히 혼자 돌아다니다가…….”
“네가 왜 미안해? 사과할 놈은 그놈인데. 들어가자.”
혁무천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사실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팔대마세 중 하나인 마황궁주의 아들을 나뒹굴게 만들었지 않은가.
자칫하면 이번 거래에서 결정적인 문제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먼저 잘못한 사람은 야율호란 자였다. 설령 이번 일이 결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더라도 후회할 마음은 없었다.
사공곽은 혁무천이 천화광과 공손두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듣고 눈이 커졌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기재 두 사람이 혁무천 한 사람에게 휘둘린 셈이었다.
자신들이 휘둘렸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그 과정마저 알았다면 놀라는 걸 넘어서 두려움까지 느꼈을지 모르지만, 사공곽은 다행히(?) 과정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의문이 있었다.
“무 형 말대로라면, 전쟁이 두 달 이상 가도 비룡장은 이익이 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음?”
사공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왜 다행이지?
“네가 그리 생각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 아냐?”
“…….”
사공곽의 표정이 괴이하게 이지러졌다.
그럼… 자신도 천화광이나 공손두와 다를 것 없는 건가?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보다, 천화상단이 남양에 들어왔다. 아마 각 세력의 수장들과 접촉하려고 할 거야.”
천화상단을 직접 대해본 사공곽이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상대하기 어려운 자들인지 아마 팔대마세 소주인들 중에서는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사도맹도 있을지 모른다.”
“으음, 내가 알아보지.”
“마황궁의 소궁주와 친구라고 했지?”
사공곽은 그 말만 듣고도 혁무천이 묻는 이유를 눈치 챘다.
“야율인도 만나보겠네.”
“좋아, 그럼 사도맹과 마황궁은 자네에게 맡기지.”
사공곽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혁무천을 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비룡단과 함께하고 싶어 한 사람은 자네 아닌가?”
덕분에 혁무천은 공짜 일꾼을 하나 얻었고.
그것도 사도맹의 소맹주씩이나 되는 일꾼을.
“…….”
사공곽은 왠지 손해 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미미가 알면 배꼽을 잡고 웃겠군.’
***
천화상단은 남양에서 가장 큰 객잔인 경천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마도연합의 주력이 있는 옥가장에는 거처가 천막밖에 없었다.
이십 리 거리라면 남양에서 지내며 오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천과 비룡단이 저희보다 한발 먼저 들어왔습니다, 형님.”
천양명의 말에 천신명이 이마를 좁혔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옥가장에 있다고 합니다.”
“흐으음…….”
천신명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번 마도연합과의 거래를 시작으로 천화상단의 강호 상계 진출을 천하에 알릴 작정이었다.
비룡단은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을 가로막는 장애물과도 같았다.
‘만약 끝까지 방해한다면, 아버님께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
내심 각오를 다진 그가 천양명에게 말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느냐?”
“혈왕 능전평과 오늘 술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공손락을…….”
천신명은 천양명의 말을 들으며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최소한 팔대마세 중 네 곳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은 그의 입가로 조소가 떠올랐다.
‘그들도 우리가 내미는 선물을 마다하지는 못할 거다.’
***
혁무천은 해시 초에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사야라 했던가?’
천양묵 옆에 서 있던 여자였다.
괴이한 느낌을 주었던 여자.
“무슨 일이지?”
“성주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야의 목소리에는 묘한 떨림과 여운이 있었다. 마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가늘게 울리는 듯했다.
종소리가 사라질 즈음에 남는 여운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게다가 눈빛은 마치 안개가 옅게 낀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흐리다는 것이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이 얇은 장막처럼 펼쳐져 있었다.
또는 어둠에 잠겨들기 직전,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드는 산 그림자 같기도 했다.
잠시 사야를 바라본 혁무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겠어요?>
곁에 있던 은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전음을 보냈다.
<걱정 말고 쉬어라.>
혁무천은 은설을 안심시키고 천막을 나섰다.
은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은설도 사야가 여자만 아니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는 여자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게 많았다. 게다가 사야라는 여자는 사공미미나 우문소소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잠재되어 있었다.
‘묘한 여자야. 설마 남자를 홀리는 백여우는 아니겠지?’
오죽하면 그런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곳이 어딘가. 천하제일을 다투는 마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 아닌가.
그런 백여우가 한 마리 있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 마두 소굴에 들어와서…….’
천양묵은 자신의 거처에서 혁무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혁무천이 방으로 들어가자, 뭔가를 끙끙거리며 쓰던 그가 붓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부인에게 쓰는 편지일 것이 분명했다.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는가 보군.’
문득 내용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비슷한 내용을 쓴다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궁금했다.
“찾으셨습니까.”
“그리 앉아라.”
