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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5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6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9화

159화

 

 

예경설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미친 놈! 제 놈이 그런다고 내가 허락할 줄 알았나?”

혈마곡주 홍제공의 아들인 홍승은 일 년 전 예경설을 한번 보더니 줄기차게 매파를 보냈다.

그러나 홍승의 지저분한 행적을 알고 있던 예추문은 혈마곡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혈마곡으로선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예가장의 힘 역시 만만치 않았다. 구룡상단과 천화상단에 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호위대를 갖고 있었다.

더구나 예가장이 곡물의 공급을 끊어버리면 혈마곡으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나도 참고 매파만 계속 보냈는데, 홍승이 혈기를 참지 못하고 강제로 딸을 납치하려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예추문이 뒤늦게 혁무천 일행을 보고 물었다.

“저희들을 구해주신 분들입니다. 비룡장 분들이신데…….”

예경설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예추문이 백리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오, 비룡장의 백리 공자였구려. 내 딸을 구해주었다니, 뭐라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먼.”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갑시다.”

백리양이 혁무천을 소개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예추문이 몸을 돌려 안으로 향했다.

백리양은 머쓱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추문 부녀와 백리양, 혁무천, 동대안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따뜻한 차가 놓이자 예추문이 물었다.

“그래, 바라시는 거라도 있으신가? 내 딸을 구해주었는데 뭘 못해주겠나? 뭐든 말씀해보시게.”

백리양이 차로 입을 적신 후 말했다.

“저희 비룡장이 곡물 쪽에 취약합니다. 앞으로 필요할 때 예가장의 힘을 좀 빌었으면 싶습니다.”

“허허허, 그거야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니 마다할 것도 없지. 한데…… 구룡상단의 곡물은 금룡장에서 주로 취급하지 않던가?”

“지금까지는 그랬지요. 그런데 저희가 직접 곡물을 거래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해서 예가장이 도와준다면 굳이 물량을 다른 곳에 넘길 것 없이 저희가 일괄 처리하려고 합니다.”

“흐으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예추문도 구룡상단에 내분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비룡장과 금룡장의 다툼에 대한 정보도 이미 세세한 부분까지 입수한 터였다.

“그리 하시겠다면 우리가 힘껏 돕겠네.”

잘하면 단단한 금룡장의 상권을 치고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니 예추문으로선 비룡장에서 내민 손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감사합니다, 장주.”

백리양도 만족했다.

이로써 금룡장이 협조하지 않아도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길을 마련한 셈이었다.

“그런데…… 백리 공자는 지금 나이가 어찌 되시는가?”

“스물여섯입니다.”

“그래? 허허허, 좋은 나이군. 그런데 왜 여태 혼인을 하지 않으셨는가?”

갑작스런 예추문의 질문에 백리양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저래 아버님을 돕다보니 좋은 소저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런, 저런…….”

예추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혈마곡주의 아들 홍승이 닭이라면 백리양은 봉황이었다.

마침 딸아이도 얼굴을 붉히며 은근슬쩍 백리양을 훔쳐보는 걸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언제 백리 장주를 한번 찾아뵈어야겠구먼.”

“찾아오신다면 귀빈으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허허허허, 말이라도 고맙네.”

작은 눈을 굴리며 예추문과 백리양을 바라보던 동대안은 속이 느글거려서 차를 단숨에 마셨다.

‘능구렁이들이 따로 없군. 그냥 좋으면 좋다, 너 내 사위해라! 당신 딸 나 주쇼! 하면 될 것을. 하여간… 누가 장사꾼들 아니라고 할까 봐…….’

그때 혁무천이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예추문의 시선이 그제야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그라 해서 혁무천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생김새부터 눈길을 끌었고, 소장주인 백리양이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십 대에 불과했는데, 자신조차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게다가 새롭게 비룡장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잡은 비룡단의 단주가 바로 그였다.

“말씀해 보시게.”

“최근 곡물이 예상치 못하게 대량으로 거래된 일에 대해 들으신 것 없습니까?”

“흐음, 곡물이 대량으로 거래된 일이라…….”

있었다. 자신도 최근에서야 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조사를 명했다.

“많은 물량이 갑작스럽게 이동했다면, 곡물의 움직임에 민감한 예가장에서 모를 리 없을 겁니다만.”

혁무천이 그리 말하자, 예추문도 더 숨기지 못했다.

“맞아, 조금 이상한 면이 있긴 하네. 족히 일만 명이 한 달은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을 한 번에 사들인 곳이 있거든.”

“철혈마련과 관련 있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네. 철혈마련의 양천지부에서 사들였네.”

예추문이 순순히 대답하자, 백리양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혹시……?”

혁무천은 백리양이 뭘 말하려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이 움직인 거 같다.”

철혈마련이 움직였다면 곧 강호에 폭풍이 불어댈 것이다. 일회성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뒤집어 놓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폭풍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다.

문득 와호산장이 떠올랐다.

철혈마련이 천기회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 해도 바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을 위협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천기회는 아직 강호에 생소하다. 강호가 알지도 못하는 자들을 쳐봐야 이득 될 게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우선적으로 노릴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정파의 핵심적인 곳을 무너뜨리려 하겠지. 누구나 잘 아는 곳을.’

그런데 예추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건 어제 들어온 소식이네만…… 철혈마련과 사도맹, 귀천교 무사 일천여 명이 역성 근처의 장원에 집결했다고 하네. 아무래도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혁무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성이라면……?’

팔대마세 중 셋이 모였다.

술이나 마시고 놀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정파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

그들이 나아갈 방향은?

