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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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5화
205화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마도 삼파연합의 후미를 공격했다.
그들은 강했다. 그리고 소름끼칠 정도로 살기가 강한 무공을 사용했다.
때로는 살기가 너무나 강해서 마도의 무사들조차 치를 떨 정도였다.
두 시진.
계곡이 온통 시뻘건 피와 사지가 잘린 시신으로 뒤덮였다.
마도 삼파연합 무사들의 가슴이 공포로 물들었다.
결국… 마도 삼파연합은 일천오백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채 패퇴하고 말았다.
마도 삼파연합의 패배는 무림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정파의 무사들은 환호했고, 마도는 분노했다.
혹자는 이제 곧 정도와 마도가 양립하는 냉전의 시대로 회귀할 거라는 성급한 결론마저 내렸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회의를 입은 백여 명의 복면인에 대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들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더더욱 몰랐고.
***
혁무천은 닷새 째 되던 날 소명사를 나섰다.
이번에는 인원을 대폭 줄였다.
송비와 동대안, 사공곽, 목량, 장대산, 그리고 은설만 대동했다.
나머지는 제녕의 소명사에 남겨두었다.
부상이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고, 몇 사람 더 간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천화상단에 가지 않는다 해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혁무천 일행은 소명사를 나선 지 이틀 후 석양이 질 무렵 제남성에 도착했다.
그들이 제남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그들의 앞을 막지 않았다.
천화상단의 능력을 생각하면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천화상단은 자신들의 행로를 모른 것이 아니라 막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어디 한번 와봐라, 그런 뜻.
혁무천은 알면서도 그들의 아가리 속으로 걸음을 들이밀었다.
제남성 남문을 통과한 그의 눈에 저만치 서 있는 자들이 보였다.
모두 십여 명. 이삼십 대의 나이였다.
정갈하게 무복을 차려 입은 그들은, 남문을 통과해서 성 안으로 들어서는 혁무천 일행을 빤히 바라보았다.
적의와 투지가 함께 느껴지는 눈빛. 뒷짐을 진 채 턱을 쳐들고 바라보는 오만한 자세.
제남성에서 그토록 오만하게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자들은 오직 한 곳의 사람들밖에 없었다.
천화상단의 사람들.
그러나 혁무천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서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과 떨어진 거리는 이 장 정도. 노려보는 눈빛이 관자놀이에 바늘처럼 꽂혔다.
막 그들 앞을 스쳐 지나가던 송비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뭘 쳐다 봐? 눈 안 깔아?”
송비가 눈을 치켜뜨고 으르렁거리자, 천화상단 무사들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어깨를 으쓱한 송비는 그제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혁무천 일행이 멀어지자, 콧등에 큰 점이 있는 삼십 대 장한이 이를 갈며 말했다.
“가서 알려라. 놈들이 제남에 들어왔다고.”
“예, 조장.”
대로를 따라 한참을 걷던 혁무천이 고개를 들어 오른쪽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 옆에 세워진 장대 위에서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풍마객잔]
입술 끝을 살짝 비튼 혁무천은 일행과 함께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점소이에게 방을 먼저 요구했다. 그러고는 방으로 안내하는 점소이에게 요리를 주문했다.
“마두찜이 되나 모르겠군.”
점소이가 움찔하더니 헤헤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물론 됩죠.”
슬쩍 방향을 튼 점소이는 객잔의 뒤쪽으로 안내했다.
객잔의 뒤에는 담장으로 분리된 별채가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요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요리를 가져온 자는 삼십 대 중후반 정도의 장한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두찜(?)을 내려놓은 그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부터 제남성 일대에 천화상단 무사들이 쫙 깔렸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눈치가 제법이었다.
“맞소. 우리 때문일 거요.”
“하면……?”
장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화상단이 객잔에 있는 혁무천 일행을 공격할까 봐 걱정이 되는 듯했다.
“너무 걱정 마시오. 저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공자.”
“그보다 알아낸 정보가 있으면 말해보시오.”
***
덜컹.
세차게 문을 열고 들어선 천수화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소명아! 무천이 제남성에 들어왔대!”
천소명은 들뜬 표정의 누나를 흘겨보았다.
“이제 알았어?”
“어? 너는 알고 있었어?”
“요즘 정신을 어디에 쏟고 있는 거야? 지금 무천 때문에 상단 전체가 비상이라는 걸 몰라?”
“내가 그걸 왜 몰라? 잘 알지. 근데 그거하고 무천이 제남에 왔다는 거하고는 다른 문제잖아?”
“관심이 있으면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지. 그 말이 언제 전해졌는데.”
“쳇, 나도 바쁘거든?”
천소명은 천수화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도 기분이 들떠 있었다. 강호에 나갔을 때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가 바로 무천이었다.
물론 그에 의해서 금화대주 기원숭과 금화대원 수십 명이 죽은 것은 분노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서는 별 다른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먼저 공격한 쪽은 금화대였다. 더구나 기원숭과 무천은 정면대결을 벌였다고 했다.
약하면 죽는 것이 무사의 삶 아니던가.
그리고 솔직히, 그는 금화대가 무천 일행을 공격한 것 자체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대 천화상단이 비룡장의 단주를 죽이겠다고 먼저 사람을 보내다니.
창피하게 말이야!
상권 경쟁에서 패했으면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해야지.
무사가 대결에서 패했다고 뒤를 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 일은 아버님께서 과했어. 형도 좀 말리지 않고.’
천소명이 깊은 생각을 하며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천수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해?”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뭘?”
