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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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7화
147화
<재미있나 보군.>
천화광이 피식 웃으며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래. 네 말을 듣는 것보다는 더 재미있군.>
<쳇,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할 때는 영락없이 토라진 여자 같았다.
혁무천은 그래서 더 그와 말을 나누는 게 꺼려졌다. 왠지 모르게 속이 느글거렸으니까.
그때 협상 과정을 지켜보던 백리양이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물량보다 두 배의 물량을 거래하시겠다면 가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두 배를 사주면 가격을 깎아주겠다?”
만마성 쪽의 사람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야 저희도 조금 남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물량만으로는 운송비와 경호 비용 제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남기는커녕 자칫 물건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두 배는 너무 많네.”
만마성 쪽에서 난색을 표했지만, 백리양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 계산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습니다만.”
“무슨 말인가? 본성의 인원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번 봄에 금룡장에서 제때 물건을 납품하지 못해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험, 그건 저쪽도 사정이 있어서… 다음에는 실수를 안 하겠다고…….”
만마성의 간부가 어영부영 변명하며 넘기려 했다.
하지만 백리양은 한번 잡은 기회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번 약속을 어긴 사람은 또 다시 약속을 어기는 게 보통입니다. 만약 절대적으로 물건이 필요한 상황에서 또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말에 천화광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건 그대 말이 맞아. 금룡장이 또 실수할지 모르니 안전조치를 해놓는 게 좋겠어.”
“소성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물량 중 일부만 저희에게 넘기십시오. 그럼 만마성은 물건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지니 좋은 일이지요.”
“어느 정도면 되겠나?”
“삼 할이면 됩니다.”
“삼 할만 해도 한 달 물량이 은자 만 냥 어치는 될 거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은자 오백 냥 정도 더 깎아드릴 수 있는 겁니다. 일 년이면 은자 육천 냥이지요.”
“흠, 육천 냥이라…… 만약 다른 물품도 그렇게 한다면 깎아줄 수 있나?”
천화광의 말에 옆에 있던 만마성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소성주, 그건 너무 많은 양보를…….”
“양보? 무슨 양보? 우린 이쪽에서 사나, 저쪽에서 사나 마찬가지 아니오?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으면 좋은 거지.”
“그래도 신뢰라는 게 있는데…….”
“신뢰는 무슨! 결국 그동안 비싸게 팔아먹었다는 건데, 그런 자들과 무슨 신뢰를 논한단 말이오?”
“…….”
금마당의 간부들은 입을 다물고 눈치만 봤다. 이미 뇌물을 받아먹은 간부 세 명이 뇌옥에 갇힌 터였다.
그나마 자신들을 빠져나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게 걱정되었는지 금마당주 인호명이 후다닥 천화광의 말을 거들었다.
“옳습니다, 소성주. 같은 물건을 사면서 돈을 더 주면 결국 본 성만 손해입니다.”
“맞소. 그럼 이제부터 다른 물품도 그러한 부분도 감안해서 협상을 해보시오.”
협상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또 다시 지루한 협상이 이어지자 천화광이 종이를 눌러놓은 작은 문진(文鎭)을 들더니 주지와 엄지 사이에 끼우고 혁무천에게 튕겼다.
혁무천은 문진이 날아들자 중지로 튕겨서 되돌려 보냈다.
천화광도 마찬가지로 문진을 튕겨냈다.
결국 문진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틱, 툭, 틱, 툭, 틱…….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서 허공에 머물며 빙빙 돌았다.
갑작스런 두 사람의 행동에 협상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
“저, 소성주…….”
인호명이 참지 못하고 넌지시 천화광을 불렀다.
천화광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손을 내렸다. 혁무천도 진기를 거두어 들였다.
중간에 떠 있던 문진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
그런데 떨어진 문진이 가루가 되어서 흩어졌다.
단단하기가 무쇠 같다는 흑오석으로 만든 문진이 가루가 되다니!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제야 얼마나 강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는지 알고 안색이 급변했다.
더구나 주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만큼 공력 조절이 가공할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그때 천화광이 일어났다.
“이봐, 무천. 협상은 이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나가서 이야기나 하지?”
혁무천도 반복되는 협상에 대하며 슬슬 지루해지던 차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낫겠군. 괜히 방해만 되겠어.”
하지만 그냥 나가지는 않았다. 그가 백리양을 보며 말했다.
“양, 추가 물량을 오 할로 늘려. 가격도 다시 조정해서 조금 더 감해주고. 만마성도 이익이니 마다하지 않을 거야.”
그러고는 시선을 천화광에게로 돌렸다.
“안 그런가, 화광?”
“응? 아, 하하. 그건 그렇지.”
말 몇 마디로 물량을 이 할이나 더해놓은 혁무천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안 갈 거야? 다시 앉을까?”
“아냐. 가지, 가.”
천화광도 어쩔 수 없이 혁무천을 따라나섰다.
금룡장과 천룡방이 펄쩍 뛰겠지만, 그들의 불만 정도는 눈 한번 부라리는 것으로 충분히 누를 수 있었다.
회의장에서 나온 혁무천은 천화광과 나란히 걸었다.
가끔씩 말을 거는 천화광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연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동대안이 멀리서 그 모습을 흘겨보았다.
‘무천이 저놈에게 넘어가면 안 되는데.’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천화광은 계속 말을 걸었다.
“우문척이 우문소소를 찾아서 데려갔다며?”
