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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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7화
157화
백리궁은 혁무천의 보고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
취룡원 뿐만 아니라 풍혼문까지 접수했다고 한다.
도대체 앞에 있는 이 친구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양이도 뛰어나지만, 이 사람은 아예 천외천이로구나.’
하지만 그의 마음과 달리 백리양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 됐습니다. 풍혼문은 운송에 장점이 있으니 대규모 물량을 운송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점은 백리궁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덕분에 한 시름 덜었군. 이제 물량을 확보하는 일만 신경 쓰면 될 것 같네.”
“도룡가 쪽에서는 답신이 왔습니까?”
혁무천이 묻자 백리궁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하는군.”
아직 구요 노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구요 노인의 답장이 오면 좀 더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현재 세 곳이 우리 쪽 손을 들고, 세 곳이 천룡방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군.’
팽팽했다.
결국 도룡가의 결정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뜻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혁무천이 백리궁을 보며 말했다.
“금룡장을 건드려 보지요.”
“무슨 말인가?”
백리궁은 물론 백리양과 백리혜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금룡장은 이번 일로 만마성의 나머지 물량마저 빼앗길 처지에 몰렸습니다. 천룡방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량을 내주면 엄청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지요.”
“으음, 그건 그렇지.”
그때 백리혜가 반달처럼 휘어진 아미를 찌푸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설마 그 물량을 보전해주고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건가요?”
“비슷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손을 들어달라고 할 것도 없어. 그들은 중립만 지키면 돼.”
그 말에 백리궁과 백리양의 눈이 살짝 커졌다.
금룡장이 중립을 지키면 판세가 묘하게 흐른다.
비룡장 쪽이 넷, 천룡장 쪽이 셋, 중립이 둘.
결국 대총회의 판결에서 비룡장이 이긴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천룡방 때문에?”
“물론이죠. 그들은 천룡방과 많은 사업이 얽혀 있어요. 그리고 천룡방과 마룡성의 그늘이 없으면 당장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마룡성은 천룡방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죠.”
“사업이 얽혀 있는 거야 정리하면 되고, 마룡성의 그늘은 우리가 대체하면 돼.”
이미 혁무천의 능력을 경험해본 백리혜였다.
전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 일조차 그의 말대로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좋아요,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그들이 막판에 뒤집어 버리면 손도 못 써보고 당할 수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있나요?”
그녀가 제법 예리하고 파고들었지만, 혁무천도 나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 대가로 이창에 대한 권리를 먼저 얻어내면 손해라고 할 것도 없어.”
“이창이요?”
“그래, 이창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
금룡장은 남양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영향력은 이창까지 미쳤다.
그 바람에 구룡상단의 다른 상가들은 금룡장의 허락 없이 이창에서 활동할 수가 없었다.
“우리 손을 들어준다는 약속은 둘 만이 아는 비밀이니 뒤집을 수 있지만, 상권에 대한 약속은 뒤집을 수 없을 거다. 그에 대한 증서를 받을 거니까.”
“이창의 상권은 그리 크지 않아요. 그만한 희생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나요?”
이창은 관의 역이 있는 역성(驛城)과 붙어 있다시피 한 곳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황군이 근교에 있는 역성 대신 상권이 발달해 있긴 하나, 규모가 그리 크다고는 볼 수 없어서 큰 성에 비하면 상권의 크기가 작았다.
더구나 이창의 상권 전체도 아니고, 단순히 활동할 수 있는 권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백리궁과 백리양도 백리혜와 같은 생각이어서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비록 오 할이지만, 만마성의 물품 납품권이 이창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에 비하면 훨씬 컸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비룡장의 권역이 한구와 한양, 무창 일대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무천은 그들과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지금의 비룡장에 만족하려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천하로 나가려면 이창이 꼭 필요해.”
천하!
그 단어 하나에 백리혜도 입을 다물었다.
백리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고, 백리양은 얼굴이 붉어졌다.
“어차피 금룡장이 이창에 대한 권리를 내놓지 않으려 하면, 강제로라도 얻어낼 생각이다.”
“후우우.”
백리혜는 결국 탄식하듯 숨을 뱉어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이상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범위였다.
“결정은 장주께서 하시지요.”
혁무천은 결정을 백리궁에게 넘겼다.
어차피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장주인 백리궁이었다.
설령 그가 반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었다.
백리궁은 일단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고개를 들었다.
눈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광채가 번뜩였다.
“해보세. 이창에 관한 일은 자네에게 전권을 주겠네.”
그날 밤, 전서구 한 마리가 비룡장의 하늘로 날아올라서 남양을 향해 북상했다.
***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한 여름.
강호에 뜨거운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철혈마련과 귀천교와 사도맹에서 대규모 무사들이 출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강호의 모든 세력이 바짝 긴장했다.
