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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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4화
214화
“말을 전했으니 곧 올 겁니다.”
천신명은 그렇게 말했지만,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었다.
천상화가 꼭 그 자리에 가야 하냐며 심드렁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천상화는 며칠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끔씩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경우도 잦아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천신명은 여동생이 왜 그러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무천, 그를 만난 이후 생긴 버릇이니까.
‘어리석은 아이는 아니니까 곧 정신을 차리겠지.’
쓴웃음을 지은 그는 이곳의 일에 집중했다.
정파 무림의 한 맥이라 할 수 있는 천기회의 회주가 와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다시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큰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너라.”
천궁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천상화가 혈월선자와 함께 들어왔다.
신도평은 최대한 담담하려고 했다. 천하제일미라는 천상화의 미모가 궁금했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낼수록 자신의 가치만 떨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눈만 돌려 겉모습만 슬쩍 살피려 했는데, 한번 돌아간 그의 눈은 천상화가 앞에 올 때까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여인이 있다니……!’
그의 눈은 깜박이지도 않고 천상화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천상화와 눈이 마주치자 입마저 살짝 벌어졌다.
천상화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천궁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어서 와라. 인사드려라, 천기회 회주이신 신도명산 숙부시다.”
천상화는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천상화라 합니다.”
신도명산은 체면도 잊고 탄성을 흘렸다.
“허어! 진정 천상화(天上花)가 따로 없구나. 천 형은 무슨 복이 그렇게 많아서 이리도 자식들이 다 뛰어납니까?”
자식을 칭찬하는데 싫어할 부모 없다고 했다.
천궁환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너무 그러지 마시게. 명산 아우의 아들딸이야말로 천하의 기재들 아닌가?”
“별 말씀을…….”
겸양의 말을 건넨 신도명산이 그쯤에서 본론을 꺼냈다.
“천 형도 예전의 약속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마 아들딸이 엇갈려서 태어나면 맺어주자고 했었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허허, 비록 오래 되긴 했지만 내 어찌 잊었겠는가? 아이들만 좋다면야…….”
신도평은 그 말에 천상화를 슬쩍 훔쳐보았다.
천상화를 본 순간, 머릿속에 아쉬움의 잔재처럼 남아 있던 은설의 그림자조차 아침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 자리를 조금 전에 본 천상화의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아버님의 말씀이 옳았어.’
세상에는 은설보다 뛰어난 미모의 여인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제일이라는 천상화가 자신의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상화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설마 다른 남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여자 나이 스물다섯.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아니 혼인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동안 좋아한 남자가 아무도 없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잘난 남자들이 가만 놔두었을 리 없다.
‘까짓 거, 과거가 있으면 어때?’
천상화는 그 어떤 흠도 모두 용서가 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 그 결정을 잠시만 미루어주셨으면 합니다.”
“결정을 미루어 달라?”
“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당황스럽습니다.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너무 오래 기다릴 수는 없느니라.”
“걱정 마세요. 염려 끼쳐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허허허, 이거 어떡하나? 당장은 어려울 것 같구먼.”
천궁환이 신도명산과 신도평을 번갈아 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신도명산은 천궁환이 고의로 미룬다는 걸 눈치 챘으면서도 애써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하하하, 잠시 기다리는 거야 뭐 어렵겠습니까? 거절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대사를 하루아침에 치를 수도 없는 일이니 그 안에만 결정을 하면 되는 일이지요.”
신도평이야 처분에 맡기겠다는 듯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정리할 놈팽이가 있다면 깨끗이 정리하는 게 좋겠지.’
그는 천상화가 시간을 달라는 이유를 자기 마음대로 짐작해버렸다.
그때 신도명산이 은근한 어조로 두 번째 목적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천 형은 이번 복우산 일이 어떻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시오?”
“우리 같은 장사치가 뭘 알겠나?”
“이거 왜 이러시오. 천 형이 모르시면 누가 안단 말이오?”
“허허, 아우가 우리 천화상단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먼.”
“다른 사람들은 팔대마세가 강호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아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흐음…….”
“단일 세력으로 따진다면 그들 중 누가 천화상단의 힘을 능가하겠소?”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게나. 그랬다가 그들이 우리를 겁박할까 봐 겁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천궁환의 얼굴에는 아무런 긴장도 없었다. 아니 긴장은커녕 은근한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신도명산의 목소리가 더욱 은근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 아우를 좀 도와주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소이다.”
백만 냥에 대한 도움 요청은 이미 나온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말한 도움은 돈이 아닐 것이다.
물론 천궁환도 짐작 가는 것이 있었지만 모른 척 물었다.
“우형이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겠지. 그런데 어떤 도움을 달라는지 모르겠군. 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네만.”
“강호무림에서 필요한 것이 뭐 있겠소? 본 회가 나름대로 틀은 잡았소만,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고수가 부족하오.”
역시나 자신이 짐작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궁환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구먼. 원로들과 상의를 해보겠네.”
천기회에 고수를 파견했다가 잘못되면 천화상단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대신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로 인한 이득이 워낙 크니 당장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성공하면 천하의 절반은 얻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천기회에 천하를 좌우할 만한 능력이 있느냐, 하는 건데…….’
