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0화
190화
멈칫한 자경산이 고개를 돌렸다.
우문소소는 자경산을 째려보며 짜증을 부리듯 말했다.
“내가 왜 차갑게 대한 줄 알아? 하나 있는 오빠라는 사람이 바보 같이 자기 동생도 몰라보지 뭐야. 그래서 화가 나 힘든 일만 시켰어.”
“…….”
“……!”
자경산은 막상 대답을 듣자 몸이 떨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혁무천도 우문소소가 갑자기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자 바로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사이 고개를 돌린 우문소소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내가 자화미예요.”
혁무천이 그녀를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막상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기분이 묘했다.
반면 자경산은 몸을 잘게 떨었다.
“저, 정말 소공녀가… 아니 네가… 화미야?”
그런데 우문소소가 말했다.
“아니, 그냥 해본 말이야.”
“…….”
자경산이 입을 다물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문소소가 쏘아붙였다.
“여전히 멍청하네. 어떻게 동생도 못 알아봐?”
“그럼……?”
“그러니 내가 동생이라고 말을 못하지.”
“정말… 화미?”
“말하면 멍청한 오빠가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니까.”
자경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우문소소, 아니 자화미가 우문소소로 살게 된 것도 결국은 바보 같은 자신 때문이란 말이었다.
그동안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하지만 곧 한 가지 빠진 이야기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 자화미에게 물었다.
“소소는 어떻게 된 거냐?”
그는 철혈마련으로 오자마자 동생과 헤어져서 무공을 익혀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도 못했다. 나중에 동생이 사라졌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화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빠가 수련에 들어간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둘이 몰래 놀러 나갔다가 그만 납치를 당하고 말았어. 그런데…….”
납치한 자들은 우문소소와 자화미가 누군지도 모르고 납치한 것이었다.
그들은 두 여자아이를 창기로 팔기 위해 창고에 가두어뒀다.
그런데 마침 창고 문 쪽에 있던 자화미의 귀에 며칠 후 자신들을 사갈 노예상인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납치범들은 비단옷을 입은 우문소소를 먼저 팔려고 했다.
자화미는 우문소소에게 옷을 바꿔 입자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먼저 나가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둘은 쌍둥이라 할 만큼 모습이 비슷했다. 옷을 바꿔 입으면 속일 수 있을 듯했다.
더구나 자화미는 매우 영리하고 재빨라서 우문소소가 할 수 없는 일을 곧잘 하곤 했다.
그렇게 옷을 바꿔 입은 자화미는 노예상인이 데리러 온 날 끌려 나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
하지만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휘말려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옆에는 철혈마련 무사들이 있었다.
철혈마련 무사들은 그녀를 우문소소로 대했다.
그들은 자신의 옷을 입고 있던 자화미의 시체를 노예상인들의 창고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자화미라는 걸 말하지 않았어. 어차피 소소가 죽었고, 사람들은 나를 소소로 알고 있었거든. 그렇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잖아?”
다행히 우문소소가 철혈마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문강천조차 워낙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그마저도 잠깐 와서 겉치레로 몇 마디 하고 가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급류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후 몸이 쇠약해진 상태라 얼굴도 많이 상해 있었다.
누구도 그녀가 우문소소가 아닌 자화미란 걸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어. 들키면 죽을 테니까. 그래서 몸이 낫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방 안에서만 지냈어.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우문소소 역할도 할 만하지 뭐야.”
우문소소의 탈을 벗어버린 자화미는 입술을 씹으며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소 것이 다 내 것이 되었어. 뭐든 원하기만 하면 내 앞에 놓였지. 나를 거지 취급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 앞에서 굽실거렸어. 하지만 불안해서 오 년 동안이나 무공을 익힌다는 핑계를 대고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어. 그런데 웃기지 뭐야. 가족이라는 사람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더라고.”
말끝에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그렇게 크면서 예뻐지니까, 그제야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심지어 아버지라는 사람도. 괜찮은 곳과 정략결혼을 시키면 철혈마련에 그만큼 득이 될 거라 생각한 거지.”
자화미의 시선이 자경산에게로 향했다.
“그때쯤 오빠가 왔어. 나를, 우문소소를 호위하기 위해서. 솔직히 나는 오빠가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치미 뗄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막상 만나니까 그럴 필요도 없었어.”
“미안하다…….”
자경산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후우, 미안해 할 것 없어. 이제 지난 일인데 뭐…….”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자화미가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무 공자를 욕심 낸 것도 그래서였어요.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행동하는 당신이 부럽고, 좋았거든요.”
혁무천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온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화미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그 역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이곳을 떠나자. 철혈마련의 추적이 있을지 모르니까.”
***
우문척은 자화원에서 벌어진 사소한 소동에 대해 듣고 이마를 좁혔다.
“소소는?”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합니다.”
“소소가 일찍 잠들었다고?”
“예, 대공.”
“확인은 해봤느냐?”
