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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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4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85화
흑월조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사마경을 가운데 두고 우뚝 서서 무기를 뽑았다.
숫자는 몇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기세는 둘러싼 백여 명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장천운은 사마경 앞에 서서 곡사를 노려보았다.
“이곳으로 오던 중에 공격을 받았지.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악착같이 소성주님을 죽이려고 하더군. 어쩌면 당신도 그들과 한 패인지 모르겠어.”
“무슨 헛소리냐, 이놈!”
스르릉.
현월을 빼든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소성주께 무례한 자는 목을 친다! 그건 당신이 부당주라 해도 마찬가지야!”
“이 미친놈이……!”
장천운의 냉엄한 기세에 곡사가 자신도 모르게 왼발을 뒤로 뺐다.
장로원 호위조장인 조구진이 소성주의 앞을 막았다가 목이 잘린 일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장천운이 검을 든 채 앞으로 죽 나아갔다.
“멈춰라!”
칼을 빼든 장씨 형제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장천운의 앞을 막았다.
쩌정!
장천운이 검을 좌우로 흔들자, 장씨 형제가 뒤로 튕겨나가서 정신없이 물러섰다.
단 일검으로 방해물을 멀찌감치 튕겨낸 장천운은 곧장 곡사를 공격했다.
그는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 없다. 충격은 클수록 좋은 법.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을 내는 게 최선이다.
곡사도 재빨리 칼을 빼들었다. 이를 악문 그는 체면 상 물러서지도 못하고 정면으로 맞섰다.
“이놈!”
검은 가볍고 칼은 무거워서 부딪치면 검이 불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사실이다.
장천운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정면으로 부딪치면 밀리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지만.
쾅!
고막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곡사의 몸이 옆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비틀거리며 칠팔 보를 물러선 그는 겨우 중심을 잡았다.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 칼을 든 그의 팔이 덜덜 떨렸다.
‘뭐 이런 놈이…….’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갑자기 장천운의 모습이 나타났다.
‘헉!’
기겁한 곡사는 안간힘을 다해서 칼을 휘두르며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한 발을 뒤로 뺌과 동시, 칼을 든 팔목이 쇠갈고리 같은 장천운의 손에 잡히고, 얼음처럼 차가운 감촉이 목에 닿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에워싼 자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소연추와 흑월조는 적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면사를 쓴 저 여인이 진짜 소성주라면?
그 생각을 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몸을 추스른 장씨 형제는 곡소의 목에 검이 닿아 있으니 달려들 생각조차 못했고.
“소성주, 목을 칠까요?”
무심한 장천운의 말에 곡사의 파리한 입술이 덜덜 떨렸다.
조구진의 목이 저 말 이후에 떨어졌다고 했던가?
‘이 곡사의 목숨이 오늘로 끝나는구나.’
하지만 아직은 저승사자와 면담할 때가 아닌 듯했다.
“아니. 그래도 신월당 부당주라면 구천성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적이 있을 테니 한번쯤은 용서해줘야지.”
사마경이 차갑게 말하며 곡사에게 다가갔다.
다섯 자 거리에 멈춰선 그녀가 곡사의 두 눈을 직시한 채 말했다.
“내가 못생겼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그, 그게…….”
“말해 봐요. 사실대로 말하면 오늘 일도 덮어줄 수 있으니까.”
곡사는 사마경의 눈을 본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소성주를 못생겼다고 한 그놈은 미친놈이 분명하다. 아니면 눈이 삐었든지.
그는 눈이 삔 그 미친놈을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그게…… 독고 공자가…….”
사마경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천운, 놓아줘.”
장천운은 곡사의 목에서 검을 떼고, 팔목을 잡은 왼손을 슬쩍 밀었다.
주르륵 밀려난 곡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팔목을 움켜쥐었다. 살이 으깨지고 뼈가 으스러진 듯 고통스러웠다.
“소성주께 예를 올리시오! 이제부터 무례를 범하는 자는 허락이 없더라도 목을 칠 것이오.”
장천운의 힘이 실린 목소리가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눈치만 보던 무사들의 허리가 그제야 구부러졌다.
“소성주를 뵈옵니다!”
“소성주를 뵙습니다!”
도도한 자세로 고개를 슬쩍 끄덕인 사마경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장천운과 소연추가 좌우에 서서 그녀를 호위했다.
구산과 저두심, 진구가 바로 뒤를 따라가고, 방호 일행과 사공명신, 두양양, 왕규는 약간 뒤로 처졌다.
사마경은 양 옆으로 가로수처럼 비켜선 무사들 사이를 걸어서 대연무장을 향해 나아갔다.
‘내가 돌아왔어요, 백부.’
***
와직!
단단한 자단목으로 만든 태사의 손잡이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부서졌다.
“사마경이 돌아왔단 말이지?”
“예, 주군.”
종리성학이 창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명을 어기고 죽이려 했던 소성주가 살아서 돌아왔다.
