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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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3화
193화
남자가 눈을 치켜뜨자, 전장 곳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다가왔다.
그제야 남자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래도 무사여서 곱게 대해주려고 했더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우리 낙양전장이 그리도 우습게 보였느냐!”
은설은 그 모습을 보고도 기다란 눈썹 한 올 휘날리지 않았다.
“당신이야말로 입조심해요!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막말이에요! 당장 주인장 불러내요!”
당찬 그녀의 대꾸에 남자도 멈칫했다.
그때 혁무천이 남자를 지그시 쳐다본 후 실소를 지었다.
“당신, 오늘 보따리를 싸야 할 것 같군.”
“무슨 말……?”
“무슨 말은? 내가 주인을 불러냈거든. 아마 지금 상황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을 거야. 돈은 안 되고 말버릇만 고약한 당신을 당장 자를 수 있을 테니까.”
“뭐, 뭐요?”
조금 전, 백만 냥 운운한 말을 들은 사람은 이곳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저 깊숙한 내실에 있는 누군가에게도 목소리가 전해졌다.
혁무천이 진기를 실어서 수십 장 멀리까지 들리게끔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철창 저 안쪽에 나있는 문이 열리며 육순 가량의 노인이 모습을 보였다.
“물러서라!”
노인은 혁무천 일행 쪽을 향해 소리친 후 철창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성큼성큼 걸어서 혁무천 일행 앞까지 온 노인이 문사 차림의 남자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오늘 부로 넌 해고다!”
“예? 수, 숙부님……!”
“사람도 못 알아보는 놈은 필요 없다! 꺼져라!”
결국 목에 힘만 주었던 장한은 자라목이 되어서 안으로 들어가고 노인이 혁무천을 상대했다.
“이 늙은이가 화문역이라 하네. 조카 놈의 실수를 용서해주시게나. 내 사과하는 의미로 좋은 차를 대접하지.”
노인, 화문역은 혁무천 일행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내실도 바깥쪽의 영업장만큼이나 장식이 없어서, 청결하고 탁자만 없었다면 창고가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내실로 들어가서 앉자 화문역이 직접 차를 내왔다.
“허허허, 요즘은 노임이 올라서 시비도 한 달에 은자 한 냥을 줘야 한다네. 게다가 차를 제대로 끓이는 애도 드물지.”
한마디로 은자 한 냥을 아끼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차를 끓인다는 말이었다.
낙양의 황금충이라 불리는 낙양전장의 주인이.
어쨌든 차의 향기는 혁무천이 지금까지 마셔본 그 어떤 차보다 좋았다.
철호와 은설도 차 맛에 감탄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차를 한 잔 거의 다 비웠을 때 화문역이 말했다.
“이제 말씀해보시게. 어떤 거래를 원하시는가?”
혁무천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신의 신분부터 밝혔다.
“비룡장의 무천이라 합니다. 비룡단을 맡고 있지요.”
화문역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무천의 이름과 비룡단이라는 말만 듣고도 혁무천의 뜻을 간파했다.
“허허허, 상계에 풍운을 일으킨 비룡단주가 이 늙은이를 찾아올 줄은 몰랐구먼.”
“제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 늙은이가 어찌 단주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화문역의 쭈글쭈글한 눈꺼풀 끝으로 미소가 번졌다. 노회한 그는 절대 자신의 패를 먼저 내보이지 않았다.
혁무천도 그의 속을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어차피 어설픈 거래는 위험만 높아질 뿐이었다.
“그러시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화문역은 상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본론을 꺼내려 하자 비웃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상계에서 풍운을 일으키고 있다지만, 아직 자신에 비하면 새파란 애송이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뒷골이 간지러웠다.
자신이 뭔가를 놓친 것만 같았다.
“대신 대가는 조금 달라질 겁니다.”
저놈의 눈빛 때문인가?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눈빛.
“하남성에서 벌일 비룡장의 사업에 낙양전장이 발행한 전표를 쓸 생각입니다.”
“허허허, 그거 고맙구먼.”
“수수료는 천룡방이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이 드릴 겁니다.”
“호오, 그래?”
“아마… 천화상단이 제시한 것보다 많을 겁니다.”
“…….”
천화상단이라는 말이 나오자, 건성건성 대답하던 화문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진심으로 거래를 하고자 말씀드리는데, 노야께선 그럴 마음이 없으시나 보군요.”
“이보시게, 무 단주…….”
“천화상단과 거래하시면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화문역의 눈초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지금… 노부를 협박하시겠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분명한 것은, 낙양전장이 천화상단과 거래할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지요.”
“허어, 거 참…….”
“천룡방의 사업권이 천화상단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요.”
“…….”
그것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그제야 화문역의 혁무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 늙은이를 확실하게 납득시켜 보시게나. 그렇지 못하면, 이 늙은이를 놀린 벌로 비룡장은 이창이나 역성에서 하려던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접어야 할 거네.”
그냥 해본 협박이 아니다. 최소한 하남에서만큼은 그만한 힘이 있는 곳이 낙양전장이었다.
“먼저 구룡상단의 율법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겁니다.”
“물론 알고 있네.”
“그럼 천룡방이 구룡상단과 관련된 사업을 천화상단에 넘기면 안 된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물론이네. 허나 세상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 법이라네. 특히 힘이 있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예외를 적용시킨다네.”
