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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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9화
219화
추이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따지듯 말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 아닌가?
“눈깔이나 아니나, 우리 집 뒷산에 사는 토끼 똥보다 작은 놈이 혀도 짧군.”
“……!”
동대안은 창의적인 추이의 비유에 감탄(?)했다.
“멋진 말이군!”
“뭐?”
“내가 들어본 비유 중 최고였어.”
“웃기는 놈이군. 어디 목이 잘린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추이가 냉랭히 말하며 옆구리의 칼을 잡고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그런데 뽑을 수가 없었다.
마주친 동대안의 눈이 생각보다 더 맑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슉! 하는 소리가 나더니, 한 뼘 정도 칼을 뽑은 그의 손등을 뭔가가 누르고 있었다.
꼬챙이처럼 가느다란 검이었다.
눈깔이 토끼 똥보다 작은 놈이 어느새 검을 뽑아서 그의 손등에 올려놓은 것이다.
문제는 언제 뽑았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극쾌의 검!
추이는 빤히 보고도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등을 타고 흐른 식은땀이 엉덩이를 적셨다.
‘고수다!’
“내 목을 자를 자신 있어?”
동대안이 추이를 빤히 바라다보며 말했다.
“…….”
추이는 목구멍에서 근질거리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손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다.
“자신 없으면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지. 안 그래?”
무뚝뚝하게 말한 동대안이 검을 치웠다.
추이가 무슨 짓을 해든 상관없다는 듯.
그 순간, 추삼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칼을 뺐다.
쉬아악!
번뜩이는 칼날이 일 장 거리를 찰나에 좁히며 동대안을 향해 떨어졌다.
땅!
떨어지던 칼날이 맑은 소성과 함께 튕겨 오르고, 철호의 도끼가 추삼의 어깨에 얹어졌다.
“내 도끼에 쪼개지면 동 형님의 검에 찔리는 것보다 조금 더 아플 거요.”
추씨 삼형제는 얼굴이 석고처럼 굳어졌다.
철호의 움직임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마치 뭔가가 의자에서 튀어 오른다 싶더니 추삼의 칼이 튕겨나가고 도끼가 목 옆에 놓인 것이다.
“그만 하고 차나 마셔.”
혁무천의 한마디에 철호가 도끼를 거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혁무천은 철호를 자제시키고 몸이 굳어 있는 추씨 삼형제를 바라보았다.
“식사하러 왔으면 식사나 하시오.”
추일은 두 동생이 형편없이 당했다는 사실보다도 혁무천 일행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더 경악했다.
‘저자들이 누군데……?’
상한 자존심 따위는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칼을 빼들고 한판 붙어볼 마음은 더더욱 일어나지도 않았고.
“저쪽으로 가자.”
그는 눈치를 보는 두 동생을 데리고 마침 빈자리가 난 곳으로 가려 돌아섰다.
그때 혁무천이 말을 붙였다.
“아, 안강에서 오신 거 같은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돌아섰던 추일이 다시 몸을 돌렸다.
“우리가 안강에서 온 것은 맞소만. 무엇을 알고 싶은 거요?”
“섬서에서 벌어진 혈겁에 대해 들어봤소?”
일순간, 추일은 물론 추이와 추삼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혁무천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혈겁의 현장을 직접 보기라도 했나?’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다.
“목량, 방을 하나 잡아라. 저분들과 잠시 이야기 좀 해야겠다.”
원래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금룡장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목량은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고 일어났다.
“예, 대형.”
그제야 추일이 급히 입을 열었다.
“우린 그 일을 잘 알지 못하오.”
“아는 만큼만 이야기해주면 되오.”
“그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 거요. 이야기해주는 만큼 대가를 드릴 거니까.”
추일은 끌려가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목량은 여덟 명이 함께 잘 수 있는 큰 방을 얻었다.
아무래도 대화를 하려면 작은 방보다는 큰 방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인원이 많으니 큰 방이 사용하기에도 나았다.
마침 방에는 여덟 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 수 있게끔 큰 탁자가 두 개 있었다.
혁무천과 목량, 송비가 앉고, 맞은편에 추씨 삼형제가 앉았다.
혁무천은 인사 나누는 것조차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섬서의 혈겁에 대해 들은 건 모두 다섯 건이오. 혈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처참한 시신만 남았다고 들었소만.”
그쯤에서야 추일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 건이 더 있었소. 그러니 일곱 건이라 해야 할 거요.”
“이런, 우리가 두 건을 놓쳤군.”
추일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귀하의 잘못이 아니오. 그 두 사건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요?”
“그 중 한 건은, 우리 형제가 잘 아는 곳이오. 문파의 제자와 가솔들까지 백여 명이 모두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수습했소.”
그 말을 하는 추일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강한 분기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혁무천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직접 수습했다면 누구보다도 그 상황을 잘 알 것 아닌가 말이다.
“가까운 사이였나 보군요.”
“평소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소. 사실 우리 형제가 이곳에 온 것도 노 형의 원한을 갚아주기 위해서요.”
“범인이 이곳 남양에 있소?”
“놈들이 이곳에 있지는 않소.”
“그럼 왜 원한을 갚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요?”
추일은 잠시 멈칫했지만, 어차피 입을 연 마당이라 사실대로 말했다.
“정은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백여 명에 달하는 복면인들이 나타났다고 들었소. 좀 더 자세한 걸 알아봐야겠지만, 우린 그들이 혈겁의 범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소.”
혁무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주위에서 듣고만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장대산이나 철상, 철호만 무덤덤할 뿐.
“왜 그들을 의심한 겁니까?”
이번에는 목량이 물었다.
