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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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70화
170화
‘개방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단 말이지?’
개방의 힘이 약해진 것은 오십 년 전의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개방은 남경에 총단을 둔 남개방과 개봉에 총단을 둔 북개방으로 갈라져서 대판 싸웠다.
그런데 남개방이 힘에서 밀리자 마도의 힘을 끌어들였다.
그러다 결국 양패구상의 결과가 나왔고, 개방의 이름은 강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상당수 제자들이 남아 있었지만, 세력을 이루지 못한 채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들이 다시 강호활동을 재개했다면 그 또한 상당한 변수였다.
혁무천은 알면서도 모른 척 길을 걸었다. 뒤는 아예 돌아보지도 않았다.
결국 개방의 제자가 먼저 손을 들었다.
개봉성 외곽 마을을 벗어나기 전 한 사람이 빠르게 혁무천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나이는 이삼십 대쯤?
머리는 까치집 저리가라 할 만큼 엉망이었다. 옷은 얼마나 많은 천 조각을 이어 붙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누더기였다.
손에는 나무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손때가 시커멓게 묻어서 반질반질했다.
“걷지만 말고 적선 좀 하슈.”
동대안이 나서려 하자, 혁무천이 손을 들어서 저었다.
눈치 빠른 동대안이 뭔가 있다는 걸 알고 뒤로 물러섰다.
혁무천은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거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당신에게 공짜로 뭘 줘야 하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는 게 인지상정 아뇨?”
“개방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군. 안 쓰던 문자까지 쓰는 거 보니.”
거지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달라졌다.
강호에서 개방은 이제 과거의 향수일 뿐이었다.
그런데 대놓고 개방 운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알았나?”
“사결 제자면 가볍지 않은 위치일 텐데, 왜 우리를 따라온 거지?”
“끄응. 모르는 게 없구만.”
거지는 앓는 소리를 내더니 혁무천을 흘겨보았다.
“뭐, 그건 그렇고…… 비룡장의 비룡단주가 여긴 어쩐 일이지?”
“그야 볼 일이 있으니 왔지.”
“민가장과는 어떤 관계인가?”
“그걸 맨 입으로 가르쳐줄 수 있나?”
“민가장에 들어간 마차에는 누가 탔지? 혹시… 황보가의 사람 아닌가?”
거지가 말하고는 혁무천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혁무천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무심한 표정으로 거지를 바라보았다.
“겨우 일어서려는 개방을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나?”
거지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얕보는 듯한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너무 그러지 말게. 어차피 가진 것도 없는 우리가 누굴 겁내겠나?”
“민가장 일은 모른 척해. 그게 만수무강에 좋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개방에도 그만한 대가가 돌아올 거야.”
그 말에 거지의 눈빛이 빛났다.
“호오, 적선이라도 한판 크게 하겠다는 건가?”
“적선을 한다기보다 서로 주고받자는 거지.”
“흐음, 그 말은 마음에 드네.”
“방주에게 가서 말해. 어차피 결정은 방주가 내려야 할 테니까.”
“그 정도인가?”
“팔대마세가 관여되어 있는 일을 그대가 결정내릴 수 있나?”
거지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워워, 알았네. 방주께 말하지.”
“수룡방에 갔다 올 동안 결정을 내리는 게 좋겠어. 사흘쯤 후에 찾아갈 테니, 그동안 정주의 상권에 대해서 조사 좀 해줘. 그리고 화산파에 대한 정보도.”
“화산파?”
“정주에 있는 자들이 화산파를 노릴 거다.”
거지의 눈이 커졌다.
“마도 놈들이 화산파를 노린다고?”
“어쩌면 화산파를 친 후 종남파까지도 욕심낼지 몰라.”
“사실인가?”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아아, 믿기 싫다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소림사를 친 놈들이야. 화산을 치지 못할 이유도 없지.”
“하긴…….”
“정주 상권에 대한 조사에 대해서는 대가를 따로 계산하지.”
“조사야 어려울 것 없는데…….”
“황보세가와 연관된 상인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해봐.”
거지, 소궁단의 눈빛이 반짝였다.
“흠, 황보세가가 굴리던 상인들 말이지?”
“맞아.”
“좋아, 대가만 적절하면 조사해보겠어. 아! 그런데 수룡방에는 무슨 일로 가는가?”
“정리 좀 하려고. 그럼 나중에 보자고.”
혁무천은 할 말만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소궁단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멀어지는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수룡방을 정리하겠다고? 저 인원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씨바, 내가 진짜 염라사자를 건드릴 뻔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
투덜거리던 그가 뭔가를 떠올리고, 급히 혁무천의 뒤통수에 전음을 보냈다.
<이봐! 나는 소궁개네! 개봉에 오면 관운묘로 와!>
잘 나갈 것 같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훌륭한(?) 거지가 되는 덕목 중 하나다.
***
개봉에서 황하의 물길을 따라 사백 리를 내려가면 동평호라는 호수가 나온다.
입구는 백여 장 넓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폭이 이십 리나 되는 커다란 호수였다.
그 동평호의 중앙에 커다란 섬이 있는데, 그곳에 바로 수룡방의 근거지가 있었다.
배를 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곳. 사람들은 그곳을 해중도(海中島)라고 불렀다.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오후. 해중도의 선착장에 몇 사람이 배에서 내렸다.
혁무천 일행이었다.
선착장에 정박된 배는 수십 척이나 되었다.
선착장 근처에는 몇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객잔도 있었고, 기루도 있었다.
그리고 선착장 끝자락의 완만한 구릉 아래에 수십 채로 이루어진 장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수룡방의 총단이었다.