“그래.”
“혹시 우문소소와 우문척이 어떤 사이인 줄 알아?”
“대충은.”
“나와 우문척이 외척 관계인 것은 알고 있어?”
“그랬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략결혼은 어디에든 있다. 팔대마세 중 두 곳이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것 정도는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를 위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만마성과 철혈마련은 동반자인 한편 강력한 적수였다.
정략결혼은 완충작용을 하는 정도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도 남았다.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철혈마련과 싸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자네는 누구 편을 들 거지?”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천화광도 웃지 않았다.
혁무천은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게 대답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
천화광이 다시 피식, 웃었다.
천하의 누가 만마성에 들어와서, 그것도 자신 앞에서 저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욕심이 나는 자다. 할 수만 있다면 꽁꽁 묶어서 가두어 두고 혼자만 감상하고 싶을 만큼.
“무천, 계속 비룡장에 있을 건가?”
“당분간은. 어쩌면 오래 있을지도 모르고. 할 일이 있거든.”
“그 할 일이 뭔지 몰라도… 나와 함께 하면 안 될까?”
우뚝 걸음을 멈춘 혁무천이 몸을 돌렸다.
“그만 돌아가지.”
“아아, 안 물어볼게.”
손사래를 친 천화광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동대안이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삐죽였다.
‘저놈이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세 시진 동안 이어진 협상은 서로 만족한 결과를 내고 끝을 맺었다.
혁무천의 제안대로 금룡장이 거래하던 기존 물량 중 오 할을 비룡장에 맡기기로 했다. 가격은 추가물량에 대해서 칠푼을 감해주기로 하고.
일 년 물량으로 총 은자 삼십만 냥 어치의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금룡장에서 알면 펄쩍 뛰고 난리가 날 결정이었지만, 패를 쥐고 있는 쪽은 만마성이었다.
그렇게 협상이 끝나고 난 직후, 무사 하나가 급히 천화광을 찾아왔다.
천화광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묘한 표정을 짓더니 혁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봐, 무천. 아버님께서 자넬 좀 만나고 싶다 하시네.”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사람들이 모두 정색했다.
만마존 천양묵.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대천마 중 일인. 그가 무천을 만나고자 한다.
천화광과의 관계로 인해 달라졌던 그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더 뛰어올랐다.
그런데 혁무천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 양반이 왜?”
헉!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혁무천과 천화광을 번갈아보았다.
감히 만마성의 성주, 만마존을 ‘그 양반’이라고 하다니!
천화광이 화를 낸다면 지금까지 한 협상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화광은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나도 몰라. 자네가 철혈마제와 사천제일마를 만났다고 하니 한번 보고 싶은가 보지 뭐.”
“하긴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못 만날 것도 없지.”
“아버님 성격에 그러진 않을 거야.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죽이고 말지.”
“성격 좀 있으시군. 할 수 없지. 앞으로 계속 거래하려면 잘 보여야 할 테니까. 안내해.”
혁무천이 천화광과 함께 회의청을 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숨을 제대로 내쉬었다.
그들 눈에는 무천이란 자가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백리양은 들뜬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백리양이 모든 걸 맡길 만한 분이야.’
***
천양묵은 만마전 안쪽의 내실에서 혁무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혁무천이 천화광과 함께 내실로 들어가자, 뭔가를 적고 있던 천양묵이 고개를 들었다.
천화광과 판박이처럼 보일 정도로 닮은 얼굴이었다.
성격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무 형을 데려왔습니다, 아버님.”
“비룡장의 무천이…….”
“그쪽으로 앉아라.”
인사 도중에 턱짓으로 탁자를 가리킨 천양묵이 다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혁무천은 천화광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여인이 차를 따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복장을 봐서는 시비가 아닌 듯했다.
천화광은 그녀를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못마땅한 것이 있는 듯했는데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혁무천은 천양묵을 주시하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소문대로군.’
비룡장의 정보를 통해서 천양묵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만마의 지존답게 절대 경지의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성격이 어찌나 살벌한지,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백 명을 죽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인에게만은 꼼짝을 못했다.
마도 제일의 애처가.
그는 매일 부인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무려 삼십 년 가까이, 하루도 빼지 않고.
언젠가 그 내용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손발이 오글거리고 속이 울렁거려서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 됐군.”
천양묵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붓을 내려놓았다.
천화광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그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해봐야 자신만 고생이었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인 글을 매일 쓰다니…… 그러고 보면 아버지도 참 대단한 분이시라니까.’
그랬다. 천양묵은 판에 박힌 내용을 줄기차게 써댔다.
천화광도 그 내용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서찰을 받으면 항상 소녀처럼 즐거워 하셨다.
마치 새로운 내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그러고는 곱게 접어서 한쪽에 보관하셨다.
그렇게 쌓인 서찰이 큰 상자 두 개에 가득 차 있었다.
“흠, 오늘은 멋진 문구가 떠올라서 글이 다른 때보다 두 줄 늘어났구나.”
천화광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아마 늘어났다는 글 두 줄도 언젠가 써먹었던 글귀일 것이 뻔했다.
그래도 일단은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겠군요.”
“하하하하, 그럴 거다.”
호탕하게 대소를 터트린 천양묵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놈, 낯짝 하나는 굉장하군.”
“돼지를 얼굴 보고 잡는 건 아니지요.”
“응?”
천양묵이 눈을 껌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