“피곤해서 잠을 잘 것이니 깨우지 말라고 하셨다 합니다.”
우문척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문소소는 자시 이전에 잔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피곤하다는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 무천을 만나고 온 날 그런 이상 행동을 보이다니.
“혈영, 네가 가서 확인해 봐라.”
“예, 대공.”
혈영이 돌아온 것은 반각도 되기 전이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올렸다.
“대공, 소공녀의 방이 비어 있습니다.”
“찾아봤느냐?”
“자화원 안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입던 옷이 한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벌떡 일어난 우문척은 뭔가를 떠올리고 멈칫했다.
“아마 그대가 먼저 알게 될 거야.”
무천이 그렇게 말했었다.
‘설마 소소가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그가 소소를 빼돌린 건가?
하지만 왜?
그는 소소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거늘.
몇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했다.
첩의 딸 따위 처음부터 동생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감시 하에 붙잡아 둔 이유는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
그런데 정말로 무천이 그녀를 빼돌린 거라면……?
‘그에게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우문소소와 무천이 맺어진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무천이 자신의 매제가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우문척은 혁무천이 들었다면 당장 검을 뽑아들었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혈영.”
“예, 대공.”
“소소에 대한 것은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냥 놔둬라.”
혈영은 의문이 들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결정은 주인이 하는 것. 자신은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알겠습니다, 대공.”
소소에 대한 모든 결정을 뒤로 미루어둔 우문척은 다른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천화상단에 대한 것을 철저히 조사해서 보고해라.”
“천화상단입니까?”
“그래, 필요하면 비천마단의 첩마각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특히 그들의 인적 구성과 조직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훑어봐.”
***
혁무천은 무원장으로 돌아가는 내내 귀가 따가웠다.
조용히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은설보다 말이 많군.’
자신에게 말을 걸다 지치면 자경산에게 말을 걸었다.
다만 자경산에게 말을 걸 때는 쏘아붙이듯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경산은 참고 들어주었다.
십오 년 만에 만난 동생 아닌가. 동생을 몰라봤다는 죄책감도 있는 터라 자화미가 아무리 핀잔을 주어도 싫지가 않았다.
“흥! 오빠는 혼 좀 나야 돼요.”
“그래, 미안하다.”
“웃기는 왜 웃어요? 뭘 잘했다고.”
듣다 못한 혁무천이 싸늘하게 말했다.
“조용히 해. 사방에 알리기라도 할 생각이냐?”
그제야 자화미가 입을 닫고 입술만 삐죽거렸다.
혁무천은 말을 한 김에 마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둘이 살 곳을 찾아봐. 무원장에서 함께 있을 수는 없으니까.”
“싫어요.”
자화미는 혁무천의 말을 곧바로 거부했다.
자신이 철혈마련에서 왜 나왔는데?
“무 공자가 데리고 나왔으니 책임져요.”
혁무천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내가 언제 너를 데리고 나왔단 말이냐? 헛소리 말고 멀리 가. 우문척에게 잡히지 말고.”
혁무천이 냉랭히 말했지만 자화미는 쉽게 굽히지 않았다.
“오빠를 보낸 사람이 무 공자잖아요? 그러니 우문척이 잡으러 오면 공자가 막아줘야죠.”
할 수 없이 혁무천은 자경산을 다그쳤다.
“경산, 동생 데리고 떠나라.”
자경산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자신은 동생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역시 혁무천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것이 그나마 동생의 잔소리를 덜 듣는 길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도 책임지쇼.”
“…….”
혁무천은 우뚝 멈춰 섰다.
자경산을 바라본 그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투정을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귀찮으면 철혈마련으로 돌려보낼 거다.”
자경산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화미는 그 말에서 빈틈을 찾아냈다.
“그럼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혁무천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저갱처럼 깊은 두 눈은 차갑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자화미도 지지 않고 마주보았다.
이곳에서 두 눈이 터져 장님이 되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때 자경산이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받아주십시오, 주군. 동생은 제가 타이르겠습니다.”
“내가 왜 네 주인이란 말이냐?”
“이미 도와주시면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정 싫으시면 제 목을 치십시오.”
고집 하나는 동생이나 오빠나 거기서 거기다.
그냥 둘 다 죽여 버릴까?
오죽하면 그런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죽이면, 아마 은설이 평생 들들 볶아댈 것이 분명했다.
자경산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혁무천은 몸을 돌려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잊지 마. 화미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 네가 알아서 막아.”
“예, 주군.”
“누구든 소소의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철혈마련으로 돌려보낼 거다. 그러니 알아서 숨겨.”
“흥!”
자화미는 콧소리를 내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아?’
***
무원장에 도착하자, 은설이 자화미를 알아보고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언니!”
“설아야!”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이라도 하는 듯했다.
혁무천은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은설 앞에서 대놓고 자화미를 다그칠 수도 없었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를 안 믿는다, 자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