혁무천 일행은 길게 이어진 선착장을 따라 장원으로 향했다.
물건을 옮기던 자들,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은 장대산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혁무천을 감탄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도 있었으며, 동대안을 보며 웃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선착장을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였다. 무사 십여 명이 앞에서 빠르게 걸어왔다.
그들은 처음에만 해도 혁무천 일행을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선두에서 걸어가던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이 멈칫하더니 방향을 틀어서 혁무천 일행에게 다가왔다.
턱에 가득한 수염,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자였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오?”
그자의 질문에 혁무천이 대답했다.
“비룡장에서 왔소.”
“비룡장?”
중년인의 눈이 커졌다.
비룡장이 비록 수룡방과 함께 구룡상단 중 하나라 하나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요즘은 천룡방과 비룡장 간의 다툼 때문에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까칠하게 나왔다.
“비룡장 사람들이 여긴 무슨 일이오?”
“수룡방의 방주님을 만나러 왔소.”
“방주님을?”
“비룡단을 맡고 있는 무천이라 하오. 방주님을 뵙고 긴히 상의할 일이 있소만.”
순간, 중년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비룡단주 무천.
최근 들어서 그 이름을 수십 번은 들은 듯했다.
천룡방을 곤란하게 만든 주역이 무천이라 했다.
“겁이 없군.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오지 못할 이유라도 있소?”
“잘 아실 텐데?”
“글쎄. 수룡방이 구룡상단의 일원이길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오지 못할 이유도 없지.”
중년인은 이마를 찌푸리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혁무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안내해줄 것이 아니라면 비켜주시오.”
고개를 돌린 중년인이 수하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끼리 가라. 나는 이분들을 방주께 안내해드려야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웃으며 잡담이나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찾아온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수 없었다.
“따라 오시오.”
수룡방의 주 전각인 수왕전.
뜻밖의 방문객을 맞이한 수왕전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룡방과 다투고 있는 비룡장의 비룡단주라는 자가 수하 몇 명만 대동하고서 찾아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일단 만남을 허락했지만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서호당주 양규상이 무천이란 자의 일행들을 대동하고서 들어오고 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상석에 앉아 있던 수룡귀(水龍鬼) 남교청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까지 다가온 양규상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서호당 양규상이 방주께 아룁니다. 비룡장 비룡단주 무천을 데려왔습니다.”
남교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네.”
그 말이 떨어지자 양규상이 일어나서 한쪽으로 가서 시립했다. 그의 옆에는 십여 명에 달하는 수룡방 간부들이 서 있었다.
남교청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그제야 혁무천이 포권을 취했다.
“비룡장의 무천이 방주를 뵈오.”
“자네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방주께 제안할 것이 있어서 왔지요.”
“흠, 제안이라…….”
그때 한쪽에 서 있던 수룡방 간부들 중에서 노기가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건방진 놈! 비룡장의 단주 따위가 감히 방주께 제안 운운하다니.”
남교청은 그 말을 듣고도 미소를 지었다.
“이해하게. 원래 물에서 사는 사람들은 입이 좀 거칠다네.”
혁무천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물에서 살다보니 입이 불어터지나 본데, 제가 이해해야지요.”
“뭐야? 네놈이 어디서!”
조금 전에 노성을 질렀던 자가 다시 소리쳤다.
“우리 비룡장은 장주와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면 듣고만 있는데, 수룡방은 끼어드는 걸 즐기는가 보군요.”
남교청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옆을 향해 손을 젓고는 혁무천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말장난 하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어디 본론을 이야기해보게.”
혁무천은 한 점 표정 변화 없이 그의 눈빛을 받아냈다.
“저도 말 돌리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 묻지요. 구룡상단과 계속 함께 가실 건지, 천룡방과 함께 하실 건지, 방주의 의향을 알고 싶습니다만.”
칼날처럼 위로 뻗은 남교청의 눈썹 끝이 꿈틀하며 더 위로 솟구쳤다.
“천룡방도 구룡상단의 일원일세.”
“제 말 뜻을 모르시진 않을 겁니다만.”
“우리 수룡방은 한번 맺은 인연을 함부로 버리지 않네.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등을 돌린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해 주겠나?”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토록 신의를 중시하신다면 이번 구룡대총회에서 결정이 나면 그 결정에 따르신다고 봐야겠군요.”
“결정이 올바르다면 따르지 못할 것도 없지.”
“천룡방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천룡방에 대해 징계를 한다 해도 말이지요?”
끝내 남교청의 눈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쏟아졌다.
“수장의 위치에 있다 보면 약간의 잘잘못 정도는 발생할 수 있네. 그 정도로 천룡방을 탓한다면 구룡대총회에 문제가 있는 거지.”
“흐음, 그러니까, 구룡대총회에서 결정이 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르지 않겠다, 그 정도로 알면 되겠습니까?”
“구룡상단이 천하이대상단 중 하나가 된 것은 천룡방이 있었기 때문이네. 실컷 키워 놓으니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라면 그게 어찌 옳은 일이겠나?”
“천룡방의 공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지요.”
“훗, 천룡방에 책임을 묻겠다? 누가? 비룡장이? 과연 비룡장에 그만한 힘이 있을까?”
남교청이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한쪽에서 듣고 있던 수룡방 간부들 중에서도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룡장을 눌렀다고 기고만장했군.”
“방주님도 참,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놈하고 무슨 말이 저리 많으셔?”
“방주, 저놈들 목을 모조리 잘라서 백리궁에게 보내는 게 어떻겠소?”
온갖 자극적인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