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2화
142화
“솔직히, 그가 우리에게 잘잘못을 묻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소. 문제는 우리를 도와준 그를 우리가 먼저 내치고 있다는 거요.”
여전히 불만인 듯 여충민이 또 나섰다.
“장로님, 그자는 마도의 인물 아닙니까? 한번 도와줬다 해서 마도의 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리 따진다면 여기에서 정파 운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장로님?”
이척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갈! 무공만 정파의 무공을 배우면 뭐한단 말인가! 마음이 질시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
여충민은 이척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장로에게 대들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불만을 삭였다.
결국 상은곡이 나서서 이척의 노기를 가라앉히려 했다.
“허어,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그만하게. 여 사질도 오죽하면 그러겠나.”
이척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여충민에게서 멈췄다.
“좋아. 그건 각자 사정이 있다 치지. 그런데 조금 전 그를 그딴 애송이라고 했나?”
여충민이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슬쩍 돌렸다.
“만약 그가 마음먹고 우리에게 죄를 묻겠다고 하면 누가 그를 막을 건가? 여기 있는 우리가? 훗! 웃기는 소리! 우리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도망치는 사람밖에 없을 거다.”
조광유가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쓰며 이척을 불렀다.
“이보게, 아우!”
“제 말이 과장된 말 같습니까?”
그때 신도소영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장로님 말씀이 맞아요. 만약 그가 분노해서 우리를 향해 검을 빼들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예요.”
“영아야,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가 펼치는 무공을 우리도 봤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신도평이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신도소영의 생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뭘 봤나요? 아무리 얕보아서 방심했다 해도 귀천교의 장로 장위오가 이 초식 만에 죽음을 당했어요. 만마성의 장로 구음마도 역귀상과 수십 명 정예가 그 한 사람을 막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서 길을 터주었어요.”
“…….”
“복우산에서 철혈마련과 만마성의 공격에 정은맹 무사들이 위기에 몰렸을 때는, 그와 그의 일행 두세 명이 퇴로를 만들어냈다고 하더군요.”
신도소영이 말을 맺고 씁쓸한 표정을 짓자, 이척이 한마디 덧붙였다.
“내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소. 그가 전력을 다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그와 싸운다 해도, 나는 그의 삼 초식을 막아낼 자신이 없소.”
신도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장로님과 영아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그와 며칠 함께하며 많은 것을 지켜봤습니다. 물론 상대를 얕보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입니다만, 그렇다 해서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또한 옳은 판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광유와 상은곡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도평의 말에 동조했다.
“위기에 처하다 보면 과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 법이지.”
“우리도 사람 보는 눈이 없지는 않다네.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군.”
이척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미 한쪽 귀가 막히고, 한쪽 눈이 닫힌 사람들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한쪽의 말밖에 안 들릴 것이고, 뭘 봐도 한쪽의 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거기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랴.
‘그에게 참으로 미안하군. 그가 왜 본 회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구나. 허어…….’
그때 듣고만 있던 이현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어쨌든 은 소저는 천기회의 손님이며 저희 와호산장의 손님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남은 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지요.”
신도소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님 말씀이 맞아요. 이 장로님도 그 점 때문에 말씀하신 거예요.”
“지금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수소문 하고 있으니 곧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차분한 그의 말에,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그리고 미처 말씀드리기 못했습니다만, 조금 전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모두들 이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현이 숨을 한번 몰아쉰 후 말을 이었다.
“철혈마련의 강동일화 우문소소가 신양에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은 소저가 사라진 바로 그날 말입니다.”
남궁운이 그 말을 듣고 눈이 한껏 커졌다.
“그럼……?”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선 우문소소가 은 소저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녀가 왜 은 소저를……?”
“왜는 왜겠습니까? 무천 때문이지요.”
묘한 표정으로 대답한 이현이 신도소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만, 정말 뛰어난 사람이더군요.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우문소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얻으려는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무천과 원한만 깊어질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요?”
“저도 그게 의문이긴 합니다만, 뭔가 우문소소만의 이유가 있겠지요.”
조광유가 이현과 신도소영 사이에 끼어들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소소가 범인이라면, 철혈마련에서도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고 봐야겠군.”
조금 살아나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단, 우문소소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 말은, 우리 움직임이 모두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단 말인가?”
“처음부터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를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으으음.”
“아마 만마성에서도 눈치 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움직임이 없지?”
이번에는 상은곡이 물었다.
이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언제든 쓸어버릴 수 있으니 당장 급하게 처리할 마음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철혈마련과 만마성이 서로 상대가 나서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럼 마냥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물론입니다. 그래서 은 소저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다음 계획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다음 계획이라면… 드디어 그들이 조건을 받아들였는가?”
상은곡의 말에, 둘러앉은 사람들 눈에서 열기를 피어났다.
대답하는 이현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흘렀다.
