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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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0화
200화
“설마… 지금 돌아가는 판을 두고 하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쩌면 상상도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젠장! 진짜 골치 아프군.”
사공곽은 무천을 붙잡고 물어본 걸 뒤늦게 후회했다.
물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괴감까지 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무천이 말했다.
“누가 혼돈의 세상에서 주역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거야 그 힘을 얻은 자들이지 않겠나?”
“웃기게도 말이야, 지나치게 단단한 것들끼리 부딪치면 어느 한쪽이 깨지든, 아니면 양쪽이 다 깨지든 하는 법이지.”
사공곽은 미간을 좁히고 그 말을 음미해보았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잡히지 않았다.
그때 은설이 말했다.
“세상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 아닌가요?”
“살아남는 사람이 이긴다?”
“열 명의 비슷비슷한 고수가 싸워서 아홉 명이 죽으면,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알아줄까요?”
잠깐 회자는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남는 건 승리자의 이름뿐이다.
나머지는 패자로서 묻히고 만다. 알려진다 해도 패배자로서 알려질 뿐.
“그리고 강호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세상이 꼭 무공이 강한 것만으로 서열을 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뭘 그렇게 실망해요?”
“그래도 무인이라면 최강을 추구…….”
“무공으로는 최강이 될 수 없다는 걸 공자도 이제 아시잖아요.”
“소저!”
사공곽은 자존심이 상해서 발끈했다.
하지만 은설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며 목소리 한마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죠. 진짜 남자라면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도전을 하는 게 옳지 않아요? 왜 벌써 포기해요?”
“…….”
사공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일찍 포기한 감이 없지 않았다.
혁무천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속이 다 시원했다.
하여간 은설이 말 하나는 시원시원하게 잘한다.
그런데…….
“오빠, 사공 공자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웬 오지랖?
“설아야, 이 친구는 팔대마세 중 하나인 사도맹의 대공자다.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팔대마세의 대공자가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해도, 모자란 것이 있으면 개방의 거지한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말은 맞는데,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모자란 놈과 거지.
사공곽과 혁무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마침 객잔의 주렴이 걷히고 모용수가 들어왔다.
천룡방은 낙양전장에서 발행한 일만 냥짜리 전표 오십 장으로 오십만 냥을 지불했다.
모용수는 그 대가로 천화상단이 꾸민 사건의 전말과 증거를 얻었다.
혁무천은 그 거래에 만족했다.
어차피 천룡방을 당장 무너뜨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들을 무너뜨리면 낙양의 상황을 두고 자신들이 직접 천화상단을 상대해야 할 터. 낙양의 일은 분노한 천룡방에게 맡겨 놓는 게 나았다.
목량도 혁무천의 생각에 동의했다.
“잘하셨습니다. 천룡방은 전력을 다해서 자신의 권역을 지키려 할 겁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은자 오십만 냥을 벌었고, 천룡방의 대지 낙양에 지부 깃발을 꽂았다.
게다가 사도맹의 소맹주 사공곽과 좀 더 가까워졌고, 천화상단의 야욕도 막았다.
사공미미만 없었다면 좀 더 완벽하게 마무리했을 텐데…….
“설아야, 사공미미와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라. 너도 물들지 모르니까.”
그래서 한마디 했더니, 은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는 왜 여자들을 쌀쌀맞게 대하는 거예요? 하민 언니도 그렇고, 화미 언니도 그렇고…….”
혁무천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투로 말했다.
“그거야 설아, 너 때문이지.”
“예? 저 때문이라고요?”
“나는 다른 여자는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혁무천을 보고 몇몇은 몸을 틀었다.
“이거, 왜 이렇게 간지럽지?”
“나는 속이 이상해.”
“서러워서 원…….”
하지만 당사자인 혁무천과 설아는 그들의 이상 반응을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다.
은설은 괜히 좋으면서도 아닌 척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오빠가 저 생각해주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다른 여자를 쌀쌀맞게 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난 다른 여자는 생각 없다니까?”
끝내 영추문이 버럭 소리쳤다.
“에이, 진짜! 대형! 돈 벌었으면 술이나 한잔 사줘요!”
“너는 또 왜 그러냐?”
“몰라요! 술 안 사줄 거예요?”
“마셔. 돈 벌었잖아. 그리고 수고했으니까, 한 장씩 받아.”
혁무천은 영추문의 반응에 의아해하면서 일만 냥짜리 전표를 한 장씩 나누어줬다.
사람들은 엉겁결에 전표를 받아들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려 은자 일만 냥짜리 전표다.
열 냥짜리 은괴로 탑을 쌓아도 상당히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을 거다.
심지어 표국을 운영했던 송비조차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표행에서 가장 많이 벌었을 때 얼마를 벌었더라?
은자 오백 냥이었던가?
‘아니지, 팔백 냥짜리도 한번 나갔었군.’
그런데 전표를 받아들고 동대안이 투덜거렸다.
“제길, 이걸로 술을 어떻게 사먹어…….”
객잔 주인에게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술 한잔 하면서 은자 일만 냥짜리 전표를 내밀어봐라, 욕을 안 먹나.
“그냥 객잔을 통째로 살까?”
“…….”
비룡단원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사공곽은 다른 이유로 갈등했다.
‘나도 이자들과 함께 다닐까?’
꼭 돈이 탐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모습을 보니 자신이 그동안 너무 사도맹이라는 틀에 갇혀 지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무천…….”