천궁환은 빠르게 이해득실을 따져보았다.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실보다는 득이 많을 듯했다.
***
방덕진을 출발한 혁무천 일행은 제녕 소명사에서 일행들과 합류했다.
입이 한 자나 튀어나와 있던 사공미미는 혁무천 일행이 예정보다 빠르게 돌아오자, 혁무천 곁에 바짝 붙어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호호호호, 젊은 스님들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찾아와서 필요한 것 없냐고 묻지 뭐예요. 정말 친절한 분들이라니까요. 그런데…….”
“혹시 천상화도 만나셨어요? 진짜 예쁘다고 하던데. 저도 한번 만나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안 되네요.”
“천화상단의 아들들이 모두 절세미남이라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은설은 그제야 사공미미를 비룡단에 받아들인 걸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
“언니, 저와 이야기 좀 해요.”
자신이 사공미미에게 질문을 자주 던져서 말을 붙일 기회를 안 주면 되었다.
혁무천도 그 사이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어이, 소궁단. 잠깐 나 좀 봐.”
탱자탱자 놀고 있던 소궁단은 복우산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이야?”
“틀림없어. 개방에서 연락 오지 않았나? 나는 자네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소궁단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다리가 나을 때까지 며칠 쉬려고 연락을 안 해봤거든.”
아예 소명사에서 나가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개방 제자들을 만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소명사에서 때 되면 밥 주는데, 다리도 아픈 놈이 뭐 하러 나가서 고생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는 편한 밥만 먹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개봉으로 가서 자세히 알아봐야겠네.”
“그렇게 해. 그리고 앞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면 좋겠어.”
소궁단은 혁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대가는 충분히 주지.”
혁무천의 그 말을 듣고서야 소궁단은 히죽 웃으며 부리나케 소명사를 나섰다.
뛰어가는 걸 보니 다리는 다 나은 듯했다.
그날 오후, 혁무천은 소명사를 나서서 마룡성으로 향했다.
다행히 부상자들 모두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었다.
***
사흘 후, 혁무천 일행이 마룡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소문이 중원 전체에 퍼져 있었다.
마룡성도 당연히 그 소식을 듣고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홍택은 혁무천을 안채로 안내했다.
혁무천 일행과 마룡성의 간부 십여 명이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았다.
마룡성 간부들 중 하나가 사공곽을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사도맹의 대공자 아니신지…?”
“사공곽이오. 오늘은 무 형의 친구로 참석한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시오.”
홍택을 비롯한 마룡성 간부들은 놀라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데 거기다 사공미미가 한마디 더했다.
“당분간은 무 공자와 함께 움직일 거예요. 저도 비룡단원이거든요.”
마룡성 간부들의 눈에는 혁무천이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외부 활동 중인 무사 중 정보를 담당한 무사 외에는 모두 불러들이시오.”
혁무천의 말에 홍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앞으로 팔대마세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거요. 잘못 휘말리면 피해만 커질 뿐이오.”
“흐음, 그럼 철혈마련과 귀천교도 움직일 거라 생각하나?”
“당연히. 아마 패왕성도 무사를 파견할 거요. 팔대마세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웅크리고만 있으면 수입이 많이 줄어들 텐데…….”
마룡성 간부 중 하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혁무천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걱정 마시오. 당장은 수입이 줄어들지 몰라도, 결국은 전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야…. 그런데 어떻게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건지…….”
“일단 전쟁에 필수적인 물품 중 보관을 오래 할 수 있는 포목과 무기를 사들이시오. 가능하면 곡식도 사들이고.”
혁무천의 그 말에 홍택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값이 오를 거라 생각해서 하는 말인가?”
그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홍택은 그래서 의문이었다. 누구나 아는 방법만으로는 결코 큰 이득을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단주, 많은 양을 사들이다 보면 가격이 오르게 될 거네.”
“장사꾼들이 어떤 놈들인데? 귀신 같이 눈치를 채고 물량도 잘 안 내놓을 걸?”
마룡성의 다른 간부들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럼에도 혁무천은 구체적인 가격까지 제시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할, 최대 오 할까지는 더 줘도 되오.”
홍택이 쓴웃음을 지었다.
“팔대마세가 모두 나서면 정은맹도 오래 버틸 수 없네. 그리 돼서 전쟁이 일찍 끝나면, 비싸게 사들인 물건들을 제값 받고 팔기 힘들 텐데?”
“이번 전쟁은 절대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해가 가려면 아직도 다섯 달이나 남았다. 게다가 곡식은 올해가 넘어가도 두 달 이상 더 지나 봄이 되어야 새싹이라도 올라온다.
아마 곡식의 가격이 배는 더 비싸질 것이다.
그런데 정은맹이 정말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기를 한다면, 아마 모두들 ‘못 버틴다.’ 쪽에 돈을 걸 것이다.
사공곽도 그랬다.
“무 형의 판단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정은맹이 그렇게까지 강할 거라고 생각은 안 드는군.”
“내기 할까?”
혁무천의 갑작스런 그 말에 모두들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