특히 정도 문파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정은맹 역시 정보망을 총 동원해 마도세력의 이동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최근 철혈마련과 만마성의 공격을 받았던 그들은 팔대마세의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호가 폭풍전야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을 때, 혁무천은 비룡장에서 시시각각 전해지는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시작이군.”
혁무천이 무심하게 한마디 내뱉자,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한 위협만으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그러겠지. 우문척이 검을 뽑은 이상 흉내만 내고 물러서진 않을 거다.”
“대형께서는 그가 어디까지 갈 거라고 보십니까?”
혁무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일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천하를 얻고자 할 거다.”
한쪽에서 손가락으로 콧구멍 크기를 재고 있던 동대안이 움찔했다.
그런데 뭐가 잘못 되었는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제길…….”
곧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쯔쯔쯔…….”
송비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때 밖에서 혁무천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단주, 장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금룡장에서 답신이 왔다 합니다.”
혁무천은 눈빛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량, 따라와라.”
혁무천이 목량과 함께 백리궁의 거처로 가자, 백리양과 백리혜, 비응당주 여득화가 먼저 모여 있었다.
혁무천과 목량이 의자에 앉자, 백리궁이 서찰을 내밀었다.
“읽어보게. 남양에서 만나자는군.”
혁무천은 서찰을 들고 읽어보았다.
절반쯤 읽었을 때 조소가 떠올랐다.
[……장주께서 잘못을 깨닫고 그리 나오시니 본 금룡장 역시 따를 의사가……]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이 역력했다.
하긴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그들 아닌가. 비룡장에게 끌려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백리궁이 말한 내용은 뒷부분에 적혀 있었다.
[……하여 남양에서 만나 새롭게 우의를 다지고 양가의 발전을 위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혁무천이 서찰을 다 읽고 내려놓자, 백리궁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위험하다면 가지 않아도 되네.”
금룡장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 모르지 않았다.
“아닙니다.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요. 대신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조용히 미소를 짓는 혁무천을 보며 백리궁은 몸에 한기가 드는 듯했다.
‘전 장주, 아무래도 그대의 운이 다한 것 같구려.’
그때 백리양이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백리궁이 흠칫하며 물었다.
“너도?”
“비룡장의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 단주의 어깨에만 짐을 지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허락해주십시오, 아버님.”
금룡장은 사활을 걸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천룡방에 이미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남양에 간다는 것은 전장에서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괜찮겠느냐?”
“저는 비룡장의 소주인입니다. 목숨이 아까워 뒤로 빠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으음, 좋다. 함께 가라. 조심하고.”
마침내 백리궁의 허락이 떨어지자 백리양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남양으로 가는 사람은 모두 아홉 명으로 결정되었다.
혁무천과 백리양, 그리고 동대안과 장평, 강탁, 목량, 철호, 장대산, 영추문까지.
혁무천은 남양으로 가기 전 사당 당주들을 불러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비룡장을 나섰다.
***
역성에서 북쪽으로 삼십 리가량 가면 제법 넓은 송림이 나오는데, 그 안쪽에 큰 장원이 있었다.
반달이 구름에 가린 어느 날 밤, 장원의 정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가 무거운 기운을 밀어대며 안으로 들어섰다.
우문척은 그들의 선두에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사공곽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짧은 시간에 제법 컸군.’
넉 달 만에 보는 사공곽은 전과 비교했을 때 눈빛부터 달랐다. 아마도 마룡선발대회가 그에게 충격을 준 듯했다.
사오십 대 중년인 셋이 사공곽과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그들을 본 우문척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세 사람은 사도맹의 장로들로 추혼신마 영고와 음산일귀 남적후, 혈사장 곡원당이었다.
사도맹에서 장로 셋을 딸려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일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우리 철혈마련과 만마성에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우문척이 사도맹의 속셈을 유추하는 사이, 사공곽이 그에게로 다가오며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우문 형.”
“산서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있는데 한두 시진 못 기다리겠나?”
“하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공곽이 포권을 취해서 고마움을 표하고 우문척의 옆을 바라보았다.
빼빼 마른 몸에 키가 큰 장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를 본 사공곽의 눈에서 묘한 광채가 번뜩였다.
‘귀천교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악사등이 나섰을 줄은 몰랐군.’
악사등은 귀천교 교주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첫째인 악사광과 달리 강호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았다.
그나마 사공곽이 그를 알아본 것도 이 년 전 마룡선발대회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동생인 사공미미 때문이었다.
사공미미가 작은 목소리로 “어우, 재수 없어. 무슨 남자가 귀신처럼 아무 말도 없어?” 라고 했는데 그 말을 악사등이 들은 것이다.
그때 악사등이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서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었다.
어쨌든 당분간 함께 지내야 할 사이, 사공곽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 년 만에 뵙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악 형?”
악사등은 말없이 포권을 취하고 고개만 슬쩍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