혁무천이 예를 취하자, 천양묵이 턱짓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혁무천은 망설이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사야가 두 사람 앞에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아서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듯했다.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신 천양묵이 입을 열었다.
“광아에게 들었다.”
굳이 긴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걸로 천화광에게 한 말을 다 들었다는 뜻을 전하면 되었다.
“재미있는 제안이었어.”
“그리 생각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더군. 그래서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오늘 정은맹 놈들을 몰아내고 서협을 차지했다. 이제 곧 전격적인 공격이 시작될 거다.”
천양묵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찻잔을 들었다. 마치 혁무천에게 말할 기회를 주겠다는 듯.
혁무천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결과는 신통치 않았을 겁니다.”
차로 입을 축이고 찻잔을 내려놓은 천양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네 말대로다. 놈들의 피해가 생각보다 적었다고 하더군. 그저 서협을 빼앗는 것으로 만족한 거지.”
그러고는 혁무천의 두 눈을 직시했다.
“솔직히 나는 놈들을 무너뜨리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전쟁이 두 달 이상 갈 거라고 생각한 거냐?”
혁무천은 그 질문이 오늘 밤 자신을 부른 핵심적인 이유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천양묵이 아니라 누구든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런 의문. 아니면…
-뭘 모르는 미친놈이군.
그러고는 코웃음을 쳤을 게 분명했다.
“정파의 오랜 역사가 품고 있는 저력은 생각보다 끈질기고 강합니다. 한두 달에 무너질 거라면, 이미 정파는 지리멸렬해서 대항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다. 해서 대책도 세워놓았지. 설마 그 이유 때문에 십만 냥을 걸고 내기를 벌인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말해봐라. 뭐든.”
“지금 강호에는 마도연합도, 정파연합도 모르는 힘이 있습니다.”
“천화상단을 말하는 거냐?”
“물론 그들도 있지요. 하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아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천양묵은 이마를 찌푸렸다.
어렴풋이나마?
그 말 속에는 ‘자세히는 모르지 않느냐?’는 뜻이 숨어 있었다.
“너는 그들을 얼마나 아느냐?”
“아마 성주보다는 조금 더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접 싸워봤으니까요.”
순간, 천양묵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래? 어느 정도더냐?”
“성주님 정도의 고수가 서너 명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천양묵의 눈이 커졌다. 정말로 놀란 듯했다.
“그게 정말이냐?”
“믿지 않으시면 대화를 더 할 이유가 없습니다.”
“으음…….”
천양묵은 침음을 흘리며 등을 의자 깊숙이 묻었다.
천화상단에 자신 못지않은 고수가 있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천의 말처럼 서너 명이나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문제는 그러한 고수가 서너 명이라면, 그 밑에 강자들 또한 적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역시 너무 오래 놔두었어.’
그때 사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천화상단이 아니라면 또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천양묵의 눈이 다시 번뜩였다.
그렇다. 무천이란 놈은 천화상단을 ‘그들도 있지요.’라고 했다. 다른 세력이 또 있다는 말.
“말해 봐라.”
“천기회도 아마 아실 겁니다.”
“물론 안다. 제법 힘을 갖춘 것 같더군. 하지만 그들 정도로는 전세를 뒤엎을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정은맹과 손을 잡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천양묵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얼마든지 가능한 추측이다.
“흠,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게 전부냐?”
“최고급 정보를 아무 대가도 없이 내놓으라고 하시니 난감하군요.”
혁무천이 아깝다는 듯 너스레를 떨자, 천양묵이 짐짓 코웃음을 치켜 말했다.
“흥, 걱정 마라. 대가는 충분히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말을 잠시 끊은 혁무천이 무심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기회 회주가 비밀리에 제남에 갔습니다. 저는 그가 천화상단에 갔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가 천궁환을 만났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났는지는 모릅니다만.”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천기회주가 제남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후 행적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화상단이 너무 욕심을 부리는군. 장사만 해서 그런지 강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
천양묵의 말투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혁무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이로써 천화상단에 대한 방벽을 하나 친 셈이군.’
고급 정보를 별 대가없이 건네준 건 그 때문이었다. 천화상단은 이제 어떤 선물을 줘도 만마성의 의심을 완전히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정보가 은자 만 냥짜리라면, 얻은 것은 백만 냥의 가치가 있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두 달이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면, 두 달을 넘기지 않아도 될 게야.”
천양묵이 자신만만하게,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사야가 그의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무 공자는 아직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안 그런가요?”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천양묵이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혁무천은 찻잔을 내려놓고, 무심한 표정으로 천양묵을 마주보았다.
“그들의 정체는 아직 저도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전세에 영향을 줄 만큼 강한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너도 모르는 자들인데 그만한 힘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