이제 곧 그에 대한 책임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소성주가 만약 그 사실을 털어놓기라도 하면 공손백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기랄, 일 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아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공손백은 그 일을 추궁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성학, 그 아이가 왜 원단을 이틀 남겨놓고 돌아왔을 거라 생각하느냐?”
“속하도 정확한 속셈은 모르겠습니다만, 성주 위에 오르기 위해서 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쎄다. 너는 그 아이가 사마가의 씨라는 것을 잊었나보구나.”
“사마경도 성주자리를 욕심내면 목숨이 달아날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는 아닙니다. 설마 스스로 무덤 파는 짓을 하겠습니까?”
“어쨌든 당장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특히 사마경이 너에게 죽을 뻔했던 이야기를 한다면 문제가 생각보다 커질지 모른다.”
종리성학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 일은 속하가 적당히 변명을 하겠습니다.”
그때 한쪽에 고요히 서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주군, 어차피 모든 사람의 눈이 집중되어 있어서 당장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마경으로부터 확고한 답을 얻어내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검은빛이 도는 장포를 걸친 쉰 살가량의 남자.
무사라기보다 유생처럼 보이는 그가 바로 공손백이 최근 들어서 중용하기 시작한 적운수사(積雲修士) 문인동이었다.
“답을 얻어낸다?”
“사마경이 정식으로 모든 것을 넘긴다면 모양새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흠, 그건 그렇지.”
“일단 그녀의 마음을 떠보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만약 엉뚱한 생각을 갖고 왔다면?”
말하던 내내 담담하던 문인동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지요.”
“시간이 너무 없어. 그렇다고 안에서 제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야.”
“사라졌다가 나타났으니, 다시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거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그거야 그렇지.”
만족한 듯 공손백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문인동이 고개를 돌려서 종리성학을 바라보았다.
“그 일은 종리 공자가 적격일 것 같습니다.”
종리성학이 재빨리 대답했다.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겠습니다, 주군.”
공손백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두 번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네가 누구보다 잘 알 거다. 철저히 처리해.”
“예, 주군.”
그때였다. 밖에서 경비무사가 외쳤다.
“대령주! 소성주께서 오셨습니다!”
전각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방문을 향해 집중되었다.
사마경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공손백을 향해 다가갔다.
장천운과 소연추가 좌우에서 그녀를 호위하며 한 걸음 뒤처진 채 따라갔다.
저벅, 저벅, 저벅…….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대전에 발자국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이나 다가가는 사람이나 모두가 굳은 표정이었다.
종리성학과 추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은 죄가 있는데 어찌 사마경과 마주설 수 있을까.
문인동과 사계 중 삼계가 사마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오, 소성주. 전보다 부쩍 아름다워지셨구려.”
문인동이 인사를 건넸다.
사마경도 문인동을 자주 본 터라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오랜만이에요, 장로님. 뵌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구려.”
문인동과 인사를 나눈 사마경은 공손백과 일 장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백부.”
“너무 늦게 왔구나. 좀 더 빨리 오지 않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공손백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죄송해요. 늦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원단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백부께서 걱정하시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서두를 걸 그랬어요.”
가시가 숨겨진 사마경 말에 공손백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하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든 잘 돌아왔다. 얼굴의 병도 나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구나.”
“운이 좋았어요. 강호에 나갔다가 뛰어난 의원을 만났거든요.”
“그래?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군.”
그러고는 장천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도 수고가 많았다.”
장천운은 포권을 취한 채 고개를 슬쩍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공손백은 싸늘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죽일 놈. 감히 내 일을 망치다니.’
당장 머리를 터트려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꾹 참았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주시하고 있다. 지금 놈을 죽이면 그러잖아도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자들이 완전히 등을 돌릴 터, 나극과 독고태만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럴 순 없지.’
분노를 속으로 삭인 공손백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아야, 네가 그 동안 겪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구나.”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말씀드리겠어요.”
“내일? 괜찮다면 지금 듣고 싶다만.”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말씀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이해해주세요.”
건조하게 느껴지는 사마경의 어조에 공손백도 더 재촉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다면 어쩔 수 없지.”
“질녀의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마경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반쯤 몸을 돌리던 그녀가 멈칫하더니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종리 공자와 추산이 보이지 않는군요. 어디 갔나요?”
“심부름을 시켜서 잠깐 나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와 이야기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다.”
“아니에요. 중요한 일도 아니니 내일 만나보겠어요.”
돌아선 사마경은 방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문 근처에 서 있던 무사가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핏빛 붉은 홍의를 입은 그는 마흔이 아직 안 된 듯했다.
사계 중 염하(炎夏).
그가 사마경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앞을 지나가는 사마경을 바라보는 그의 입술 끝이 미미하게 비틀리고, 눈초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지금 비웃는 거요?”
사마경의 뒤를 따라가던 장천운이 염하를 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