“아버지가 무천을 죽이려고 한 거. 결국 그 일 때문에 금화대가 그렇게 된 거잖아.”
천수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궁에 가시기 전에 정리하려다 보니 마음이 급하셨나 봐.”
“무천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 사람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걸?”
“정말 그럴까?”
“그 제멋대로인 성격 못 봤어?”
“하긴, 그래서 누나가 좋아하는 거겠지.”
“흥! 좋아하긴!”
“그럼, 싫어?”
“……좋아. 흐흐흐.”
천소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방을 나섰다.
흐흐거리며 머리를 긁던 천수화가 물었다.
“어디가?”
“무천 만나러.”
“정말? 그럼 같이 가!”
눈이 동그랗게 커진 천수화가 쪼르르 뒤따라갔다.
***
등잔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진 화려한 방.
천궁환과 천신명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천기회에서 연락이 왔다. 자금을 대달라고 하더구나.”
찻잔을 들던 천신명이 멈칫했다.
“얼마를 원합니까?”
“은자 백만 냥.”
“주실 겁니까?”
“네 생각은 어떠냐?”
“주는 게 좋겠지요.”
“아마 황승과 삼태상은 반대할 거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트집을 잡을 거다. 안 그래도 요즘 사사건건 토를 달면서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애초에 상단과 무력을 분리시키지 않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기르던 개에게 물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천신명은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 전에 차를 먼저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 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할 겁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지닌 주도권을 잃지 않을 테니까요.”
“쉽지 않을 거다. 처음에야 그들의 강한 힘 때문에 조심했지만, 지금은 우리 힘도 그들 못지않게 컸어.”
천신명도 모르지 않았다. 자신들이 구축한 무력도 이제는 팔대마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
비천이 힘으로 누르려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아버님께서 정 그런 생각이시라면 진행해 보도록 하지요.”
“알았다. 아마 천기회와 우리가 손잡은 걸 알면 저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리만 된다면 나쁠 건 없지요.”
“그리고… 신도명산은 자기 아들인 신도평과 상화를 맺어주었으면 하더구나.”
“상화를 말입니까?”
천신명의 눈이 커졌다.
단순히 힘을 주고받자는 것이 아니다. 천화상단과 천기회를 혈연으로 연결시킬 생각인 듯했다.
“그 일은 상황을 보면서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애비도 그럴 생각이다.”
“지금은 그들보다 무천을 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건 일단 그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결정하자.”
천신명은 부친의 말에 멈칫했다. 좀 더 강하게 주장을 펼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자신은 말 그대로 후계자일 뿐, 주인은 부친이다.
결정은 주인만이 내릴 수 있다.
‘곧 때가 오겠지.’
***
혁무천은 객잔 자신의 방에서 풍마문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풍마문이 수집한 정보는 대부분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큼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 부인 간에 암투가 심합니다. 겉으로는 아주 우애가 좋은 것 같지만, 깊이 파고들면 서로 같은 칼날 위를 걷고 있지요.”
천궁환은 부인을 셋이나 두었고 자식이 아홉이나 된다.
첫째 부인은 황사인 경득산의 딸 경소화다. 그녀가 낳은 자식은 둘, 첫째인 천신명과 셋째인 천구명이다.
둘째 부인은 대학사 유원백의 딸인 유완령이다. 그녀는 자식을 넷이나 낳았다. 둘째인 천주명과 넷째인 천양명, 다섯째인 천은명, 그리고 여섯째이자 장녀인 천상화도 그녀의 자식이다.
셋째 부인의 이름은 백산산인데, 그녀의 신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일곱째인 천수화와 여덟째인 천소명, 아홉째인 천우명이 그녀의 자식이었다.
풍마문에 의하면, 특히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자식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서 첨예하게 대치 중이라 했다.
그나마 셋째 부인인 백산산이 조용한데, 둘의 상황을 엿보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천궁환이 골치 아프겠군.”
“천화상단은 황궁에 뒤지지 않는 황금과 무력을 지니고 있잖습니까. 어떻게 보면 황궁보다 더할 겁니다.”
“그렇다면 빈틈도 많다고 봐야겠지.”
그때 밖에서 장대산이 안에 대고 말했다.
“대형, 손님 왔어.”
뒤이어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무천!”
혁무천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천수화?’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접니다, 소명.”
피식, 웃은 혁무천이 밖에 대고 말했다.
“안으로 모셔라, 대산.”
“어. 들어가.”
곧 문이 열리고, 장대산의 말투에 어색한 표정을 지은 천수화와 천소명이 들어왔다.
혁무천은 앉아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외군. 직접 찾아오다니.”
“하, 하. 제남에 오면 한턱 낸다고 했잖아.”
천수화가 남자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친은 안 좋아할 텐데? 제녕의 일에 대해서 모르나?”
“그거야 알고 있지. 근데 솔직히 우리가 먼저 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무천은 기 대주와 정면대결을 했다며.”
“그건 그렇지.”
“그럼 뭐, 화내고 욕해봐야 우리만 창피할 뿐이지.”
뒤끝 없는 천수화의 말에 혁무천도 씩 웃었다.
정말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그녀가 턱하니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식사는 했을 것 같고…… 술이나 한잔 할까?”
“좋을 대로.”
“근데 이 객잔은 어떤 요리를 잘해? 뭐가 맛있어? 내가 살게.”
“마두찜.”
“뭐?”
“싫으면 마족탕도 좋고. 근데 마족탕을 해주려나 모르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