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8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4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88화
“예? 예, 봤습니다, 소성주.”
두양양과 사공명신, 왕규, 방호 일행은 일단 저두심과 함께 흑월조의 거처로 갔다.
연송하는 소성주와 장천운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갔다가 그곳에서 두양양을 보았다.
“예쁘지 않아?”
“예, 정말 특이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그 두 소저가 천운을 좋아하나 봐. 오는 동안 자주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사마경이 담담히 말하고는 자연스럽게 장천운을 흘겨본 후 도도한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사마경의 속마음을 눈치 챈 장천운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채 방문만 노려보았다.
‘어휴, 별 이야기 나눈 것도 아닌데…….’
두양양이 자주 말을 건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도 그녀의 질문에 대해서 마다하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특이한 느낌을 받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불만이었나 보다.
‘끄응, 복수심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줄 알았는데…….’
실수였다.
홍구로에서 살 때,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수없이 보고 들었지 않은가.
질투하는 마음은 기녀든, 여염집 아가씨든, 권력자의 딸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았고, 지위와 질투심의 크기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의 질투심도 때로는 여자 못지않은 비극을 초래하곤 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방심하다니.
‘앞으로 애 좀 먹겠군.’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천운, 냉 대주님하고 나가 봐. 송하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무슨 이야기?
장천운은 왠지 불안했지만 고집피우며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
장천운은 냉원상과 함께 소천전을 나왔다.
무화원 뒤쪽 수혼대 건물로 걸어가면서 장천운이 물었다.
“지금 수혼대 상황은 어떻습니까?”
“말만 호위대지, 개점휴업 상태였네. 그마저도 원단이 지나면 해체될 예정이었지.”
호위해야 할 대상인 소성주의 공식적 명칭이 사라지는 날이니까.
“해체되지 않을 겁니다.”
장천운이 칼로 뚝 자르듯 단호하게 말했다. 무조건 그렇게 될 거라는 듯.
냉원상은 그 말에 담긴 속뜻을 간파하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확실한가?”
“제 목을 걸죠.”
“오랜만에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군. 그 동안 개가 짓는 소리만 들었더니 귀가 썩었는데 말이야.”
장천운이 씨익, 입술 끝을 비틀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게 몇 걸음 걷던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주, 만약 대령주가 소성주를 강제로 밀어내려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상을 찌푸린 냉원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남자에게 충성을 맹세할 사람은 하나면 족하네. 그리고 나는 이미 전대 성주께 충성을 맹세했지.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수혼대에 도착했다.
소성주 도착 사실을 알고 있던 대원들이 모두 방에서 나와 수군거리고 있었다.
들뜬 마음과 긴장감이 버무려져서 복잡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냉원상과 함께 걸어오는 장천운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하하하, 오랜만이네, 장 조장.”
“살아 있었군!”
“반갑네. 결국 다시 돌아왔군.”
너도나도 인사말을 건넸다. 마치 사지에서 돌아온 이십년 지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자신이 수혼대원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장천운 역시 그들과 다름없이 환한 표정이었다.
“관 조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게 누구십니까? 하하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전에 다친 곳은 다 나으셨죠?”
대충 인사가 오가자, 냉원상이 웅성거리는 수혼대원들을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 자! 곧 임무가 하달 될 것이다! 그 동안 놀고먹으면서 지냈으니 이제 일해야지! 각오 단단히 하고 임무에 나설 준비나 해!”
방으로 들어간 장천운은 냉원상과 마주앉았다.
수호대 대원들은 열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이철궁과 관철양이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섭중화와 여귀는 보이지 않았는데, 백리우진이 데려갔다고 했다.
“인원을 보충해달라고 할 생각이네. 해줄지는 모르겠네만.”
냉원상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충해주지 않을 겁니다. 죽이지 못해서 안달일 텐데 인원을 주겠습니까?”
“하긴…….”
“일단은 현재 인원으로 호위조를 짜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보게.”
“흑월조를 둘로 나눌 생각입니다. 흑월조 한조와 수혼대 한 조를 묶어서 이교대로 하지요.”
“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인원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당분간은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어.”
“구천호령마저 호위에 합류하면 저들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단숨에 뚫리진 않을 겁니다.”
“구천호령이 합류한다면야…….”
냉원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굳었던 그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 정도로 안심할 수 없었다.
“저들은 반드시 소성주를 노릴 겁니다. 대낮에야 아무리 욕심이 크다 해도 함부로 못할 것이고, 저녁에 노리겠지요.”
“정말 대령주 측에서 소성주를 해칠 거라 보나?”
“제가 본 그는 공들여서 쌓아 올린 탑이 하루 만에 무너지는 걸 가만히 앉아서 지켜만 볼 사람이 아닙니다.”
“소성주께서 성주의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공손백은 이미 구천성을 장악하다시피 했고, 소성주는 그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소성주가 고집을 피워 성주 위에 오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냉원상 역시 그런 생각이어서 걱정이 더 컸다.
장천운은 일단 냉원상에게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대주, 소성주께서 양보할 생각이었다면 돌아오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절대라 해도 좋을 만큼 확고한 의지가 담긴 말투.
