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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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3화
203화
륜(輪)은 휘두를 수도 있고, 날릴 수도 있는 기형병기다. 특히 원거리에서 날리며 공력으로 방향을 조절하면 막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륜을 날리기에는 장소가 좁았다.
자칫 륜이 어딘가에 처박히기라도 하면 무기의 이점을 버리는 셈이 되고 만다.
때문에 사내는 휘둘러서 공격하며 기원숭을 지원했다.
혁무천은 톱날 같은 륜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걸 보고 빙글 돌았다. 순간 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네 개로 분리되었다.
변화무쌍하기로 천하제일이라는 유환백보가 펼쳐진 것이다.
네 개의 환영이 기원숭과 사내를 동시에 공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기원숭과 사내가 당황해서 눈을 치켜떴다.
“헛!”
“조심해! 환영이다!”
그러나 고금제일마라는 말마저 들었던 마천제의 보법이 단순한 환영만 남길 리 없었다.
환영에서 뻗어나가는 검세에서도 살을 에는 검기가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중 하나, 진체에서 뻗어나간 검세가 멈칫거린 사내를 찰나 간에 훑고 지나갔다.
쉬아악!
“크억!”
비명을 내지른 사내는 륜을 든 오른팔이 반쯤 잘린 채 뒤로 튕겨져 나갔다.
혁무천은 곧장 검첨을 틀어 기원숭을 가리켰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래도 금제가 풀리려는 듯했다. 하긴 절대경에 근접한 고수와 절정고수 둘을 동시에 상대했다.
단순 비무가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 지금까지 금제가 풀리지 않고 버틴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혁무천은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공력을 더 끌어올리면 적을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금제가 최소한 한 줄은 풀릴 게 분명했다. 생명이 십 년이나 단축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공력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밤, 모두들 적을 맞이해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딱 한 번이라면… 알아보는 자가 없을지도…….’
갈등은 말 그대로 찰나에 지나갔다.
결정을 내린 혁무천은 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지옥명화공을 끌어냈다.
고오오오오.
전신에서 어둠마저도 짓누르는 은은한 묵광이 피어났다.
“이놈!”
일갈을 내지른 기원숭이 혁무천을 공격하려다 움찔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정신을 짓눌렀다.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압박감이었다.
바로 그때,
혁무천이 천망검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일검으로…….’
장소가 좁아 본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으리라. 대신 기운이 압축되어서 그 위력만큼은 전력을 다한 것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끝낸다! 등활(等活)!’
순간, 천망검의 검첨에서 칙칙한 묵광이 뻗어나갔다.
후아아앙!
마치 검 끝에서 한 마리 묵룡이 포효하며 튀어나가는 듯했다.
지옥명화공으로 펼칠 수 있는 검법, 지옥팔검.
팔열지옥의 이름을 딴 검법 중 첫 번째, 등활이 백여 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막 혁무천을 공격하려던 기원숭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졌다.
상대의 검첨에서 뻗어 나온 묵룡이 앞발을 쳐들고 입을 벌린다.
아니, 묵룡이 아니다. 묵룡의 형상이 이지러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그것은… 아수라였다.
‘으아악!’
정신이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앗!!!”
기원숭은 공포를 떨치기 위해 기합을 내지르며 혼신의 힘을 쏟아 맞섰다.
그의 검에서도 푸른 검강이 회오리처럼 뻗어나갔다.
“물러서!”
혁무천이 외침과 동시,
콰과과광!
연이은 굉음이 대여섯 번 울렸다.
근처에 있던 금화대 무사 셋이 강기의 폭풍에 휘말려 날아가서 벽을 부수며 처박혔다.
그나마 혁무천의 경고를 듣고 뒤로 물러선 장대산과 장평은 안색만 창백해졌을 뿐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텅, 텅, 텅, 텅.
대지를 울리며 물러선 기원숭이 세차게 떨리는 눈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냐?”
을컥!
그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혁무천은, 천천히 쓰러지는 그를 쳐다보며 들끓는 기운을 억눌렀다.
지옥명화공을 끌어냈음에도 금제를 완전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금제가 절반쯤 풀린 상태에서 멈췄다는 점이다.
“후퇴하라!”
륜을 든 사내가 처박힌 벽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이십여 명이 놀란 메뚜기처럼 어둠속으로 솟구쳤다.
륜을 든 사내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
혁무천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대신 몸을 날려서 멀어지는 사내의 등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사람을 다시 보낼 필요 없다고 전해라. 닷새 후 내가 제남으로 갈 거니까.>
혁무천은 지옥명화공을 꼼꼼하게 갈무리한 후 몸을 돌렸다.
슬쩍 목을 만져보니 금제 중 한 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듯 느껴졌다.
‘최소한 삼 년의 명이 줄어들었겠군.’
쓴웃음을 지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당과 집 안에 쓰러져 있는 자가 삼십 명은 되었다. 모두 천화상단의 무사들이었다.
집은 방문과 창문이 다 박살났고, 벽과 천장도 세 곳이 뻥 뚫려 있었다.
“아이고, 내 집…….”
소소월이 집 안을 둘러보며 울상을 지었다.
혁무천은 모른 척하고 비룡단원들을 살펴보았다.