“저도 천화상단이 강하다는 걸 압니다. 황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 역시 당연히 알고 있지요.”
“이 늙은이는 천룡방이 빠진 구룡상단이 천화상단에 대적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네.”
혁무천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이름 하나를 꺼냈다.
“철혈마련이 움직인다면 어떻겠습니까?”
화문역의 눈이 커졌다.
“철혈마련……?”
화문역은 천화상단의 무력이 마도십문 중 어느 곳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천룡방이 빠진 구룡상단의 힘으로는 천화상단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팔대마세 중 하나인 철혈마련이 천화상단을 견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만마성의 천화광도 나설 겁니다.”
“만마성도?”
“천화광이 제 친구라는 것 정도는 아시고 계실 테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왜?”
“철혈마련의 대공자 우문척이 천화상단의 숨겨진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보고 싶은가 보더군요.”
벌써 팔대마세 중 두 곳이 나왔다.
거기에 구룡상단의 무력 역시 약하지 않았다.
“솔직히 믿기 힘든 말이네. 지금까지 철혈마련은 천화상단에 대해서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나선단 말인가?”
“제가 이야기했지요. 천화상단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입니다. 철혈마련 정도는 찜 쪄 먹을 만큼 강하다고 했더니,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허어…….”
화문역은 어이가 없었다.
결국 무천이란 자가 철혈마련을 충동질해서 천화상단과 싸움을 붙이고 있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아마 철혈마련과 만마성이 끼어들면 천화상단은 낙양의 상권에 신경 쓸 정신이 없게 될 겁니다. 천룡방도 뺏기는 걸 원치 않을 것이고.”
화문역은 결코 계산에 느린 사람이 아니었다. 팔대마세의 두 곳이 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사실일 때의 이야기지만.
문제는 그동안의 정보를 취합해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반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늙은이도 그대를 인정하겠네.”
“이제야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군요.”
혁무천의 무심하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앞으로 하남에서 이루어질 모든 거래를 낙양전장의 전표로 처리하지요. 가을부터는 아마 한 달에 백만 냥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화문역의 주름진 눈꺼풀이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눈이 커졌다.
자신이 예상했던 최대 금액의 세 배나 되는 거액이다.
그 정도 규모의 거래를 하는 상가는 천하에 천화상단 외에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젊은 친구가 허풍이 세군.’하면서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상가에 폭풍을 몰고 온 비룡장의 비룡단주다.
말한 금액의 반만 된다 해도 일 년이면 육백만 냥, 전표에 대한 보증료만 십이만 냥이나 된다.
사실이라면 낙양산장의 최대 거래처가 될 것이다.
사실이라면.
화문역은 흔들림 없는 혁무천을 눈을 똑바로 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단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원하는 것을 말씀해보시게나.”
혁무천은 들어간 지 반시진 만에 낙양전장을 나섰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천화상단과의 거래를 유보시킨 것만 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오빠, 지금쯤은 천룡방도 움직이고 있겠죠?”
은설이 옆에서 걸으며 말했다.
혁무천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잖아.”
“피이, 그거야 그냥 하는 말…….”
은설이 입술을 삐죽 내밀다 말고 앞을 바라보았다.
주루 옆의 골목에서 몇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도검과 단창 등 무기를 든 자들, 모두 여섯 명이었다.
걸음걸이만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중앙에 선 중년인은 구름을 걷듯 부드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들은 곧장 혁무천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데 중년인의 가슴에 푸른색 실로 천룡(天龍)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천룡방의 간부라는 뜻.
낙양성 안에 모습을 보인 순간부터 천룡방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혁무천은 담담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푸른 수실이 달린 검을 등에 멘 중년인이 턱을 쳐들고 말했다.
“진짜네.”
은설이 풀썩 웃으며 말하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다가오던 자들은 그녀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를 보고 눈빛을 번뜩였다.
“호오, 굉장한 계집이군.”
은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냉기가 풀풀 날렸다.
“아무래도 그 입, 오늘 뭐 먹긴 틀린 것 같네.”
“뭐?”
중년인이 눈을 치켜떴다.
“아아, 그만하고. 무슨 일이지?”
혁무천이 손을 흔들며 나섰다.
그제야 중년인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낙양전장에서 금노를 만났다고 들었다. 무슨 일로 만난 거지?”
“몰랐나? 알고 온 줄 알았는데.”
“뭘 모른다는 거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앞을 막아섰나?”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돼.”
정확한 정체를 알지는 못했다. 그저 수상한 자들이 낙양전장의 장주와 만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왔을 뿐.
“순순히 입을 열면 우리도 그에 맞게 대우해주지.”
중년인이 그 말을 하고 슬쩍 고갯짓을 하자, 뒤쪽에 서 있던 자들이 좌우로 벌어지며 혁무천 일행을 반원으로 에워쌌다.
조용히 서 있던 철호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대형, 제가 처리할까요?”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는 마.”
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구리에 끼워 놓았던 도끼를 빼냈다.
중년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안 그래도 땅딸막한 놈이 삶도 짧게 끝내고 싶은 모양이군. 오래 살고 싶으면 입이라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지.”
철호가 두툼한 입술을 씩, 하며 씰룩이더니, 땅을 박차고는 중년인을 향해 쇄도하며 도끼를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