냉원상이 장천운을 직시한 채 물었다.
“솔직히 말해주게.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자유를 찾아서 떠난 사마경이 성주 자리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돌아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사마경 본인도 전과 많이 달라진 듯했다. 툭툭 튀던 말투에서는 건조함마저 느껴졌고, 억제된 감정이 차곡차곡 쌓인 눈빛에는 왠지 모를 한이 서린 듯했다.
왜?
하지만 장천운은 사실대로 말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을 알고 싶으시면 소성주께 물어보십시오. 저에게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으니까요.”
장천운의 대답에서 뭔가를 눈치 챈 냉원상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혹시…… 성주님의 죽음과 관련된 일인가?”
장천운은 냉원상의 눈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주.”
냉원상이 이로 입술의 부푸러기를 뜯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역시 그랬군.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38장: 그날 밤
냉원상과 이야기를 마친 장천운은 흑월조의 거처로 갔다.
모두가 회의용 탁자 주위에 모여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호와 이공진, 유각은 이제 막 본군에 배치 받은 군병들처럼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나마 사공명신과 두양양은 조금 나았는데, 그들의 얼굴에서도 더 이상은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왕규만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거리고 있을 뿐.
일단 의자에 앉은 장천운은 사공명신과 두양양을 바라보았다.
“결정을 해주쇼. 어떻게 할 건지. 그냥 돌아가겠다고 해도 붙잡진 않겠소.”
사공명신이 먼저 말했다.
“수당은 얼만가?”
생각지 못한 질문에 장천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계산이 빠른 유고원이 참고용으로 한마디 했다.
“우린 한 달에 은자 열 냥 받습니다. 사공 형이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제야 장천운이 말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 달에 은자 스무 냥. 임무의 경중에 따라서 성과금을 지급할 거요. 또 알고 싶은 거 있소?”
남천신룡을 부려먹으면서 한 달에 은자 스무 냥?
아마 강호의 말쟁이들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저런 도둑놈!’이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사공명신은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저 독사 같은 흑월조원들도 열 냥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자신이 스무 냥 받는 것도 적은 건 아니었다.
“굶어죽진 않겠군. 그런데 설마 평생 일하라는 건 아니겠지?”
“계약기간은 일 년. 그 후에는 알아서 하쇼. 적성에 맞으면 더 해도 좋고, 싫으면 그만둬도 되고.”
“흠, 일 년 정도면 뭐…… 듣자하니 엉큼한 자들이 소성주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모양인데, 나는 여자가 핍박당하는 거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네. 일단 일 년만 해보고 연장은 나중에 생각해보겠네. 아! 그리고 지금부터 내 이름은 사공신이네.”
가명을 쓰겠다는 뜻.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생각인가보다.
장천운도 차라리 그게 더 편했다.
“알겠소. 두 소저는? 조건은 같습니다만.”
“저도 받아들이겠어요.”
그녀는 열 냥만 줘도 상관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구천성의 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봐온 강호의 여타 세력과 달리 피가 끓는 분위기.
그녀의 몸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투혼이 그 분위기에 반응해서 눈을 뜨고 있었다.
불길처럼 뜨거운 투혼이!
장천운은 사공명신과 두양양이 자신의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그럼 이제 흑월조를 이개 조로 나누겠소.”
일조는 자신과 구산, 저두심, 진구, 추소철, 유고원, 오관.
이조는 사공명신과 두양양, 방호, 이공진, 유각. 이한, 한명후.
그리고 이조의 수장으로 사공명신을 임명했다.
“조장은 따로 수당 같은 거 없나?”
사공명신이 물었다.
의외로 돈 계산이 깐깐한 사람이었다.
“한 달에 은자 다섯 냥을 더 지급하겠소.”
그때 고개를 갸웃거리던 왕규가 물었다.
“난 뭐하지?”
“정보와 연락을 책임져 주십시오.”
왕규도 마음에 드는지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 나이에 계집아이의 호위무사를 할 순 없잖아?’
***
흑월조를 재배치하고 소천전으로 돌아가던 장천운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연송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잘 있었어?”
연송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예, 조장님.”
“설마 나 없는 동안 어떤 놈들이 찝쩍댄 건 아니지? 그런 놈 있으면 말해, 이 오빠가 혼내줄 테니까.”
“그런 일 없었어요.”
“에이, 갑자기 존댓말을 하니까 이상하네.”
“그래도 높으신 조장님이잖아요.”
아무래도 표정이 이상하다.
“왜 그래? 혹시 소성주께서 뭐라고 하셨어?”
“아니에요.”
“아니긴? 연하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말해봐,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입을 삐죽 내민 연송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지난 일 년 간 어떻게 지냈는지, 그 이야기만 했어요.”
응? 뭔가 수상하다. 단순히 그 이야기만 했는데 왜 저리 시무룩해?
“일 년 간 지낸 이야기만 했다고? 정말?”
“뭐 절독곡이란 곳에서 한방을 썼다고 하던데요. 그 후에는 통나무집에서 함께 몇 달을 지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