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0화
210화
굳이 안내를 해주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때 그의 등 뒤에 대고 천상화가 말했다.
“다음에는 여동생과 함께 오세요. 제가 멋진 요리와 최고의 차를 대접하죠.”
“설아도 여기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기대하지는 마.”
천상화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멀어지는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무뚝뚝한 그의 말투에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거침없는 행동도 싫지 않았다.
이런 느낌,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가 다시 올까?
안 오면 어떻게 하지?
벌써부터 조바심이 났다. 그가 아직도 보이거늘.
***
천화상단을 나온 혁무천은 곧장 객잔으로 향했다.
천상화의 모습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군.’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자신조차도 그녀의 미모에 흔들릴 뻔했다. 아마 은설이 자신의 곁에 없었다면, 그녀를 담담하게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남성 성문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혁무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누군가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혁무천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말을 건 자를 바라보았다.
사십 대 중반쯤 되는 사내였다. 겉모습은 평범해 보였지만, 결코 평범한 사내는 아니었다.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를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슨 일이오?”
“나를 따라오면 알 수 있을 거네.”
중년사내는 그 말만 하고 몸을 돌려서 한쪽으로 걸어갔다.
혁무천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원한다면…….’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빨리 접근하는군.’
중년사내의 등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옅게 걸렸다.
중년사내는 혁무천을 성문 밖에 있는 한 주루로 데려갔다.
주루에는 탁자가 여덟 개 있었다.
길을 오가는 사람이 많은데도 손님은 여섯 명밖에 없었다.
그 중 청의무복을 입은 다섯은 모두 마흔 살 전후의 무사였고, 한 사람이 탁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년사내는 주루의 중앙에 있는 탁자로 혁무천을 데려갔다.
“데려왔습니다.”
중년사내가 탁자의 손님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탁자의 손님은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노인이었다. 그의 머리 가운데에는 기이하게도 흰 머리가 한 줄로 나 있었다. 그로 인해서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를 똑바로 세운 채 차를 마시던 그가 고개를 들어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천궁환을 독대했다고 들었다.”
다짜고짜 다그치듯 묻는 말투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와 잘 어울렸다.
천화상단 총단주 천궁환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를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그를 독대했다는 것마저 알고 있다면,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그들인 것이 분명하다.
천화상단의 그림자에 숨어 있다는 무소불위의 고수들.
“뭘 알고 싶소?”
혁무천도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중노인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하고는 다시 가라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
“말할 수 없소.”
“너는 사실대로 말을 해야만 한다.”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너의 일행이 죽을 테니까.”
혁무천은 그 말 몇 마디에서 현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중노인의 무리가 객잔에 있는 자신의 일행을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과의 만남에서 얻는 것이 없으면 그들을 공격하겠다는 뜻.
문제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끌려갈 생각도 없었다.
“말하면, 당신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대가는 뭐요?”
“네 동료들의 목숨.”
혁무천은 중노인을 직시했다.
그의 동료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다. 특히 은설은.
감히 그녀의 목숨으로 자신을 위협하다니.
“나도 차 한 잔 주었으면 좋겠군.”
점소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옆에 있던 중년사내가 투박한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혁무천은 찻잔을 들어서 단번에 모두 마셨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차라도 마셔서 식히지 않으면 열을 식힐 수 없을 거 같아서 말이오.”
“이해해. 아마 나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났을 거다.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동료들을 살리려면.”
“천화상단에 무공 좀 제법 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소. 아마도 귀하 역시 그쪽 사람 같은데. 맞소?”
중노인이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미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럼 네 명만 줄어들 테니까.”
혁무천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를 죽일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오?”
“네가 강하다는 건 안다. 기원숭이 너에게 죽었다고 하더군.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해. 하지만 그 정도로는 네 목숨을 구할 수 없을 거다.”
“나와 내기 하나 하지 않겠소?”
“말해봐라.”
“만약…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면, 내 일행에게서 손을 떼시오.”
“정말 겁이 없는 아이구나.”
“하겠소?”
중노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찻잔을 비운 그가 약간의 열기를 띤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 있느냐?”
“자신 없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동문서답 같은 말투였다.
그럼에도 중노인은 토를 다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좋아, 어디 해보자. 대신 네가 지면, 묻는 것에 대해서 모든 걸 말해야 한다.”
“당연히.”
혁무천은 짧게 대답하고 일어났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노인은 앉은 채로 의자와 함께 주욱 미끄러져서 거리를 이 장으로 벌렸다.
동시에 홀로 탁자에 앉아 있던 자들이 일어나며 살을 에일 것 같은 기운이 혁무천을 중심으로 휘돌았다.
“내 검이 무정타 원망하지 마라.”
무심하게 말을 내뱉은 혁무천은 왼손 엄지로 천망검을 밀어 올렸다.
상대는 강하다. 천신명의 호위들보다도.
