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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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8화
188화
“훗, 전보다 많이 유해졌군. 은설이라는 소저를 만났기 때문인가?”
역시 그는 자신은 물론 은설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경계를 게을리 하면 언제든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그대가 상가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군.”
“비룡장 때문이 아니라 무천, 그대 때문이지. 그대가 있는 이상 비룡장은 평범한 곳이 아니거든.”
“좋게 생각해준 거라 여겨도 되겠지?”
“그야 물론이지. 솔직히 나는 그대가 비룡장에 몸담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장사도 해보니까 할 만하더군.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황보세가도 그래서 간 건가?”
“비슷해. 덕분에 이득 좀 봤지.”
“내 덕분에 일이 커지지 않은 건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그래서 선물도 준비했어.”
“호오, 그래?”
우문척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남들이 보면 진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화기애애한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잘 아는 이들이 그들 옆에 있었다면, 눈앞에서 무형의 칼날이 날아다니는 걸 느끼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나 혼자 이득을 챙기는 건 너무 도둑놈 같아서 말이야.”
“무슨 선물인지 궁금하군.”
“별 것은 아니야. 정주 삼원상단의 이익 중 일 할을 주려는 것이니까.”
“삼원상단 이익의 일 할?”
“대 철혈마련의 소련주에게는 푼돈일지도 모르지.”
“저런! 뭘 모르는군. 철혈마련의 주인은 아버님이지, 내가 아니네. 사실 나는 아버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한 푼도 쓸 수 없는 빈털터리야.”
우문척이 너스레를 떨며 짐짓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혁무천은 그런 우문척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돼. 솔직히 아깝거든.”
“그 말을 하니 더 받고 싶은데? 그래, 얼마나 되나?”
“아마… 일 년에 은자 삼만 냥은 되지 않을까 싶군.”
“허엇! 은자 삼만 냥!”
우문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나보고 그 돈을 포기하라고? 미쳤지, 미쳤어.”
“아! 물론 조건이 하나 있어.”
“끄응, 내 그럴 줄 알았지. 세상에 그 많은 돈을 그냥 줄 리 있나?”
“어려운 일은 아니야. 아니, 어쩌면 그대가 더 흥미를 가질지도 모르겠군.”
순간적으로 우문척의 눈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말해보게. 정말 흥미를 가질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듣고 나서 판단하겠네.”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 묻지. 철혈마련과 천화상단은 어떤 관계인가?”
“천화상단?”
“그래, 천화상단.”
“글쎄…… 특별한 관계라고 하긴 뭐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사이라고나 할까?”
혁무천이 아는 바로도 그 정도 관계가 전부였다. 풍마문에서도 둘 사이의 관계에서 별다른 의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걸 묻는 거지?”
“철혈마련과 천화상단이 어떤 관계냐에 따라 할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
“흠, 그럼 확실하게 말하지.”
우문척은 혁무천의 두 눈을 직시한 채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철혈마련은, 장사꾼들과 절대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네. 황금은 귀신도 속일 수 있고, 무엇보다 무사를 나태하게 만들거든.”
우문척의 대답을 들으며 혁무천은 확신을 가졌다.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눈빛이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 지금 한 말이 거짓이라면, 우문척은 천하를 속일 수 있는 사기꾼일 것이다.
“좋아, 믿지.”
우문척이 씩 웃었다.
“다행이군. 그럼 이제 왜 천화상단을 들먹였는지 말해보게.”
“나는 구룡상단의 구주 중 하나인 비룡장에 속해 있고, 천화상단은 그런 나의 적이나 다름없네.”
우문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그런데 앞으로 천화상단과 다툴 일이 많아질 것 같아.”
“설마… 나보고 천화상단을 처리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건 아니네. 설령 그리 해달라고 한다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뭔가 묘한 뒤끝이 있는 말이었다.
우문척도 그 점을 바로 눈치 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천화상단을 처리할 수 없다? 설마 진짜로 그런 뜻은 아니겠지?”
“잘 봤어, 그런 뜻으로 한 말이야.”
“……훗.”
우문척이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 그러고는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거, 어쩌다 우리 철혈마련이 상단 하나도 상대하기 힘든 곳이 되었나 모르겠군. 아마 아버님이 그 말을 들었다면 대노해서 당장 자네의 머리를 자르려고 했을 거네.”
“의외인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철혈마련의 정보망이 약한 건지, 아니면 천화상단이 그만큼 철저한 건지 알 수가 없군.”
“무슨 말이지?”
“조사해봤더니 천화상단의 무력이 엄청나더군. 심지어…….”
혁무천은 담담한 어조로, 그동안 조사한 천화상단의 무력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리 말한 거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우문척은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어이가 없었다.
일개 상단의 무력이 철혈마련의 아래가 아니라니.
하지만 그는 혁무천이 헛소리나 하는 작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
그렇다면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였다.
“정말 천화상단의 무력이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이지?”
“철혈마련의 정보망을 동원해서 조사해보면 알 것 아닌가?”
“하긴…….”