그 복면인들은 정파의 상징인 정은맹을 도와 마도연합을 물리쳤다.
물론 혈겁을 당한 문파들이 모두 마도문파인 걸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혈겁의 현장에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졌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마도문파라 해도, 정파인이라면 그렇게까지 상대를 처참하게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당시 노가장에 생존자가 있었는데, 살귀들 중에 복면인을 쓴 자들이 절반도 더 된다 했소.”
“그것만으로는 의심하기에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정은맹을 도왔다는 복면인들에게 죽은 자들도 시신이 처참했다고 들었소. 사람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이는 자들이 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목량도 두 가지 사안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완벽한 증거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심증 정도일 뿐.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노가장 사람들의 시신에 난 상처의 특징을 잘 알 거라 생각하오만.”
추일의 이마에 골이 깊게 파였다.
“그걸 상흔이라고 해야 할지…….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살을 억지로 잡아 뜯은 것만 같았소. 아니, 살이 터져나갔다고 해야 할까?”
추일은 그 말을 하면서 몸을 잘게 떨었다.
추이와 추삼도 얼굴이 굳어졌다.
뜯기고 터져 나간 곳은 살만이 아니었다. 머리도, 몸도 뜯기고 터졌다.
수십, 수백 명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리고 그토록 참혹한 시신이 시뻘건 피로 물든 넓은 마당과 정원에 널려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나름대로 비위가 강하고 겁이 없다는 추씨 삼형제도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그리고 뱃속의 모든 것을 토하고야 말았다.
“……아직도 그 광경을 생각만 하면 몸이 다 후들거리오.”
혁무천은 추일의 말을 듣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저갱처럼 깊어진 그의 눈빛이 미미하게 떨렸다.
‘결국… 그것을 익히고 말았군.’
혁무천은 이야기 대가로 추씨 삼형제에게 은자 백 냥을 줬다.
추씨 삼형제는 이야기 대가치고 너무 큰 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뭘 이렇게 많이…….”
“앞으로도 그 일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알려주시오.”
“알겠소이다.”
“만약… 어디 몸담고 있는 곳이 없다면 언제든 역성의 무원장으로 오시오. 귀하들처럼 지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나설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든 환영하겠소.”
추일이 그 말에 멈칫했다.
하지만 곧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생각해보겠소.”
혁무천은 추씨 삼형제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식은 차를 단숨에 다 비웠다.
초감각을 지닌 목량은 혁무천의 마음에 심상치 않은 동요가 일어났음을 눈치 채고 넌지시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혁무천은 사실의 일부를 말해주기로 했다.
무작정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숨겼다가 모르고 그들과 부딪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체 모를 복면인들, 아무래도… 그들이 그걸 얻은 자들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걸 얻다니? 그게 뭔데?
하지만 눈치 빠른 목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혈천여록 말입니까?”
“그래.”
혈천여록이라는 단어가 나온 다음에야 송비와 철상, 동대안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장대산의 눈도 황소 눈처럼 커졌다.
“어? 할아버지가 그거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호광은 눈만 껌벅거렸는데, 세상사에 관심 없던 그는 혈천여록이 뭔지도 몰랐다.
목량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 그리 생각하신 겁니까?”
“소문으로는 혈천여록에 마천제가 남긴 무공이 들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바는 조금 다르다.”
“다르시다면……?”
“마천제의 무공이 들어있긴 한데, 완성된 무공이 아니라고 했다. 미완성의 무공인 거지. 그런데 그 무공을 잘못 익히면 마가 침범해서 살귀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
자신이 복수에 광분했을 때 적어 놓은 구결이다.
지옥의 힘을 기반으로 한 마공.
다만, 본래 마공이었던 것은 아니다. 살기가 워낙 짙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적다 보니 불완전한 무공이 되어버렸을 뿐.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비슷하게 말해주는 것 정도로 멈추는 게 나았다.
물론 잘못 익히면 마가 침범해서 살귀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살기가 통제 안 된 상태에서 세상에 나온 것일지 모르니까.”
“후우우, 마천제의 미완성 무공이라니…… 갈수록 태산이군요.”
“그나마 폭주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높은 수준으로 익힌 건 아닌 것 같다.”
은설이 핀잔을 주듯 한마디 했다. 마도 무사들을 보며 무거워진 기분을 털어내고 싶은 듯 목소리가 조금 높았다.
“거봐요, 오빠. 제가 마천제는 아주 사악하고 나쁜 놈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무공을 만들다니, 그게 어디 제정신인 사람이에요? 미친놈이지.”
“…….”
혁무천은 ‘마천제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런 걸 만들고 싶어 만들었겠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가능성이 더 컸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사실을 알릴 건가?”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송비가 말했다.
혁무천은 잠시 생각한 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될 수 있습니다.”
목량이 혁무천의 말을 거들었다.
“대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마 마도 쪽은 혈천여록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반면 복면인들은 모습을 감춘 상태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럼 그만큼 더 많은 피가 흐르겠지요.”
“네 말이 맞다.”
짧게 목량의 말에 동의한 혁무천이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소. 모든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혈천여록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시오.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오.”
“그래도 정파 쪽에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의 상황에 대비는 해야 되잖아요.”
은설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혁무천에게 쏠렸다. 듣고 보니 그 말도 그럴 듯했다.
“기회를 봐서 만나보마.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알고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세요?”
“그들을 포기하면 정은맹이 무너질 거다. 너라면 포기하겠느냐? 정파를 일으킬 절호의 기회인데.”
은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목량.”
“예, 대형.”
“삼뇌자의 그림에 적힌 글을 기억하느냐?”
일순간, 목량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