“소림인가?”

백리양의 눈이 커졌다.

“그들이 소림을 공격할 거란 말씀입니까?”

“우문척은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을 거다. 그렇다면 소림 정도는 무너뜨려야 세상이 놀라지 않겠나?”

“하지만 소림을 건드리면 황궁이 분노할 텐데…….”

“우문척이 황궁을 두려워했다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듣고 있던 예추문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한마디 나섰다.

“제아무리 팔대마세라 해도 황궁을 무시할 수는 없네.”

“황궁이 나설 시간도 없이 무너뜨리면 되오. 그럼 황궁도 늙은 호랑이의 죽음에 분노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젊은 사자와 협상하려 할 거요.”

“으으음…….”

예추문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혁무천의 판단에 침음을 흘렸다. 그가 생각해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백리양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세상이 뒤집어지겠군요.”

“당연히. 우문척이 그러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안 되면 자신이 직접 세상을 뒤집어 놓으려 할 거다.”

분위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때 동대안이 말했다.

“하지만 그놈도 제 속을 들여다보는 인간이 있다는 건 모르고 있을 거네.”

“알고 있을 거요.”

“알고 있다고?”

“아마 그래서 더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거요.”

“하긴… 그 정도 미친놈이니 황궁도 무시하고 소림을 치려는 거겠지.”

듣고 있던 예추문은 아연한 마음이었다.

구룡상단 중 하나라 하나 어찌 보면 일개 상인이라 할 수도 있는 비룡장이다. 저자는 그곳의 일개 간부일 뿐이고.

그런 자가 팔대마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천하 운운하고 있지 않은가.

그저 상인들끼리의 잡담 수준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보아하니 그 수준을 넘어 끼어들기라도 하려는 듯했다.

‘허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과신하면 안 좋은 법이거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그의 눈에는 혁무천이 젊은 혈기만 믿고 불 속에 뛰어들려는 부나방처럼 보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말이 팔대마세의 귀에 들어갔을 때다.

비룡장 정도는 하루아침에 혈해로 만들 수 있는 곳이 팔대마세 아닌가 말이다.

그는 상계의 대선배로서 혈기가 펄펄 끓어 넘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안 해줄 수가 없었다.

“젊은 친구들이라 역시 생각하는 게 다르군. 하지만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지. 괜한 일에는 휘말리지 않는 게 좋다네.”

혁무천은 그의 말뜻을 짐작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장주, 만약에 말입니다, 상인들의 힘이 강해져서 저들과 대등한 관계로 거래할 수 있게 된다면, 힘을 보탤 의향은 있으십니까?”

“무슨……?”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상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누가 그러고 싶겠나? 하지만 그들은 강하고, 우린 약한 게 현실이네. 힘이 약하면 어쩔 수 없는 게 세상……. 설마 자네……?”

뒤늦게 혁무천의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달은 예추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대를 하나씩 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한 묶음을 꺾는 것은 힘이 센 자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예추문의 눈빛이 흔들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어찌 혁무천의 말뜻을 모를까.

하지만 생각이 옳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네. 하지만 그 일을 실제 행하려 하면… 많은 피가 흐를 거네.”

“힘들이지 않고 튼튼한 성벽을 쌓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 답을 달라는 것도 아니니 한번 생각해 보시고, 그럴 마음이 생기면 그때 결정하십시오.”

 

예추문과의 만남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이 났다.

예추문은 혁무천 일행에게 하룻밤 쉬어가라고 했다.

혁무천도 어차피 어스름이 밀려드는 시간인지라 예추문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날 밤, 예추문은 자정이 될 때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차를 열 잔이나 마셨다.

‘허어, 그 친구…… 어쩌면 그놈과 그리 똑같은 말을 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나.’

그에게는 의형제처럼 지낸 동생이 한 사람 있었다.

젊은 시절 자신과 함께 학문을 공부했던 사이인데, 사소한 의견 충돌로 인해 멀어지고 말았다.

그 동생은 불의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과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고, 자신은 가족의 목숨까지 걸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가족의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 동생은 그 후 학문만큼이나 좋아하던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히겠다며 떠났고, 자신은 가문을 이어받아서 상인이 되었다.

그때 그 동생이 떠나면서 했던 말이 바로 오늘 들은 말과 같았다.

 

“작은 가지 하나는 쉽게 꺾어지지만, 그 가지를 열 개, 백 개 묶으면 아무리 장사라 해도 쉬이 꺾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찌 그 뜻을 모를까. 그러나 당시에 자신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가족의 목숨을 걸 용기가 없었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신은 협의지사로 이름을 날리기보다 평범한 남편, 다정한 아버지로서 살고 싶을 뿐이었다.

다만…… 그때는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되었던 그 일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 세월이 지나니 나도 슬슬 미쳐가나 보군.’

한편으로는 그때 떠난 의제가 보고 싶었다.

‘명산, 너는 네 뜻을 이루었느냐?’

 

***

 

혁무천 일행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예가장을 나섰다.

예추문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예경설은 성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백리양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동대안이 힐끔거리며 구시렁거렸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양을 출발한 혁무천 일행은 석양이 질 무렵 백하를 건너서 남양에 도착했다.

하지만 곧장 금룡장에 가지 않고 성 외곽에 있는 객잔에 방을 잡았다.

아직 금룡장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도착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혁무천은 바로 금룡장에 갈 생각이 없었다. 급한 것은 그들이지 자신들이 아니었다.

어떤 거래든 급하게 서두르는 자가 손해를 보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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