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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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1화
211화
혁무천과 중노인이었다.
청의중년인 중 살아남은 두 사람은 무너진 벽으로 몸을 날려서 겨우 파묻히는 걸 면했다. 개중에는 혁무천을 안내했던 자도 있었다.
콰광!
혁무천과 중노인이 다시 한 번 격돌한 후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날아 내렸다.
혁무천은 오연히 서서 검을 든 채 중노인을 바라보았다.
중노인도 큰 이상 없이 땅에 내려섰지만, 안색이 창백하고 두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십여 장 거리를 두고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소. 시간이 없으니 이만 가보겠소. 약속을 잊지 마시오. 만약 그들에게 이상이 생기면, 당신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거요.”
그러고는 그대로 솟구쳐서 제남성 쪽으로 날아갔다.
“…….”
중노인, 천지인 삼태상 중 인태상 중리안은 허탈감이 들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패했다. 은화육절과 함께 상대하고도.
거기다 협박까지 받다니.
천궁환과 독대한 무천이란 애송이를 잡으러 올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허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 사실을 누가 믿을 것인가.
아마 황승이나 두 태상은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비웃겠지. 그딴 애송이 하나 못 잡고 창피만 당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비웃음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모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군.”
나직이 그 말을 하는 중리안의 눈빛은 기이하게도 패배에 대한 자괴감과 거리가 멀었다.
“남우, 그들을 놔두라고 해라.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지.”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중년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예, 태상.”
***
혁무천은 풍마객잔으로 달려갔다.
객잔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객잔 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미 공격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풍마객잔에 도착한 혁무천은 피식 웃고 말았다.
천화상단 무사들과 싸움이 벌어진 건 사실이었다. 다만 상대가 달랐다.
비룡단원들은 방어진을 형성한 채 구경만 하고 있고, 갈의를 입은 무사 십여 명이 천화상단 무사 이십여 명과 싸우고 있었다.
모두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개중 몇 명은 절정에 이른 고수여서 ‘강호에 절정고수가 배급 나왔나?’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갈의무사들 쪽의 사람 중 눈에 익은 자가 보였다.
‘응?’
놀랍게도 우문척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갈의무사들은 철혈마련의 무사들이라는 말.
‘훗, 궁금했나 보군.’
“대형!”
장대산이 혁무천을 발견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불렀다.
혁무천은 풍마객잔의 별채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칠팔 명이 부상을 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천화상단의 무사가 다섯 명이었고, 철혈마련의 무사가 셋이었다.
혁무천이 나타나자 우문척이 씩, 미소를 지었다.
“왔군, 무천.”
그러고는 싸우고 있는 철혈마련과 천화상단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철혈마련 무사들은 공격을 멈추고 물러섰다.
천화상단 무사들도 더 공격하지 않고 상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격렬하던 싸움이 멈추면서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다.
‘저자가 무천? 어떻게 된 거지?’
천화상단의 구화당주 호백승은 굳은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와서는 안 될 사람이 왔다.
설마 태상이 저 자에게 당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태상이 어떤 고수인데 저런 애송이에게 당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만나지 못한 건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물러서게. 태상께서 놔두라 하셨네.”
청의를 입은 중년사내였다. 은화육절 중 첫째인 관남우.
호백승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태상께선 어디 계신가?”
“상단으로 돌아가셨네.”
호백승은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수하 다섯이 당해서 화가 나긴 하나, 태상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관남우는 호백승을 물러서게 한 후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은화육절 중 셋이 죽고, 한 사람은 무너진 주루에서 겨우 구해냈으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임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어찌 생각하면 원수나 다름없는 자이거늘, 가공할 그의 무공을 떠올리면 분노보다 경의감에 가슴이 뛰었다.
‘죽은 친구들이 나를 원망하겠군.’
쓴웃음을 지은 관남우의 시선이 우문척에게로 돌아갔다.
“혹시 철혈마련에서 오지 않았나?”
우문척이 오만한 어조로 답했다.
“맞아.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확실히 소문대로 재미있군.”
기분이 상한 관남우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철혈마련이 왜 제남에 무사를 파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머물렀다 가게.”
“하하하하. 조용히 있지 않으면 우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우리와 다투는 걸 련주께서도 달가워하지 않을 거네.”
“우리 철혈마련이 언제부터 일개 상인의 호위무사들에게 그딴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관남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철혈마련의 힘을 믿고 허튼 짓하면 후회하게 될 거네.”
우문척은 그 말에 다시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후, 후회라…….”
그때 혁무천이 나섰다.
“우문척, 싸울 거면 넓은 곳으로 가서 싸워. 여긴 객잔이야.”
관남우가 그 말에 눈을 치켜떴다.
우문척. 그 이름 때문이었다.
“귀하가… 철혈마련 대공자 우문척?”
우문척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심하게 손을 쓰지 않은 것은 본 련과 천화상단의 관계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계속 본 련을 모욕한다면 나도 더 참지 않을 거다.”