장대산은 아무래도 옷을 또 사야 할 듯했다. 장평 역시 옷이 몇 군데 찢어지고 피가 보였는데, 그는 자신보다 영추문의 상처에 더 신경을 썼다.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강탁이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온몸이 피로 물든 상태였다. 특히 가슴 쪽은 보고 있는 중에도 핏물이 흘러나왔다.
목량이 자신도 부상을 입었으면서 강탁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었다.
소궁단은 소소월과 바짝 붙어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의 곁이 가장 안전할 거라 생각한 듯했다.
그럼에도 허벅지가 길게 베어져서 다리를 절룩거렸다.
‘설아는……?’
은설은 사공미미를 돌보고 있었다.
사공미미는 옷자락이 어깨에서 가슴까지 찢어져 있고, 찢어진 옷자락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은설도 옷에 피가 묻긴 했지만 별 다른 부상을 입지 않은 듯 보였다.
‘휴우우…….’
내심 안도한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철저하게 유기적으로 대응한 결과였다.
거기다 자신이 전면에서 고수들을 막지 않았다면 두세 명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공곽이 바위처럼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천, 이들이 정말 천화상단 사람들인가?”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여서 답했다.
사공곽은 입술을 질끈 깨문 후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것 같군.”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아마 천화상단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비룡단원 중에 사도맹의 소맹주가 있을 줄은.
‘알았다면 이리 무리해서 공격하지도 않았겠지.’
사도맹 소맹주가 천화상단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다는 걸 알면 천화상단의 주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군.’
그때 은설이 소리쳤다.
“오빠, 뭐해요? 부상자부터 손봐주세요.”
부상자들 때문에라도 일단 자리를 옮겼다.
소소월도 더 이상 울상을 짓지 않았다. 혁무천이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더 멋지게.
기분이 풀어진 소소월은 일행을 제녕 외곽의 한 사찰로 안내했다.
소명사(昭明寺)라는 그 사찰의 주지는 소소월의 어릴 적 친구였다.
소소월의 친구답게 계산이 철저했다.
“나무아미타불, 은자 백 냥을 내시면 한 달을 머물러도 괜찮소이다, 허허허. 삼시 세끼를 드리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모시지요.”
부상자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머물러야 할 듯했다.
혁무천은 오십 냥에 열흘 쉬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주지스님도 만족했는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은원보를 휙, 낚아채갔다.
제법 괜찮은 금나수였다.
***
무거운 침묵이 대전을 짓눌렀다.
앉아 있는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천화오대 중 금화대 대주 기원숭이 죽었다.
금화대원 절반이 함께 당했다.
팔대마세의 정예도 아니고, 상가의 호위대인 비룡대에게!
그뿐이 아니었다.
천룡방에 대한 공작도 수포로 돌아갔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일에도 역시 비룡단이 개입했다고 한다.
천화상단 백년 역사에서 이번처럼 연이어 계획이 틀어진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천궁환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천주명은 이를 악물었다가 풀고 입을 열었다.
“비룡단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느냐?”
“놈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실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정보가 부실했고, 그 바람에 비룡단에 대한 평가를 잘못했다. 그래서 결국 오대 중 하나인 금화대가 무너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거라 생각하느냐?”
“추살대를 보내 놈을 반드시 잡겠습니다.”
천궁환은 천주명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옆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천신명이 앉아 있었다.
“무천에 대한 정보는 얼마나 들어왔느냐?”
천신명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무천이란 자가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마룡선발대회입니다. 소문으로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황승이 물었다.
“철혈마련의 우문강천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우문강천이 철혈마련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곳에 들어갈 것을 염려해서 아예 제거하려 했다고 합니다.”
“졸렬한 짓이긴 하나, 음흉하고 욕심 많은 우문강천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어쨌든, 그 후 철혈마련을 떠난 그는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만마공자 천화광을 만나러 만마성에 가던 길에 능화의 코뼈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리고 촉산을 넘어가던 중에는 그들을 잡으려고 출동한 혈왕동의 공격을 버텨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혈왕동 무리 중에 앙천마도 지천주가 있었다는 겁니다.”
듣고만 있던 사람 중 몇몇이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앙천마도 지천주가 있었는데도 그놈을 잡지 못했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무천이 그를 상대했는데, 승부를 보지 못했다 합니다.”
“허어…….”
앙천마도 지천주는 팔대마세 주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인 절대경의 고수다.
무천이 그와 싸워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면 기원숭의 죽음도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정보력이었다. 앙천마도 지천주와 싸운 것은 혈왕동조차 쉬쉬하고 있는 일이거늘,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그 후 마천문에 들러 공손묵과 독대했고, 중원으로 돌아와서 비룡장에 몸을 담았습니다.”
황승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놈이군.”
“그는 그 이후 천룡방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구룡대총회를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취룡가와 풍혼문에 이어서 마룡성과 수룡방까지도 비룡장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는지 좌중의 사람들 모두 입만 살짝 벌린 채 천신명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얼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검마보조차 그와 손을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문척과도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천신명은 무천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보고를 종합해봤을 때, 무천은 일개 무부가 아닙니다. 천하는 모르고 있습니다만, 당금 천하에서 태풍의 정중앙에 서 있는 자가 바로 무천입니다.”
천궁환이 말했다.
“그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네 의견을 말해봐라.”
“그는 금화대 부대주인 효연을 통해 본 상단을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정말로 올 거라 생각하는가?”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노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천신명의 말을 끊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천신명을 바라보았다.
오면 죽을지 모르는데, 그자가 정말 올까?
천신명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