게다가 나이를 짐작키 힘든 중노인은 기원숭조차 아래로 볼 만큼 절대경에 오른 고수다.
‘사대천마에 뒤지지 않겠군.’
아무래도 몇 년 정도는 삶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대신 그만한 대가는 반드시 받아내야겠지.’
퉁!
맑은 소음과 함께 검신이 한 치가량 튀어나왔다.
그 순간, 사방에서 몸서리처질 정도로 강력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빙글, 몸을 돌리는 혁무천의 손에 이미 천망검이 쥐어져 있었다.
천망검이 그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검푸른 검영이 파문처럼 퍼져나가며 날아드는 기운을 쳐냈다.
떠더더덩!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혁무천의 신형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천신명의 호위들을 상대할 때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다만 그때는 이기는 걸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피 보는 걸 주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유환백보를 펼쳐 허공에서 대여섯 개의 환영을 만들어낸 혁무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천망검을 떨쳤다.
시퍼런 검강이 다섯 자나 뻗은 천망검으로 광룡혈류세를 펼치자, 객잔 안이 숨도 쉴 수 없는 살기로 가득 찼다.
땅!
검 한 자루가 부러져 나가고, 부러진 검을 든 자의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던 중노인이 그 광경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은화육절(隱和六絶)의 합공을 받아내려면 자신이라 해도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런 은화육절 중 하나가 단 일수에 당하다니!
‘놈! 듣던 것보다 더 강하구나.’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기에서 패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은화육절 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있었다.
사대천마라 해도 혼자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리라!
한편, 혁무천은 시간을 오래 끌 마음이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생명이 줄어들 각오를 하고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그만큼 삶은 줄어들 터.
그는 광룡혈류세에 이어서 마룡단천세와 뇌룡섬전세를 연이어 펼쳤다.
콰아아아아!
객잔 안에서 용음이 울렸다.
분노한 청룡이 발톱을 드러내며 청의중년인들을 덮쳤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중노인이 소리쳤다.
“물러서라!”
그러고는 우뚝 선 채 혁무천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그의 장심에서 백광이 번쩍이며 뻗어나갔다.
그 순간, 청의중년인 중 하나가 목이 잘린 채 뒤로 날아갔다. 또 다시 피분수가 뿜어지며 주루 안이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상대를 하나 더 제거한 혁무천은 좌수로 광천일장을 펼쳐서 중노인의 백색 장력에 맞섰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굉음!
안 그래도 가공할 기운에 잘려져 나간 탁자들이 다시 한 번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주루의 벽이 터져 나가고, 건물 전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혁무천은 정면충돌의 충격에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노인의 장력은 그가 지금껏 상대해본 그 누구보다 강력했다.
심지어 만마존 천양묵이나, 철혈마제 우문강천에게도 뒤지지 않을 듯했다.
그는 천화상단 무력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진일선공으로는 어렵겠어.’
그때였다.
“이놈!”
청의중년인들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혁무천이 중노인의 일장을 맞받아치고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두 사람은 검으로, 한 사람은 도로, 한 사람은 적수공권으로 혁무천을 공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초식에 전 공력을 실었다.
그야말로 바람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공세였다.
완벽한 합공!
꼿꼿이 선 채 다섯 자를 밀려난 중노인이 그 광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훗, 걸렸군.”
무천이란 놈이 빠져나가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은화육절 중 사절의 공세는 놈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혁무천에게서 은은한 묵광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그가 마침내 지옥화와 만년빙정이 융화된 지옥명화공의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혁무천을 중심으로 묵광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마치 광폭한 힘을 지닌 묵룡이 그를 중심으로 휘도는 듯했다.
콰아아아아아!
청의중년인들의 완벽한 협공도 혁무천에게 접근을 못하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순간, 혁무천이 지옥명화공을 일으킨 채 천망검을 빠르게 뻗었다.
그를 중심으로 휘돌던 묵룡이 그의 손짓을 따라 튀어나갔다.
대천룡구검세 중 여덟 번째, 구룡파천세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청의중년인들의 눈빛이 진한 공포로 물들었다.
자신들이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물러서고 싶어도 정신이 짓눌려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콰과곽광! 떠더덩!
청의중년인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혁무천은 청의중년인들의 합공을 단숨에 파훼하고 중노인을 향해 미끄러져가며 천망검을 뻗었다.
검첨에서 튀어나간 묵룡이 중노인을 덮쳤다.
중노인은 쌍장을 연속으로 뻗어서 혁무천의 공격을 봉쇄했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가 주루를 뒤흔들었다.
두 사람의 공격이 충돌하면서 가공할 기운의 파편이 사방으로 폭사했다.
안 그래도 무너지기 직전인 주루가 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쿠과과과과광!
먼지구름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주루에 묻힌 듯했다.
그런데 무너지는 지붕을 뚫고 두 사람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