“대공자께서 오셨을 줄은 생각도 못했소. 어쨌든 소란이 일지 않았으면 하오. 그럼…….”
관남우는 형식적으로 예를 갖추고 호백승을 향해 말했다.
“그만 돌아가세.”
호백승도 우문척의 정체를 알고 놀란 표정이었다.
강호에 폭풍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사람이 우문척인 것이다.
“부상자들을 챙겨라.”
천화상단 무리가 객잔에서 떠나자, 우문척이 혁무천에게 다가왔다.
“조용히 만나려고 왔는데, 웬 놈들이 객잔을 포위하고 있지 뭔가. 자네를 노리는 것 같아서 치우려고 했지.”
상황이야 어쨌든 나름대로 호의를 갖고 벌인 일이라는 말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무천과 우문척, 사공곽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엉뚱한 일에 휘말리기 싫은 듯 은근슬쩍 자신들의 방으로 가버렸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우문척이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철혈마령을 대동하고 왔음에도 천화상단의 일개 조직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철혈귀령마저 투입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까지 투입하고 천화상단을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대 철혈마련이 철혈마령과 철혈귀령을 투입해서 천화상단 호위대를 이겼다고 하면 아마 강호가 배꼽을 잡고 비웃을 것이다.
“그걸 알아보려고 왔나?”
“겸사겸사. 천화상단이 정말 자네 말처럼 강하다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우문척이 그리 말하고는 사공곽을 바라보았다.
“사공 아우도 그런 마음으로 온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걸 떠나 이 친구와 함께 해볼 생각으로 왔습니다.”
“함께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도맹의 소맹주가? 속이 너무 드러나는 이야기 아닌가?”
“우문 형이 어떻게 보시든 상관없습니다. 제 의지는 확고하니까요.”
우문척은 다른 의미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공곽은 남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과 말투에 깃든 감정을 보니 진정으로 말하는 듯했다.
도대체 무천의 무엇이 사공곽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그때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라서 하마터면 한숨을 쉴 뻔했다.
‘가만? 이러다 나도 무천에게 휘말리는 거 아냐?’
무천의 말 몇 마디에 철혈마령과 철혈귀령을 이끌고 제남까지 왔지 않은가 말이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무천이 마음에 걸렸다.
‘무천, 너무 커지지 마라. 그러면 제일 먼저 너를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
천궁환은 보고를 받고 대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중리안이 무천을 잡으려다 거꾸로 당했단 말이지?”
천화상단의 주요 인사가 창피를 당한 일인데도 속이 다 시원했다.
“승부를 내지 못한 듯 보였지만, 은화육절과 협공한 셈이니 실제로는 패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중년인이 나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천궁환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고는 입술을 비틀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겠는데?”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군. 놈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백 태상과 대등한 대결을 펼칠 줄이야.”
“솔직히 저도 직접 보지 못하고 보고만 받았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천궁환은 혁무천이 말한 ‘거래’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문제는 대가다.
거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무천이 무엇을 대가로 요구할지 모르지만,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닐 것이다.
‘설마……?’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황하상선?’
무천이 황하상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단순히 보호비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자신 역시 득실을 따지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한 건 황하상선의 가치가 엄청나긴 해도 천화상단의 지배권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무천이 그것까지 계산하고 거래를 제안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깊게 들었다.
연 은자 십만 냥을 추가로 지불할 것 같으면, 황하상선 운영을 넘기고 이용료를 지불하는 게 더 속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노보다 감탄이 먼저 나왔다.
‘그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욕심이 나는군.’
가만? 딸이 무천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했던가?
천궁환은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월척을 낚으려면 미끼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천상화 정도면 최상의 미끼다.
다만 신도명산이 딸을 원한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신도명산은 언제 도착하기로 되어 있느냐?”
“모레쯤 도착하지 않을까 합니다.”
“모레라…….”
나직이 되뇌는 천궁환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때 방문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신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천궁환은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제 맘대로 들어오는 천신명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우문척이 제남에 들어왔다 합니다.”
“우문척? 철혈마련의 첫째를 말하는 거냐?”
“예, 아버님. 그가 무천과 함께 있다고 합니다.”
“철혈마련의 우문척이 왜 무천과 함께 있단 말이냐?”
“우문척이 제남에 나타났다면 본 상단과 관계된 일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천궁환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우문척의 등장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허투루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팔대마세 중 하나인 철혈마련의 후계자가 직접 왔다. 그런데도 천화상단과 아무런 접촉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했다.
지금까지는 철혈마련과 별 탈 없이 지냈지만, 세상사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불만을 품고 칼을 겨누면 천화상단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라.”
“예, 아버님.”
천궁환은 한마디 더 하려다 멈칫했다.
‘무천에게 말을 전하는 건 내일 하는 게 낫겠어.’
그의 제안을 거절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다시 거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 바람에 그는 상인이라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말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곧 돈이다.
-세상의 흥망을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도 결코 짧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