“응? 당신은 못 줘. 우리 비룡단원이 아니잖아. 사도맹의 소맹주가 뭐 이런 잔돈푼을 욕심내?”
졸지에 은자를 탐하는 사람이 된 사공곽은 얼굴이 상기되었지만, 끝내 자신의 뜻을 밝혔다.
“나도 비룡단에 들어갔으면 하는데, 받아둘 수 있나?”
“당신은 안 돼.”
혁무천은 가차 없이 사공곽의 청을 거부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사도맹 소맹주가 비룡단원이 되면 우리가 움직이기 힘들어져. 대신 친구로 지내는 건 허락하지.”
찌푸려졌던 사공곽의 이마 주름이 곧바로 펴졌다.
솔직히 자신도 무천의 부하로 들어가는 건 마음에 안 들었다.
“좋네, 그럼 친구로 지내지.”
“친구라 해도 할 일은 해야 돼.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여동생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사공미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는 소맹주가 아니니 비룡단원이 될 수 있겠죠?”
“안……!”
“저는 찬성.”
은설이 찬성하자, 혁무천은 미간을 좁혔다.
“안 된다니까.”
“비룡단원에 여자는 저 혼자잖아요. 한 사람쯤 친구가 될 여자가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사공미미에 대한 소문도, 그녀가 워낙 자유분방하다 보니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는 걸 혁무천도 알고 있었다.
“좋아. 원래는 안 되지만, 설아가 저렇게 부탁하니 허락하지. 대신… 단주인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잘릴 줄 알아.”
사공미미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말아요. 무 공자의 명령이라면 뭐든 들을 거니까요.”
***
혁무천 일행은 하룻밤 쉬고 다음 날 아침 낙양을 나섰다.
이런저런 일이 벌어졌지만 실제 낙양에서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더구나 목적했던 바를 대부분 이룬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낙양의 동문을 나서서 십 리쯤 갔을 때, 풍마문의 낙양 책임자인 사내가 말을 타고 쫓아왔다.
혁무천은 사내로부터 서쪽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만마성에 머물던 마도의 무사들이 정은맹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북상하고 있다 합니다.”
혁무천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정은맹의 무력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했다. 더구나 절전된 무공을 얻었지 않은가.
천화광과 공손두, 능화 등 젊은 소주인들의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정은맹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때문에 삼파의 주인들은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지원무사를 보내서라도 정은맹을 제거하고 싶겠지.’
그리 된다면 정은맹이 불리하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 몇 명이나 움직였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일천오백 정도 될 거라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움직였다.
삼파의 주인들이 단단히 작정했나보다.
“돌아가는 상황에서 눈을 떼지 말라 하시오.”
“예, 단주.”
“섬서에서 들어온 소식은 없소?”
혁무천은 정은맹과 마도의 전쟁보다 그 일이 더 신경 쓰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말했다.
“섬서에서 살겁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마도문파 두 곳이 당했는데, 그곳 역시 수백 명이 죽고, 참혹함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범인은?”
“이번에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범인들의 숫자는 열 명 정도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가 무공을 펼칠 때마다 은은한 혈무가 끼었다고 합니다.”
열 명으로 수백 명을 죽였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참혹하게.
혁무천은 일전에 처참한 상흔에 대해 듣고 한 가지 가능성을 의심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무공에 대한 특징마저 들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특이한 것은 그토록 잔악하게 손을 쓰는 자들이 마도의 무리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들의 정체를 알아보시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인원도 충원시키고.”
“알겠습니다.”
풍마문의 사내가 다시 말을 타고 돌아가자, 목량이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책을 훔쳐간 자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
목량은 혁무천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공곽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무슨 말인가? 책이라니?”
“그런 것 있어.”
“이거 서운한데? 친구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무리 친구라도 모든 걸 다 말해줄 수는 없어. 내가 사도맹의 비밀을 물으면 대답해줄 건가?”
사공곽은 곧바로 한발 물러섰다. 자칫하면 자신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었다.
“하긴 그래. 친구라 해서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지.”
“그래도 친구라면 대략적인 것 정도는 말해주는 것이 옳은 것 같군.”
“아니 뭐, 꼭 그럴 필요는 없네.”
“책이 뭔지 알고 싶지 않아?”
“하, 하. 별로 궁금하지 않아.”
사공곽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저었다.
“와, 역시 사도맹의 소맹주라 다르네. 그 책의 실체가 알려지면 천하가 뒤흔들릴 수도 있는데, 그걸 궁금해 하지 않다니.”
동대안이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사공곽은 그래서 더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한 말이 있으니 다시 묻기도 어정쩡했다.
“내가 원래 책은 별 관심이 없어서…….”
혁무천은 피식 웃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조금만 기다려. 좀 더 확실한 것이 밝혀지면 말해줄 테니까.”
***
혁무천 일행은 정주에 들러서 하루를 머물렀다.
혁무천은 삼원의 원주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원의 원주들도 낙양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혁무천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정중해졌다.
하남제일의 상인인 천룡방을 굴복시켰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삼원상단의 상황에 대한 보고가 거의 다 끝났을 때였다. 혁무천이 천화상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명승연이 놀라서 물었다.
“천화상단에 가신다고요?”
“그렇습니다. 따져야 할 것도 있고, 협상할 것도 있고. 겸사겸사 천화상단의 속살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천화상단은 일반 상단과 많은 것이 다르오.”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단주께서 알고 계신 것보다 더 다를 거요.”
명승연의 계속된 주의에 혁무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혹, 알고 계신 것이라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