“다행히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아서, 일단 정은맹과는 접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구문팔가 중 중원 쪽에 기반을 둔 문파들 중에서도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곳이 있습니다.”
“오오, 그거 다행이군.”
“그럼 언제부터 계획을 시작할 것인가?”
조광유와 상은곡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이현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회주께서 이곳으로 오시면 시작할 겁니다.”
신도평의 눈이 커졌다.
“아버님께서 이곳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아마 지금쯤은 출발하셨을 거네.”
***
혁무천이 신양에 도착한 지 이틀째.
우문소소의 흔적 찾기 위해 신양을 중심으로 백 리 안쪽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은설과 우문소소에 대한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천기회 사람들이 있는 와호산장에서도 나름대로 조사하고 있을 텐데 그들 역시 찾아내지 못한 듯 조용했다.
‘이미 신양에서 멀리 떠나버린 것 아닐까?’
그럼 조사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몸에 이상은 없어야 할 텐데…….’
객잔의 뒷마당을 바라보는 혁무천의 눈에 은설과 헤어지던 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참 밝은 모습이었는데, 풍마문에서 그녀를 찾아냈을 때는 웃는 모습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우문소소, 너는 정말 나쁜 여자다. 그렇게 순진한 아이를 이용하려 하다니.’
아마 해를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니까.
아니, 멍청하기는커녕 너무 영악해서 탈이다.
‘그래도 은설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혁무천은 무심하게 굳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뒷마당을 둘러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미적거리는 모습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자가 말했다.
“저기…….”
혁무천의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등골을 타고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말해보시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혹시… 무씨 성을 쓰시지 않소?”
“맞소.”
“누가 말을 전해달라고 했소.”
혁무천은 다그쳐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그자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서문 쪽으로 가면 양두동(羊頭洞)이라는 곳이 있소. 그곳에 가서 왼쪽 팔이 없는 남가를 찾으시오. 그럼 그가 누군가에게 안내해 줄 거요. 단, 갈 때는 혼자 가야 하오.”
“기다리는 사람이 여자요?”
청년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모르겠고… 나에게 그 말을 하라고 시킨 사람은 남자였소. 그리고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양두동은 여자가 함부로 들어가면 절대 안 되는 곳이오.”
혁무천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대안은 이마를 찌푸렸다.
혁무천의 말대로 정말 연락이 왔다. 우문소소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우문소소일까?”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녀가 아니라 해도 최소한 관련이 있는 자일 거요.”
“근데…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나?”
“그렇소. 혼자 오라고 했으니 혼자 갈 거요.”
그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그곳이 설령 지옥의 유황불 속이라 해도.
“자칫 그들의 신경을 건드려서 설아가 해를 입으면 안 되오. 그러니 내가 올 때까지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뭐, 자네가 누구에게 당하거나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워낙 요지경이어서 말이야.”
“그럼 동 형이 함께 가겠소?”
“응? 나? 하, 하. 혼자 오라고 했다며.”
동대안이 얼버무리자, 옆에서 영추문이 핀잔을 주었다.
“근데 왜 자꾸 토를 달아? 안 그래도 심란할 텐데.”
동대안은 입술을 두어 번 삐죽이고는 찻잔에 눈을 처박았다.
“너무 걱정 마시오. 우문소소가 가진 힘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으니까. 그럼 다녀오겠소.”
몇 마디 말로 일행을 안심시킨 혁무천은 방을 나섰다.
동대안은 혁무천이 방을 나간 후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장평, 너는 즉시 풍마루에 가서 무천이 양두동에 들어간다고 전해. 그럼 그들이 알아서 움직일 거다.”
“알았소.”
장평이 나가자, 동대안이 일어섰다.
“자, 이제 우리도 움직여볼까?”
영추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형이 혼자 간다고 했잖아?”
“그래. 혼자 가라고 해. 누가 뭐랬어? 우린 그냥 양두동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가자는 거지.”
***
양두동은 양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거리였다.
양 대가리가 없는 가게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이 양두동이라고 불리는 것은 양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양고기 파는 거리가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양두동이었다. 양 대가리가 보이지 않을 때도 양두동이라 불렸다.
양고기 파는 거리가 형성된 것은 그곳의 이름이 양두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진짜 양두동이 양고기 파는 거리 뒤쪽에 있는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혁무천은 길 양쪽 가게에서 내놓은 양 대가리의 사열을 받으며 뒷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팔이 없는 남씨 성의 남자가 그 골목 안에 산다고 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갈수록 양고기 파는 가게가 점점 적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를 맞이한 것은 천막으로 대충 쳐진 움막과 질척거리는 진창길이었다.
좌우로 꺾어지며 이십여 장쯤 갔을 때 찢어진 깃발이 하나 보였다.
주(酒).
누리끼리한 깃발에는 달랑 그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바로 그곳이 외팔이 남씨가 산다는 곳이었다.