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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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1화
151화
기다렸다는 듯, 혁무천 옆에 서 있던 동대안 등이 나서며 앞을 막아섰다.
천룡방 무사들은 백리궁에게 접근도 못해보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백주원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군. 가세!”
백주원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천룡방의 고수들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특히 백주원은 혁무천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혁무천은 자신을 향해 날아들며 쌍장을 내미는 백주원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밟을 때는 철저하고 확실하게 밟아줘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엉뚱한 생각을 품지 못하는 법이다.
혁무천은 이 장 앞까지 다가온 백주원을 보며 팔성 공력이 실린 쌍장을 내쳤다.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이 이지러진다 싶은 순간,
쾅!
굉음과 함께 가공할 기운이 폭사하듯 퍼져 나갔다.
뒤로 이 장이나 튕겨져서 비틀거리는 백주원의 얼굴은 핏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울컥.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피비린내.
백주원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저 젊은 놈이 누군데 자신이 단 일장을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한단 말인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백리궁을 공격하기 위해 나선 천룡방의 절정고수들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겨우 삼사 초식을 겨루었을 뿐인데도 두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나머지 세 사람도 패색이 짙었다.
‘이건……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되었어! 저들에 대한 걸 먼저 파악했어야 하거늘……!’
그때 혁무천이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겁에 질려 있는 모용완을 보며 말했다.
“아직도 천룡방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무심한 어조로 말을 내뱉은 그가 주욱 미끄러져 가며 모용완을 향해 좌수를 뻗었다.
이를 악다문 모용완은 뒤로 물러서면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쾅!
폭음과 함께 모용완의 몸뚱이가 뒤로 훌훌 날아간 뒤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 직후, 백리궁 옆에 서 있던 백리양이 공력을 끌어올리고 소리쳤다.
“모두 멈추시오!”
백주원과 천룡방의 절정고수들이 낭패한 꼴을 당하면서 천룡방 무사들의 사기가 바닥에 처박힌 상태였다.
비룡장 무사들과 접전을 벌이던 그들은 백리양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뒤흔들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비룡장 무사들도 공격을 멈추었다. 잔뜩 긴장한 채 천룡방 무사들을 노려보는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비록 우세를 점하진 못했지만 밀리지도 않았다. 천룡방의 정예무사들을 상대하면서 말이다.
싸움이 멈추자 백리양은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천룡방의 무사 오십여 명이 쓰러져 있었다.
비룡장의 무사들 역시 비슷한 숫자가 부상을 당하거나 죽은 상태. 겉으로 보면 비슷한 결과였다.
그러나 상대는 천룡방의 정예 중 정예라는 천호전 무사들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절정고수만 해도 열 명 가까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룡장이 천룡방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거나 다름없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몸을 돌린 그는 백리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 말씀하십시오.”
백리궁이 고개를 느릿하니 끄덕이고 백주원을 바라보았다.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는 것은 어느 모로 생각해도 비룡장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을 시켜 싸움을 멈추게 했다.
이제는 적절한 이득을 얻어내며 마무리를 짓는 일만 남았다. 마무리를 잘 짓는 것 또한 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백 전주, 천룡방은 검을 동료의 가슴에 들이댔소. 그러므로 오늘 이후, 비룡방은 천룡방을 구룡상단의 총단주로 인정치 않을 것이오. 그리고 한 달 후 이번 일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구룡대총회를 소집할 것이니, 방주께 그리 전해주시오.”
백주원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대신 비틀거리며 일어선 모용완이 악을 썼다.
“아버님께서는 오늘 일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다! 당신들은 실수한 거야!”
그에 대해서는 혁무천이 답해주었다.
“누가 실수했는지는 곧 알게 될 거다. 그런데 만마성과 물품 공급을 계약한 우릴 공격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르나 보군.”
“무, 무슨 개소리를…….”
“더구나 그 물품이 전쟁물자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천화광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입을 꾹 다문 채 진기를 다스리고 있던 백주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비룡장의 기를 꺾을 생각만 했지 거기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물품이야 모자라면 천룡방에서 공급하면 될 테니까.
한편으로는 그 점을 바라고 비룡장을 치려 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전쟁물자라면?
더구나 저놈은 만마공자 천화광을 친구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경악할 말은 그 다음에 나왔다.
“만마존께서 내게 직접 부탁했는데, 물품이 모자라기라도 하면 우린 천룡방 핑계를 댈 수밖에 없어.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말도록.”
뭐야, 저놈?
백주원은 ‘만마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말투를 보아하니 잘 아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는 답답함을 풀기 위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 만마존과 어떤 사인데…….”
혁무천의 무심한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친구의 아버지.”
“…….”
“천룡방은 이번 일을 어떻게 해야 가장 조용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고민해야 할 거요.”
***
천룡방 무사들은 어깨가 축 처져서 의기소침한 상태로 비룡장을 빠져나갔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비룡장에서 처리해주기로 했다. 비록 검을 맞대긴 했지만 철천지원수는 아니니까.
물론 치료비와 시신 처리비는 따로 대가를 받을 작정이었다.
비룡장 무사들이 부상자와 시신을 처리하는 동안 내전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백리궁과 백리양, 백리혜, 감찰당주 교승, 오대 행수 중 셋. 그리고 혁무천과 목량, 송비가 참석했다.