사실이라면 자신이 하려는 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문척은 오늘 자신이 무천에게 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내가 호적수로 삼을 만한 놈이야.’
절대자는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적수가 없으면 더욱 끔찍한 고독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재미없는 세상 때문에 미쳐버릴지도 모르고.
“내가 뭘 해주길 바라나?”
“우리가 천화상단과 상계를 놓고 다툴 때, 철혈마련에서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면 좋겠어.”
“그들이 정말 그 정도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다면, 최대한 도와주지. 아마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실 거네.”
“그렇게 해준다면야 나도 좋지.”
“대신 나와의 거래와 상관없이, 본 련에도 그만한 대가를 내놓아야 하네.”
확실히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천화상단을 대신 처리해줄 테니 대가를 내놓아라, 그 말이다.
물론 삼원상단의 이익 일 할도 챙길 생각이고.
꿩 먹고, 알 먹고…….
혁무천으로서도 손해 볼 것 없었다.
아니 손해이기는커녕 엄청난 이익이었다.
어차피 도움이 안 되었을 때는 대가를 주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천화상단을 압박하는 정도의 효과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 정도라면 장주도 승낙할 거다.”
우문척도 그 정도만으로 만족했다.
천화상단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무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보를 담당하는 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너무 오랜 세월 평화롭게 지냈나보다.
하긴 굴리지 않으면 녹이 슬 수밖에.
문제가 있는 자들은 앞으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굴려야 할 것 같다.
“더 말할 것 있나?”
“철혈마련에 들어가는 물품 중 일부를 우리 비룡장에 맡겨주었으면 하는데. 앞으로는 천룡방에서 물품을 납품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
“천룡방에서 납품하던 물품을 비룡장에서 하겠다?”
“바로 그거야.”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군. 단, 천룡방이 납품을 할 수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좋아, 그럼 약속하겠네.”
혁무천은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서 차를 마셨다.
그걸 보고 우문척이 한마디 했다.
“차도 좋지만, 이런 날은 술이 더 낫지 않나?”
“그것도 그렇군.”
차보다는 술을 마시는 게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우문척이 철혈마련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만큼 더 오래 걸릴 것이고.
그러면 자경산이 일을 처리하는 것도 훨씬 더 수월해질 터. 혁무천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술은 내가 사지.”
***
철혈마련의 내부 경비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경산이다.
그는 세 겹으로 된 경비망을 뚫고 우문소소의 거처인 자화원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자화원을 코앞에 두고 문제가 생겼다. 자화원에 대한 경비 형태가 바뀐 것이다.
침입자를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이 탈출하는 걸 막는 것이 목적인 경비 형태였다.
우문척이 우문소소를 감시하고 있다는 뜻.
자경산은 어둠 속에 숨어서 경비망을 살펴보았다.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지체되어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는 일각 만에 빈틈을 찾아냈다.
경비망은 강화되었지만, 경비무사들의 마음까지 강화된 것은 아닌 듯했다.
경비무사들이 오가는 것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이각 만에 빈틈을 발견했다.
순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자화원으로 날아갔다.
누구도 그가 날아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소공녀, 접니다.>
갑작스럽게 들린 전음에 우문소소의 눈이 커졌다.
‘경산……?’
<이곳을 나가실 생각이 있으시면 고개를 끄덕이십시오.>
우문소소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철혈마련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철저히 감시를 받으며 지냈다.
감시자들은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우문척에게 보고했다.
자화원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우문강천도 그녀가 허락 없이 밖으로 나간 것에 화가 난 듯 당분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 바람에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화원에 갇혀서 지낼 마음이 없었다.
우문소소는 이를 지그시 악물고 천장의 한 곳을 바라보았다. 항상 자경산이 몸을 숨기던 곳을.
<혼자 왔어?>
<예.>
<혼자서 나를 빼낼 수 있겠어?>
<우문척과 그의 호위들은 지금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우문척이 나가 있다고? 조금 전까지 그의 방에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는 무천을 만나러 갔습니다.>
<무……천?>
우문소소의 눈빛이 반짝이며 빛났다.
무천이 왔단다.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온 걸까?
그녀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무천이 왔단 말이지?’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나가야 한다.
<어떻게 나갈 거야?>
<제가 경비들의 시선을 돌려놓겠습니다. 잠을 자는 척하다가 밖에서 소란이 일면 그 사이 이곳을 빠져나가서 영산원 쪽으로 가십시오.>
영산원이라는 말에 우문소소는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영산원 쪽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그곳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본 적이 있었다. 자경산과 함께.
<알았어.>
<그럼 준비하십시오. 불이 꺼지면 시작하겠습니다.>
우문소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밖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는 시비를 향해 말했다.
“소항아.”
“예, 소공녀님.”
“나 지금 잘 거야. 피곤해서 누구도 만나기 싫으니 깨우지 마.”
“예, 알겠사옵니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소항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깨우지 않을 것이다.
우문소소는 등잔불을 껐다.
그러고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옷을 경장으로 갈아입었다.
‘무천, 나는 당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