혁무천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거운 표정이었다.
잡다한 이야기가 잠깐 오간 다음 백리궁이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무 단주, 천룡방이 정말 조용히 있을 거라고 보는가?”
“떠들어봐야 망신만 당할 테니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흐음, 하긴…….”
백리궁은 혁무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혁무천을 보며 물었다.
“피해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받는 것이 좋겠나?”
“만마성과의 거래, 나머지 오 할도 우리가 접수하지요.”
망설임 없는 혁무천의 말에 백리궁은 물론 백리양과 백리혜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행수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누구보다 상단의 운영과 거래에 대해 잘 아는 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백리혜가 말했다.
“만마성과의 거래는 금룡장이 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물량을 빼앗겨서 잔뜩 성이 나 있는데, 나머지 물량을 넘겨주겠어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라며 소리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목량을 바라보았다.
“목량,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목량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정도는 천룡방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금룡방도 천룡방의 말을 거역하지 못할 거고요.”
이번에는 백리양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설령 그리 된다 해도, 우리 능력으로는 그 물량을 모두 감당할 수 없습니다. 특히 몇몇 물품은 생산되는 곳이 많지 않아서 미리 확보해 놓아야만 하는 것들이라…….”
“구하기 어려운 물품은 금룡장에서 사들이면 됩니다.”
“예?”
“금룡장은 만마성과의 거래를 생각해서 물량을 확보해 놓았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 할 물량마저 넘겨받으면, 금룡장은 확보해 놓은 물량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목량의 거침없는 대답에 백리혜가 제동을 걸었다.
“그들이 다른 곳에 팔 수도 있어요. 팔 곳이 꼭 만마성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생산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할 곳도 많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많은 물량을 갑자기 처리할 경우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때로는 손해마저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건…….”
“감정을 앞세워서 멀쩡한 물건을 손해보고 판다면, 그들은 진짜 장사꾼이라고 할 수 없지요.”
듣고만 있던 행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금룡장주 전금환은 절대 손해를 보고 물건을 넘길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물건을 넘기기는커녕 당장 무사들을 이끌고 비룡장으로 달려오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러한 계책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룡방의 공격조차 물리쳤지 않은가.
전금환은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물건을 넘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본전에 약간의 이득을 더해주는 정도로 협상하지요. 금룡장도 우리가 손해를 주지 않고 사들인다고 하면 물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지 않을 거요.”
혁무천이 그리 말하자, 송비가 은근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굳이 이득까지 더해줄 필요 있나? 급히 물건을 처리하려면 일반적으로 삼 할 정도는 싸게 팔아야만 하네. 그래도 물량이 많으면 살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
행수 하나가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 말씀이 맞소이다. 우리가 이 할에서 삼 할 정도 싼 가격으로 매입하겠다고 하면 저들도 마다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물량을 빼앗고 물품까지 그렇게 사들인다면 정말 도둑놈 심보지요.”
“…….”
송비는 입을 다물고 슬쩍 눈을 돌렸다. ‘도둑놈 심보’라는 말이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유사시 구룡 중 다른 세력들이 절대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겁니다.”
그제야 혁무천의 말뜻을 깨닫고 몇 사람이 나직하게 감탄성을 터트렸다.
“아……!”
“호오, 그건 그렇군.”
백리궁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옳은 말이네, 옳은 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먼저 천룡방에 사자를 보내서 우리 측 의견을 전하십시오. 그 일이 처리되면 만마성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알았네. 긴급 구룡대총회를 알리는 전서를 보내면서 의견을 전달하지.”
“구룡 중 몇 곳 정도가 우리 비룡장의 손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소룡장과 철룡가는 확실하네.”
소룡장은 악양에 있는 상가로 호남성의 차를 주로 취급했다.
그리고 철룡가는 안휘성 숙주에 있는데, 쇠를 다루는 데는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곳이었다.
그 두 곳은 백리궁과 각별한 사이여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룡가와 취룡원은 눈치를 볼 것이고, 금룡장과 마룡성, 수룡방은 천룡방 편에 설 것이 분명하네.”
“나쁘지는 않군요.”
아홉 개의 세력 중 우호 세력이 두 곳뿐이라는데도 긍정적으로 말하는 혁무천의 말에 백리궁은 미소를 지었다.
백리양은 담담한 표정이었고.
백리혜는 그런 두 부자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우, 도대체 저자의 무엇이 아버님과 오빠를 혹하게 했는지 모르겠군. 무공이 고강한 거야 인정하지만…….’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백리궁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도룡가는 절강 항주에 있는데, 고대로부터 유명한 월주요(越州窯)의 도자기로 부를 이룬 상가였다.
그리고 모태주와 동주 등 귀주성의 술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취룡원은 형주에 있었다.
‘도룡가에 대해서는 구요 노인에게 부탁하고, 형주에 한번 가봐야겠군.’
형주에는 풍혼문이 있었다.
취룡원을 끌어들이는 김에 풍혼문까지 얻을 수 있다면 형주에서 무창에 이르는 상계의 세력구도가 달라질 것이다.
‘얻지 못할 것 같으면 지워버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